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보법 위반 사건, 공소사실 유죄 인정하면서 '집행유예' 선고33년 같은 교회 목회한 손 목사, '도주우려'로 '구속'"국가안보 범죄는 집행유예, 선거법 위반은 구속해"
  • ▲ 부산지방법원 전경.ⓒ연합뉴스

    부산 세계로교회 손현보 담임목사가 공직선거법 위반 혐의로 구속된 가운데 손 목사에 대해 구속영장을 발부한 판사가 과거 북한 찬양물과 관련한 국가보안법 위반 사건에서는 피고인 전원에게 집행유예를 선고하고 선처했던 사실이 알려져 형평성 논란이 일고 있다.

    종교계에서는 30년 넘게 한 예배당에서 목회한 목사에게 '도주 우려'를 들어 구속영장을 발부한 것은 엄연한 종교 탄압이자 납득할 수 없는 처사라는 비판이 확산하고 있다.

    ◆국보법 위반 사건, 공소사실 유죄 인정하면서 '집행유예' 선고

    10일 본보 취재에 따르면 손 목사에 대한 구속 전 피의자 심문(영장실질심사)을 진행해 영장을 발부한 부산지법 엄성환 부장판사는 8년 전인 지난 2017년 북한 찬양물과 관련한 국가보안법 위반 사건에서 피고인 전원에 집행유예를 선고했다.

    당시 엄 부장판사는 북한 주체사상과 대남혁명론, 고려연방제 통일방안 등이 담긴 이적 표현물을 제작·소지한 혐의로 기소된 ‘부산청년한의사회’ 소속 한의사 9명과 한의대생 3명 등 12명 전원에게 집행유예를 선고하고 선처했다.

    집행유예를 선고받은 이들은 검찰 조사 결과 2010년부터 2013년까지 주체사상과 대남혁명론, 북한의 통일방안을 정리한 '우리식 학습교재 1~6권', 북한의 대남혁명론을 소개한 '활동가를 위한 실전운동론', 북한식 사회주의 달성을 위한 고려연방제 통일방안을 담은 '활동가를 위한 통일론 초안' 등을 제작한 사실이 드러났었다.

    또 접속이 금지된 북한이 운영하는 대남 선전 사이트 '구국전선' 등을 통해 북한 서적 원본을 입수한 뒤 이를 "새로운 세상을 꿈꾸는 사람들의 좋은 참고서"로 포장해 미화한 것으로 밝혀지기도 했다.

    이들은 또 김일성 회고록 '세기와 더불어' 등 이적표현물을 주거지에 소지하거나 인터넷 블로그 등을 통해 배포한 혐의도 받았다. 검찰 관계자는 "비공개 카페나 이메일을 통해 초안을 주고받았으며, 한의원과 사무실 등에서 만나 공동 제작과 수정 작업을 진행했다"고 밝혔다.

    하지만 엄 부장판사는 공소 사실 대부분을 유죄로 인정하면서도 "대한민국 안보에 심각한 위협이 초래됐다고 보기 어렵다"며 집행유예를 선고했다.
    ▲ 생성형AI로 만든 이미지.ⓒChatGPT

    ◆"국가안보 범죄는 집행유예, 선거법 위반은 구속 ... 형평성 잃었다"

    반면 엄 판사는 지난 9일 공직선거법과 지방교육자치법 위반 혐의를 받는 손 목사에 대한 구속 전 피의자 심문(영장실질심사)에서 "도망의 염려가 있다"며 구속영장을 발부했다.

    손 목사는 지난 33년간 같은 교회에서 목회하며 숙식해온 인물로, 주거가 일정하지 않다는 사유를 적용하기 어렵다는 지적이 제기된다. 형사 절차의 대원칙이 '불구속 수사'임에도 불구하고, 도주 우려를 이유로 구속영장을 발부한 것은 법리 적용의 균형을 잃은 것 아니냐는 논란이 커지고 있다.

    구속영장은 피의자 또는 피고인이 일정한 주거가 없거나 증거 인멸 가능성, 도망 또는 도주 우려가 있을 경우에 한해 예외적으로 발부된다. 특히 살인, 강간, 마약, 대규모 경제사범 등 죄질이 중대하고 사회적 파장이 큰 사건일수록 구속 가능성이 높아지는데, 선거법 위반 사안이 이러한 기준에 부합하는지는 의문이라는 지적이다.

    법무법인 에이팩스 김재식 변호사는 "손 목사의 경우 증거는 이미 다 나와 있는 상태이고 사실관계도 인정하고 있는 상황에서 범죄가 중대해서 도망할 우려가 있다고 보기에도 무리가 있는 영장 발부"라며 "여러 가지 상황을 고려해봐도 도주의 우려가 있다고 영장을 발부하는 것은 맞지 않다"고 말했다.

    법조계 안팎에서는 "국가안보와 직결된 중대 범죄에는 집행유예를 내리면서, 선거법 위반 사건에는 구속을 택한 것은 형평성을 잃은 판단"이라는 비판이 제기된다.

    한 법조계 관계자는 "영장발부와 양형선고를 같은 선상에서 볼 수는 없지만, 국가보안법 위반 사건보다 선거법 위반 사건에 더 엄격한 잣대를 들이댄 셈"이라며 "사법적 판단이 정치·사회적 상황에 좌우된 것 아니냐는 의혹을 피하기 어렵다"고 말했다.

    이호선 국민대학교 법과대학 교수(전 한국헌법학회 부회장)는 "절대적 기준으로 봤을 때에도 이번 사건은 구속 수사에 해당하지 않는다. 목회자가 특정인 지지를 호소한 행위가 과연 불구속 원칙을 깨고 구속까지 해야 할 사안인지 의문"이라며 "정치 현수막으로 사실상 상시 선거운동을 벌이는 국회의원들과 비교해도 이중잣대가 명확하다. 사법부가 스스로 정치화를 자초하는 것"이라고 꼬집었다.

    그는 또 "구속적부심을 통해서라도 법원의 잘못된 판단이 바로잡혀야 한다"며 "편향과 남용이 겹칠 때 공권력은 정당성을 잃고 정당성 없는 공권력은 국가폭력일 뿐"이라고 비판했다.
정경진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