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혁 포장한 권력 분점… 금융 독립성 붕괴정책 공백·전문성 약화, 시장 신뢰 흔들옥상옥 감독체계… 관치 리스크 우려정권의 장난감 된 금융, 피해자는 국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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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제 우리도 누구 눈치를 봐야 할지 잘 모르겠습니다." 

    정부가 금융위원회를 17년 만에 해체하고 재정경제부·금감위·금감원·금소원 4개 체제로 쪼개겠다고 발표하자 금융권에서 터져 나온 반응이다.

    금융위는 2008년 출범 당시만 해도 시장의 컨트롤타워를 자처했다. 외환위기 이후 조각난 감독 기능을 묶어 정책과 감독을 조율하겠다는 목적이었다. 물론 권한 집중과 정치 줄서기 논란도 늘 따라다녔다. 하지만 시장의 눈에는 '최종 결정자'로서 기능했다는 점만큼은 부인하기 어려웠다. 위기 때 누군가 결단을 내려야 한다면, 그 자리가 금융위였다.

    이제 그 자리가 사라진다. 겉으로는 전문성 강화를 내세웠다. 그러나 속내를 들여다보면 권력 분점이 더 그럴듯한 해석이다. 정권이 금융을 네 갈래로 나눠 가짐으로써 장악력을 키우겠다는 것이다. 학계에서도 우려는 크다. 금융당국을 쪼개면 전문성 약화로 이어져 민간에서는 관치 강화라는 불안감이 커질 수밖에 없다는 지적이다.

    실무 혼선은 더 직접적이다. 일부 금융위 직원은 세종으로 이전해야 하고, 부처 간 업무 조정 과정에서 필연적으로 마찰이 생긴다. 금융은 신속한 의사 결정과 정밀한 정책 집행이 생명인데, 이제는 4개 조직이 줄줄이 회의를 열고 합의해야만 일이 굴러갈 수 있다. 시간은 지연되고 책임은 모호해진다. 

    시장에선 벌써부터 관치의 망령이 어른거린다. 기관이 늘어나면 권한도 흩어질 것 같지만 현실은 다르다. 기관마다 권한을 주장하며 목소리를 높일 테니, 금융사 입장에서는 규제 리스크가 몇 배로 늘어난다. 기업은 혁신보다 '관계 관리'에 더 많은 공을 들이게 된다. 이른바 "시어머니만 네 분"이라는 자조가 나오는 이유다.

    개편안의 본질은 단순하다. 금융정책의 일관성과 독립성을 담보할 컨트롤타워가 사라졌다는 것이다. 정권이 금융당국을 나눠 권력을 분점하는 순간 금융의 중립성은 무너진다. 정치가 금융 위에 군림하는 한, 시장은 언제나 불안하다.

    정부는 이번 개편을 개혁이라 부른다. 그러나 정작 시장은 퇴행으로 읽는다. 금융은 정권의 전리품이 아니지만, 정부는 금융을 쪼개서 권력의 장난감으로 삼고 있다. 그 결과는 자명하다. 정책 일관성은 무너지고, 감독 체계는 옥상옥으로 겹겹이 뒤엉키게 될 것이다. 결국 금융 소비자와 시장만 불안을 떠안는 구조다.

    외환위기 때 어렵게 세운 제도적 기반이 17년 만에 허물어지고 있다. 금융은 정치가 아니다. 그러나 지금의 개편은 정치의 무대로 금융을 끌어들이는 결정이다. 정부가 말하는 '개혁'이라는 포장 속에, 되살아난 것은 다름 아닌 '관치'의 망령이다.
신희강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