"日, 기축통화국-美와 통화스와프 있어 가능…韓, 일본식 어려울 것""조지아 구금사태로 韓 기업들의 불안 가중…투자 약속에 냉담해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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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재명 한국 대통령(좌)과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 EPA=연합뉴스 자료사진. ⓒ연합뉴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수십억달러 규모의 대미(對美) 투자처를 직접 지정하겠다는 요구를 내놓자 한국이 강하게 반발하고 있다고 영국 파이낸셜타임스(FT)가 보도했다.
FT는 16일(현지시각) '한국, 일본식 무역합의 압박에 반발(South Korea resists US pressure to finalise 'Japan-style' trade deal)'이라는 제목의 기사에서 이같이 전하면서 한·미가 무역합의의 최종 조건을 두고 난항을 겪고 있다고 전했다.
여한구 산업통상자원부 통상교섭본부장은 15일 미국을 찾아 제이미슨 그리어 미국무역대표부(USTR) 대표와 협상을 진행하고 있다.
이는 7월 말 한국의 3500억달러 대미투자와 미국의 관세인하를 맞교환하기로 한 합의 발표 이후 두 달 만이다.
여한구 본부장은 워싱턴 D.C. 도착 직후 "악마는 디테일에 있다. 세부사항을 두고 긴장된 협상이 진행되고 있다"고 말했다.
핵심 쟁점은 대미 투자처를 트럼프 대통령이 직접 지정하겠다는 미국의 요구를 한국이 수용할지 여부다.
복수의 협상 소식통에 따르면 미국은 일본의 선례를 따라 한국의 대미 투자처를 트럼프 대통령이 직접 결정하도록 요구했지만, 한국 정부는 이를 '비합리적'이라며 거부한 것으로 알려졌다.
앞서 트럼프 대통령은 7월 협상 당시 "한국이 3500억달러를 미국에 투자하고, 투자처는 대통령인 내가 직접 선택한다"고 주장했다.
이에 한국 대통령실은 "기업들이 미국에 가는 이유는 이익을 내기 위해서이지, 돈을 퍼붓기 위해서가 아니다"라면서 사실상 거부 의사를 밝혔다. 이재명 대통령도 "합리적이고 공정하지 않은 협상은 진행하지 않는다"고 강조했다.-
- ▲ 미국 이민단속당국이 조지아주 현대자동차그룹-LG에너지솔루션의 합작 배터리공장 건설현장에서 벌인 불법체류·고용단속현장 영상과 사진을 홈페이지를 통해 공개했다. 250906 ICE(미국 이민세관단속국) 홈페이지 갈무리. ⓒ연합뉴스
미국 조지아주 현대자동차-LG에너지솔루션 배터리공장에서 벌어진 대규모 이민 단속으로 한국인 근로자 수백명이 구금되면서 양국 관계는 한층 더 긴장됐다고 FT는 전했다.
일본이 미국 측에 5500억달러 규모 프로젝트를 제안해 양국이 합의한 뒤 트럼프 행정부의 압박은 더욱 거세졌다.
일본은 이번 합의로 자동차 수출품에 15% 관세만 적용받게 됐지만, 한국산 자동차는 여전히 25% 관세가 부과돼 경쟁에서 불리한 처지에 놓였다.
하워드 루트닉 미국 상무장관은 CNBC 인터뷰에서 "일본은 서명했다. 한국은 협정을 받아들이든지, 아니면 관세를 내든지 둘 중 하나다. 흑백은 분명하다"면서 합의를 압박했다.
FT는 한국이 일본식 합의를 따르기 어려운 이유로 외화보유액이 일본보다 훨씬 적고, 미국과 통화스와프 협정도 체결하지 못한 점을 지적했다.
실제 조현 외교부 장관은 국회에서 무역합의의 일환으로 한·미 통화스와프를 제안했다고 밝힌 바 있다.
워싱턴에 있는 아시아그룹(TAG)의 제니퍼 리 전무는 "원화는 글로벌 시장에서 엔화보다 변동성이 훨씬 크고, 한국의 외화보유액은 일본의 3분의 1 수준에 불과하다"며 "한국이 미·일 합의를 그대로 따른다면 원화 시장이 극도로 불안정해지고 가치하락압력이 커질 것"이라고 분석했다.
로이터통신도 한국이 일본과 같은 대미 무역합의를 체결하기 어려운 이유로 외화보유액이 일본보다 훨씬 적고, 원화의 유동성이 낮아 변동성 위험이 크다는 점을 지적했다.
이런 상황에서 3500억달러 규모의 투자안을 이행하면 달러 수요가 급증해 원화 약세 압력이 심화할 수 있다는 우려도 제기된다.
일본의 경우 기축통화국인 데다 미국과 무제한 통화스와프를 맺고 있어 자금 유입시 외환 공급이 원활하다.
일각에서는 최근 조지아주의 이민 단속사태가 협상 불확실성을 더욱 키웠다고 보고 있다.
전직 미국 통상교섭관인 웬디 커틀러 아시아소사이어티정책연구소(ASPI) 부회장은 "한국기업들은 직원들이 이민당국에 끌려가는 모습을 보며 충격을 받았다"며 "이런 상황에서 새로운 투자 약속을 강요받는 데 대해 냉담해졌다"고 지적했다.

성재용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