李 대통령, 트럼프에 북한 김정은과의 만남 요구"피스 메이커-페이스 메이커"에 범여권 분화 조짐민주당 "명언이자 전략적" … 진보당 "굴욕적"
-
-
- ▲ 이재명 대통령과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25일(현지 시간) 미국 워싱턴DC 백악관에서 한미 정상회담을 하고 있다.ⓒ연합뉴스
이재명 대통령과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한미 정상회담을 두고 범여권 등 좌파 단체에선 반응이 엇갈리고 있다. 트럼프 대통령을 '피스메이커'로 치켜세운 이 대통령의 발언을 두고 민주당은 "뛰어난 전략가"라고 호평한 반면 진보당은 "굴욕적"이라고 혹평했다.
특히 이 대통령이 중국과의 경제 협력과 미국과의 안보 협력을 병행하는 이른바 '안미경중'(安美經中) 노선과 관련해 "한국이 과거처럼 이 같은 태도를 취할 수는 없는 상황이 됐다"고 밝히자 좌파 진영에서는 "도그마를 깼다"며 반발의 모습이 커지고 있다.
26일 정치권에 따르면 정청래 민주당 대표는 이날 페이스북에 "이 대통령은 뛰어난 전략가이자 협상가"라고 논평했다.
앞서 이 대통령은 이날 미국 워싱턴 DC에서 열린 한미 정상회담에서 트럼프 대통령을 향해 북한 김정은과의 만남을 주선하며 "트럼프 대통령이 피스메이커를 하면 저는 페이스메이커를 하겠다"고 말했다.
이 발언은 정치권에서 계속 회자되고 있다. 정 대표는 "(이 대통령이) 트럼프가 좋아하는 내용과 단어를 선택해 대화를 유도하고 있고 트럼프 대통령을 세계적인 평화전도사(피스메이커)로 상찬하고 북미 대화를 이끌어 내고 있다"며 "이 대통령의 피스메이커-페이스메이커 명언은 전략적인 발언이고 협상가로서 기질을 유감없이 발휘한 장면으로 매우 높이 평가한다"고 밝혔다.
하지만 이 대통령의 발언으로 인해 범여권은 분화 조짐이 보이고 있다.
민주당에서는 이 대통령이 트럼프 대통령과 북한 김정은의 대화를 이끌어냈다며 호평 일색이지만, 진보당을 비롯한 범여권에서는 부정적인 반응이 잇따랐다.
진보당은 "문재인 전 대통령이 한반도 평화프로세스를 주도하겠다고 내세웠던 '한반도 운전자론'보다 더 후퇴한 표현"이라고 비판했다.
정혜경 진보당 원내대변인은 "미국과의 협상을 위해 먼저 일본과 과거라 문제를 덮어 트럼프의 호의를 얻고 8000만 겨레의 운명을 미국이 좌우하도록 접고 들어간 것은 아무래도 굴욕적"이라며 "협상 자리에서 언급된 주한미군 기지 소유권 요청, 미국 군사장비 구매, 미국에서 선박 건조, 엄청난 규모의 대미 투자자 및 미국산 에너지 구매 등 트럼프의 청구서는 무자비하게 쏟아질 것"이라고 주장했다.
김민석 국무총리의 형 김민웅 촛불행동 상임대표도 '페이스메이커'를 자처한 이 대통령에 발언을 염두에 둔 듯 "한미일 관계가 '현대판 조공 시스템'이 돼서도 안 된다"며 경고성 메시지를 냈다.
김 상임대표는 이날 페이스북에 "상대의 작전을 허물고 대화의 초입을 여는 작업은 일단 이로써 마무리된 한편 본질 문제의 해결은 여전히 남는다"며 아쉬움을 표했다.
그는 "미국과 일본에 치중된 한계를 넘어 외교 다변화 시대로 돌입해야 하고 우리의 변화가 국제 정세의 변화가 되는 주도적 의지를 가져야 한다"며 "당연히 '페이스메이커'로만 머물러선 안 된다"고 했다.
특히 한미 정상회담 이후 이 대통령이 "이제는 한국도 미국의 기본적인 정책에서 어긋나게 행동하거나 판단할 수 없는 상태"라고 단언한 데 대해 좌파 진영에서는 일제히 반발의 목소리가 터져 나오고 있다.
이 대통령은 이날 미국 싱크탱크 전략국제문제연구소(CSIS) 초청 강연에서 '혹자는 한국이 미국에 안보를 의존하고 경제적 실익은 다른 곳에서 취한다는 의문을 제기한다'는 질문이 나오자 안미경중에 대한 고민을 털어놓았다.
이 대통령은 "미국이 중국에 대한 강력한 견제, 심하게 말하면 봉쇄 정책을 본격 시작하기 전까지 한국은 '안보는 미국, 경제는 중국'이라는 입장을 가져왔던 것이 사실"이라고 돌아봤다.
그러나 이 대통령은 "최근 몇 년 사이 자유 진영과 중국을 중심으로 한 진영 간 공급망 재편이 본격적으로 벌어지고 미국의 정책이 명확하게 중국을 견제하는 방향으로 갔다"며 정세 변화에 대해 설명했다.
그러면서 "이제는 한국도 미국의 기본적인 정책에서 어긋나게 행동하거나 판단할 수 없는 상태"라며 "(중국의 경우) 지리적으로 매우 가까운 데서 생겨나는 불가피한 관계를 잘 관리하는 수준으로 유지하는 상황"이라고 밝혔다.
이에 대해 김민웅 상임대표는 "지금까지 한국은 그렇게 행동하거나 판단해본 적이 없는데 이걸 공식적인 표명으로 밝힌 것이 처음"이라며 "이해하나 이렇게 공식 발언을 통해 우리의 입지에 못을 박아야 하는지는 우려되는 대목"이라고 강조했다.
'안미 경중'은 '안보는 미국, 경제는 중국'이라는 줄다리기 외교로, 노무현 정부 이후 좌파 정권의 도그마처럼 사용돼 왔다. 노무현 전 대통령이 내세웠던 동북아균형자론도 이와 맞닿아 있으며, 문재인 전 대통령은 이를 대외 정책의 핵심으로 삼기도 했다. 이재명 대통령의 발언은 좌파 정권의 줄기를 자르겠다는 의지나 다름없다.

손혜정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