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일 정상 셔틀외교 복원 신호 北 vs 한반도… 비핵화 표현 엇갈려中 언급 빠져… 北中 현안 사실상 배제AI·저출산 협력 합의… 내용은 실무급 한계한미 정상회담 앞두고 공조 메시지 부각"이견으로 합의문 아닌 공동언론발표문 발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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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재명 대통령과 이시바 시게루 일본 총리가 23일(현지 시간) 일본 도쿄 총리 관저에서 한일 공동언론발표를 마친 뒤 악수하고 있다.ⓒ뉴시스
이재명 대통령과 이시바 시게루 일본 총리가 23일 도쿄에서 가진 정상회담은 17년 만에 공동 언론발표문을 채택하며 '셔틀외교 복원'을 공식화했다. 그러나 한국 정부가 배포한 공동 언론발표문에 담긴 '한반도의 완전한 비핵화'와 이시바 총리가 직접 언급한 '북한의 완전한 비핵화'는 양국의 미묘한 입장 차이를 드러냈다는 평가가 나온다.
한국 정부가 배포한 공동 언론발표문에는 "한반도의 완전한 비핵화와 항구적 평화 구축 의지를 재확인하고, 대북정책에서 긴밀한 공조를 지속하기로 하였다"는 문구가 담겼다.
그러나 이시바 총리는 이 대통령과의 공동 언론발표에서 "저는 힘 또는 위압에 의한 '일방적 현상 변경' 시도에 반대한다는 뜻도 밝혔다. 또 핵미사일 문제를 포함한 대북 대응에 대해서도 논의했고, 북한의 완전한 비핵화를 위해 일본과 한국, 그리고 일한미 3국 간에서 긴밀히 공조해 대응해 나가는 것을 다시 한번 확인했다"고 밝혔다.
미국과 일본은 '북한 비핵화'라는 용어를 쓰지만, 한국 정부는 정권에 따라 '북한 비핵화'와 '한반도 비핵화'를 사용해 왔다. 특히 북한은 '한반도 비핵화'를 핵 전략자산의 한반도 전개가 가능한 주한미군의 철수와 한미 연합연습 폐지, 즉 미국 확장억제(핵우산) 무력화로 규정한다.
신각수 전 주일대사는 뉴데일리와의 통화에서 "이시바 총리는 '북한의 완전한 비핵화'를 언급했지만, 이 대통령은 '한반도의 완전한 비핵화와 항구적 평화 정착'을 강조했다"며 "표현은 유사해 보이지만 미묘한 차이를 통해 양측의 이견이 드러난 것"이라고 분석했다.
익명을 요청한 외교안보 전문가는 "북한 비핵화와 한반도 비핵화는 겉으로는 비슷해 보이지만, 남북 대화 여지를 남기려는 한국과 원칙적 압박을 중시하는 일본의 입장 차이가 드러난 것"이라며 "이견이 뚜렷하기 때문에 구속력 있는 합의문 대신, 구속력이 없는 공동 언론발표문으로 봉합된 것"이라고 평가했다.
이어 "중국과 북한에 대한 인식차도 드러났다. 이시바 총리는 중국을 겨냥해 '일방적인 현상 변경에 반대한다'는 원칙을 강조했지만, 이 대통령의 발언에는 중국 관련 표현이 빠졌다. 북·중 문제에서 한일 양국 간 간극이 너무 커 정상 차원의 합의문으로 격상하기 어려웠을 것으로 보인다"고 덧붙였다.
이기태 세종연구소 외교전략센터장도 "일본은 일관되게 '북한의 비핵화'를 전제로 하지만, 한국은 '한반도 비핵화'를 통해 남북 협상 공간을 남겨두고 있다"며 "북한 문제와 중국 현안은 사실상 배제됐고, 양측은 사회·경제 협력이나 인적 교류처럼 무난한 주제를 중심으로 합의가 이뤄졌다"고 지적했다.
이번 회담은 양국 정상 간 셔틀외교 복원에 합의했다는 점에서 의미가 크다. 이 대통령은 "대한민국 대통령으로서 취임 후 첫 양자 방문국으로 일본을 찾은 것은 제가 최초라고 한다. 이 정도로 우리가 한일 관계를 얼마나 중시하는가를 보여주는 매우 중요한 의미라고 생각한다"고 강조했다.
이시바 총리도 "한국 대통령으로서 취임 후 최초의 양자 회담 방문지가 되는 것은 수교 이후 이번이 처음인 것으로 알고 있다. 일한 국교 정상화 60주년인 올해 그와 같은 역사적 방문으로서 이 대통령님을 모시게 된 것을 매우 뜻깊게 생각한다"고 화답했다.
양국은 ▲수소·AI 등 미래산업 협력 ▲저출산·고령화 등 사회문제 공동 대응 협의체 신설 ▲워킹홀리데이 참여 횟수 확대(1회→2회) 등 인적교류 활성화에 합의하고, 안보·경제안보 분야 전략소통을 위해 차관급 전략대화를 조기 재개하기로 했다.
신 전 대사는 "실질적 의제는 제한적이지만, 최소한 한일 관계가 단절되지 않고 협력의 틀을 이어갔다는 점은 의미가 있다"고 평가했다. 이어 "공동 언론발표문 내용은 빈약하더라도 보수 정권에서 진보 정권으로 교체된 뒤에도 한일 관계가 단절되지 않았다는 점 자체가 의미"라고 덧붙였다.
이번 방일은 오는 25일 예정된 한미 정상회담 직전에 이뤄졌다. 공동발표문에도 "급변하는 국제정세 속에서 흔들림 없는 한일, 한미일 협력을 추진해 나가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다는 점에 공감하고, 한일관계 발전이 한미일 공조 강화로도 이어지는 선순환을 계속 만들어 나가자"고 명시됐다.
전문가들은 이 대통령의 방일을 미국과의 협상을 앞두고 한미일 공조 틀을 강조해 협상 지렛대로 활용하려는 전략이라고 해석했다.
그러나 한 외교 전문가는 "북한 비핵화를 위한 한미일 공조와 대북 제재 이행은 일본이 강하게 밀어붙이는 의제지만, 남북관계 개선을 중시하는 한국 입장에서는 부담"이라며 "워싱턴에서 구체적 합의가 이뤄질 수 있을지가 최대 관건"이라고 지적했다.
이번 정상회담은 셔틀외교 복원과 협력 교두보 마련이라는 긍정적 성과를 남겼다. 그러나 '북한 비핵화'와 ‘한반도 비핵화’라는 표현 차이, 중국 관련 현안 배제, 공동언론발표문이라는 낮은 수준의 합의 형식은 뚜렷한 한계로 지적된다.
익명을 요청한 전직 안보 관료는 "앞으로는 '한반도의 비핵화'라는 추상적 표현이 아니라 구체적이고 구속력 있는 합의문 속에 명확히 담겨야 한다"며 "그럴 때 비로소 실질적 한일 관계 개선이 가능하다"고 강조했다.

조문정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