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미 정상회담, 우려보다 무난했던 상견례美 핵우산 흔들리면 원자력협정 개정 불가피주한미군 등 美 육군, 미래형 전력화 재편 중韓, 美에 평택기지의 中 견제 기능 부각해야北, 트럼프 담판 앞두고 중·러 밀착 패턴 반복트럼프 피스메이커론, 판문점 '리얼리티쇼' 재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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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23년 3월 27일 윤덕민 당시 주일 대사가 재외 공관장회의 참석 후 서울 외교부 청사에서 기자간담회를 열었다. ⓒ뉴시스
"처음에는 북한이 핵무장을 인정받는 일은 절대 없을 것이라고 여겼지만, 지난 30여 년의 과정을 거치며 사실상 기정사실화됐다. 북한이 핵무기를 보유하더라도 제재가 없는 명실상부한 핵보유국으로 가는 마지막 관문은 결국 트럼프와의 담판이 될 가능성이 크다."
윤덕민 전 주일대사는 지난 29일 뉴데일리 인터뷰에서 이같이 말하며, 이재명 대통령과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한미 정상회담을 '무난히 마무리된 상견례'로 평가했다.
윤 전 대사는 이 대통령이 최근 발표한 비핵화 3단계론(동결–축소–폐기)을 두고 "우리 정부조차 이미 북한이 주장하는 '핵군축'이라는 프레임에 접근하고 있다"며 "북한은 한국을 겨냥한 전술핵은 유지하고 핵무기 이전과 미국 본토를 위협하는 전략핵 포기를 조건으로 사실상 핵보유국 지위를 인정받으려 할 것"이라고 지적했다.
그는 "트럼프 대통령으로서도 전략핵 포기는 활용 가치가 크다. 이를 외교적 성과로 포장해 대대적으로 선전하며 정치적 이익을 극대화할 수 있다. 나아가 노벨평화상이라는 정치적 보상까지 겨냥할 수 있는 무대가 될 것"이라며 "결국 트럼프 대통령이 그런 선택을 한다면 한국과 일본은 핵 옵션을 가질 수밖에 없는 구조로 몰릴 수 있다"고 강조했다.
이런 구조적 제약을 보완할 대안으로 윤 전 대사는 오는 2035년 만료되는 '한미 원자력협정의 조기 개정'을 제시했다. 북한이 사실상 핵보유국 지위를 인정받는 상황에 대비해 한국도 최소한의 핵잠재력을 확보할 수 있는 제도적 기반을 마련해야 한다는 뜻이다.
2015년 개정된 현행 협정은 사용후핵연료 건식 재처리(파이로프로세싱) 가운데서도 전처리 공정, 즉 핵연료를 전해환원에 적합한 원료물질로 만드는 단계와 산화물을 금속으로 환원하는 전해환원 공정 등 '전반부 공정'에 한해 미국의 포괄적 동의를 얻는 수준에 머물렀다. 저농축우라늄(LEU)도 미국의 사전 승인을 받아야만 농도 20% 미만 범위에서 제한적으로 농축할 수 있다.-
- ▲ 이재명 대통령이 25일(현지 시간) 미국 워싱턴DC 백악관에서 열린 한미 정상회담을 마치고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과 악수를 하고 있다. ⓒ뉴시스
다음은 윤 전 대사와의 일문일답이다.
-이번 한미 정상회담을 전반적으로 어떻게 평가하는가.
"트럼프 대통령의 전형적 비즈니스맨식 협상 방식이 이번 한미 정상회담에서도 그대로 드러났다. 트럼프는 과거 북한 문제를 다룰 때 처음에는 강경한 태도로 압박하다가 막상 김정은을 직접 만난 뒤에는 '존경한다'는 표현을 쓰며 우호적인 분위기로 전환했다. 이번에도 비슷한 패턴이 반복됐다. 회담 직전 SNS를 통해 한국 상황을 우려스럽게 묘사하며 '이런 상황에서는 비즈니스가 불가능하다'는 글로 상대방을 먼저 흔들어 놓고 긴장감을 고조시켰다. 그러나 막상 정상회담에서는 유연하게 나오고 환대하는 모습을 연출하며 분위기를 전환했다.
다만 이번 회담은 상견례 성격이 강했다고 평가한다. 공동 성명이나 공동언론발표문이 따로 마련되지 않았고 실질적인 합의나 구체적 성과는 드러나지 않았다. 그럼에도 우려했던 상황에 비해 회담이 무난히 마무리된 점은 긍정적으로 평가된다. 그러나 진짜 문제는 앞으로다. 후속 협상에서 미국의 구체적 요구가 본격화할 것으로 전망된다."
-3500억 달러 대미 투자와 1000억 달러 규모의 미국산 액화천연가스(LNG) 구매에 이은 1000억 달러 규모의 대미 직접투자(FDI) 추가 합의는 우려스럽다.
"상대방을 긴장시키면서 짜낼 수 있는 것을 최대한 짜내는 트럼프 대통령 특유의 협상 전략이 발휘된 결과라고 본다. 당시 상황이 워낙 급박해 실장들과 장관들이 직접 뛰어다니고 주요 기업 회장들까지 나섰다. 결과적으로 경제적인 측면에서 트럼프는 상당한 이익을 챙겼다. 트럼프 대통령은 비공개 회담에서 동맹 현대화, 주한미군의 전략적 유연성, 대중국 견제, 이 대통령의 '친중 논란' 등의 의제를 들고 압박했을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이 대통령은 CSIS 대담에서 '안미경중의 시대는 지났다'고 평가함으로써 친중 이미지를 다소 벗어날 토대를 마련했다. 이번 정상회담은 일단 순조롭게 넘어갔지만, 앞으로 한국이 어느 쪽으로 확실히 방향을 잡을지는 미국 입장에서는 여전히 물음표로 남아 있을 것이다."-
- ▲ 이재명 대통령이 25일(현지 시간) 미국 워싱턴DC 전략국제문제연구소(CSIS)에서 정책 연설을 마친 뒤 질문에 답변하고 있다. ⓒ뉴시스
-이 대통령은 대중 견제를 위한 주한미군의 전략적 유연화에는 반대한다고 밝혔고, 한일 공동언론발표문에는 이시바 총리가 언급한 '힘에 의한 일방적인 현상 변경'에 반대한다는 내용이 빠졌다. 그런데 오히려 미국에 가서는 '안미경중은 끝났다'고 공개적으로 선언했다.
"지금까지 이 대통령이 보여왔던 기조와 상당히 결이 다른 발언이었다. 그러나 대통령으로서는 현시점에서 한국이 처한 전략적, 특히 경제적 상황을 고려할 때 그러한 입장을 밝힌 것이 옳았다고 본다. 우리 경제는 이미 제조업 전반에서 중국에 밀리고 있다. 중국에 수출할 만한 품목도 거의 남아 있지 않은 상황이다. 오히려 중국이 과잉 생산한 물량을 한국에 덤핑하고 있다. 이로 인해 철강·화학 등 대부분의 제조업이 흔들리고 있고, 반도체를 제외한 내수시장마저 위협받고 있다. 이런 현실 속에서 '안미경중'을 언급하는 시대는 이미 끝났다. 공급망이 재편되면서 우리가 필요로 하는 핵심 기술과 자원은 결국 미국을 중심으로 한 공급망에서 해결할 수밖에 없다. 중국이 한국 중간재를 수입해 재수출하던 시대는 끝났고, 한국이 중국에 팔 만한 것도 거의 남지 않았다."
-정상회담이 아닌 CSIS 대담에서 나온 발언임에도 중국 관영 매체는 사실상 '제2의 한한령'을 경고하는 듯한 반응을 내놨다.
"중국도 트럼프 대통령과 협상에 나설 때는 외견상 미국에 친화적인 발언을 꺼내곤 한다. 안미경중 시대는 끝났다는 식의 발언은 협상 과정에서 오가는 '립서비스'일 수 있다. 실질적으로 중요한 것은 한국이 처한 경제 현실이다. 현 상황에서 이 대통령이 그런 입장을 밝힌 것은 긍정적으로 평가할 만하다. 중국도 한국에 러브콜을 보내고는 있지만, 한계가 있다는 점을 잘 알고 있을 것이다. 설령 한국 대통령이 '우리는 계속 중국에 의존하겠다, 미국과 중국 사이에서 균형을 잡겠다'고 말할 것이라 기대하지도 않았을 것이다.
결국은 환경이 어떻게 변하느냐에 따라 달라진다. 이 대통령은 노무현 전 대통령처럼 상당히 유연한 인물로 보인다. 노 전 대통령도 '과거사 문제로 한일 관계가 후퇴해서는 안 된다'며 한일관계에 전향적으로 접근했다. 그러나 이후 일본 내 납북자 문제를 둘러싼 여론이 격화하면서 '고이즈미–김정일 평양 선언'(2002년)도 사문화됐고 2006년 일본 시마네현이 '독도의 날' 행사를 열자 노 전 대통령은 '물리적 충돌'도 불사하겠다는 강경한 태도로 선회했다. 지금 상황은 살얼음판 위를 걷는 듯한 국면이다. 노 전 대통령처럼 환경이 변하면 대통령의 태도도 달라질까 우려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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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병석 전 국회의장을 단장으로 하는 대통령 특사단이 25일(현지 시간) 오전 중국 베이징 상무부 청사에서 왕원타오(오른쪽 세번째) 중국 상무부장과 면담에 앞서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외교부 제공
-한미 정상회담 일정에 맞춰 중국에 특사단을 보낸 것은 적절하지 않았다는 지적도 있다.
"외교적으로 보면 '미국을 챙겼으니 중국도 어느 정도는 챙겨야 한다'는 균형적인 시각이 반영된 조치라고 볼 수 있다. 그러나 곧 있을 전승절 행사에 한국 국회의장이 참석하는 문제는 다른 차원이다. 미국의 주요 동맹국 중에서 국회의장급 인사가 참석하는 나라는 한국이 사실상 유일할 가능성이 크다. 우리는 늘 중국을 의식하는 측면이 있다. 오는 10월 경주에서 열리는 아시아태평양경제협력체(APEC)에도 시진핑 주석을 부르고 싶어 하지 않은가.
이 대통령은 미국을 방문해서는 '안미경중은 끝났다'고 했지만, 중국과 관련해 발언할 때는 늘 단서를 붙인다. 워싱턴포스트 인터뷰에서 조현 외교부 장관이 대만 문제를 언급했을 때 대통령실이 서둘러 부인했고, 이 대통령 본인도 워싱턴행 전용기에서 '중국과 절연할 수는 없다. 그것을 친중이라 한다면 친중을 하겠다'고 말했다. 이는 분명히 중국을 의식한 태도라고 할 수 있다."
-중국과의 관계 개선도 이 대통령의 외교 의제 중 하나다.
"이 대통령의 외교 의제는 크게 두 축으로 보인다. 하나는 전임 정부와 마찬가지로 한미 동맹을 확고히 다지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남북 관계 개선과 대중국 관계 회복을 레거시로 남기는 것이다. 이 대통령이 이번 대선 과정에서 '포괄적 글로벌 전략동맹 강화'를 공약으로 내세운 걸 보고 깜짝 놀랐다. 포괄적 글로벌 전략동맹 강화는 제가 외교안보연구원 교수 시절 만든 용어이고 이명박 정부의 공약이기도 하다. 일본과의 역사·영토 문제에서는 원칙을 강조하면서도 협력 강화를 병행하겠다는 구상도 전임 정부 정책과 크게 다르지 않다. 이번 정상회담에서도 이 대통령은 미국이 듣고 싶어하는 이야기를 많이 했다. 트럼프 대통령을 '피스메이커'(peacemaker, 평화 중재자)라고 칭한 것도 그렇다. 그런데 그 논리가 결국 문재인 정부 시절과 상당히 닮아있다. 트럼프 대통령과 북한의 대화를 중재하고 남북 관계를 개선하기 위해 미국을 활용한다는 프레임을 재가동하려는 것으로 보인다. 바로 그 점이 이번 회담에서 이 대통령이 얻은 또 다른 성과일 것이다."-
- ▲ 2019년 6월 30일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북한 김정은과 판문점 공동경비구역(JSA) 군사분계선을 넘어 북측으로 갔다 다시 남측으로 넘어오고 있다. ⓒ한국사진기자협회
-한국 정부의 바람과 달리, 미국과는 직접 협상하고 한국은 고립시킨다는 '통미봉남'(通美封南)은 북한의 전통적 대남 전략 기조다.
"여러 차례 실패로 입증된 모델에 진보 정부가 왜 집착하는지 이해하기 어렵다. 그러나 그것이 진보 정부의 철학으로 굳어진 듯하다. 이는 북한이 핵무기를 개발하고 변화하지 않는 이유를 '대북 적대 정책'에서 찾기 때문이다. 미국이 대북 적대 정책을 풀고, 우리가 대응 조치를 완화하면 북한이 스스로 핵을 포기하고 개혁·개방으로 나아가며 남북 관계도 개선될 것이라는 논리다. 이것이 바로 햇볕정책의 철학이다. 하지만 북한은 이미 여러 차례 핵실험을 감행했고, 보유 핵탄두가 90~120기 수준에 이른다고 평가된다. 문재인 정부 시절에도 그러한 정책은 철저히 실패했다고 보아야 한다. 그럼에도 여전히 같은 노선이 반복되고 있다. 북한에 강경 대응한 윤석열 정부의 조치에 대해서도 '외환죄'와 같은 표현을 쓰며 비난하는 모습에서 그 철학적 관성은 여전하다는 생각이다."
-북한이 남북대화 재개 조건으로 우리 헌법 제3조·제4조의 개정을 요구하고 있다.
"최근 북한의 행보를 보면 우리 정부와 역사 인식이 뚜렷하게 갈라지고 있다는 생각이 든다. 북한은 통일을 더 이상 추구하지 않겠다고 선언했고, 우리를 '적대 국가'로 규정했다. 여기에 러시아와의 군사동맹을 부활·강화하면서 김정은은 러시아가 한반도 해방을 도왔다고 공공연히 말하기 시작했다. 이는 과거와 확연히 다른 점이다. 북한은 전통적으로 러시아의 도움은 부인하고 '김일성 장군이 해방을 이끌었다'는 서사를 유지해 왔는데, 김정은은 러시아의 역할을 전면에 부각시키고 있다.
반면 우리는 김형석 독립기념관장이 올해 광복절 기념사에서 '광복은 연합군의 선물'이라며 한국이 연합군의 지원을 얻어서 해방했다고 말하자 이를 오히려 부정하고 있다. 우리가 과거에 머무르는 동안 북한은 오히려 역사 인식을 진화시키고 있다. 이와 동시에 북한은 남측을 통일의 상대로 간주하지 않고 있다. 스스로 미국과 직접 채널을 구축할 수 있는데 왜 남측이 '숟가락을 얹으려 하느냐'는 불만을 노골적으로 드러내고 있다. 북한의 전략적 기조는 여전히 한국을 배제하는 '통미봉남' 방향으로 움직이고 있다.
-북한이 미국을 주요 협상 상대로 삼는 이유는 무엇이라고 보는가.
"북한은 한국의 역량에 한계가 있다는 점을 잘 알고 있다. 문재인 정부 시절에도 각종 개발 계획을 USB에 담아 전달받았지만, 제재가 풀리지 않는 한 한국이 실행할 수 있는 것은 없었다. 제재 해제의 열쇠는 미국에 있고, 북한은 한국과의 협상보다는 미국과의 담판을 통해 길이 열린다고 본다. 그렇게만 된다면 한국은 자동적으로 경제적 지원을 제공할 것이라 계산한다.
북한의 접근 방식은 늘 단계적으로 전개됐다. 북한과의 모든 대화의 출발점은 '적대 관계 해소'다. 겉으로는 평화협정을 언급하지만, 실제로는 주한미군 철수를 의미한다. 결국 대화의 본질은 그 지점으로 수렴된다. 그래서 미국이나 한국이 북한과 협상을 시작할 때마다 연합훈련 중단이나 조정이 먼저 거론되는 이유다. 북한은 이를 일관되게 고리로 삼아 자신들의 이익을 챙겨왔다."-
- ▲ 북한 조선중앙통신에 따르면 북한은 김정은 지도하에 지난 2024년 5월 30일 초대형 방사포를 동원한 '위력시위사격'을 진행했다. 전문가들에 따르면, 북한은 한국을 겨냥한 ‘초대형 방사포’에 전술핵을 탑재할 수 있는 핵탄두 소형화 기술을 확보했을 가능성이 있다. ⓒ조선중앙통신/뉴시스
-북한의 최종 목표는 파키스탄이나 인도처럼 '사실상의 핵보유국' 지위를 얻고 제재를 해제시키는 것이다.
"놀라운 점은 우리 정부조차 이미 북한이 주장하는 '핵군축'이라는 프레임에 접근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이 대통령이 최근 발표한 비핵화 3단계론(동결–축소–폐기) 가운데 2단계인 축소는 곧 군축을 뜻한다. 비핵화 논리도 크게 변했다. 트럼프 행정부조차 이제 '비핵화'라는 표현을 거의 쓰지 않는다. 처음에는 북한이 핵무장을 인정받는 일은 절대 없을 것이라고 여겼지만, 지난 30여 년의 과정을 거치며 사실상 기정사실화됐다. 북한이 핵무기를 보유하더라도 제재가 없는 명실상부한 핵보유국으로 가는 마지막 관문은 결국 트럼프와의 담판이 될 가능성이 크다."
-3단계론 중 2단계인 '축소'가 가장 우려스럽다. 북한은 미국 본토를 위협하는 대륙간탄도미사일(ICBM)만 폐기하고, 한국을 위협하는 전술핵은 유지하는 방향으로 종료될 것 같다.
"결국 북한의 군축 협상 상대는 미국이다. 북한은 일정 부분의 핵무장을 기정사실화하는 대신 핵무기 이전과 미국 본토를 위협할 수 있는 전략핵 개발을 중단하겠다는 조건을 내세울 가능성이 크다. 파키스탄과 인도도 유사한 과정을 거쳐 핵보유국 지위를 굳혔다. 북한도 같은 길을 노리는 것이다. 트럼프 대통령으로서도 전략핵 포기는 활용 가치가 크다. 이를 외교적 성과로 포장해 대대적으로 선전하며 정치적 이익을 극대화할 수 있다. 나아가 노벨평화상이라는 정치적 보상까지 겨냥할 수 있는 무대가 될 것이다."
-전략핵만 폐기하고 전술핵은 유지하는 것은 한미동맹을 사실상 무력화하고 한국 안보에 치명타를 입힐 수 있다.
"이재명 정부 내에서도 위성락 국가안보실장 같은 합리적인 인사들은 이를 한미 원자력협정 조기 개정 논의와 연결해 바라보고 있다. 결국 트럼프가 그런 선택을 한다면 한국과 일본은 핵 옵션을 가질 수밖에 없는 구조로 몰릴 수 있다. 그렇지 않다면 미국의 핵우산이 절대적으로 신뢰 가능한 형태로 제공돼야 한다. 그러나 현 트럼프 행정부 기조를 보면 오히려 전자의 가능성을 시사하는 발언들이 나오고 있고, 트럼프 본인도 그런 이야기를 한 바 있다. 국제 질서는 한층 불안정해질 수밖에 없다.
문제는 미국이 핵확산금지조약(NPT) 체제를 흔들 수 있느냐는 점이다. 탈퇴한 국가의 핵무장을 사실상 인정한다면 이는 곧 NPT 체제의 붕괴로 이어진다. 트럼프라면 그런 선택을 고려할 수 있는 인물이라는 생각도 든다. 북한 핵을 관리할 마땅한 대안이 없는 현실에서 '전략적 인내'가 정답이 아니었듯이, 현 상황이 결국 북한이 원하는 방향으로 흘러가고 있다는 사실만은 부정하기 어렵다. 결국 핵심은 미국이다. 중국을 견제하는 데도 한미동맹은 중요한 기반이다. 다만 미국은 민주주의 국가이기에 정권 교체에 따라 정책 기조가 바뀔 수 있다. 트럼프라는 독자적 권력과 제도적 미국 정부가 공존한다는 점을 간과해서는 안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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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재명 대통령이 24일(현지 시간) 한일정상회담을 마치고 일본 도쿄에서 미국 워싱턴DC로 향하는 공군1호기에서 기내 기자간담회를 하고 있다. ⓒ뉴시스
- 이 대통령은 CSIS 연설에서 국방비 증액을 언급했다.
"쟁점이 결국 그 부분이기 때문이다. 트럼프가 집요하게 제기하는 의제는 관세와 투자 문제도 있지만, 주한미군 방위비 분담금 증액도 핵심 의제다. 이 대통령이 CSIS에서 국방비 증액을 언급한 것도 그 연장선상이라고 본다. 현재 우리가 내는 분담금은 약 10억 달러 수준인데, 트럼프가 원하는 것은 100억 달러에 달한다. 트럼프가 주한미군 기지 부지의 소유권을 언급한 것도 같은 맥락이다. 방위비를 더 올려야 한다는 압박의 메시지다. '생색내지 말고 현금으로 내라'는 신호라고 해석할 수 있다."
-이 대통령은 중국 견제를 뜻하는 주한미군의 '전략적 유연성'에는 동의하지 않는다면서 '미래형 전력화'에는 동의한다고 했다.
"'전략적 유연성'과는 정치적인 부담 때문에 의도적으로 거리를 두는 것이라고 해석할 수 있다. 하지만 사실상 동의어 '미래형 전력화'에 대한 수용 의사를 밝힌 것은 주한미군의 역할 및 성격 변화를 고려한 것으로 분석된다. 주한미군을 포함하는 미 육군은 과거와 같은 중무장 기갑·보병 부대 중심에서 벗어나, 장거리 타격과 기동성을 갖춘 다영역 작전 부대(MDTF) 개념으로 재편되고 있다. 평택에 주둔하면서도 하이마스(HIMARS)와 같은 장거리 타격 자산을 활용해 중국 다롄항이나 북해함대까지 공격할 수 있는 잠재력을 갖추는 식이다.
공군 전력도 마찬가지다. F-16 전투기를 미 공군의 최신 스텔스 전투기인 F-35로 현대화해야 하지만, 미국은 과거 사드(THAAD, 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 배치를 둘러싼 갈등을 고려해 조심스럽게 접근하고 있다. 일본에 배치한 F-35를 한국에 순환 배치하는 방식으로, 불필요한 갈등을 최소화하며 점진적으로 전환하고 있다. 하이마스와 다연장로켓(MLRS) 등과 같은 무기는 어떤 탄약을 싣느냐에 따라 수백㎞ 이상 타격이 가능하다. 미국은 이런 변화된 자산을 조용히, 그러나 꾸준히 주한미군에 적용하고 있다. 이 대통령이 '미래형 전력화'를 수용하겠다고 한 것도 결국 이러한 맥락을 수용한 것으로 볼 수 있다."
-그러나 한국이 주한미군의 전략적 유연성을 수용하지 않는다면 미국은 주한미군을 대규모로 감축해 재배치할 것으로 보인다.
"주한미군 감축 가능성은 항상 존재한다. 다만 이는 한국과의 정치적 갈등 때문이라기보다 미 육군 편성 자체가 변화하고 있기 때문이다. 과거 중무장 기갑부대는 필요성이 줄었고, 주둔 형태가 달라지고 있다. 평택 험프리스 기지는 매우 우수한 시설을 갖춘 전략적 거점이다. 중국을 견제하는 '초크 포인트'(Choke Point)에 자리 잡고 있어 미 국방부와 현장 지휘관들은 그 가치를 높이 평가한다. 다만 트럼프는 이러한 전략적 중요성을 충분히 인식하지 못하는 듯하다. 따라서 지금 필요한 것은 주한미군이 어떤 역할을 수행할 수 있는지를 적극적으로 부각하는 일이다. 중국 견제에 있어 평택 기지가 얼마나 중요한 역할을 하고 있는지를 설명해야 한다. 그러나 역대 한국 정부는 이를 제대로 주장하지 못했다."
-차라리 한미 정상회담에서 이 대통령이 전략적 유연성에 동의했다면 전체적으로 더 나은 그림이 나왔을 수도 있다. 우리가 막대한 금액을 미국에 투자하면서도 주도권을 전혀 가질 수 없는 식은 과도한 듯하다.
"이미 우리 기업들이 중국의 저가 공세에 밀려 어려움을 겪고 있는데, 대규모 대미 투자로 인해 주요 생산거점마저 미국으로 이전하는 상황이 될 수 있다. 여기에 '노란봉투법'과 같은 국내 규제까지 겹치면 그 흐름은 더 가속화될 수 있다. 대규모 대미 투자는 '투자'라는 이름으로 포장되고 있지만, 기업 경쟁력의 핵심인 자동차·반도체 공장까지 미국으로 몰리게 되면 국내 산업 기반은 더욱 취약해질 것이다. 우리가 너무 통 크게 대미 투자를 합의한 것은 아닌지 우려스럽다. 앞으로 2~3년 뒤 이러한 '청구서'가 한국 경제와 국민 생활에 어떤 부담으로 돌아올지 주의 깊게 봐야 한다. 안보 못지않게 경제 문제야말로 국민에게 직접적인 파급을 미치는 분야다."-
- ▲ 2015년 9월 3일 중국 베이징에서 열린 '중국인민의 항일전쟁 승리 및 세계 반파시스트 전쟁 승리(전승절) 70주년' 기념식과 열병식에 시진핑 국가주석을 비롯해 박근혜 당시 대통령,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 반기문 유엔 사무총장, 최룡해 북한 노동당 비서 등 외빈 50여명과 외교사절이 대거 참석했다. ⓒ뉴시스
-9월 3일 중국 전승절 행사에 김정은, 푸틴, 시진핑이 모두 참석할 예정이다. 한미일 대 북·중·러 구도가 본격적으로 고착화할 것이라는 우려도 나온다.
"우리는 이미 신냉전의 한가운데에 있다. 그런데도 마치 신냉전이 본격화하면 큰일이 벌어질 듯 걱정하는 것은 여전히 '균형외교'의 시각에 머물러 있는 태도다. 그러나 이 대통령이 말했듯, 안미경중의 시대는 이미 끝났다. 북한과 러시아가 군사동맹을 부활시키며 노골적으로 밀착하고 있는데도 국내에는 위기의식이 부족하다. 오히려 'K-방산' 호황에 도취해 현실을 외면하는 것 아닌지 생각해 봐야 한다. 현실은 우리에게 최악의 지정학적 환경이다. 지금 필요한 것은 한미동맹을 다지고, 한일 협력을 강화해 관계를 안정적으로 관리하는 일이다. 그런 점에서 이재명 정부가 이번 한일·한미일 정상회담에서 보여준 외교의 기본 방향은 옳았다고 본다."
-김정은이 이번 전승절 참석을 통해 얻을 수 있는 것은 무엇인가.
"북한은 외교 감각이 뛰어나다. 이 대통령이 미국을 방문한 시점에 맞춰 중국을 방문하고 트럼프까지 자신의 시야에 두려는 계산이 깔려 있다. 김정은의 패턴은 과거와 다르지 않다. 김정은은 트럼프와 첫 회담(2018년 6월 싱가포르 미북 정상회담)에 나서기 전에 중국과 관계를 복원하고, 이어 러시아와 관계를 강화한 뒤 그 여세로 트럼프를 만났다. 지금도 같다. 최종적으로 트럼프와 담판을 벌이기 전에 중국과 러시아를 뒷배로 세우려는 것이다. 그리고 이재명 정부가 추진하는 한중관계 개선 움직임을 견제하려는 의도도 있을 것이다. 북한은 한국을 진지한 협상 상대로 보기보다는 외교 구도 속에 일시적으로 포섭해 지렛대로 활용하려는 계산을 하고 있다.
트럼프의 계산도 뚜렷하다. 그는 여전히 노벨평화상을 의식한다. 우크라이나 전쟁에서 돌파구를 만들기 어려운 상황이므로 APEC 회담 전후해 판문점에서 다시 한번 '리얼리티 쇼'를 연출하려 할 수 있다. 이 과정에서 '피스메이커'라는 수식어가 등장했다. 피스메이커는 임동원 전 국정원장 저서 제목이기도 하다. 이 대통령은 이 수식어를 의도적으로 사용했을 가능성이 크다. 한국 대통령이 최대의 찬사를 안겨준 셈이다."-
- ▲ 이재명 대통령이 23일(현지 시간) 일본 도쿄 총리 관저에서 이시바 시게루 일본 총리와 정상회담을 마친 뒤 한일 공동언론발표를 하고 있다. ⓒ뉴시스
- 이번 한일 정상회담은 긍정적으로 평가하는가.
"현재로서는 긍정적으로 본다. 윤석열 정부가 마련한 틀을 이재명 정부가 이어받은 셈이다. 그러나 한일 관계는 언제나 그렇듯 위기의 연속이었다. 역대 어느 정부든 출범 초기에는 관계 복원을 강조하며 개선에 나선다. 윤석열 정부도 역사 문제나 교과서, 독도, 심지어는 라인 개인정보 유출 사태, 후쿠시마 원전 처리수 문제와 같은 돌발 이슈가 터지면서 위기 상황이 있었다. 노무현 정부도 초기에는 한일 관계 개선에 나섰지만, 독도 문제가 불거지자 '전쟁 불사'까지 언급하며 급격히 악화했다. 따라서 양국 간 신뢰가 구축돼 있어야 돌발 상황에 대응할 수 있다. 이번 정상회담으로 양측이 신뢰를 어느 정도 복원했다면, 앞으로 위기가 발생했을 때 이를 관리할 수 있을지가 시험대가 될 것이다."
- 한일 정상회담 공동언론발표문과 이시바 총리의 발언을 보니 북한 비핵화에 대해 이견이 있었던 것 같다. 한일이 사용한 용어가 각각 '한반도 비핵화', '북한 비핵화'로 달랐다. 북한은 '한반도 비핵화'라는 용어를 내세워 전략자산 전개가 가능한 주한미군 철수, 한미 연합연습 중단·폐지를 요구한다. 그런데 이 대통령은 워싱턴DC로 향하는 기내 간담회에서 '북한 비핵화'와 '한반도 비핵화'를 마치 같은 개념인 것처럼 혼용했다.
"한반도 비핵화라는 용어는 북한 논리와 연결될 수 있다. 한국은 북한의 입장에 맞춰 한반도 비핵화라는 표현을 사용한 것이다. 기존에는 한국도 북한 비핵화를 강조해 왔지만, 일본은 과거와 마찬가지로 한국을 배려해 한반도 비핵화라는 용어를 수용한 것 같다."
-마지막으로 이재명 정부에 제언한다면.
"현 단계에서 큰 탈 없이 진행되고 있다는 점은 다행이라 할 수 있다. 공약대로만 이행된다면 올바른 방향으로 가고 있다고 본다. 다만 앞으로의 상황 변화에 따라 어떤 변수가 생길지는 지켜봐야 한다. 한국에 주어진 선택지는 많지 않다. 막대한 대미 투자는 우리 경제가 감당할 만한 수준이라고 확신하기는 어렵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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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윤덕민 전 주일대사. ⓒ뉴시스
◆윤덕민 전 주일대사는
1959년 서울에서 태어나 한국외국어대 정치외교학과와 미국 위스콘신대 대학원을 졸업하고 일본 게이오기주쿠대에서 법학 박사학위를 받았다. 그는 국립외교원의 전신인 외교안보연구원에서 20여 년간 교수로 재직하며 안보통일연구부장 등을 역임했고, 이명박 정부 시절인 2008년에는 대통령직속 미래기획위원회 미래외교·안보분과 위원으로 위촉돼 정책 자문 활동을 했다. 박근혜 정부 시절인 2013년부터 2017년까지는 차관급인 국립외교원장을 지냈고, 한국외대 석좌교수로 재직하고 있다. 윤석열 전 대통령 대선 캠프에서는 정책자문단에 참여해 외교안보 공약 수립에 관여했고, 인수위 시절에는 한일 정책협의대표단 일원으로 일본을 방문해 관계 복원 논의에 힘을 보탰다. 학자 출신이지만 공직 경험이 풍부하고 일본 조야와의 네트워크도 두터워, 주일대사를 맡아 '대일외교 현장 사령탑'으로서 한일관계 개선에 기여해 왔다.

조문정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