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조조정 출발부터 '삐걱' … 기본 파악도 못 한 구윤철의 '사즉생'마지막까지 업계 진정성 찾는 순진한 정부 … '韓에 뺨 맞은 日'보고도 오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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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최소 20년 전에 준비했어야 할 석유화학산업 구조조정이 이제야 첫발을 내디뎠다. 하지만 시작부터 삐걱거린다. 흔들리는 첫발은 절대 두 번째 발걸음으로 이어지지 않는다. '코드블루' 상황에 응급실도 들어가지 못하는 제자리걸음은 '공멸'이다. 석유화학산업의 현실이다.

    대통령 탄핵과 이재명 새 정부로 이어지는 정치적 혼란 과정에서 과거 수출 효자로 불렸던 석화 산업은 사실상 방치됐고, 수년의 시간이 흐른 뒤 나온 정부 대책 역시 '총력'이라는 문구뿐이다. 수술대에 올릴 수나 있을지 의문이다.

    최근 비공개로 열린 기획재정부, 산업통상자원부, 금융위원회, 공정거래위원회 등 관계부처합동 '산업경쟁력강화 관계장관회의'에 앞서 구윤철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장관은 모두발언을 통해 주요 10개 석유화학 기업이 참여하는 사업재편 협약이 체결됐음을 언급했다.

    연말까지 최대 370만t 규모의 설비(NCC, 에틸렌 주력 프로필렌, 부타디엔 등 생산 시설) 감축을 기준으로 각 사별 구체적 사업재편 계획을 취합한다는 방침이다. 지나가는 개가 웃을 일이다. 시황 악화에 따른 가동률 감소로 이미 이번에 정부가 제시한 목표를 달성 해 놓은 상황이기 때문이다. 현재 가동률 기준에서 같은 물량을 더 줄여야만(최소 50%) 다음 걸음을 내디딜 수 있지만, 고작 25% 수준에서 그친다. 석화 업계의 경우 가동률 조정으로만 약 30%를 줄일 수 있다. 그 이하로 가동률이 떨어질 경우 안전과 직결되는 설비트러블은 물론 및 원료 투입 대비 효율성이 떨어져 사실상 마지노선으로 불린다. 정부가 개입하지 않아도 감축 목표인 25%는 얼마든지 가능하다.

    전형적인 탁상행정이다. 정부가 석화업계나 협회가 전해 온 말도 안 되는 엉터리 자료를 기반으로 부총리급이 나서 놀아난 셈이 됐다. 첫발부터 사기에 가깝다. 빈손을 내밀어 놓고 국민 혈세와 법 개정 등 정부 지원을 바라는 꼼수처럼 보인다.

    글로벌 기업들을 살펴봐라. 다우, 바스프, 바커 등 글로벌 석화기업들은 이미 오래전 사명에서 화학(페트로케미칼)이라는 단어를 사용해 오지 않았다. 우리나라 역시 LG화학이 20여년 전부터 간판에서 화학을 떼는 작업을 진행해 왔지만, 결국 실행에 옮기지 못했다. 과거 스페셜티로 불렸던 ABS(아크릴로니트릴부타디엔스타이렌) 등 고부가 제품은 이미 범용이 돼버렸고, 중국에서 밀어내는 제품과의 경쟁력은 제로다.  러시아산 원유를 반값에 들여와 한국 석화시장을 고사시켰다. 과거 우리나라가 일본 석화 산업을 구조조정으로 밀어 넣었던 것처럼 똑같은 상황이다. 이미 정답을 알고 있음에도 애써 모른 척이다. 합동 정부 역시 알면서도 업계와 협회에 농락당한 느낌이다.

    국내 석화 업계 1위 LG화학은 십수 년 전부터 사명과 함께 '솔루션 파트너'라는 표현을 애써 사용해 오면서 LG전자의 적자사업인 배터리 부문을 떠안았고, '물적분할'을 통해 수십조 매출의 'LG에너지솔루션'이라는 회사를 창출해 냈다. '화학'이라는 단어를 사명에서 떼 내는 대신, LG화학 기존 주주들에게 피해를 주며 돌파구를 마련한 셈이다.

    사실상 이미 벌어먹을 만큼 벌어먹고, 겨우 25% 감축이라는 전혀 출혈이 없는 말도 안 되는 조건을 들이대며 엑시트 비용까지 국민 혈세에 떠넘기는 형국이다.

    이날 회의에 참석한 회사(한화토탈에너지스, 에쓰-오일, LG화학, GS칼텍스, DL케미칼, 대한유화, HD현대케미칼, 롯데케미칼, SK지오센트릭, 한화솔루션)들을 살펴봐도 아이러니다. 작금의 국내 석화 산업의 위기 원인은 중국이다. 하지만 더 큰 문제는 국내 업체 간 '팀킬'이다. 여천NCC가 자금 수혈 방식을 놓고 한화와 DL의 의견이 충돌하고 있는 가운데, 에쓰-오일은 9조원이 넘는 천문학적 규모의 샤힌 프로젝트를 진행 중이다. 이 프로젝트는 NCC 공정을 거치지 않고, 석유에서 바로 에틸렌을 뽑아내는 것으로 석유화학산업의 판도를 바꾸게 된다. 한 공정이 사라지는 만큼 가격경쟁력은 비교할 수 없는 수준이다. 현재 에쓰-오일은 시험가동을 최대한 앞당기고 있다. 내년 6월이라는 이야기도 나온다. 더 빨라질 수도 있다. 이어 2026년 말이나, 2027년 초 상업 가동이 목표다.

    샤힌 프로젝트를 바라보는 석화 업계의 시각은 '자포자기'다. "검찰에서 무지막지한 가해자를 앞에 두고 조서를 쓰는 느낌"이었다는 게 이날 회의에 참석한 업계 관계자의 푸념이다.

    석화 산업 구조조정의 가장 큰 부담은 회의에 참석한 대기업들이 아니다. 대규모 장치산업인 만큼 단순 고용 창출은 매출에 비해 '조족지혈'이다. 하지만 전후방 고용 유발 인원은 40만여 명에 달한다. 최소 120만에서 160만 명의 생계가 달려 있다. 이날 비공개회의에서 정부와 업계 간 어떤 말이 오갔는지는 확인되지 않는다. 다만 참석자 대부분 입이 튀어나왔다고 한다.

    고민도, 대책도 전혀 없는 첫 산업경쟁력강화 관계장관회의라는 분석이 나온다. 게다가 향후 업계가 대안이라고 짜깁기 해 올 자료의 내용을 판단할 능력도 없어 보인다. 차라리 '전기요금 인하' 같은 단순 지원책을 나열하는 탁상행정이 더 나을 것 같다는 하마평이다. 40여만 명의 일자리를 쥐고 있는 이 날 회의가 '25% 감축안'을 넘는 추가 내용 없이 사진 한 장 찍고 마무리됐다면, 더 볼 것도 없다. 석화 산업 구조조정은 이미 '실패'다.
최정엽 산업에디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