北·中·러, 66년 만에 톈안먼 망루 동시 등장시진핑, 美 주도 국제질서 맞서 中 주도 협력 강조中, 전략핵 3축 체계 첫 공개하며 반미 과시김정은, 미북 군축협상 의도로 화성-20형 공개전문가들 "3각 동맹 단계는 아직 아냐" 신중론한미일 공조, 상징적 연대 속 균형 전략 과제
  • ▲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왼쪽),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가운데),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3일 베이징 톈안먼 광장에서 열린 전승절 80주년 기념 열병식에서 나란히 자리하고 있다. ⓒ교도통신/AP=연합뉴스

    중국의 항일전쟁 승리 80주년을 기념하는 전승절 열병식에서 북한·중국·러시아 정상이 톈안먼 성루에 나란히 올라 북·중·러 연대를 과시했다. 북한 지도자가 중국 국가주석, 러시아 대통령과 함께 공식 석상에 선 모습은 냉전 종식 후 처음 연출된 장면으로, 반미 진영의 결속을 국제사회에 드러낸 사건으로 평가된다.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은 3일 베이징 톈안먼 광장에서 열린 '중국인민 항일전쟁 및 세계 반파시스트 전쟁 승리' 80주년 열병식 기념사에서 "인류는 다시 평화와 전쟁, 대화와 대결, 윈윈 협력과 제로섬 게임 중 하나를 선택해야 한다"면서 미국 주도의 국제질서에 맞서 중국 중심의 다자 협력 체제를 강조했다.

    앞서 시 주석과 푸틴 대통령은 전날 베이징 인민대회당에서 가진 양자회담에서도 서방에 대한 공동 대응 의지를 드러냈다. 시 주석은 "중국은 러시아와 더 공정한 글로벌 거버넌스 시스템의 형성을 촉진하기 위해 협력할 것"이라며 "중·러 양국은 유엔, 상하이협력기구(SCO), 브릭스(BRICS), 주요 20개국(G20) 등 다자 플랫폼에서의 협력을 강화해야 한다"고 말했다. 이에 푸틴 대통령은 "우리의 긴밀한 상호작용은 러·중 관계의 전략적 성격을 반영한다"며 "양국 관계는 전례 없이 높은 수준"이라고 화답했다.

    ◆中, 전략 무기 대거 공개로 대미 압박 시사

    이날 열병식 현장에서 중국은 전략적 메시지가 담긴 다양한 무기 체계를 선보였다. 둥펑(東風·DF) 계열 탄도미사일로는 최대 사거리 2만㎞로 전 지구를 사정권에 두는 대륙간 전략핵미사일이 공개됐다. 기존 DF-5B ICBM의 개량형으로 추정되는 DF-5C, DF-41의 개량형으로 보이는 DF-61, '괌 킬러'로 불리는 DF-26의 개량형 DF-26D, 주한미군 사드(THAAD)와 일본의 SM-3 요격 체계를 무력화할 가능성이 있는 DF-17, 사거리 1만4000㎞의 ICBM DF-41 등이 모습을 드러냈다.

    이외에도 미국 항공모함을 원거리에서 타격할 수 있는 잉지(鷹擊·YJ)-21 극초음속 미사일, 잠수함발사탄도미사일(SLBM) 쥐랑(巨浪·JL)-3, 요격 미사일 훙치(紅旗·HQ)-29, 무인기(드론)와 협동작전이 가능한 젠(殲·J)-20S와 J-35A 등 중국의 차세대 스텔스 전투기가 모습을 드러냈다. 특히 JL-1 공중 발사 미사일과 JL-3 SLBM, DF-61·DF-31 지상 발사 미사일을 동시에 선보이며 '전략 핵 3축 체계'를 처음 공개했다. 이는 중국군이 미래전에 대비한 종합 전력을 과시한 동시에 항일전쟁에서 중국공산당의 역할을 강조하려는 의도로 해석된다.

    ◆김정은, 신형 ICBM '화성-20형' 공개

    북한 지도자가 이 무대에 합류한 것은 1959년 건국 10주년 열병식 이후 66년 만이다. 김정은은 6년 8개월 만의 방중을 통해 처음으로 다자외교 무대에 모습을 드러냈다. 푸틴 대통령과 수비안토 인도네시아 대통령보다 앞선 순서로 입장했고, 시 주석은 김정은과 두 손을 맞잡으며 각별한 환대를 표시했다. 김정은은 기념 촬영에서 푸틴 대통령과 함께 중심에 섰고, 열병식 참관 때는 시 주석의 왼편에 자리했다.

    김정은은 방중 직전 신형 대륙간탄도미사일(ICBM) '화성-20형' 개발 사실을 공개하며 핵·미사일 능력을 과시했다. 북한 발표에 따르면 '화성-20형'에는 탄소섬유 복합재료를 활용한 신형 고체엔진이 사용되며 최대 추진력이 1960kN에 달한다. 기존 '화성-18형'과 '화성-19형'의 추력보다 40% 이상 강력해 다탄두 각개 목표 재돌입체(MIRV) 탑재 가능성이 거론된다. 이는 요격 회피력을 높이고 동시에 미국 워싱턴DC, 뉴욕 등 미 본토 여러 도시를 동시 타격할 수 있다. 북한이 비핵화 협상 대신 군축 대화를 겨냥하는 전략적 의도를 내비쳤다는 평가가 나온다.

    ◆전문가들 "과잉 대응보다 페이스메이커로서 전략 필요"

    북·중·러의 공동 행보는 각국의 이해관계가 맞아떨어진 결과다. 중국은 패권 경쟁에서 미국을 견제하려 하고, 러시아는 우크라이나 전쟁 국면에서 외교적 우군 확보를 노린다. 북한은 중국과 관계를 복원하고 러시아와 안보 협력을 강화하며 대미 협상력을 높이려 하고 있다.

    그러나 전문가들은 이번 연대를 지나친 '신냉전 구도'로 해석하는 데 신중해야 한다고 지적한다. 익명을 요청한 안보 전문가는 "북·중·러가 공동으로 단합을 과시했지만, 아직 삼각 군사동맹 수준으로 발전했다고 보기는 어렵다"며 "중국은 미국의 직접적 압박을 피하려는 만큼 일정한 선을 유지하려 할 것"이라고 분석했다.

    최우선 국립외교원 교수도 "점진적으로 한미일 협력이나 한미 동맹을 업그레이드 하는 과정이 필요하다"면서도 "흐름이 급격하게 바뀌었다고 해석하고 과도하게 대응할 필요는 없다"고 말했다.

    신범철 세종연구소 수석연구위원은 "북한은 안보는 러시아, 경제는 중국이라는 과거의 단순한 '안러경중' 구도를 따르는 것이 아니라 북·중·러 3각 연대를 강화하려는 목적이 뚜렷하다"며 "한국은 집토끼를 지키듯 한미일 공조를 흔들림 없이 유지하면서 '페이스 메이커'로서 변화의 흐름을 기다려야 한다"고 조언했다.

    미국의 반응은 냉담했다.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은 지난 2일(현지시각) 트루스소셜에 올린 글에서 "중국이 매우 적대적인 외국 침략자를 상대로 자유를 확보하도록 돕기 위해 미국이 제공한 막대한 지원과 '피'를 시 주석이 언급할지가 답변돼야 할 중대한 문제"라고 밝혔다.

    이어 "중국이 승리와 영광을 추구하는 과정에서 많은 미국인이 죽었다"며 "나는 그들이 그들의 용기와 희생 덕분에 정당하게 예우받고 기억되기를 바란다"고 덧붙였다.

    트럼프 대통령은 또 "미국에 대항할 공모를 하면서 블라디미르 푸틴과 김정은에게 나의 가장 따뜻한 안부 인사를 전해달라"면서 중국의 반미 이벤트를 비판했다.

    이번 북·중·러 망루 집결은 한국 안보 전략에도 적지 않은 파장을 던지고 있다. 전문가들은 북·중·러가 상징적 연대를 과시한 것은 분명하지만, 그것이 구조적 동맹으로 고착된 것은 아니라며 한국은 한미일 공조를 강화하면서도 과잉 대응은 피하고 외교적 공간을 유지하는 균형 있는 전략이 필요하다고 입을 모았다.

    익명을 요청한 안보 전문가는 "중국의 군 현대화와 핵 전력 개발은 오래전부터 진행돼 온 흐름으로 미국도 이를 인식하고 대응하고 있다"며 "한국도 동맹 현대화라는 차원에서 다영역 작전 개념을 공유하며 전력 업그레이드를 추진해야 한다. 한미 동맹은 이미 다영역 작전(MDO)을 합의했다. 이는 미래 불확실성에 대비한 전력 현대화 과정이자 대북 억제뿐 아니라 잠재적 중국 위협에도 대응할 수 있는 틀"이라고 강조했다.

    그는 북·중·러 연대에 대해 "셋이 모여 단합을 과시하며 미국의 압박에 중국 중심으로 대응하는 포스처를 취하고 있지만, 아직 냉전식 블록화가 이뤄진 상황은 아니고, 북중러 삼각 동맹 수준의 군사적 협력 단계까지 가지 않을 것"이라며 "공동 행동의 한계를 전제로 대응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그러면서 "한미 동맹을 현대화·업그레이드하고 한미일 협력도 지금의 페이스를 유지하면서 가는 것이 맞다"며 "중국은 미국의 압박이 워낙 강해 직접적 군사도전을 하는 모습은 피하려 한다. 러시아는 원하더라도 중국은 3각 연대를 군사동맹 수준까지 끌어올리는 것을 원치 않는다. 그렇기에 한국에는 아직 일정한 외교 공간이 남아 있다"고 설명했다.
조문정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