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정·대, 기후부에 원전 건설·운영 업무 이관 추진산업부에 원전 수출 업무 남아 … 원전 정책 이원화전문가 "같은 업무를 둘로 쪼개 … 엉망진창"국힘 "정부, 원전 해체 시도 … 전기료 폭탄 시즌2"
  • ▲ 우리나라 최초 원자력발전소인 고리원전 1호기. ⓒ뉴시스

    당·정·대가 산업통상자원부의 에너지 정책 기능을 환경부로 이관하는 식으로 기후에너지환경부(기후부)를 만들겠다고 밝히자 '탈원전 시즌2'를 우려하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두 부처가 원전 업무를 맡게 되면서 비효율적인 정책 집행이 이뤄지고, 규제 부처인 기후부가 신규 원전 건설에 미온적일 것이라는 지적이 제기되고 있다.

    8일 정치권에 따르면, 당·정·대가 전날 발표한 정부 조직개편안에는 현재 에너지 부문을 담당하는 산업부 2차관 산하 기능을 기후부로 이관하는 내용이 담겼다. 원전 수출 기능은 산업부에 남고 원전 건설과 운영 업무는 기후부가 맡게 된다. 산업부 명칭은 '산업통상부'로 바꿀 예정이다.

    원전 업무가 이원화되면서 원전 생태계 육성에 필요한 정책 연속성에 한계가 있을 것이란 전망이 나온다. 에너지 산업은 기술 개발, 수출, 산업 육성 등의 유기적 연계가 중요한데, 수출 업무만 분리하면 정책에 혼선이 생길 수 있다는 것이다.

    이에 대해 이덕환 서강대 명예교수(화학·과학커뮤니케이션)는 뉴데일리와의 통화에서 "원자력 기초 연구는 과학기술정보통신부가 맡고 있기 때문에 원전 정책은 삼원화가 되는 것이다. 엉망진창이 된다는 뜻"이라며 "원자력 수출 업무와 운영 업무는 서로 다르지 않다. 같은 업무를 둘로 쪼개는 것이다. 기후부와 산업부 간 충돌이 예상된다"고 지적했다.

    환경 규제 부처인 환경부가 신규 원전 건설 및 투자에 소극적일 것이라는 분석도 제기된다. 엄격한 환경영향평가 기준으로 원전 건설 허가 과정을 장기화하면서 사업 불확실성이 커질 수 있기 때문이다. 이 교수는 "환경부는 규제 부처로서 산업 진흥을 위한 부서가 아니다"라며 "심판과 운동선수가 한 몸이 되는 일이 벌어질 것"이라고 강조했다.

    김성환 환경부 장관이 과거 '탈원전 대세'를 외쳤던 점도 원전 산업 위축에 대한 우려를 증폭시킨다. 내년도 산업부 예산안에는 재생에너지 관련 예산이 올해 대비 41.6% 증가한 1조2703억 원 편성됐지만, 원전 예산은 올해 대비 6.2% 늘어난 5194억 원에 그쳤다. 이재명 정부가 탈원전과 거리를 두겠다고 밝혔지만, 정부 예산은 재생에너지 쪽으로 쏠리고 있는 것이다.  

    국민의힘은 정부가 원전 업무 일부를 기후부로 이관하는 방안을 '문재인 정부 탈원전 시즌2'로 규정했다. 송언석 원내대표는 이날 최고위원회의에서 "이재명 정부는 원전 해체도 시도하고 있다"며 "원전 생태계를 붕괴시킨 문재인 정권에 이은 '탈원전 시즌2'로 읽힌다"라고 주장했다.

    나경원 의원은 이날 페이스북을 통해 "에너지 정책을 환경부로 넘겨 '기후에너지환경부'를 만든다는 발상 역시 국가 에너지 대계를 규제의 족쇄에 묶어두려는 계획된 퇴행"이라며 "탈원전, 전기료 폭탄 시즌2다. 원전은 뒷전이고, 전기요금 인상과 산업 기반 붕괴는 국민 몫으로 전가된다. 이재명 정권의 '에너지 실험'은 국가 안보와 미래 성장 동력을 파괴하는 경제 자해 행위"라고 비판했다.

    이준석 개혁신당 대표는 이날 최고위원회의에서 "규제 부처인 환경부에 에너지 정책을 맡기는 것은 산업을 규제의 틀 안에 가두는 위험한 실험"이라며 "애초에 친환경이면서 경제적인 에너지는 존재하지 않기 때문에 환경부 관점에서는 어떠한 형태의 발전소도 덜 짓고, 어떠한 형태의 에너지 확충도 반대할 수밖에 없는 구조가 만들어진다. 이렇게 되면 전력 공급은 줄고 전기요금은 오르며 산업 경쟁력은 급격히 약화된다"고 주장했다.

    더불어민주당 내에서도 기후부 신설에 대해 부정적인 목소리가 나온다. 이언주 최고위원은 이날 최고위원회의에서 "이런 개편안을 만든 국정기획위원회 분들 역시 에너지는 곧 전기이고 산업용 전기요금이 곧 산업 원가라는 사실을 모르는 게 아닐 텐데, 어째서 이런 중요한 문제를 이렇게 급하게 밀어붙이게 됐는지 매우 유감"이라고 밝혔다.

    이어 "에너지 패권 경쟁 시대에 산업 경쟁력의 핵심인 에너지를 규제 부처인 환경부로 이관하는 것도 큰데 자원과 원전 수출은 또 산업부에 남긴다니 산업 현장과 현실을 모르는 발상"이라며 "기후에너지환경부는 해상 풍력을 육성·확대하는 일과 해양 오염 규제 중에 무엇을 우선할 것인지 묻고 싶다"고 덧붙였다.
이지성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