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도체 투심 개선에 최고점 찍은 코스피반기업법 잇따르며 현장 "5000은 먼 얘기"노란봉투법·상법개정안 경쟁력 갉아먹어자율성 보장해야 '코리아 디스카운트' 해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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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개장하자마자 사상 최고치를 갈아치운 코스피가 장중 거듭 최고 기록을 경신한 12일 서울 중구 하나은행 본점에서 직원들이 증시와 환율을 모니터 하고 있다.ⓒ연합뉴스
“코스피 5000? 글쎄요. 쉽지 않을 겁니다” 최근 만난 대기업 임원은 회의적인 시각을 보냈다. 그는 “시장의 신뢰도도 중요하겠지만 결국에 개별 선수(기업)가 글로벌 시장에서 경쟁력을 갖춰야 가능한데 요즘은 자고 일어나면 새로운 모래주머니가 채워진다”고 말했다.
또 다른 기업 관계자도 비슷한 우려를 표했다. 그는 “한국 증시는 대형주 위주로 돌아간다. 개별 기업들이 잘하니까 외부에서 자금이 들어오면서 코스피를 밀어 올리는 형국인데, 정작 경영 환경은 법 손질이 잇따르면서 날로 어려워지고 있다”고 토로했다.
코스피는 이달 10일 3,314.53, 11일 3,344.20, 12일 3395.94로 3 거래일 연속 사상 최고점을 경신했다. 미국 소프트웨어 기업 오라클의 호실적이 글로벌 인공지능(AI) 투자 심리에 반영됐고, 미국 연방준비제도(Fed·연준)의 금리 인하 기대감이 더해지며 외국인과 기관의 동반 매수세가 유입된 영향이다.
12일 외국인은 코스피에서 무려 1조4162억원을 순매수했는데 삼성전자 7892억원, SK하이닉스 3322억원 순으로 많았다. 기관도 6115억원을 사들였다. 업황 반등에 대한 기대감, AI 투자 확대라는 글로벌 흐름속에서 ‘개별 기업의 경쟁력’이 코스피 지수를 끌어올린 셈이다.
그러나 정작 지수를 견인한 기업들은 웃지 못하고 있다. 트럼프 2기 행정부의 관세 정책으로 대외 불확실성이 커지고 있고, 국내에서는 기업의 경영 환경을 옥죄는 법안들이 연이어 강화되고 있어서다. 노란봉투법과 1·2차 상법 개정, 법인세 인상 등이다. 이달 정기국회에서는 자사주 소각 의무를 골자로 하는 3차 상법개정안의 처리도 유력하다. 코스피 최고점의 동력의 주역은 기업들인데, 정부가 이들의 발목을 규제로 묶는 형국이다.
외국인과 기관의 투자는 한국 증시의 제도적 투명성보다 개별 기업의 실적과 장기 전망에 좌우된다. 이들이 사는 것은 ‘한국’이라는 나라의 주식이 아니라 삼성전자와 하이닉스 같은 개별 기업의 주식이다. 외국인과 기관이 대거 매수하면 수요가 늘면서 주가가 오르고, 이 대형주의 주가 상승은 곧바로 코스피 지수 상승으로 이어진다.시장 신뢰와 투명성은 돈이 들어올 수 있는 기본 조건일 뿐이고 실제로 돈을 움직이게 하는 이유는 기업의 경쟁력인 셈이다. 기업 경영 환경이 개선되지 않는다면 증시 밸류업(기업가치 제고)에도 한계가 있다는 지적이 나오는 이유다.
실제 증권가에서도 코스피가 지속적인 상승 흐름을 이어가려면 기업들의 실적 개선이 반드시 뒷받침돼야 한다는 지적이 잇따른다. 설태현 DB증권 연구원은 “실적 개선이 동반되지 않으면 밸류에이션 부담이 커질 수 있다”며 “향후 코스피는 실적 개선이 얼마나 지속되는지와 수급 흐름에 따라 방향이 결정될 것”이라고 했다. 기업 실적 개선의 열쇠는 투자와 고용 등 경영 자율성의 확보에 있다.
하지만 정부는 이를 가로막고 있다. 한·미 관세 협상이 타결돼 한국 기업이 15% 관세 부담을 지게 된 다음날(8월 1일) 정부는 노란봉투법을 통과시켰다. 이날 코스피는 3.88% 빠졌다. 세제 개편 충격도 있었지만 시장 안팎에서는 노란봉투법으로 기업 경영 환경이 악화될 우려가 반영됐다고 봤다. 원청 책임 확대, 파업 손해배상 제한 등 노란봉투법 조항은 기업에 직접적 부담 요인으로 작용한다. SK㈜ 등 일부 상장기업은 사채 발행 투자설명서에 “국회 본회의를 통과한 노란봉투법이 영향을 미칠 가능성이 존재한다”면서 투자에 주의할 것을 당부했다.
국민 여론도 크게 다르지 않다. 이달 3일 마감된 ‘노란봉투법의 폐지 촉구에 관한 청원’은 5만6411명의 동의를 얻어 국회 소관 상임위원회인 법제사법위원회에 회부될 예정이다. 지난 2022년 ‘노란봉투법 입법에 관한 청원(모든 노동자의 노동권 보장을 위한 노조법 2조·3조 개정에 관한 청원’ 동의 5만명을 넘어섰다. 청원인은 노란봉투법이 사용자의 경영 자율성과 재산권을 침해하고 국민 다수에게 실질적인 피해를 야기한다고 설명했다. 산업 생태계가 붕괴되면서 국민 피해가 현실화되고, 외국인 투자 감소로 일자리와 국가경쟁력 약화로 직결될 것이라고도 우려했다.
노란봉투법은 일부에 불과하다. 상법 개정, 자사주 소각 의무화로 이어지는 법안들은 기업 경영 활동을 위축시키고 있다. 증시가 저평가를 벗어났다고 해서 당장 코스피 5000 시대가 열린 듯 섣부른 축배를 들어서는 안 된다는 말이다. 필요한 건 기업의 자율성을 넓히는 제도적 뒷받침이다. 지수를 끌어올린 건 기업이다. 정부가 기업 현장의 목소리를 외면한 채 반기업적 법안들을 밀어붙인다면 ‘코스피 최고점의 역설’은 반복될 수밖에 없다. 규제를 푸는 것, 그리고 기업이 뛸 수 있는 환경을 마련하는 게 코스피5000을 달성하는 지름길이다.

이가영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