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굳이 말할 필요 없었던 탈안미경중 … 실언 논란""2023년 대미 수출 역전 … 안미경중 시대 종언""안미경미 분명히 해야 美 신뢰 확보·中 악용 줄여""中 공산당 심리전일 뿐 … 韓, 과민 반응 땐 자충수"
  • ▲ 이재명 대통령이 25일(현지 시간) 미국 워싱턴DC 전략국제문제연구소(CSIS)에서 정책 연설을 마친 뒤 질문에 답변하고 있다. ⓒ뉴시스

    이재명 대통령이 방미 기간 밝힌 '탈 안미경중'(脫安美經中) 기조는 국익에는 분명 부합하는 발언이다. 미국 외교 무대에서 나온 수사적 발언이라는 점을 감안하더라도, 적어도 외견상으로는 과거 좌파 정권이 보여온 반미적 인식에서 벗어난 것으로 평가할 수 있다.

    '안미경중'은 '안보는 미국, 경제는 중국'이라는 의미로 1992년 한중 수교 이후 한국 외교의 기조였으나 2018년 미·중 무역전쟁과 2023년 대미 수출 역전을 기점으로 이미 퇴조한 전략으로 평가된다. 안미경중 기조는 노태우 정부의 수교로 시작돼 노무현 정부의 '동북아 균형자론'을 거치며 본격화했고, 문재인 정부의 '3불·1한'으로 이어졌다. 그러나 급변하는 국제 정세 속에서 안미경중은 이미 설득력을 잃은 '흘러간 유행가'가 됐다는 지적이 지배적이다.

    이런 맥락에서 이 대통령의 이번 발언은 국익 차원에서 의미가 있음에도 불구하고 외교적 수사 측면에서는 불필요한 부담을 남겼다는 지적도 없지 않다. 한미동맹 강화에 대한 의지를 보이는 것만으로도 충분했는데, 굳이 구시대적 기조를 공개적으로 환기시켜 중국과의 마찰을 자초할 필요는 없다는 얘기다. 미국에 대한 신뢰를 회복하려던 의도가 오히려 한국을 미중 사이의 '넛크래커'로 내모는 결과를 초래할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미국 땅'에서 외친 李 대통령이 '脫안미경중'

    이 대통령은 25일(현지시각) 미국 싱크탱크 전략국제문제연구소(CSIS) 초청 강연에서 '한국이 미국에 안보를 의존하고 경제적 실익은 다른 곳에서 취한다는 의문을 제기한다'는 질문이 나오자 "한국이 과거처럼 이 같은 태도를 취할 수는 없는 상황이 됐다. 이제는 한국도 미국의 기본적인 정책에서 어긋나게 행동하거나 판단할 수 없는 상태"라고 답했다.

    이 대통령은 "미국이 중국에 대한 강력한 견제, 심하게 말하면 봉쇄 정책을 본격 시작하기 전까지 한국은 '안보는 미국, 경제는 중국'이라는 입장을 가져왔던 것이 사실"이라고 말했다.

    이 대통령이 미국 땅에서 굳이 안미경중 탈피를 외친 이유를 짐작하기는 어렵지 않다. 이 대통령은 대선 전 이른바 '셰셰' 발언으로 논란을 빚었다. 지나친 친중 행보라는 비판과 함께, 미국 조야에서도 이에 대한 경계의 목소리가 적지 않았다. 이 대통령으로서는 방미 기간 중 의도적으로 이같은 발언을 꺼내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에 대한 '구애'를 다시 한번 했다고 볼 수 있다.
    ▲ 2022년 승용차 수출이 늘며 대미(對美) 경상수지가 역대 최대 규모의 흑자를 기록했지만, 반도체 부진에 2023년 대중국 경상수지는 21년 만에 적자 전환했다. 한국은행이 2023년 6월 23일 발표한 '2022년 지역별 국제수지(잠정)'에 따르면 지난해 우리나라 경상수지 흑자 규모는 298억3000만 달러 흑자로 직전년(852억3000만 달러)보다 축소됐다. ⓒ뉴시스

    ◆대미 수출, 대중 수출 역전 … 경제안보 시대에는 '안미경미'

    전문가들은 안보와 경제의 경계가 사라진 경제안보 시대에는 '안미경중'이 설득력을 잃었다고 평가한다. 첨단기술이 군사와 민간 용도를 겸할 수 있게 되면서 전에는 비전략 분야로 간주되던 농업·에너지·통신·인공지능(AI)도 군사 전용 가능성만 있다면 전략물자로 취급되는 추세다. 미국과 중국 모두 이중용도 품목을 통제하며 경제를 안보 수단으로 활용하는 상황에서 '경제는 중국' 전략은 지속하기 어렵다.

    실제 한국의 대외무역 구조도 바뀌었다. 2023년 12월 한국의 대미 수출(113억 달러)이 대중 수출(108억 달러)을 역전하면서 30년간 지속된 안미경중 구조가 완전히 해체됐다. 산업통상자원부에 따르면 2024년 한국의 대미 무역흑자는 560억 달러로 역대 최대치를 기록했다. 반면 대중 무역수지는 290억 달러 적자를 냈다. 중국 내 중간재 자립도가 급상승하며 한국산 중간재 수입이 감소함에 따라 한중 무역구조가 보완관계에서 경쟁 관계가 됐기 때문이다. 전문가들은 "'경제는 중국'은 옛말이고, 지금은 '경제도 미국'일 수밖에 없다”고 강조한다.

    또한 중국의 '제2한한령' 위협은 현실적으로 한계가 있다. 2017년 사드 보복 당시와 달리, 현재 중국 경제는 부동산 위기와 디플레이션으로 악화된 상태이고, 한국에 대한 경제 보복은 중국에게도 부메랑이 될 수 있다. 한국은 이미 미국의 핵심 공급망 파트너로 자리잡았고, 반도체·2차전지·AI 등 첨단기술 분야에서 대체 불가능한 지위를 확보해 중국이 함부로 건드릴 수 없는 전략적 가치를 갖게 됐다.

    ◆'안미경미' 기조 분명히 해야 … 안미경중 폐기 언급은 실언

    그럼에도 외교가 일각에서는 국가 정상인 이 대통령이 굳이 '안미경중' 기조의 폐기를 직접적으로 언급할 필요는 없었다는 지적이 나온다. 

    전직 고위 외교관은 "우리 외교의 기축이 한미동맹임을 자명한 사실인데, 굳이 '탈안미경중'를 언급한 것은 일종의 '슬립텅'(slip tongue, 실언)이었다"며 "이 대통령이 '대한민국의 외교 기축인 한미 동맹을 중심으로 해서 주변국과 우호 관계를 잘 관리해 나가는 것이 우리 외교의 방향이다'라는 정도로 답변했으면 좋았을 것"이라고 꼬집었다.

    그는 "미중 양쪽에서 압박받더라도 우리가 '안미경미' 기조를 분명히 해야 오히려 미국이 신뢰를 얻고 중국의 이용 여지를 줄일 수 있다. 괜히 쓸데없이 시대착오적인 '안미경중' 같은 표현은 한국에 도움이 되지 않는다"고 강조했다.

    한 전직 안보 관료는 "이제는 '안미경미'가 필요하다. 미국은 경제적으로도 중국 이상으로 중요한 나라가 됐다"며 "국제 정세가 달라진 상황에서 '안미경중'이라는 이분법은 이미 현실과 맞지 않는다"고 분석했다.
    ▲ 박병석 대통령 중국 특사단장이 24일(현지 시간) 중국 북경 조어대에서 왕이 중국 외교부장에게 대통령 친서를 전달하고 있다. ⓒ외교부 제공

    ◆中 공산당에 과민 반응할 필요는 없어 … 외교의 본질은 절제와 전략

    중국 공산당은 관영 영문매체인 글로벌타임스를 내세워 "사드(THAAD, 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 배치는 한반도 핵 문제 해결에 아무런 도움이 되지 않았을 뿐더러 중국과의 관계를 심각하게 훼손했고 한반도 긴장 역시 더욱 고조됐다"며 "한국이 중국과 거리를 두는 방향으로 (정책을) 전환한다면, 한국 경제와 국민의 삶에 심각한 타격을 입히고 가장 근본적 이익이 훼손될 것"이라고 경고했다.

    전문가들은 공통적으로 중국의 반발은 관영매체를 통한 심리전에 불과하다며 시진핑 주석의 직접 메시지가 아닌 만큼 과민 반응할 필요가 없다고 강조했다.

    익명을 요청한 외교안보 전문가는 "중국 공산당은 임기 초부터 이 대통령의 기를 죽이려고 하는데, 우리가 겁먹을 필요는 없다. 우리가 과민하게 반응하는 것이 오히려 중국의 전술에 말려드는 자충수가 된다"고 강조했다.

    아울러 "특사 파견은 중대한 현안이 있거나 양국 관계 개선이 필요할 때 하는 것이다. 그런데 이재명 정부는 한미 정상회담 기간에 맞춰 중국에 특사단을 보내 마치 중국을 달래기 위해 사전 양해를 구하며 저자세를 취하는 듯한 잘못된 신호를 줬다"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수교 기념일에는 축전만 보내 예의를 표하고, 정상회담 뒤에 결과를 설명하는 사후 친서를 주변국들에게 전달하며 협력을 요청하는 것이 외교의 기본"이라고 강조했다.

    궁극적으로 전문가들은 "외교의 본질은 절제와 전략"이라며 "트럼프에 대한 이 대통령의 과공(過恭)은 예의가 아니라 아부가 되고, 이는 결국 국익 손상으로 이어진다"고 비판했다.

    한 전직 관료는 "한미동맹을 기축으로 하되, 주변국과는 차분히 관리하는 것이 정답"이라며 "'안미경미'를 할 수밖에 없는 현실을 직시하고, 과잉 발언 대신 내공 있는 메시지로 균형을 잡아야 한다"고 말했다.
조문정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