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용에 따른 금리, 금융 지속성의 원리은행 돈, 주주 위험·비용 대가…'정치의 곳간'돼선 안돼이자 편가르기, 장기적 피해는 서민에게돈에는 국경 없어…원칙 허무는 순간 국제 무대서 고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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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뉴데일리 DB.
이재명 대통령이 최근 국무회의에서 "고신용자가 이자를 0.1% 더 부담해 저신용자가 싸게 빌리게 하자"고 발언했다. 그 밑바탕에는 은행 돈을 마치 공적 자금처럼 착각하고, 정부가 뜻만 세우면 임의로 자원을 배분해도 된다는 위험한 시각이 엿보인다.
이런 관점이 앞으로 금융정책에 지속된다면 금융의 기본 원리는 무너지고 은행산업의 경쟁력은 잠식돼, 위기 시 국가경제의 방파제이자 버팀목마저 붕괴시키는 재앙으로 이어질 수 있다.
이자는 은행이라는 기업이 탄생하면서 마음대로 만들어낸 장치가 아니다. 금융이 산업으로 자라잡기 전부터 돈을 빌려주는 행위에는 늘 위험이 뒤따랐고, 빌려준 사람이 돈을 떼일 위험이 있는 만큼 그 보상으로 일정한 이자를 받는 제도가 형성됐다.
시간이 흐르며 이자는 단순한 대가를 넘어, 차주의 신용도에 따라 달라지는 '위험 프리미엄' 개념으로 정착했다. 신용이 높을수록 낮은 이자를, 신용이 낮을수록 높은 이자를 매겨야 금융이 부실화하지 않고 지속될 수 있었던 것이다. 이 원리가 지켜졌기에 자금의 흐름이 안정적으로 유지되고, 오늘날 금융산업은 산업화와 경제성장의 기반이 될 수 있었다.
금융시장에서 금리는 바로 이러한 위험 프리미엄을 반영해 결정된다. 그런데 이 대통령의 발언처럼 고신용자에게 억지로 금리를 더 물리고 저신용자를 보조하자는 식의 구상은 금융 원리를 정면으로 뒤엎는다. 은행의 이익은 주주가 감수한 위험과 자본비용, 운영 비용이 결합된 결과이지, 정치적 필요에 따라 끌어다 쓸 수 있는 공공재가 아니다.
더 큰 문제는 이런 접근이 금융을 '부자와 서민의 편가르기식' 대결 구도로 변질시킨다는 점이다. 부자는 이자를 조금 더 내도 된다는 논리는 단기적으로 대중의 귀에 달콤하게 들릴 수 있다. 그러나 장기적으로는 금융산업의 건전성과 신뢰를 해치고, 결국 가장 큰 피해는 서민에게 돌아간다.
2금융권의 현실을 보자. 저축은행이나 카드사는 이미 법정 최고금리에 근접한 수준에서 대출을 내주고 있다. 여기에 추가 인하 압박이 가해지면 대출 공급이 줄고, 저신용자는 합법 금융 대신 불법 사금융으로 내몰릴 수 있다. 이는 2021년 최고금리 인하 이후 실제로 나타난 현상이다.
은행은 돈을 빌리는 창구이면서 동시에 국민이 피땀 흘려 모은 돈을 맡기는 곳이기도 하다. 정치가 개입해 내가 맡긴 예금이 시장의 상식과 달리 사용된다면, 소비자는 과연 이를 납득할 수 있을까. 지금은 '부자가 조금 더 내주면 내가 덜 낼 수 있다'는 감언이설이 그럴듯해 보일지 모른다. 하지만 순간의 달콤한 유혹은 결국 예금자와 국민 모두에게 부메랑으로 되돌아올 수밖에 없다.
상당 기간 지속돼온 한국의 5대 금융그룹 체제는 당장은 견고해 보이지만, 정치적 개입으로 수익구조가 잠식된다면 자본 확충 능력이 약화되고 위기 대응력은 떨어질 수밖에 없다. 과거 위기 때 산업계의 자금줄을 지탱해온 버팀목 역할마저 무너지게 된다면, 산업계 전체의 연쇄 충격은 물론 국가경제 기반까지 흔들릴 위험이 있다.
은행 돈을 공적 자원인냥 임의로 재분배하려는 접근은 금융을 하나의 산업이자 경쟁체제로 인식하지 못하고, 그저 돈이 쌓여 있는 창고쯤으로 보는 시각에서 비롯된 것이 아니고서는 이해하기 어렵다. 돈에는 국경이 없다. 우리 금융산업 역시 국제 규범과 투자자 신뢰라는 틀 안에서 글로벌 시장과 경쟁해야 한다. 원칙을 허무는 정책은 곧 글로벌 금융시장에서 '왕따'로 전락하는 결과로 이어질 수 있다.
금융은 적대적 대상이 아니라 국가 경쟁력의 동반자다. 대통령의 애민정신이 진정성을 인정받기 위해서는 금융시장 원리에 기초한 해법을 제시해야 한다. 선의를 앞세워 금리를 뒤흔드는 정책은 애민이 아니라 포퓰리즘적 선동일 뿐이다.

정훈규 금융부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