李 대통령 "이익 없는 합의 서명 못 한다"美 "韓, 서명하거나 25% 관세 부담하라"헌법학자 "국회 사전 동의가 헌법 취지"전문가 "거여 국회, 비준안 통과하겠지만 숙의 필요"
  • ▲ 지난달 25일(현지시간) 미국 워싱턴DC 백악관 오벌오피스에서 열린 이재명 대통령과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의 한미 정상회담 당시 사진을 백악관이 최근 사진 공유 사이트를 통해 공개했다. 이재명 대통령과 강훈식 비서실장이 책상에 손을 올린 채 트럼프 대통령과 논의하고 있다. ⓒ백악관 플리커 캡처

    미국이 지난달 말 한미가 큰 틀에서 합의한 한미 관세 및 투자 협정을 한국이 수용하지 않을 경우 25% 고율 관세를 부과하겠다고 압박하면서, 국내에서는 해당 합의가 국회의 동의 대상에 해당하는지 여부가 쟁점으로 떠올랐다.

    일반적으로 조약은 대통령의 서명과 필요 시 국회의 비준 동의, 그리고 대통령의 최종 비준을 거쳐 국제법적 효력이 국내법에 반영된다. 과거 한미 자유무역협정(FTA)도 이러한 절차에 따라 대통령 서명 이후 국회의 동의를 거쳤다. 그러나 이번 합의는 성격상 대통령의 서명 이전에 국회의 '사전 동의'를 받아야 한다는 주장이 설득력을 얻고 있다.

    실제로 한국은 미국에 총 835조 원(6000억 달러)에 달하는 대규모 투자 계획을 제시했다. 이 3500억 달러 규모의 투자펀드와 1000억 달러 상당의 에너지 구매, 1500억 달러의 민간 투자가 포함된 대규모 패키지로, 국가 재정과 기업 부담에 직결된다.

    이처럼 막대한 재정적 책임은 "국회는 국가나 국민에게 중대한 재정적 부담을 지우는 조약 또는 입법사항에 관한 조약의 체결·비준에 대한 동의권을 가진다"는 헌법 제60조 제1항과 맞닿아 있다.

    비록 이번 합의가 아직 문서화되지 않았지만, 헌법상 절차상으로는 협정에 준하는 성격을 가진다. 따라서 전문가들은 이번 합의에 대한 국회의 동의가 단순한 '사후 승인'이 아니라 헌법 제60조의 취지에 맞는 '사전 동의' 원칙을 구현해야 한다는 점을 강조한다.
    ▲ 하워드 러트닉 미국 상무장관은 이 대통령의 기자회견 직후인 11일(현지시간) CNBC 인터뷰에서 "한국은 (이재명) 대통령이 (워싱턴에) 왔을 때 서명하지 않았다"며 "한국은 그 협정을 수용하거나 관세를 내야 한다. 명확하다. 관세를 내거나 협정을 수용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CNBC 유튜브 캡처

    ◆李 대통령 "이익 안 되는 사인을 왜 하나 … 사인 못했다고 비난 말라"

    이재명 대통령은 지난 11일 취임 100일 기자회견에서 "우리는 얻으러 간 게 아니라 미국의 일방적 관세 증액을 최대한 방어하러 간 것"이라며 서명 지연의 배경을 설명했다. 그러면서 "이익이 되지 않는 사인을 왜 하나"라며 "사인하지 못했다고 비난하지는 말라"고 당부했다.

    ◆美 "韓, 무역협정 서명하든지 25% 관세 내야"

    이에 하워드 러트닉 미국 상무장관은 이 대통령의 기자회견 직후인 11일(현지시각) CNBC 인터뷰에서 "한국은 이 대통령이 (워싱턴에) 왔을 때 서명하지 않았다"며 "한국은 그 협정을 수용하거나 관세를 내야 한다. 명확하다. 관세를 내거나 협정을 수용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아울러 일본이 5500억 달러를 미국에 투자하고 알래스카 액화천연가스(LNG) 송유관 건설에 참여하며 초기 수익은 미국과 50대 50, 원금 회수 이후에는 미국이 수익의 90%를 가져가는 구조를 받아들였다는 사실도 강조했다. 그는 "나는 그들이 지금 일본을 보고 있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유연함은 없다"며 "일본은 계약서에 서명했다"고 언급했다.

    한미는 지난 7월 30일 큰 틀에서 관세 합의를 타결했다. 그러나 한국의 3500억 달러 규모 대미 투자 패키지 구성과 수익 배분 방식을 둘러싸고 교착이 이어지면서 합의문 마련이 지연돼 정상 간 서명 절차도 진행되지 못하고 있다. 지난 8일 실무 협의도 결론에 이르지 못했으며, 김정관 산업통상자원부 장관이 방미해 12일(현지시간) 러트닉 장관 등과 후속 협의에 나섰으나 여전히 이견을 좁히지 못했다.
    ▲ 국회의사당 전경. ⓒ정상윤 기자

    ◆대미 관세·투자협정, 헌법 제60조에 따른 국회 동의 대상

    전문가들은 이번 관세·투자 합의가 헌법 제60조에 따른 국회의 비준 동의 대상이라는 점에는 대체로 이견이 없다. 다만 국회의 동의 시점을 두고는 해석이 엇갈린다.

    헌법 전문가인 장영수 고려대 법학전문대학원(로스쿨) 교수는 뉴데일리에 "국가 재정에 직접적인 영향을 미치는 사항이자 입법 사항에 해당하는 만큼 국회의 사전 동의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특히 그는 "부득이한 경우 서명 후 동의를 받을 수도 있지만, 원칙적으로 동의는 승인이 아니다"라며 "서명 전에 국회의 동의를 받는 것이 헌법 취지에 부합한다"고 단언했다.

    아직 협정을 문서화하기 전이므로 국회가 비준 동의를 할 수 없다는 주장에 대해서는 "조약·협정·의정서 등 형식이나 명칭은 중요치 않다"며 "재정적 부담이나 중요한 입법 사항을 수반할 경우 국회 동의가 필요하다. 다만 단순한 기술 교류나 행정적 협조처럼 국가에 큰 부담을 주지 않는 경우에는 국회 동의가 필요하지 않다"고 설명했다.

    헌법 전문가인 차진아 고려대 로스쿨 교수는 "조약의 체결·비준권은 대통령에게 있지만 효력이 발생하려면 국회의 비준 동의를 거쳐야 한다"며 "서명 후 국회의 비준 동의를 받을 경우 국회가 거부하면 국제적 마찰이 생길 수 있으므로 사전에 국회의 동의를 받아두는 편이 훨씬 매끄럽다"고 설명했다.

    통상법 전문가인 최원목 이화여대 로스쿨 교수는 "아직 조약으로 정식 체결된 것이 아니므로 헌법 제60조가 곧바로 적용되지는 않는다"면서도 "구두 합의로는 중대한 사안을 처리할 수 없다. 반드시 문서로 남기고 계약을 체결한 뒤 국회의 비준 동의를 받는 절차가 필요하다. 국회와의 협력과 국민에 대한 설명은 반드시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정치권에서도 국회 비준 동의 요구가 제기되고 있다. 한동훈 전 국민의힘 대표는 11일 페이스북에서 이번 협정이 사실상 한미 FTA를 무효화하고 새로 체결하는 것과 다를 바 없다고 지적하며, 헌법 제60조가 규정한 '국가나 국민에게 중대한 재정적 부담을 지우는 조약'에 해당한다고 주장했다.

    그는 "지금은 도대체 어떤 일이 진행되고 있는지 국민도, 국회도 알지 못한다"며 "이런 식으로 국가와 국민에 부담을 지우는 중대한 협정이 맺어지는 것은 헌법 제60조의 헌법정신에 전혀 맞지 않다. 지금 미국과 진행 중인 협정에 대해 국회의 비준 (동의) 또는 그에 준하는 절차를 통해 국민께 설명하고 동의를 구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 이재명 대통령과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25일(현지 시간) 미국 워싱턴DC 백악관에서 한미 정상회담을 하고 있다. ⓒ공동취재/뉴시스

    ◆"재협상 의지가 없다면 국회 비준 동의 절차 미루는 건 납득 불가"

    국회의 비준 동의 절차가 이뤄지지 않고 있는 상황 자체에 대한 지적도 나온다. 차 교수는 "이번 합의는 관세법적 효력을 갖는 패키지로 국회 동의가 필요한 사안인데, 다수 의석을 가진 여당이 안건으로만 올리면 통과될 수 있음에도 절차를 미루고 있다"고 말했다.

    그는 "재협상을 통한 조건 개선을 위한 지연이라면 이해할 수 있지만, 그렇지 않으면서 서명을 미루는 것도 납득하기 어렵다"며 "25% 관세가 그대로 적용되는 것이야말로 오히려 국익을 해치는 일"이라고 꼬집었다.

    최 교수는 "정부가 서명을 거부하는 건 결국 우리 기업들에 더 불리한 결과를 낳는다. 미국은 관세율을 25%로 유지하거나 더 올릴 수도 있다"며 "유럽연합(EU)·일본과 달리 한국은 한미 FTA 적용으로 0%였던 관세가 15%로 높아지는 상황인 데다, 투자 수익의 90%를 미국이 가져가는 구조는 결코 유리하지 않다. 재협상 의지가 없다면 국회 동의 절차 역시 지연할 이유가 없다"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미국이 9대 1로 수익을 가져가는 구조라면 전문직 비자 확대나 사용후핵연료 재처리 권한 등 우리가 얻을 수 있는 다른 카드를 얻어냈어야 한다"며 "안보 이슈와 같은 비경제 사안까지 묶어서 협상해야 했는데, 미국이 던진 의제에 끌려다니다 보니 결국 기업들만 피해를 보고 있다"고 비판했다.

    ◆과반 국회, 통과는 무난… 숙의 절차는 불가피

    물론 더불어민주당이 과반을 차지한 국회에서 비준안이 부결될 가능성은 현실적으로 적다. 하지만 국가 미래에 상당한 영향을 끼칠 수 있는 사안인 만큼 국회에서 숙의 과정을 거칠 필요가 있다는 것이 전문가들의 견해다.

    장 교수는 "현재는 이재명 정부이고, 민주당이 과반 의석을 가진 상황에서 국회가 동의하지 않을 이유가 없다"며 "25% 관세 부과는 막대한 경제적 부담이 되는 사안이므로 국회 동의 절차가 불가피하다"고 거듭 강조했다.

    이어 "현 단계에서 정부와 국회가 서로 다른 판단으로 제동을 걸 가능성은 크지 않다"며 "결국 미국의 요구에 시간을 끌 명분으로 국회 동의 절차를 활용할지 여부는 법률 문제가 아니라 정책적 결정의 문제"라고 설명했다.

    결국 법률 해석을 넘어 국회 비준 동의 절차를 언제 어떻게 활용할지는 전적으로 정부의 정치적 결단에 달려 있다는 것이다.

조문정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