北, 한반도 비핵화 내세워 주한미군 철수 요구1991년 선언 근거로 주한미군 기지 사찰 주장 동결 빌미로 핵보유국 지위 요구 가능성 미북 수교 땐 주한미군 명분 약화
  • ▲ 이재명 대통령이 21일 서울 용산 대통령실 청사에서 열린 제8차 수석·보좌관 회의에서 발언하고 있다. ⓒ대통령실통신사진기자단

    이재명 대통령은 지난 21일 공개된 일본 요미우리신문 인터뷰에서 "정책적 방향은 한반도 비핵화"라며 "1단계는 핵·미사일 동결, 2단계는 축소, 3단계는 비핵화"라는 단계적 해법을 내놓았다. 이어 "미국과 긴밀히 공조하면서 적극적 남북 대화를 통해 핵 동결·축소·폐기까지 갈 수 있는 여건을 만들어 나가겠다"고 강조했다.

    이 대통령의 이른바 '한반도 비핵화 스몰딜' 구상이 나오자마자 외교·안보 전문가들 사이에서는 우려의 목소리가 나온다. 북한의 기만 전략과 맞물리면 한미동맹의 근간을 무너뜨릴 수 있다는 견해까지 제기되고 있다. 
    ▲ 1992년 1월 14일 남북은 임동원 통일원(현 통일부) 차관과 최우진 외무성 부상이 각각 참석한 가운데 판문점 중립국감독위원회 회의실에서 남북한의 총리가 서명한 비핵화공동선언 문본을 교환했다. ⓒ국가기록원

    ◆1991년 등장한 '한반도 비핵화'의 덫 … '북한 프레임'을 인정하는 셈

    22일 외교가에 따르면 이 대통령이 '북한 비핵화'가 아닌 '한반도 비핵화'라는 용어를 사용한 데 주목한다. 북한은 이 용어를 핵 전략자산의 한반도 전개가 가능한 주한미군의 철수와 한미 연합연습 폐지, 즉 미국 확장억제(핵우산) 무력화로 규정한다.

    북한은 1986년 한미 연합훈련인 '팀스피릿을 "우리 공화국 북반부를 선제 타격하기 위한 핵전쟁연습"이라고 주장했다. 지난 3월에도 방어적 성격의 연례 한미 연합훈련인 '자유의방패'(UFS)를 "도발적인 핵전쟁연습"으로 규정하며 반발했다.

    그간 북한은 '한반도 비핵화'를 앞세워 주한미군 철수와 미국 핵우산 축소를 협상 테이블에 올리려 했다. 이 대통령의 '한반도 비핵화' 언급은 남북 대화 재개를 위한 유화적 제스처일 수 있으나 자칫 북한의 프레임을 인정하는 방향으로 흐를 수 있다.

    '한반도 비핵화'라는 개념은 노태우 정부 시절인 1991년 주한미군 전술핵 철수와 함께 공식화했다. 

    조지 H. W. 부시 대통령이 1991년 9월 '전술핵에 관한 대통령 이니셔티브'(PNI)를 발표하고 전술핵 철수를 선언했고, 미 태평양사령부는 그해 11월까지 주한미군 전술핵 100여 기를 모두 회수했다. 노태우 정부는 12월 18일 '핵 부재 선언'을 통해 이를 확인했고, 12월 31일 제5차 남북고위급회담에서 '한반도 비핵화 공동선언'을 채택하며 비핵화 범위를 '한반도 전체'로 확장했다.

    당시 주한미군 전술핵 철수와 북한 핵 포기라는 상호적 의미가 있었지만, 북한은 이후 이를 악용해 주한미군 철수를 지속적으로 요구했다. 1991년 공동선언 협상 당시에도 북한은 주한미군의 전략자산 전개 가능성을 문제 삼으며 주한미군 철수를 주장했다.
    ▲ 미 공군 B-1B 폭격기가 2024년 10월 1일 오전 서울공항에서 열린 건군 제76주년 국군의날 기념식에서 대한민국 공군 F-15K의 호위를 받으며 저공비행을 선보이고 있다. ⓒ서성진 기자

    ◆사실상 사문화된 공동선언 … 北 '주한미군 사찰' 요구에 좌초

    이렇게 탄생한 공동선언 제1조는 "남과 북은 핵무기의 시험, 제조, 생산, 접수, 보유, 저장, 사용을 하지 아니한다"고 명시했고, 제4조는 "한반도의 비핵화를 검증하기 위하여 상대 측이 선정하고 쌍방이 합의하는 대상들에 대하여 남북핵통제공동위원회가 규정하는 절차와 방법으로 사찰을 실시한다"고 규정됐다.

    이 조항들은 북한이 강하게 요구한 내용으로, 북방정책을 추진하던 노태우 정부는 합의를 끌어내기 위해 일부 수용했다. 북한은 제1조를 근거로 미국 핵무기를 운반·탑재할 수 있는 전략폭격기·잠수함 등 미국 투발수단의 한반도 전개(통과·착륙·방문)를 봉쇄하려 했고, 제4조를 명분으로 모든 주한미군 기지와 원자력발전소를 사찰하겠다고 주장했다. 안보 공백을 우려한 노태우 정부가 이를 거부하면서 한반도 비핵화 공동선언은 사실상 사문화됐다.

    전직 안보 관료는 "북한은 자국의 핵 문제에서 시선을 돌리기 위해 주한미군과 같은 남측 사안을 끌어들이는 방식을 상습적으로 써왔다"며 "이 대통령이 '한반도 비핵화'를 정책 방향으로 천명한 이상 북한은 다시 '주한미군 기지에 핵무기가 있을 테니 사찰해야 한다'는 논리를 펼칠 것"이라고 전망했다.

    이어 "1991년의 북한은 표면적으로라도 비핵화 의지를 내보였지만, 2025년의 북한은 '불가역적 핵보유국' 지위 인정을 미·북 대화 전제로 내세우며 비핵화 의제화조차 거부한다"며 "'한반도 비핵화'는 주한미군이라는 방어 수단을 약화하고 궁극적으로 한미동맹의 근간을 흔들 위험이 있다"고 말했다.
    ▲ 1994년 10월 21일 스위스 제네바에서 로버트 갈루치 미국 국무부 북핵 특사(왼쪽)와 강석주 북한 외무상 제1부상(오른쪽)이 미북 제네바 합의에 서명하고 있다. ⓒKBS '제네바 합의 20주년' 관련보도 화면캡쳐.

    ◆3단계 비핵화 구상의 본질 … 스몰딜이 남길 치명적 공백

    이 대통령의 해법은 동결(freeze)·축소(disablement)·비핵화(dismantlement)라는 3단계로 구성된다. 동결은 핵시설 가동을 중단하는 셧다운, 축소는 핵시설 불능화, 비핵화는 핵시설과 핵무기의 완전한 해체를 의미한다. 그러나 이처럼 부분적 비핵화와 그 대가를 주고받는 '스몰딜' 성격의 단계적 비핵화가 성과를 거둔 사례는 없다.

    북한은 세습 체제 특성상 정권 교체 없이 일관된 핵 개발 목표를 추진해 왔다. 반면 한국과 미국은 정권 교체 때마다 대북 정책이 달라져 검증과 압박의 연속성이 약화됐고, 북한은 그 틈을 활용해 이익을 얻었다. 1994년 '제네바 합의'가 대표적 사례다. 당시 북한은 경수로 건설과 중유 지원 등 실질적 혜택을 확보했지만, 핵 개발 동결 의무조차 제대로 이행하지 않아 이 합의는 결국 휴지 조각이 됐다.

    최악의 경우 북한은 2단계에서 미국 본토를 겨냥한 전략핵만 폐기하고 한국을 겨냥한 전술핵은 그대로 유지하는 선에서 스몰딜을 끝낼 수 있다. 이렇게 되면 한국은 한미동맹 약화와 직접적 위협이라는 이중 부담을 감수해야 한다.

    한 대북 전문가는 "3단계인 핵폐기까지 도달해야 하지만 현실적으로는 가능성이 희박하다. 북한이 원하는 것은 잘해야 동결이나 부분적 불능화 수준"이라며 "만약 북한이 전략핵만 폐기하고 전술핵을 유지한다면 이는 미국의 전략핵 전력 운용을 제한해 한반도 안보 공백을 만들고 결과적으로 한미동맹을 무력화할 수 있다"고 지적했다.

    ◆'동결'로  핵보유국 지위를 노리는 북한의 계산법

    가장 가시적인 시나리오는 북한이 1단계인 동결을 이행한 뒤 이를 명분으로 미북 관계 정상화(수교)를 요구하고 미국으로부터 사실상 핵보유국 지위를 인정받는 것이다. 

    한 대북 전문가는 "핵실험·미사일 발사를 중단하는 동결은 곧 기존 핵무기를 용인해 달라는 의미와 같다. 실험과 발사 중단의 대가로 기존에 보유한 핵을 인정받으려는 것은 사실상 핵보유국 지위를 요구하는 것"이라고 분석했다.
    ▲ 도널드 트럼프 1기 미국 행정부 시절인 2020년 1월 20일 반트럼프반미투쟁본부 관계자들이 서울 종로구 광화문광장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해리 해리스 당시 주한 미국대사의 추방과 주한미군 방위비 분담금 증액 반대, 미군 철거(철수) 등을 요구하고 있다. ⓒ뉴시스

    ◆미북 수교의 그림자 … 동맹 해체의 문턱

    북한은 이를 근거로 미국에 '대북 적대시 정책 폐기'를 압박할 가능성이 크다. 적대시 정책 폐기의 핵심은 제재 해제다. 제재가 풀리면 북한은 곧바로 미북 국교 정상화를 요구하며 워싱턴과 평양에 각각 대사관을 설치하자고 나설 수 있다. 이후 주한미군 철수 요구로 이어질 가능성도 있다.

    한 전문가는 "미북 수교가 성사되면 주한미군 주둔 명분은 약화되고 한미동맹의 성격 역시 근본적으로 흔들릴 수밖에 없다"며 "한미동맹은 애초 북한을 주적으로 설정해 출발했는데 북한이 더 이상 '주적'이 될 수 없다면 동맹은 사실상 해체 단계로 이어질 것"이라고 지적했다.

    정치권 일각에서는 주한미군의 성격이 '대중 견제'로 전환된다면 북한이 이를 수용할 수도 있다고 본다.

    실제로 김일성은 1994년 6월 지미 카터 전 미국 대통령과의 회담에서 "주한미군 존재는 한반도 지역 안보를 위해 필요하다"고 언급했다. 마이크 폼페이오 전 국무장관도 회고록에서 2018년 3월 첫 방북 당시 김정은이 "중국 공산당이 한반도를 티베트나 신장처럼 다루려면 미군 철수가 필요하다고 주장한다"며 중국으로부터 자신을 지켜줄 힘은 주한미군이라고 말했다고 전했다.

    그러나 전문가들은 이러한 발언을 '미국의 환심을 얻기 위한 기만'으로 본다.

    한 외교 소식통은 "북한은 마치 주한미군을 용인하는 듯한 태도로 미국을 안심시키려 하지만, 실제 목표는 핵보유국 지위 인정과 제재 해제"라며 "국교 정상화 이후에는 언제든 말을 바꾸며 주한미군 철수를 요구할 수 있다. 필요하면 책임을 회피하는 방식으로 말을 뒤집는 것은 북한이 오랫동안 반복해온 전형적인 수법"이라고 지적했다.
    ▲ 북한 노동신문은 김정은 국무위원장이 2019년 6월 30일 판문점 남측지역에서 문재인 대통령,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과 만났다고 1일 보도했다. ⓒ북한 노동신문/뉴시스

    ◆제네바 합의도, 6자회담도 실패했는데 … 또다시 고개 드는 '한반도 천동설'

    미국과 긴밀한 공조 아래 남북 대화를 통해 핵을 동결·축소·폐기하겠다는 이 대통령의 방법론도 현실성이 낮다는 지적이 나온다. 미국이 직접 관여했던 '제네바 합의'도 북한의 기만으로 무산됐고, 중국·러시아·일본까지 참여한 6자 회담도 성과 없이 끝났다. 미국조차 성과를 내지 못했는데 남북 대화만으로 북한의 핵 동결이나 폐기를 이끌어내겠다는 발상은 더 어려울 수밖에 없다.

    한 외교 전문가는 "북한은 핵개발 수준이 낮았던 과거에도 한국이 핵보유국이 아니라며 미국과만 대화하려 했다. 북한은 이제 남북 관계를 '교전 중인 적대적 두 국가 관계' '조한(朝韓) 관계'로 칭하고 있다"며 "이러한 상황에서 한국이 비핵화 대화를 주도하겠다고 나선다면 북한은 '왜 남의 나라 문제에 끼어드느냐'고 반발할 것이다. 한국이 비핵화 대화를 주도하겠다는 구상이 실현될 가능성은 사실상 전무하다"고 평가했다.
조문정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