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랑스, 공공부채 3조3천억유로…GDP 113%타개 위해 '정부 신임투표' 꺼냈으나, 혼란만 가중英, 재정적자 압박에 국채 신뢰 '뚝'…수익률 급증 '직격탄'獨, '2년 연속 역성장'에 부채 기준 완화했으나 정치적 분열韓, 글로벌 재정 긴축 분위기 속 '확대' 천명…건전성 지켜야
  • ▲ 에마뉘엘 마크롱 프랑스 대통령. EPA연합뉴스. ⓒ연합뉴스

    프랑스가 재정 위기로 정부 해산 가능성 등까지 나오는 등 정치적 혼란을 겪고 있다. 나랏빚이 감당할 수준을 넘어서자 정부 수반이 '긴축 재정'을 꺼내 든 것인데, 극약 처방이 정부 해체 위기로 다가온 것이다. 재정 지출 확대→재정 악화→시장 불안으로 이어지는 과거의 위기 공식이 재연되는 양상이다. 

    문제는 이러한 현상이 프랑스에서만 나타난 것이 아니라는 점이다. 영국과 독일 역시 선심성 복지로 나라 곳간은 파탄 나고, 정부는 그로기 상태다.

    각국의 상황을 아랑곳 하지 않고 우리나라는 확장 재정 일변도다. 이재명 대통령은 재정을 마중물로 삼아야 한다는 도그마를 고수하고 있고, 여당과 정부는 이를 반영해 내년도 예산안 계획 과정에서 재정 확대를 천명했다. 

    프랑수아 바이루 프랑스 총리는 지난 25일(현지시각) 기자회견을 갖고 나라 재정 상태가 더는 손 놓고 있을 수 없는 지경에 빠졌다면서 긴축 재정을 펴야 한다고 강조했다.

    프랑스의 공공부채는 지난해 기준 3조3000억유로(약 5200조원)로, 프랑스 국내총생산(GDP) 대비 113% 수준이다. 매시간 부채가 1200만유로씩(약 180억원) 증가해 왔다는 것이 바이루 총리의 설명이다.

    프랑스의 부채는 그리스와 이탈리아 다음으로 유럽연합(EU)에서 가장 높은 수준이다. EU 규정상 허용치는 60%에 불과해 프랑스는 재정적자를 통제하고 막대한 부채를 줄이라는 요구를 받고 있다.

    이에 바이루 총리는 프랑스인들이 아직도 현실의 심각성을 이해하지 못하고 있다면서 충격 요법으로 '정부 신임 투표' 카드를 꺼내 들었다. 긴축 재정에 대한 여론의 반발이 엄청난 가운데 국민의 대표인 의회의 신임을 확보해 정책 추진 동력을 얻겠다는 계산도 깔렸다.

    그러나 프랑스 매체들은 바이루 총리의 의회 신임투표 요청을 두고 '자살행위'라는 평가를 내놨다.

    의회 내 중도 세력인 범여권이 절대 다수를 차지하지 못한 상황에서 좌·우 양 진영이 정부 기조에 강하게 반발하고 있어 신임 투표를 통과하기 어렵기 때문이다.

    야당들은 기다렸다는 듯 정부를 무너뜨리겠다는 결의를 다지고 있다.

    극우 국민연합(RN)의 마린 르 펜 하원 원내대표는 엑스(X, 옛 트위터)에 "국민은 이 상황을 심각하게 인식했기 때문에 총리의 조치들을 거부하고 있다"며 이 상황의 책임자는 "우리가 수년간 투쟁해 온 체제의 정당들로 좌파, 우파 그리고 마크롱주의자들"이라고 비판했다. 그러면서 내달 8일 의회 표결에서 반대표를 던질 것이라고 밝혔다.

    극좌 굴복하지않은프랑스(LFI)의 장뤼크 멜랑숑 대표는 라디오 프랑스 앵테르에서 "바이루 총리는 자신이 처한 상황의 책임자가 아니다. 궁극적 원인을 찾아야 한다"면서 에마뉘엘 마크롱 대통령을 겨냥했다.

    극좌 진영의 대통령선거 후보인 멜랑숑 대표는 "평화롭고 민주적이며 공화국적인 유일한 해결책"은 마크롱 대통령의 퇴진이라면서 내달 23일 대통령 탄핵안을 발의할 것이라고 예고했다. LFI는 지난해에도 마크롱 대통령 탄핵을 시도했으나 무위로 돌아갔다.

    LFI와 좌파연합을 결성한 녹색당과 공산당 역시 정부 불신임 표를 던지겠다고 공언했다.

    지난해 바이루 정부가 들어선 이래 정부에 협조적인 태도를 보여 온 좌파 사회당의 기류도 심상치 않다. 올리비에 포르 사회당 대표는 25일 일간 르몽드에 "사회당이 총리에게 신임을 표명하는 건 상상할 수 없는 일"이라면서 반대표를 던지겠다고 예고했다.

    정부 붕괴 위기에 각료들은 막판까지 야당과 국민을 설득하겠다는 입장이다.

    에리크 롱바르 재무장관은 26일 프랑스 앵테르에서 정부가 재정상태를 개선하지 않을 경우 "IMF(국제통화기금)가 개입할 위험"이 존재한다고 경고하며 "2026년 예산을 준비하기 위해 모든 사람과 계속 소통할 것"이라고 말했다.

    장-노엘 바로 외무장관도 RTL방송 인터뷰에서 바이루 총리의 결정을 "용기와 현명함의 행동"이라고 평가하며 "부채에 짓눌린 프랑스를 우리 자녀들에게 물려줄 것인가"라고 반문했다.

    그러면서 의회가 정부를 불신임할 경우 국가를 "불안정과 위기로 몰아넣을 위험이 있다"고 우려했다.



    ▲ 연합뉴스TV 제공. ⓒ연합뉴스


    문제는 이 같은 위기가 비단 프랑스만의 일이 아니라는 점이다.

    영국의 경우 △복지·연금 등 구조적 지출 부담과 생산성 둔화 △대규모 재정적자 및 세입 부족 압박 여파로 금융시장은 흔들리고 국채 신뢰도는 추락했다.

    특히 키어 스타머 내각이 재정적자 압박을 회피하기 위해 복지수당 삭감안을 추진하면서 국채 신뢰도 추락이 가속했다.

    이날 기준 10년물 국채수익률은 4.73%로, 최근 3개월간 최고 수준을 지속하고 있으며 30년물은 5.61%로 27년 만에 최고치를 기록했다.

    2023년 -0.3%, 2024년 -0.2%로 2년 연속 역성장을 기록하면서 재정이 악화하기 시작한 독일도 마찬가지다.

    이에 올 들어 헌법상 '채무 제한규정(debt brake)'을 수정해 △국방비 1% 이상은 적용 제외 △5000억유로 규모 인프라 특별기금 신설 △연방·주 예산 적자한도 상향 등 부채 기준을 완화했다.

    이를 두고 정치권에서도 이견이 있다. 프리드리히 메르츠 총리와 정치권은 이를 '역사적 전환'이라 설명하고 있지만, 야권과 일부 시민은 '부채의 향연(debt orgy)'이라고 비판한다. 이에 따라 9월 예정된 예산안 처리 지연 가능성이 대두된다.

    더 큰 문제는 우리다. 긴축을 외치는 국가들 사이에서 역주행하고 있다.

    정부와 민주당은 26일 국회에서 열린 2026년도 예산안 당정협의회에서 내년 예산안 협의를 마쳤다. 이날 당정은 구체적인 예산 규모를 언급하지 않았으나, 최근 정치권에서는 정부가 내년도 예산안을 올해보다 최대 8~9% 늘리는 방안에 무게를 싣는 것으로 전해졌다.

    올해 본예산 기준 정부 총지출은 673조3000억원이다. 여기서 8~9% 증가하면 내년 예산은 약 730조원에 달한다.

    예산을 늘려 경기 대응과 복지 확대라는 두 마리 토끼를 쫓지만, 이미 국가부채는 눈덩이처럼 불어나고 있다.

    국회예산정책처와 재정정보포털 '열린재정'을 보면 국채 이자비용(결산 기준)은 2020년 18조6000억원에서 지난해 28조2000억원으로 급증했다. 불과 4년 만에 약 10조원(51.4%)이 늘어난 것이다. 코로나19 팬데믹을 계기로 국채 발행이 확대되면서 이자 부담도 가파르게 증가했다.

    올해 국채 이자비용은 30조원을 넘어설 것으로 관측된다. 정부는 국고채 이자상환에 약 30조원을, 외국환평형기금채권 이자상환에 6600억원을 각각 편성했다.

    재정 건전성과 경기 부양이라는 상충한 과제를 동시에 풀어야 하는 고차방정식 앞에 놓였다.

    재정 확대가 성장의 마중물이 될지, 아니면 '빚의 대물림'으로 남을지는 누구도 장담할 수 없다. 확실한 것은 유럽발 재정 위기가 남의 일이 아니라는 사실이다. 유럽발 재정 위기를 타산지석으로 삼지 못한다면, 한국도 같은 함정에 빠질 수 있음을 직시해야 한다.
성재용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