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기 초부터 집권당 대표의 '여의도 차르'설"정청래의 마이웨이, 李 대통령에 대한 도전"2인자의 급부상 '투키디데스의 함정'으로 귀결 "여권 전체에 악영향 … 민주당 궤도와 안 맞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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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재명 대통령이 지난달 20일 서울 한남동 관저에서 열린 더불어민주당 신임 지도부와 만찬에서 정청래 대표와 주스 건배를 하고 있다.ⓒ대통령실 제공
정청래 더불어민주당 대표의 광폭 행보에 당 안팎에서 경고음이 커지고 있다. 검찰개혁에 이어 내란특별재판부 추진에도 가속 페달을 밟자 '신중론'을 부각한 이재명 대통령의 시그널을 외면하고 있다는 의구심이 제기된 것이다. 대통령의 중재에도 여야 협치에 선을 긋는 모습이 맞물려 정 대표에게는 '여의도 차르'라는 꼬리표가 달렸다.
10일 정치권에서는 정 대표를 둘러싸고 '여의도 대통령' '여의도 차르'라는 키워드가 급부상하고 있다. 전날 교섭단체 대표 연설에서 국민의힘을 두고 "위헌정당 해산"을 재차 거론하는 등 대야 강경 노선을 재확인하면서다.
정 대표가 지난 8일 용산 대통령실에서 이 대통령과 여야 대표 간의 오찬 회동을 가진 지 하루 만에 강성 기조를 이어가자 국민의힘은 "기세는 여의도 대통령을 보는 것 같았다"고 비판했다. '정치 복원'을 주문하는 이 대통령의 뜻을 정 대표가 외면하고 찬물을 끼얹은 것이라는 지적도 정치권 안팎에서 제기됐다.
김성태 전 국민의힘 의원은 이날 SBS 라디오 '김태현의 정치쇼'에 출연해 "이 대통령의 뜻을 하루 만에 또 걷어찬 사람이 자신의 친정집 당대표 정청래"라며 "여의도 대통령 이야기는 점잖은 표현이고 사실상 이 사람(정 대표)이 여의도 차르"라고 혹평했다.
김 전 의원은 "'굿캅 배드캅'은 정 대표 자신이 이 대통령과 일정 부분 척을 지더라도 '마이웨이, 나의 정치를 위해서 나의 길을 간다'는 수단으로 '굿캅 배드캅'을 한 것이고 이건 짜고 치는 고스톱이 아니다"라고 주장했다.
정 대표의 독자 행보라는 비판은 야권에서만 나오는 것은 아니다. 이미 검찰개혁 속도와 방향을 두고 정 대표가 무리수를 두는 것이 아니냐는 우려는 당내에서도 흘러나왔다.
검찰개혁 시점과 중대범죄수사청 관할 부처, 검찰의 보완수사권 유지 여부 등 세부 사항을 둘러싸고 당정 간 이견이 수차례 노출된 탓이다.
이 대통령은 정 대표를 비롯한 민주당의 강경파가 주창하는 검찰개혁법을 결국 국무회의에서 의결했지만, 후속 조치 등을 두고 여전히 당정 간 갈등이 새어 나오고 있다.
우상호 대통령실 정무수석이 지난 7일 고위 당·정협의회에서 당이 빠진 정부 차원의 검찰개혁 추진 기구를 주장했고, 정 대표가 이에 반발하며 신경전이 벌어졌다는 여권의 전언이 보도되면서 당은 뒤숭숭한 분위기다. 이 자리에는 이재명 정부의 '황태자'로도 불리는 김민석 국무총리가 배석했고, 자칫 차기 주도권 싸움으로도 비칠 수 있는 대목이었다.
대통령실과 민주당은 두 사람의 기싸움과 당정 갈등설에 대해 선을 그으며 진화에 나섰지만, 당내에서는 이미 "터질 것이 터졌다"는 반응도 나왔다.
정 대표가 여당의 거대 의석을 야당뿐 아니라 이 대통령을 대상으로도 압박 수단으로 십분 활용하는 것이 아니냐는 우려 섞인 지적마저 제기된 것이다.
또한 지난 8일 최고위원회의에서 정 대표가 "검찰개혁이 성공한다면 그것은 오롯이 이 대통령의 강력한 검찰개혁 의지와 정치적 결단 덕분"이라며 이 대통령이 치켜세운 대목 또한 당은 역설적으로 곱지 않은 시선을 보내고 있다. 향후 개혁 과정에서 발생할 수 있는 부담까지 대통령에게 전가하려는 의중이 깔린 것이 아니냐는 의심의 눈초리를 보내고 있는 것이다.
일련의 갈등설에 대해 민주당의 한 관계자는 통화에서 "정 대표가 '정청래의 시간'으로 끌고 가고 싶어하는 것처럼 비치고 있다"면서 우려를 내비쳤다.
결국 정 대표가 일찌감치 '차기 권력 구도'를 염두에 두고 있다는 정치권의 의구심을 계속 부채질한다는 셈인데, 이러한 시선은 전당대회 전후로 줄곧 정 대표를 따라다녔다.
당대표 선거 당시 '명심(明心·이 대통령 의중)'이 박찬대 의원을 향한다는 시그널에도 정 대표는 집토끼 결집 전략으로 승리를 거머쥐었고, 지지층을 기반으로 차기 권력의 중심에 서려는 계산이 깔려 있다는 해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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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찐명'으로 불리는 박희승 더불어민주당 의원. 앞서 박 의원은 공개적으로 정청래 대표가 추진 중인 내란특별재판부 도입에 대해 공개적으로 반대했다. ⓒ뉴시스
정 대표는 내란특별재판부 추진을 주장하면서도 줄곧 "국민적 요구"라는 명분을 강조하고 있는데, 이는 결국 '당심'을 자극하기 위한 행보로 읽힌다.
하지만 정 대표가 강행하려는 내란특별재판부도 여권에 분란을 일으키고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당내에서조차 내란특별재판부 설치에 반대하는 공개 목소리가 처음 제기됐는데, 제동을 건 인물이 박희승 의원이라는 점에서 당은 예의주시하고 있다.
박 의원은 이 대통령과 사법연수원 18기 동기이자 판사 출신으로, 당내에서는 '찐명(진짜 친이재명)' 중의 찐명으로 평가받고 있다.
박 의원이 지난 8일 "특별재판부 설치를 헌법 개정 없이 국회에서 논의해 법안을 통과시키려고 한다는 건 굉장히 위험한 발상"이라며 '위헌'을 지적하자 당에서는 이 대통령의 의중일 가능성이 높다고 보고 있다.
하지만 이러한 신호에도 정 대표는 전날 연설에서 명칭을 '내란전담재판부'로 변경했을 뿐 다시 한번 내란특별재판부 설치를 강조하고 나섰다. 정 대표는 "많은 국민은 구속기간 만료로 윤석열이 재석방될지 모른다고 걱정이 많고, 내란전담재판부를 만들라는 여론이 높다"고 주장했다.
정 대표의 강경 행보에 민주당 대표 출신인 정대철 헌정회 회장은 뉴데일리에 "이재명 정권이 가야 할 길은 화해와 용서, 포용, 상생과 협치, 통합의 정치"라며 "정 대표가 이를 돕지 못하고 이재명 정부와 민주당이 올라야 할 본래의 궤도에서 이탈하게 하면 안 된다. 큰 걱정"이라고 지적했다.
정 회장은 당 안팎에서 들려오는 정 대표의 차기 대선 노림수 가능성에 대해서도 "대통령 후보가 도저히 될 수 없는 조건을 본인이 스스로 만들고 있는데, 그런 평가는 낭설"이라고 일축했다.
여권이 '기존 권력자'와 '신흥 도전자' 간의 충돌에 비유되는 이른바 '투키디데스의 함정'에 빠질 수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투키디데스의 함정은 고대 그리스 용어로 신흥 강국이 기존의 강대국에 도전할 때 기존 강국이 느끼는 두려움과 불안 때문에 전쟁이 발생하는 국제정치 현상을 뜻한다.
정 대표가 일찌감치 존재감을 부각할수록 대통령실의 견제와 여권 내 갈등은 불가피해지고, 이는 정 대표 개인은 물론 여권 전체에 악영향을 미칠 수 있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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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문재인 전 대통령이 2023년 1월 2일 경남 양산시 하북면 평산마을 문 전 대통령 사저를 찾은 이재명 당시 더불어민주당 대표(현 대통령)를 맞이하고 있다. ⓒ이종현 기자
실제로 2017년 대선 때 이 대통령도 경선에서 문재인 전 대통령과 격돌한 뒤 현재까지도 둘 사이의 간극을 거론하는 인사들이 많다. 이 대통령은 당시 민주당 대선 경선에서 문 전 대통령에 맞서며 그의 정책과 행보를 신랄하게 비판했다. 이후 문 전 대통령과 이 대통령 사이의 지지층끼리 감정 싸움도 벌어졌다.
이후 2018년 친문(친문재인) 핵심으로 꼽히던 전해철 전 의원이 이 대통령과 경기도지사 민주당 경선에서 맞붙으며 또다시 충돌했다. 이 대통령은 문 전 대통령이 김정은을 만나기 위해 방북할 당시 방북단에서도 제외됐고, 공직선거법 위반 혐의로 2020년까지 재판을 받았다.
이러한 일련의 사건을 두고 친문계가 의도적으로 이 대통령을 제거하려 한다는 말이 나왔다. 이 대통령이 대권을 거머쥐었지만, 여전히 친명(친이재명)계와 친문계의 정서적 이질감은 여전하다는 것이 여권 인사들의 공통적인 견해다. 정 대표도 정통 친명이라기보다는 과거 이 대통령을 비판해왔던 인사로 범친문에 가깝다는 평가가 많다.
여권의 갈등이 깊어지면 정작 민생을 위한 진짜 정치개혁은 때를 놓치고, 피해는 고스란히 국민의 몫으로 돌아오게 된다는 것이 전문가들의 분석이다.
신율 명지대 정치외교학과 교수는 통화에서 "임기 초반에 자칫 대통령에 대한 도전으로도 비칠 수 있는 현재 집권당 대표의 모습은 굉장히 신기한 일"이라며 "강성 지지층을 믿고 하는 행동 같은데, 문제는 이런 식으로 가면 대통령의 리더십, 나아가 여권 전체에 악영향을 미칠 수 있다"고 진단했다. 이어 "민주당을 지지하는 중도층이 자꾸 줄고 있는 것을 유념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손혜정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