美 상무, 관세 위협 카드 다시 꺼내…"받아들이거나 관세 25%"방미 산업장관과 협의 앞두고 강경 발언…줄다리기 장기화 전망협상 교착에 車-부품 관세율 25% 여전…현대3사 관세비용 부담 가중안보이슈도 잠재…前 주한미국대사대리 "韓·美 관계, 도전적 시기 도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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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재명 대통령이 백악관에서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과 논의하고 있다. 오른쪽은 강훈식 비서실장. 250825 사진=백악관 제공. ⓒ뉴시스
도널드 트럼프 미국 행정부가 11일(현지시각) 한·미 무역협정 최종합의가 교착상태에 빠진 것과 관련, 다시 '관세'를 무기로 미국 요구대로 수용하라고 한국을 압박하고 나섰다.
양국은 7월30일 새로운 무역협정에 '상호관세 15%'와 한국의 '3500억달러 대미(對美) 투자펀드 및 양국간 조선협력(마스가)'을 큰 틀에서 합의했고, 지난달 25일 이재명 대통령과 트럼프 대통령의 백악관 한·미 정상회담을 계기로 이를 거듭 확인했다.
양국은 이후 8일 미국에서 산업통상자원부와 기획재정부 합동 실무대표단과 미국 상무부 및 미국무역대표부(USTR) 관계자들이 협정 최종타결을 위한 실무협의를 벌였지만, 합의를 도출하지 못했다.
김용범 대통령실 정책실장은 9일 양국간 협의 상황과 관련해 "문제가 많다. 교착상태에 있다"면서 이대로라면 "마스가 프로젝트도 제대로 시작되기 어렵다"고 했다.
이 대통령도 11일 취임 100일 기자회견에서 "앞으로도 한참 더 협상해야 한다"고 말했다.
이런 가운데 하워드 루트닉 미국 상무장관은 이날 미국 CNBC 방송에 출연, "한국은 그 (한·미 무역) 협정을 수용하거나 관세를 내야 한다. 명확하다"고 말했다.
그는 특히 일본과 무역협정에 최종 서명했고 한국이 이를 분석하고 있다는 점을 거론하면서 "그래서 유연함은 없다"고도 했다.
루트닉 장관의 언급은 3500억달러 대미 투자패키지의 구성과 방식, 투자수익 배분 등을 미국의 요구대로 수용해 무역헙정에 최종 서명하지 않으면 한국에 대한 국가별 관세(상호관세)를 25%로 되돌리겠다는 위협으로 풀이된다.
또한 한국처럼 15%의 관세를 부과하기로 한 일본과는 이미 서명까지 이룬 만큼 한국이 이보다 유리한 조건으로 최종 타결할 수 없다는 미국 입장을 "유연함은 없다"는 표현으로 확인한 것으로 읽힌다.
그는 그러면서 일본의 5500억달러 규모 대미 투자금은 알래스카 액화천연가스(LNG) 송유관 건설 같은 인프라 확충 등 미국이 원하는 대로 쓰일 것이며 일본이 낸 5500억달러를 회수할 때까지 수익을 50대 50으로 배분하되 이후에는 수익의 90%를 미국이 가져가는 미·일 협정을 구체적으로 소개하며 한·미간 협정도 비슷한 조건으로 이뤄져야 한다는 의지를 보였다.
반면 우리 정부는 조선업과 첨단산업분야에 각각 1500억·2000억달러 상당의 투자펀드를 조성하되 대부분 대출과 보증 형태로 구성한다는 입장이다.
한국은 준기축통화국인 일본과 다르다. 일본은 미국과 무제한 통화스와프를 맺고 있고, 언제든 엔화를 발행해 자금을 조달할 수 있다. 외화보유액도 1조3242억달러로 우리보다 세 배나 많다. 한국은 매년 외환시장에서 조달하는 금액이 200억~300억달러에 그친다. 일본과 같은 조건으로 협상을 압박하는 것은 누가 봐도 무리다.
위성락 국가안보실장은 지난달 31일 KBS 라디오 인터뷰에서 자동차 관세 인하가 이뤄지지 않은 데 대해 "투자펀드를 조성하는 문제, (다른) 관세나 비관세 문제들이 한 묶음이 돼 있다"며 "모든 것이 합의(되기) 전까지는 합의되지 않았다는 개념과 비슷하다"고 설명했다.-
- ▲ 수출 대기 중인 자동차. 240318 사진=인천항만공사(IPA) 제공. ⓒ연합뉴스
한동안 뜸했던 미국의 '관세 위협'이 다시 나온 것은 이날 김정관 산업부 장관이 갑작스레 미국을 방문한 것과 무관치 않아 보인다.
워싱턴 D.C.가 아닌 뉴욕으로 입국한 김정관 장관은 이곳에서 루트닉 장관 등과 만나 양국간 협상 모멘텀을 이어갈 방침으로 알려졌다. 루트닉 장관은 한국의 카운터파트가 온다는 소식에 협상에서 유리한 위치를 확보하는 차원에서 더욱 강경한 입장을 취했을 가능성이 있어 보인다.
한·미간 협상의 세부조율을 매듭짓고 협정 문안에 서명하는 일은 앞으로 상당한 진통이 예상된다.
이 대통령은 기자회견에서 무역협정 최종 서명에 대해 "좋으면 사인해야 하는데, 이익되지 않는 사인을 왜 하나"라며 미국 측 현재 요구를 수용할 수 없다는 입장을 분명히 했다.
이 대통령의 언급대로 미국 측이 요구하는 대미 투자패키지 구상은 우리 측이 받아들이기 어렵고, 미국은 이를 받지 않으면 관세를 되돌리겠다는 입장이어서 양국간 밀고 당기기는 한동안 이어질 전망이다.
문제는 합의문 채택이 늦어지면서 업계에서는 무역협상이 타결된 3분기에도 관세비용을 절감하기 어려울 것이라는 우려가 확산하고 있다는 것이다.
미국은 여전히 한국산 자동차·부품에 25%의 고율 관세를 부과하고 있다. 미국 측이 한·미간 무역합의에 따라 7월31일 해당 품목 관세율을 15%로 하향 조정하겠다고 약속한 지 한 달이 지났지만, 현장에선 여전히 기존 관세율을 받고 있는 것이다.
이에 따라 한국산 대미 수출품목 중 완성차는 4월3일 이후 약 5개월간, 자동차부품은 5월3일 이후 4개월간 25%의 고율관세를 맞고 있다.
이는 3월 트럼프 대통령이 자국으로 수입되는 모든 자동차와 자동차부품에 25%의 품목관세를 부과하는 행정명령을 근거로 한다. 행정명령 이전 한국산 자동차·부품은 2012년 발효된 한·미 자유무역협정(FTA)에 따라 무관세였다.
2분기 현대자동차와 기아는 각각 8280억원, 7860억원의 관세비용을 부담했다고 밝혔다. 같은 기간 현대모비스가 부담한 관세비용은 620억원에 달했다.
3사가 관세 시행 전 대미 수출물량을 미리 선적하는 방식으로 대응했던 만큼 재고물량이 소진된 3분기 부담액은 이보다 늘어날 수밖에 없다. 미국발 관세 영향으로 현대차·기아의 2분기 합산 영업이익은 전년동기대비 19.6% 감소했다.
더 큰 문제는 일본이 우리보다 먼저 자동차 관세 인하를 받아냈다는 점이다. 일본 자동차 관세가 15%로 낮아진 상태에서 한국산 자동차 관세 인하만 미뤄지면 우리 기업들은 미국 시장에서 가격경쟁력에 큰 타격을 입게 된다.
뿐만 아니라 미국은 민감한 농·축산물 분야에서도 한국에 비관세 장벽 해소를 재차 요구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한국 정부는 쌀·소고기 등 농·축산물 추가 개방은 없다는 입장이지만, 관세협상에서 '과채류 수입 위생 관련 협력 강화'를 약속한 바 있어 검역절차 개선 논의 가능성은 남아 있다.
한 통상전문가는 "한국이 투자 문제를 받아들이기 어렵다는 입장을 고수하면, 미국이 농·축산물 시장 개방 등 수면 아래 있던 문제를 다시 협상 카드로 꺼낼 수도 있다"고 말했다.
게다가 이처럼 미국의 압박·위협 메시지가 공교롭게도 조지아주에서 미국 이민당국에 체포·구금됐던 한국인 300여명이 귀국하는 날 나오면서 한·미 관계에 미칠 영향도 우려된다.
허윤 서강대 국제대학원 교수는 인터뷰에서 "한·미 협상에서 미국은 더욱 강경한 자세를 보일 가능성이 크고, 한국도 미국 요구를 쉽게 수용하기 어려운 강대강의 '하드볼 게임'으로 치달을 수 있다"며 "국민경제적 득실과 외교적 함의를 모두 고려해 절충점을 찾아야 하는 한국 정부의 딜레마"라고 분석했다.-
- ▲ 미국 이민당국이 공개한 현대자동차-LG에너지솔루션 불법체류·고용 단속 현장. 250904 사진=이민세관단속국(ICE) 영상 갈무리. ⓒ연합뉴스
게다가 이처럼 미국의 압박·위협 메시지가 공교롭게도 조지아주에서 미국 이민당국에 체포·구금됐던 한국인 300여명이 귀국하는 날 나오면서 한·미 관계에 미칠 영향도 우려된다.
허윤 서강대 국제대학원 교수는 인터뷰에서 "한·미 협상에서 미국은 더욱 강경한 자세를 보일 가능성이 크고, 한국도 미국 요구를 쉽게 수용하기 어려운 강대강의 '하드볼 게임'으로 치달을 수 있다"며 "국민경제적 득실과 외교적 함의를 모두 고려해 절충점을 찾아야 하는 한국 정부의 딜레마"라고 분석했다.
미국의 한·미 관계 전문가 사이에서는 이미 한국인 구금사태가 양국 관계에 부정적 영향을 미칠 것이라는 전망을 내놓고 있다.
72년 동맹국이자 최대 투자국에 해서는 안 될 행동을 했기 때문이다. 더군다나 미국에 엄청나게 투자하고 있는데 뺨을 맞은 격이라 대미 정서가 부글부글 끓고 있다.
수갑과 쇠사슬에 묶여 연행돼 열악한 시설에 구금된 한국 근로자들은 모욕감과 트라우마에 시달릴 수밖에 없다. 정부 역시 이번 사태를 국민의 안전과 존엄이 직접 침해당한 중대 문제로 인식하고 있다.
김용범 정책실장은 9일 한국방송기자클럽 토론회에서 "일하러 가신 분들이 쇠사슬에 묶여 구금당한 사태가 너무나 충격적"이라며 "정부는 국민이 느낀 공분(公憤)을 그대로 미국에 전달했다"고 밝혔다. 그는 "외교적으로 가장 강한 톤으로 우려와 유감을 표명했다"고 전했다.
앤드루 여 브루킹스 연구소 한국석좌는 연합뉴스를 통해 "이번 사태는 (과거 인플레이션 감축법 때 국내 자동차업계 보조금 제외 문제보다) 훨씬 더 심각하며 한국은 미국에 더 강경한 태도를 보일 수 있다"고 짚었다.
아울러 한국이 부담할 주한미군 주둔비용(방위비 분담금) 문제, 인도·태평양 지역 내 미군의 전략적 유연성 차원에서 거론되는 주한미군 감축 문제 등 안보 이슈 역시 협상 과정에서 한·미 관계에 풍파를 몰고 올 수 있는 요소다.
로버트 랩슨 전 주한미국대사 대리는 연합뉴스 인터뷰에서 한·미 안보분야 이슈는 아직 결론이 나지 않았다면서 "실제 양국 관계에 매우 도전적인 시기가 다가오고 있다"고 내다봤다.
이와 관련, 이 대통령은 기자회견에서 한·미간의 통상협상과 외교·안보 분야 협상 과제들을 열거하면서 "내가 작은 고개 하나 넘었다, 이렇게 표현을 했던 기억이 난다. 앞으로도 넘어가야 할 고개가 퇴임하는 그 순간까지 수없이 있겠다"고 말했다.
구금사태는 물론, 관세협상의 완전 타결을 위한 실무협의까지 한 치의 국격과 국익의 손상도 있어서는 안 된다.
특히 관세 실무협의에서 논의 중인 한국의 대미 투자패키지를 합리적인 수준에서 신속하게 결정해 자동차 품목관세율을 낮추기로 한 한·미 합의가 빨리 발효될 수 있게 해 기업 피해를 최소화해야 한다.
유럽연합(EU)이 미국에 6000억달러 투자를 약속했지만, "전적으로 투자는 민간기업들이 결정할 것"이라면서 회색지대로 남겨둔 것을 참고할 필요가 있다.
'악마는 디테일에 있다'고 했다. 상식에서 벗어난 미국의 무차별 압박에 국민 안전과 국익 수호를 위해 더욱 치밀한 전략으로 한·미 협상에 임해야 할 것이다.

성재용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