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치원 교사 출신, '미스트롯' 후 가수 데뷔'공황장애' 앓다가 작곡가 구희상 만나 재기 '아이러브유' '어미'로 인기, '행사여신' 등극
  • "인내는 쓰지만 그 열매는 달다." 트로트 가수 김유선을 만나, 그의 굴곡진 '인생역정'을 들으면서 문득 루소의 명언이 생각났다. 

    돈을 벌기 위해 5개월짜리 갓난애를 데리고 40분 거리를 출퇴근하고, 누군가의 집요한 스토킹으로 공황장애를 앓는 등, 김유선의 삶은 그야말로 고난의 연속이었다. 

    가수가 꿈이었지만 생계를 위해 유치원 교사가 됐고, 그럼에도 꿈을 잊지 못해 주말마다 직장인 밴드에 나가 억눌러 온 욕구를 해소하기를 십수 년. 

    '미스트롯' 출연으로 대중에 눈도장을 찍은 그는 그토록 고대하던 가수가 됐고, 평소 동경해 온 유명 작곡가와 가정까지 꾸리게 됐다. 

    고난 끝에 얻은 열매가 더욱 단 법. 각종 행사장을 다니며 '아이러브유'를 부르고 있는 요즘은 그야말로 '행복'과 '덕'이 넘쳐흐르는, '복덕원만(福德圓滿)' 그 자체라고.

    알고보니 김유선이 자란 부산 북구 만덕동(萬德洞)은 임진왜란 당시 1만여 명에 달하는 피난민들이 이곳으로 피신, '덕'을 입었다고 해서 붙여진 이름이다. 

    고향의 덕스러운 기운이 그에게 닥친 삶의 고비를 해결하고, 마침내 평탄한 복의 길로 인도한 것은 아닐까. 

    단란한 가정의 아내와 엄마로, 팬들에겐 흥 많은 '행사의 여신'으로 '인생 2막'을 살고 있는 김유선을 만나 봤다.
    Q. 말투를 들어보니 부산이 고향이신 것 같네요. 

    - 태어난 곳은 서울 봉천동인데요. 5살 때 엄마 손 붙잡고 부산으로 와서 쭉 눌러 앉았죠. 그래서 부산이 고향이나 마찬가지예요. 엄마가 저희 3남매를 데리고 무작정 부산으로 오셨다고 해요. 그래서 서울 기억은 하나도 안 나요.

    Q. 그럼 어머니께서 3남매를 홀로 키우신 건가요?

    - 진짜 새벽 밤낮을 가리지 않고 일하시면서 저희를 키우셨어요. 낮에는 시장에 나가 생선도 팔고, 붕어빵 장사도 하셨다고 해요. 밤에는 호프집에서 아르바이트를 하고, 새벽에는 공장까지 나가셨어요. 혹시 밤에 무슨 일이 생길지도 모르니, 저희가 잘 때 문을 잠그고 나가셔서 아침에 들어오시곤 했죠. 그래서 저희는 거의 엄마 얼굴을 못 보고 자랐어요. 

    Q.
    세상에…. 그럼 잠도 거의 못 주무셨겠네요.

    - 거의 2~3시간 정도만 주무셨다고 해요. 그래서 언니와 제가 막내 동생을 거의 키우다시피 했죠. (웃음) 

    Q.
    그러다가 어떻게 가수로 데뷔하게 됐나요?

    - 어릴 때부터 제 꿈은 가수였어요. 중학교 때 선생님과 얘기해서 대구에 있는 실용 음악 고등학교에 지원했었는데, 엄마가 결사 반대를 하셔서 결국 포기했죠. 옛날 분들은 그쪽 일 가면 여자는 고생한다는 인식이 있기도 했고, 집에서 저를 받쳐주기도 힘든 상황이라 반대하셨던 것 같아요. 
    Q. 그래서 유치원 교사가 됐나요?

    - 네, 부산에 있는 대학에서 유아교육을 전공했어요. 하지만 제 꿈을 완전히 접지는 않았어요. 학교에서 밴드 생활을 했고, 기회가 있을 때마다 가요제에 출전했거든요. 물론 엄마에겐 비밀로 하고요. 유치원 교사로 일하면서도 주말엔 직장인 밴드에서 노래를 불렀어요. 이때도 주말마다 전국 각지를 돌아다니면서 온갖 가요제에 다 참가했죠. 

    Q. 우승 경험은 몇 번 정도?

    - 거의 20번 이상 한 것 같아요. '전국노래자랑'에서 최우수상을 받은 적도 있어요. 

    Q. 그 바닥에선 꽤 유명하셨겠군요.

    - 남편이 그러더라고요, 제가 '꾼'이라고…. 가요제만 다니면서 상금을 노리는 사냥꾼이라고요. (웃음)

    Q. 보통 밴드 생활을 하면 장르가 거의 록 위주 아닌가요?

    - 저도 자우림이나 야다, 스트라이퍼 등의 노래를 자주 불렀어요. 그땐 막 소리 지르는 게 좋았거든요. 그런데 가요제에서 록을 부르면 떨어지는데, 트로트를 부르면 무조건 1등을 하는 거예요. 그래서 트로트를 부르기 시작했어요. (웃음) 부르다 보니 적성에 맞는 것 같더라고요. 사실 어릴 때 등산하는 모임에서 노래자랑대회 같은 걸 열면, 엄마가 저를 내보냈어요. 트리오(세제)라도 받아오라고. (웃음) 그때마다 엄마가 좋아하는 주현미 선배님 노래를 종종 불렀죠. 

    Q. 그러다가 '미스트롯'에 출연하신 거죠?

    - 네, 2019년 '미스트롯'에 출연했죠. 방송에서 제가 홀로 7살 난 딸을 키우고 있다는 사연이 공개되면서 관련 기사에 몇천 개의 댓글이 달렸는데, 전부 다 저를 응원해 주시는 글이었어요. 대한민국에서 이렇게 열심히 사는 엄마가 어디 있냐면서.
    Q. 그 당시 우울증을 앓으셨다는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 '미스트롯' 출연을 계기로 13년 간 해 왔던 유치원 교사 일을 접고, 본격적으로 가수가 되기로 마음을 먹었어요. 그렇게 가수 데뷔를 준비하던 중 팬분 중 한 분이 저를 상대로 도를 넘는 스토킹을 했어요. 그 일로 공황장애가 왔고, 3년 가까이 일을 쉬었어요. 어느날 마룻바닥에서 딸과 함께 잠이 들었는데, 아이가 배가 고팠든지 막 울더라고요. 그런데 당시 제가 먹는 공황장애 약이 정말로 독했어요. 그래서 저는 옆에서 아이가 우는 데도 어떻게 해 줄 수가 없었죠. 우리 애의 그 표정과 눈물이 지금도 잊혀지지가 않아요. 그 일을 계기로 정신을 차려야겠다고 마음 먹고, 약을 끊었어요. 공황이 시도 때도 없이 찾아왔지만, 약을 먹지 않고 어떻게든 버텼어요. 

    Q. 그때 지금의 남편분을 만나신 건가요?

    - 그 시기에 평소 알고 지내던 OBS 관계자분께서 "어떻게 해서든 몸을 추스려서 사람을 만나라. 너부터 건강해야 애를 잘 키울 수 있다"고 말씀해주셨어요. 그렇게 제가 재기를 시도할 무렵, 지금의 남편으로부터 전화가 왔어요.

    Q.
    작곡가 구희상 씨죠?

    - 네, 원래 알고 지내는 사이였고, 제가 정말 팬이기도 했죠. 어느날 연락이 왔는데, 자기가 부산에 올 일이 있다면서 차나 한 잔 하자는 거예요. 진짜 사람을 만나기 싫었는데요. 이렇게 저를 만나러 오겠다는데 거절할 수가 없더라고요. 제가 지금 나간다고 주섬주섬 옷을 입고 일어나자, 엄마가 웬일이냐며 놀라시더라고요. 

    Q. 남편분을 만나면서 많이 안정을 찾으셨군요.

    - 지금 이렇게 기자님과 대화하는 건, 당시만 해도 상상도 못할 일이었어요. 남편을 만난 게 정말 큰 도움이 됐죠. 만나는 횟수가 늘어나면서 자연스레 연애를 하게 됐는데요. 저와 달리 저희 신랑이 엄청 정신이 건강하고 밝은 사람이더라고요. 그런데 저의 우울한 기운이 남편에게도 영향을 미칠까 걱정이 됐어요. 내가 좋아하는 사람이 나처럼 되는 게 너무 싫은 거예요. 그래서 무슨 일이 있어도 내가 바뀌어야겠다고 결심했죠. 그때부터 막 책도 읽고, 명상도 하고, 절에도 다니고 그랬어요. 제 남편은 제 인생의 빛 같은 사람이에요.
    Q. 요즘 행사장에서 부르시는 노래가 남편분이 만든 곡이죠?

    - 네, '아이러브유'라고. 저희 신랑이 작사·작곡·편곡한 노래예요. 작년 말에 낸 2집 타이틀 곡이죠. 

    Q. 1집은 언제 내셨나요?

    - 2019년 '현인가요제'에서 '첫눈'이라는 곡으로 장려상을 받은 적이 있는데요. 당시 제가 받은 상금을 모아서 앨범을 냈어요. 거기에 타이틀 곡으로 수록했죠. 지금도 굉장히 아끼고 좋아하는 노래예요. 2021년 '안나오면 쳐들어간다'라는 싱글을 냈고, 남편이 프로듀싱한 2집은 지난해 12월 10일 발매했어요.  

    Q. 2집 수록 곡 중에서 '어미'라는 노래도 유명하더라고요.

    - 제가 아이를 혼자 키울 때 가수 일을 병행하면서 언니한테 애를 맡기곤 했는데요. 어느날 새벽 돌아와 보니, 아이가 언니 집 신발장 앞에서 저를 기다리다가 잠이 들었더라고요. 그걸 보고 너무 마음이 아파서 애를 끌어안고 막 울었던 적이 있어요. 또 언젠가는 제가 일을 나갈 때 아이가 잘 갔다 오라고 웃으면서 저를 보내주더라고요. 그래서 너무 기분 좋게 일을 나갔죠. 나중에 언니한테 들으니, 제가 나간 직후 애가 방 문을 잠그고 안에서 나오질 않더라는 거예요. 결국 문을 따고 들어가 보니 구석에서 애가 울고 있더래요. 그런 가슴 아픈 이야기들을 가사에 녹여냈어요. 그래서 그런지 혼자 아이를 키우는 엄마들이 이 노래를 듣고 많이 우신다고 하더라고요. 

    Q. 아빠가 생긴 지금은 어떤가요?

    - 당연히 좋아하죠. 원래 애가 '극T'라 처음엔 좀 혼란스러워 하다가 남편이 잘 해주니까 지금은 정말 행복해 해요. 저도 살면서 좀 놀란 게, 만약에 나라면 이렇게 할 수 있을까 할 정도로 저희 딸한테 그냥 친아빠 못지않게 똑같이 해 줘요. 혼낼 때는 혼내고, 잘해줄 땐 또 친구같이 잘해주고. 

    Q. 꿈을 이룬 지금, 팬들에게 어떤 가수로 남고 싶으신 가요?

    - 그냥 편안한 가수, 친구 같은 가수가 되고 싶어요. 또 지루하지 않게 언제 어디서나 항상 재미있는 공연을 보여드리고 싶어요. 최근에 네이버에 '유선통신'이라는 팬카페를 다시 개설했는데요. SNS로 활발히 소통하려 합니다. 언제나 밝은 에너지와 기쁨을 안겨드리는 가수가 되겠습니다. 많은 성원과 관심 부탁드려요.
조광형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