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용부 "'직장 내 괴롭힘' 규정 적용 안 돼"국힘 "고인이 작성한 경위서, 근로자성 입증"김장겸 "MBC 책임 회피, 공식 사과조차 안 해"
  • ▲ 지난해 9월 '직장 내 괴롭힘'을 호소하며 사망한 오요안나 MBC 기상캐스터. ⓒ오요안나 인스타그램
    지난해 9월 '직장 내 괴롭힘' 의혹으로 세상을 등진 고(故) 오요안나 MBC 기상캐스터의 모친이 진상 규명 및 후속 조치의 미흡함을 호소하며 '단식 투쟁'을 벌이고 있는 것으로 드러났다.

    국회 과학기술정보방송통신위원회 소속 김장겸 국민의힘 의원은 15일 국회 의원회관에서 열린 'AI 글로벌 3대 강국 도약을 위한 K 정책 제안 토론회'에서 "인류가 잘 살기 위해 AI 발전 정책 제안도 하는 것인데, 그런 점에서 AI와 직접적인 관련이 없지만 한 말씀드리겠다"며 "오늘이 고(故) 오요안나 MBC 기상캐스터 추모 1주기"라고 말문을 열었다.

    김 의원은 "찬란한 미래가 기대되는 한 청년이 직장 내 괴롭힘으로 생을 마감한 안타까운 사건을 우리는 기억해야 한다"며 "무엇보다 진상 규명과 또 유가족에 대한 위로 및 재발 방지 조치가 충분치 않았다는 지적이 계속되고 있고, 지금 고인의 모친이 단식 중인 것으로 알고 있다"고 밝혔다.

    그러나 "고인이 소속된 MBC는 책임을 회피하고 공식 사과조차 하지 않고 있다"고 분개한 김 의원은 "정의를 말하면서 남의 눈의 티끌을 비수처럼 파고들면서 정작 제 눈의 대들보는 보고도 외면하는 형국"이라고 질타했다.

    김 의원은 "민주당과 MBC는 지난 4월 국회 과방위에서 약속했던 공식 사과와 유가족 위로 등 후속 조치 약속을 더 이상 미루지 않기를 바란다"며 "저 또한 관련 입법을 발의했는데, 고 오요안나 씨와 같은 비정규직·프리랜서에 대한 차별과 직장 내 괴롭힘 사건이 되풀이되지 않도록 국회에서 제도적 대책이 마련되기를 기대한다"고 당부했다.

    김 의원 측에 따르면 고인의 유족은 지난 8일부터 서울 마포구 소재 MBC 사옥 앞에서 단식 농성 중인 것으로 전해졌다. 고인의 모친을 비롯한 유족은 △MBC 사장의 공식 사과 △재발 방지 대책 발표 △기상캐스터 정규직화 등을 요구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 "완전 미친 X이다. 단톡방 나가자. 몸에서 냄새 난다"

    2021년 5월 MBC 공채 기상캐스터로 입사한 오요안나는 2023년부터 6개월 단위로 계약을 연장하는 방식으로 일하다 지난해 9월 휴대전화에 원고지 17장 분량의 유서를 남기고 스스로 생을 마감했다.

    고인의 사망 사실이 알려진 후 MBC 측은 "고인이 프리랜서로 일하면서 자신의 고충을 담당 부서(경영지원국 인사팀 인사 상담실, 감사국 클린센터)나 함께 일했던 관리 책임자들에 알린 적이 전혀 없었다"며 "고인이 당시 회사에 공식적으로 고충(직장 내 괴롭힘 등)을 신고했거나, 신고가 아니더라도 책임 있는 관리자들에게 피해를 조금이라도 알렸다면 회사는 당연히 응당한 조사를 했을 것"이라고 해명했다.

    그러나 오요안나는 숨지기 두 달 전 엄마에게 전화해 "괴롭힘 사실을 선배에게 얘기했다"며 기상팀 내에서 책임자 역할을 맡고 있는 인물에게 수없이 상담을 했다고 말했던 것으로 드러나 파문이 커졌다.

    특히 고인과 동기인 금채림 MBC 기상캐스터를 제외한, 4명의 MBC 기상캐스터들이 따로 단톡방(카카오톡 단체 메시지방)을 개설하고 고인을 향해 온갖 비난을 퍼부은 사실이 알려지면서 논란이 증폭됐다.

    JTBC '사건반장'에 따르면 이 단톡방에서 기상캐스터들은 "완전 미친 X이다. 단톡방 나가자. 몸에서 냄새 난다", "('더글로리') 연진이는 방송이라도 잘했지. 피해자 코스프레 겁나 해. 우리가 피해자" 등의 폭언으로 고인을 맹비난했던 것으로 전해졌다.

    ◆ 고용부 "MBC 내 '故 오요안나 괴롭힘' 인정 ‥ 근로자는 아냐"

    이 사건으로 MBC를 특별근로감독한 고용노동부(서울지방고용노동청·서울서부지청)는 지난 5월 19일 "지난 2월 11일부터 이달 16일까지 고(故) 오요안나 씨에 대한 직장 내 괴롭힘 사건에 대한 특별근로감독을 실시한 결과, 2021년 입사 후 선배들로부터 수시로 지도와 조언을 받아 온 고인에게 단순히 지도·조언의 차원을 넘어 '업무상 필요성이 인정되기 어려운' 행위들이 반복돼 왔다"고 발표했다.

    그러면서 고용노동부는 생전 고인이 MBC를 대표해 한 예능프로그램(유퀴즈)에 출연하게 되자, 선배 기상캐스터가 "네가 유퀴즈에 나가서 무슨 말을 할 수 있어?"라며 공개적인 장소에서 고인을 비난했던 것을 대표적 피해 사례로 거론했다.

    고용노동부는 "해당 행위들이 비록 고인의 실수나 태도를 지적하는 과정에서 이뤄졌으나 △고인이 기상캐스터를 시작한 지 불과 1~3년 이내의 사회 초년생인 점 △업무상 필요성을 넘어 개인적 감정에서 비롯된 불필요한 발언들이 수차례 이어져 온 점 △지도·조언에 대해 선·후배 간 느끼는 정서적 간극이 큰 점 △고인이 주요 지인들에게 지속적으로 정신적 고통을 호소하고 유서에 구체적 내용을 기재한 점 등을 종합적으로 고려한 결과, 해당 행위들이 '괴롭힘'에 해당하는 것으로 판단했다"고 밝혔다.

    고용노동부는 "이는 MBC 기상캐스터가 각각의 독립성과 자율성을 가진 프리랜서 신분임에도 당사자들 간에 선·후배 관계로 표현되는 명확한 서열과 위계질서가 존재하는 조직문화 속에서 선·후배 간 갈등이 괴롭힘에 해당하는 행위들로 이어진 측면이 크다고 봤다"고 판단했다.

    다만 "참고인 조사, 고인의 SNS, 노트북 등 포렌식 분석 등을 토대로 기상캐스터의 업무처리 실태를 면밀히 조사한 결과, 근로기준법상 근로자로 인정하기 어려워 같은법 제76조의 2에 따른 '직장 내 괴롭힘' 규정이 적용되지 않는다고 판단했다"고 덧붙였다.

    이와 관련, 국회 환경노동위원회 소속 김소희 국민의힘 의원은 15일 국회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고용노동부가 '괴롭힘 행위는 있었지만 근로자성은 인정하기 어렵다'고 결론내렸으나, 고인이 작성한 경위서는 사용자의 지휘·감독을 전제로 한 것으로 '근로자성'을 뒷받침하는 증거가 된다"며 "근로자를 지켜야 할 고용노동부가 MBC의 방패막이가 됐다. 고용노동부는 즉각 재조사에 착수해 잘못을 바로잡아야 한다"고 주장했다.
조광형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