합의된 인권위원 선출안, 與 자율 투표로 부결같은 날 이 대통령, 野 새 지도부에 축하난 보내野, 여권 성동격서에 강력 반발 … 국회 보이콧
-
-
- ▲ 송언석 국민의힘 원내대표가 27일 오후 국회 본청에서 열린 국회 본회의에서 국민의힘 추천 국가인권위원 후보자들의 선출안이 부결되자 김병기 더불어민주당 원내대표에게 항의하고 있다. 2025.08.27. ⓒ이종현 기자
국민의힘이 추천한 국가인권위원 2명의 선출안이 국회 본회의에서 부결되면서 여야 대치가 격화되고 있다. 양당이 본회의 처리에 합의한 사안이지만, 자율 투표에 맡긴 더불어민주당에서 반대표가 대량으로 발생한 것인데, 국민의힘은 향후 상임위 보이콧을 선언하며 강하게 반발하고 있다.
국회는 27일 본회의를 열고 이상현 숭실대 국제법무학과 교수(상임위원)와 우인식 법률사무소 헤아림 대표변호사(비상임위원)에 대한 인권위원 선출안을 상정했다. 두 사람 모두 국민의힘이 추천한 인사로, 여야가 원내협상을 통해 본회의 통과를 합의한 사안이다. 국가인권위원은 위원장을 포함한 상임위원 4명과 비상임위원 7명으로 구성된다. 이 중 4명은 국회 선출 몫이며 여야가 각각 2명을 추천한다.
하지만 막상 뚜껑을 열자 투표 결과는 부결이었다. 표결은 무기명으로 진행됐는데, 이상현 교수 선출안은 재석 270명 중 찬성 99명, 반대 168명, 기권 3명으로 부결됐다. 우인식 변호사에 대한 선출안도 찬성 99명, 반대 166명, 기권 5명으로 역시 부결됐다.
야당은 즉각 반발했다. 송언석 국민의힘 원내대표는 김병기 민주당 원내대표를 찾아가 항의했다. 그는 "거대 여당이 의석수로 우리당이 추천한 국가인권위원회 위원 선출안을 또다시 부결 시켰다"며 "민주당이 협치 파괴로 이 시간 이후 금일 남아있는 모든 상임위 일정을 보이콧 한다"고 했다.
국민의힘은 본회의장에서 퇴장하며 격렬히 항의했다. 유상범 의원은 "국회법은 정당의 인권위원 추천권을 보장하고 있다"며 "민주당이 사상 검열로 추천 인사를 낙마시킨 것"이라고 비판했다. 이어 "민주당이 뜻에 맞지 않으면 아무것도 통과되지 않는다는 것, 그것이 바로 다수에 의한 독재"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반면 민주당은 국민의힘의 인사 추천이 잘못됐다며 맞섰다. 서미화 민주당 의원은 국민의힘 의원들이 퇴장하자 "국민의힘의 악의적인 반인권적 인사 추천 반복을 막기 위해 후보추천위원회가 구성돼야 한다"며 "무자격 인권위원들은 독립성을 지키긴커녕 윤석열과 내란 옹호하기 바빴고, 탄핵 후 수세에 몰리니 독립성을 무기로 뻔뻔하게 자기 임기 보장을 요구한다"고 비난했다.
본회의 진행을 맡은 민주당 출신 우원식 국회의장도 국민의힘 퇴장에 아랑곳하지 않는 모습을 보였다. 우 의장은 야당 의원들이 퇴장하자 "의장은 이 심의 안건에 항의하는 퇴장에 동의하기 어려워 회의를 그대로 진행하겠다"면서 남은 법안을 통과시키기 위한 본회의를 그대로 진행했다.
-
- ▲ 국민의힘 의원들이 27일 오후 국회에서 열린 본회의에서 국가인권위원회 위원 선출안(이상현, 우인식)이 부결되자 항의하며 회의장을 떠나고 있다. 2025.08.27. ⓒ이종현 기자
국민의힘은 민주당의 의도된 부결이라는 입장이다. 민주당은 이날 인권위원회 상임·비상임위원 표결에 대해 당론 없이 자율투표를 진행하기로 결정했다. 그러나 본회의 직전 열린 의원총회 비공개 회의에서는 인권위원 내정자를 두고 "반인권적 인사" "내란 옹호 세력"이라는 표현까지 등장한 것으로 알려졌다. 문금주 민주당 원내대변인은 "국민의힘에서 후보로 내신 분들이 '좀 반인권적이고 반민주적인 내란 옹호 세력'이라는 것이 요지"라고 전했다.
새 지도부가 들어선 지 하루 만에 여당에 일격을 당한 국민의힘은 격앙된 분위기다. 대통령실로부터 최고위원 당선 축하 난을 전달받은 신동욱 국민의힘 최고위원은 축하 난을 거절하며 반발했다.
신동욱 국민의힘 최고위원은 "대통령 정무수석실에서 축하난을 보내겠다고 연락이 와서 예의라고 생각해 수락했는데 몇 시간 뒤 민주당이 우리와 합의한 인권위원 표결을 부결시키는 만행을 저질렀다"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이게 바로 민주당과 이재명의 본색"이라며 "앞에서는 웃음을 팔고 뒤에서 비수를 꽂는 것이 민주당식 정치"라고 비판했다.
마침 이날은 우상호 대통령실 정무수석이 직접 새 당대표가 된 장동혁 국민의힘 대표를 찾아 이 대통령의 축하난을 전달했다. 장 대표가 "마냥 감사드릴 수가 없다"고 불쾌함을 드러냈고, 우 수석은 "날을 잘못 잡았다"며 멋쩍은 모습을 보였다.
국민의힘이 추천한 인사가 국회 본회의 문턱을 넘지 못한 것은 처음 있는 일이 아니다. 국민의힘은 지난달에도 국가인권위원으로 지영준·박형명 변호사를 추천했으나 각각의 과거 정치 활동과 탄핵 반대 시위 이력 등이 논란이 되자 선출안 상정이 무산됐다.
한편, 이날 국회 본회의에서는 참전유공자 사망 시 배우자에게 생계 지원금을 지급하는 참전유공자 예우법 개정안, 산업은행에 첨단전략산업기금 설치 근거를 마련하고 자본금을 증액하는 산업은행법 개정안, 수업 중 스마트기기 사용을 제한하는 초·중등교육법 개정안 등 비쟁점 법안이 본회의를 통과했다.
이재명 대통령의 1호 공약인 기업성장집합투자기구(BDC) 도입 법안도 여당 주도로 처리됐다. 아울러 오송 지하차도 침수 사고 진상조사 및 재발방지 대책 마련을 위한 국정조사 계획서도 가결돼 다음 달 25일까지 한 달간 조사가 진행된다.

김상진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