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자력협정 개정, 한미 정상회담 핵심 의제로비밀 실험의 꼬리표 … 국제사회 불신 여전日, 엔화 절상 대가로 플루토늄 44.5t 확보트럼프 中 견제에 한국식 인도·태평양 구상 제시네트워크형 전술핵 순환배치·인태핵재래식통합 대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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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시바 일본 총리와 정상회담을 마친 이재명 대통령과 부인 김혜경 여사가 24일 일본 도쿄 하네다공항에서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과의 한미 정상회담을 위해 워싱턴D.C.로 향하며 공군 1호기에 올라 인사하고 있다. /연합뉴스
이재명 대통령이 오는 25일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과의 한미 정상회담에서 한국의 자체 농축·재처리 활동을 금지하는 한미 원자력협력협정 조기 개정을 성과로 가져와야 한다는 요구가 커지고 있다.
그러나 한국의 조기 개정 추진이 핵잠재력 확보 의도로 비치지 않도록 평화적 핵 이용을 위한 개정임을 분명히 하고, 동시에 대중 견제에 방점을 둔 '네트워크형 전술핵 재배치'나 '인도·태평양 핵·재래식 통합'(CNIIP) 구상을 거래의 대가로 제시해야 한다는 제언도 나온다.
◆정상회담 의제로 오르는 한미 원자력협정 조기 개정
한미 원자력협정 개정은 이번 정상회담의 공식 의제 중 하나로 알려졌다. 위성락 국가안보실장은 지난 22일 기자 간담회에서 사용후핵연료(원전 폐연료봉) 재처리 문제를 포함한 한미원자력협정이 이번 한미회담의 공식 의제가 될 수 있다면서 정상회담 계기에 진전을 만들어 보겠다고 밝혔다.
이재명 정부의 원자력협정 조기 개정 추진은 핵추진잠수함(SSN)에 필수적인 연료인 고농축 우라늄 확보를 위한 전략적 기반이라는 해석이 가능하다. 핵물질을 생산할 수 있는 우라늄 고농축과 사용후핵연료 재처리는 핵확산금지조약(NPT)을 위배하지 않지만, 한국은 한미 원자력협정에 묶여 사실상 재처리가 불가하다. 사용후핵연료를 재처리하면 유사시 핵무기 개발에 사용할 수 있는 플루토늄을 얻을 수 있다.
한국은 2015년 협정 개정 당시 사용후핵연료 건식 재처리(파이로프로세싱) 중에서도 핵연료를 전해환원에 적합한 원료물질로 만드는 전처리 공정, 그리고 산화물을 금속으로 환원하는 전해환원 공정 등 '전반부 공정'에 대해서만 미국의 포괄적 동의를 얻는 데 그쳤다. 또 저농축 우라늄(LEU)도 미국의 사전 승인을 받은 경우에 한해 농도 20% 미만 수준으로 제한적으로만 농축할 수 있다.
국내 사용후핵연료 재고량은 2만t에 육박하며 2030년 한빛원전, 2031년 한울원전, 2032년 고리원전 순으로 저장공간이 포화할 전망이다. 사용후핵연료를 재처리하면 최종 처리해야 하는 고준위 폐기물 규모가 획기적으로 줄어들므로 재처리는 방폐장 문제를 근본적으로 해결하는 수단이기도 하다.-
- ▲ 국제원자력기구(IAEA) 조사단이 2022년 9월 1일(현지시간) 우크라이나 남동부 에네르호다르에 위치한 자포리자 원전을 시찰하고 있다. 전날 현장에 도착한 유엔 조사단은 러시아와 우크라이나 간 교전 속에 원전 안전성을 점검하는 임무를 수행했다. ⓒAP/뉴시스
◆핵추진잠수함 연료 확보 … 자주파의 '핵 잠재력' 구상
이재명 정부에 포진한 이른바 '자주파' 인사들은 핵 잠재력 확보를 위한 한미 원자력협정 조기 개정 추진에 적극적인 것으로 알려졌다. 정치권에 따르면, 이 대통령의 대선 공약 초안에는 한미 원자력협정 개정이 포함됐고 더 나아가 '핵 잠재력 보유'까지 포함해야 한다는 견해까지 있었다고 한다. 그러나 미국과의 관계를 고려해 대선 공약 최종안에서는 제외됐다.
이재명 정부가 추진하는 조기 개정은 향후 핵추진잠수함 연료 확보를 위한 전략적 포석으로 해석된다. "취임하면 미국부터 가야 한단 고정관념에서 벗어나야 한다"던 조현 외교부 장관은 후보자 신분이던 7월 17일 국회 인사청문회에서 한국의 핵추진잠수함 보유 가능성에 대해 "필요에 따라 우리가 언제든지 추진할 수 있는 하나의 방안"이라면서 조기 개정 추진 의지를 밝혔다.
다만 조 장관은 "농축과 재처리를 추진한다면 군사적 차원이 아니라 산업적·환경적 문제를 들어가서 미국을 설득해 나갈 수 있을 것"이라며 조기 개정 추진 목적이 산업적·환경적 차원임을 강조했다. 그러면서 "제3국 공동 진출이나 기술협력이라든지 특히 소형모듈원자로(SMR)에 들어가는 고순도 저농축 원료를 함께 만드는 것 등을 잘 추진할 수 있다"고 말했다.
◆4차례에 걸친 비밀 실험의 꼬리표, 불신의 그림자
한미동맹의 공고화와 한미일 안보 협력이 충분히 뒷받침되지 않은 상태에서 핵추진잠수함 도입이나 협정 조기 개정은 한미 간 불신만 키운 채 좌초할 수 있다. 국제사회에서 지난 20여 년간 '핵비확산 모범국가'로 인정받아 온 한국에는 비밀리에 핵잠재력을 확보하려 한 전력이 꼬리표처럼 따라붙는다. 1970년대 '프로젝트 890', 1982년 플루토늄 추출 실험, 2000년 무기급 고농축 우라늄 실험, 2003~2004년 '362 사업'이 대표적 사례다.
박정희 정부는 비밀리에 핵무기 개발을 위해 1972년 '프로젝트 890'을 시작해 프랑스와 핵연료 재처리 기술 협상을 추진했으나 1974년 미국 정보망에 포착돼 중단됐다. 전두환 정부 시절 한국원자력연구원(KAERI)의 플루토늄 추출 실험과 김대중 정부 시절 무기급 고농축 우라늄 농축 실험은 2004년 국제원자력기구(IAEA) 특별사찰에서 뒤늦게 드러났다. IAEA는 한국을 유엔 안전보장이사회에 회부할 가능성까지 거론했지만, 핵무기 개발 의도는 없었고 연구 차원 소량 실험이었다는 한국 정부의 해명을 수용하며 사건은 종결됐다.
노무현 정부는 2003년 집권 직후 자주국방의 핵심 구상으로 핵추진잠수함 개발 사업인 '362 사업'을 비밀리에 추진했다. 그러나 2004년 한미동맹 와해와 국제적 파장을 우려한 유용원 당시 조선일보 기자(現 국민의힘 국회의원)의 보도로 이 사업의 존재가 세상에 드러났다. 이후 미국의 반대로 1년 만에 좌초했다.-
- ▲ 1985년 1월부터 1988년 1월까지 미국 달러 대비 일본 엔화 환율 변화. 점선은 1985년 9월 22일 플라자 합의 체결 시점을 나타낸다. ⓒCreative Commons
◆美日 '플라자 합의'의 교훈 … 日, 대미 무역흑자 포기하고 플루토늄 선택
일본은 1985년 '플라자합의'로 엔화 절상이라는 대가를 치르면서도 1988년 미일 원자력협정 개정을 통해 플루토늄 추출·저농축 우라늄 관련 권한을 확보했다. 당시 일본은 사용후핵연료를 습식 재처리해 고순도 플루토늄을 추출할 수 있는 권한과 20% 미만 우라늄 저농축에 대한 미국의 포괄 동의까지 얻었다. 아울러 미국의 '사전 동의' 범위 안에서 20% 이상 고농축 우라늄과 플루토늄의 저장·운송도 가능해졌다. 일본의 플루토늄 보유량은 지난 3월 말 기준 44.5t에 달한다. 플루토늄을 단 한 그램도 보유하지 못한 한국과 비교하면 '핵잠재력 격차'는 압도적이다.
익명을 요구한 전직 안보 관료는 "한국은 원자력 협정 개정 문제를 핵 개발과 연관지어서 생각하거나 미국이 오해하도록 추진해선 안 된다. 사용후핵연료 저장공간이 포화하는데 방폐장은 새로 짓기 어려운 현실을 언급하며 조기 개정은 산업·에너지·환경 목적에서 불가피하다는 사실을 미국 측에 충분히 설명해야 한다"며 "특히 트럼프 정부 기조의 핵심은 거래이므로 동맹국으로서 미국의 중국 억제 전략에 동참한다고 선언해야 한다"고 말했다.
◆원자력협정 개정, 중국 견제 카드와 맞교환 가능성은
이번 한미 정상회담에서 트럼프 대통령은 이 대통령에게 미국의 대중 견제에 대한 공식 지지, 나아가 '동맹 현대화'와 '주한미군 전략적 유연성' 확보 차원에서 대중 견제 동참을 요구할 것으로 보인다.
미국 워싱턴포스트(WP)는 지난 9일 미국 정부 내부 문서를 인용해 트럼프 행정부가 7월 말에 타결된 한미 관세협상 과정에서 한국에 '주한미군의 대중국 견제 목적 활용에 동의하라'고 요구하는 방안을 검토했다고 보도했다. WP가 공개한 초안에는 "대북 억제를 계속하는 동시에 대중국 억제를 더 잘하기 위해 주한미군 전력 태세의 유연성을 지지하는 정치적 성명을 한국이 발표할 것"이라는 대목이 포함돼 있었다.-
- ▲ 미 국방부가 2019년 발표한 인도태평양 전략 보고서에 나타난 역내 주요 미군기지 현황. 미국은 한국과 일본, 괌, 호주 등 주요 동맹국에 군사거점을 집중 배치하며 중국의 역내 영향력 확대를 견제하고 있다. ⓒ2019년 미 국방부의 인도태평양 전략 보고서
◆'네트워크형 전술핵 재배치'와 한국형 원시어터 구상 … 한국의 선택지는
전문가들은 한국이 미국의 요구에 수동적으로 응하기보다는 구체적인 협력 방안을 선제적으로 제시해야 한다고 조언한다. 원자력협정 개정이라는 '받을 것'과 대중 견제 동참이라는 '줄 것'을 연계해야 한다는 것이다. 특히 주한미군의 전략적 유연성과 대중 견제를 둘러싼 협상 과정에서 한국이 독자적 대안을 선제적으로 제시한다면 '전략적 자율성'도 확보할 수 있다. '네트워크형 전술핵 재배치'와 '인도·태평양 핵재래식통합'은 그 대안으로 거론된다.
'네트워크형 전술핵 재배치'는 한국·호주·필리핀·미국령 괌 등 인도태평양 지역 미군기지들을 중심으로 미국의 전술핵을 순환 재배치하는 방식이다. 이와 관련해 이상현 세종연구소 수석연구위원은 지난 2월 워크숍에서 주한미군 기지 내 고정 배치보다는 동북아 인근 미군기지들을 네트워크로 묶어 배치하는 편이 심리적 억제력이 더 크다며 미국이 이를 고려한다고 선언만 해도 중국과 북한에 상당한 억제 효과를 줄 수 있다고 말했다. 그는 "일본의 강한 반핵 정서, 중국의 거센 반발 등을 고려하면 현실적으로 일본과 대만은 가능한 선택지가 아니다"라면서 잠수함발사순항미사일(SLCM)에 전술핵탄두를 탑재하는 해상 기반 순환 배치 방식도 제언했다.-
- ▲ 한미 공군이 2023년 2월 1일 서해 상공에서 우리 측 F-35A 전투기와 미측의 B-1B 전략폭격기 및 F-22·F-35B 전투기로 연합공중훈련을 시행하고 있다. ⓒ뉴시스
더 나아가 핵과 재래식 전력을 연계해 동맹 억제력을 강화하는 한미 핵재래식통합을 인도·태평양 전역으로 확장한 인도태평양 핵재래식통합 개념을 한국이 선제적으로 제시할 수도 있다. 일본이 한반도와 동중국해, 남중국해를 하나의 전장으로 묶어 집단 안보 구조로 확장하자는 '원시어터(One Theater) 구상'을 내놓았듯, 한국도 독자적 구상을 통해 한미 핵재래식통합 심화를 주도할 수 있다는 것이다.
이를 제언한 조비연 세종연구소 연구위원은 "한국을 포함한 역내 동맹국의 입장에서는 독자적으로 관리·결정되는 미국의 역내 핵전략 작전에 대한 정보 공유, 협의, 이해가 확충된다. 그 과정에서 동맹국의 재래식 역할이 확대·구체화됨으로써 동맹국의 자체 역량이 제고된다"며 "트럼프 행정부 입장에서는 대중 견제를 목적으로 동맹국의 동참을 견인하고, 재래식 수단을 확보하며, 안전 보장 결의를 동맹국과 적국 양쪽에 효과적으로 발신할 수 있다"고 강조했다.
인도·태평양 핵재래식통합 구현은 미국 전략자산 전개 확대, 역내 연합연습, 전술핵의 유연한 순환 배치를 통해 가능하다. 조 연구위원은 "괌 등에 전술핵이 재배치될 가능성을 고려해 주한미군 기지 내 B61 계열 전술핵 저장 시설을 구축하고, 미 육군 탄약대대 훈련과 순환 배치를 추진하며, 미국의 이중목적항공기(DCA)인 F-35 배치를 확보하는 방안 등을 검토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이 대통령이 이번 한미 정상회담에서 협정 조기 개정을 관철할 수 있을지는 트럼프 행정부가 요구하는 중국 견제 동참에 한국이 어떤 전략 카드를 내놓느냐에 달려 있다. 이번 정상회담은 협정 개정의 성패를 넘어 한미 협력 구도의 향방을 가를 시험대가 될 전망이다.

조문정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