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임 후 첫 방일을 앞두고 日 요미우리 인터뷰"일본은 한국에 중요한 존재" 협력 확대 의지"김대중-오부치 선언 뛰어넘는 새 공동선언 희망"동결·축소·비핵화 … 단계별 한반도 비핵화 추진
  • ▲ 이재명 대통령이 15일 청와대 영빈관에서 열린 '대통령의 초대, 주한외교단 만찬'에서 건배를 하고 있다. ⓒ대통령실통신사진기자단

    이재명 대통령은 위안부 및 강제 징용 문제와 관련해 이전 정권이 일본 정부와 맺은 합의는 국가 간 약속이므로 뒤집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고 밝혔다고 일본 요미우리신문이 21일 보도했다.

    23일 방일을 앞둔 이 대통령은 지난 19일 서울 용산 대통령실에서 오이카와 쇼이치 요미우리신문그룹 대표와 약 1시간 반 동안 진행한 인터뷰에서 과거사 문제를 존중하되 양국 협력을 강화하겠다며 이같이 밝혔다.

    이 대통령은 박근혜 정부의 '한일 위안부 합의', 윤석열 정부가 강제 징용 피해 소송 해결책으로 제시한 '제3자 변제안'과 관련해 "한국 국민으로서는 매우 받아들이기 어려운 이전 정권의 합의"라면서도 "국가로서 약속이므로 뒤집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고 말했다.

    앞서 박근혜 정부와 아베 신조 정부는 2015년 12월 '한일 위안부 합의'에 따라 일본이 10억 엔(당시 환율로 약 108억 원)을 출연하고, 위안부와 그 유족에 대한 치유 사업을 목적으로 양국이 '화해치유재단'을 출범했다. 그러나 2017년 5월 출범한 문재인 정부는 위안부 합의 '이행 중단'을 결정했고 재단을 해산시켰다.

    윤석열 정부는 2023년 일제 강제 징용 피해 소송 해결책으로 한국 정부 산하 재단이 일본 피고 기업 대신 배상금 등을 지급하는 '제3자 변제안'을 제시했다. 청구권 문제를 "완전히 그리고 최종적으로 해결(제2조 제1항)"하기로 합의한 1965년 한일청구권협정, 그리고 문재인 정부 시절 '징용 피해자들의 개인 청구권이 소멸하지 않았다'는 한국 대법원 확정 판결 모두를 벗어나지 않는 범위에서 나온 절충안이다. 

    이 대통령은 위안부, 징용 등 역사 문제는 한국 국민에게는 "가슴 아픈 주제"라면서 "되도록 현실을 인정하고 서로 이해하려고 노력해 대립적으로 되지 않도록 하면서 해결해야 한다"고 제언했다. 그러면서 "정책 일관성과 국가의 대외 신뢰를 생각하는 한편, 국민과 피해자·유족 입장도 진지하게 생각하는 두 가지 책임을 동시에 지고 있다"고 말했다.

    이 대통령은 과거 합의의 외교적 의미를 비롯해 피해자의 명예와 존엄 회복, 마음의 상처 치유라는 기본 정신을 함께 존중하는 동시에 피해자의 온전한 명예 회복을 위한 해결 방안을 함께 모색해 나가고자 한다면서, 일본이 과거사 관련 53차례 공식 사과한 것과 관련해 사과는 상대의 다친 마음이 치유될 때까지 진심으로 하는 게 옳다는 취지를 강조했다.

    이 대통령은 이시바 시게루 일본 총리와의 정상회담에 대해서는 "한일이 어떤 면에서 협력할 수 있는지에 대해 이야기하려고 한다"며 경제, 안전 보장, 인적 교류 분야에서 협력 확대를 논의하겠다는 의사를 밝혔다.

    이 대통령은 일본을 "매우 중요한 존재"라고 규정하며 "한국도 일본에 있어서 유익한 존재가 될 수 있다고 생각한다. 양쪽 모두에게 이익이 되는 길을 발굴해 협력할 수 있는 분야를 넓혀가야 한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이 대통령은 양국 정상이 정례적으로 상대국을 오가는 '셔틀 외교' 중요성을 언급하며 "일본 총리도 시간이 허락할 때 한국을 찾고 수시로 왕래하는 등 실질적 협력을 강화하고자 한다"고 강조했다.

    아울러 이 대통령은 1998년 '김대중-오부치 공동선언'(21세기 새로운 한일 파트너십 공동 선언)을 높이 평가하며 "이 선언을 계승해 이를 뛰어넘는 새로운 공동 선언을 발표할 수 있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이 대통령은 한일 관계가 서로에게 도움이 되는 관계로 대전환되기를 바란다며 미래지향적 한일 관계를 위해 '과거를 직시하되 미래로 나아가는 지혜'를 발휘하고자 한다고 밝혔다.

    한일 국교 정상화 60주년을 맞아 지난 6월 한 달간 시범적으로 시행됐던 한일 전용 입국심사에 대해서도 "합의가 이뤄지면 재설치가 가능하다"고 밝혔다.

    다만 일본이 요구하는 일본 일부 지역산 수산물 수입 재개에 대해서는 "일본 일부 지역 수산물에 대한 한국 소비자의 신뢰는 개별 문제"라며 "한국 국민의 일본산 수산물에 대한 신뢰를 회복하는 것이 먼저 이뤄져야 한다"고 설명했다.

    이 대통령은 북한 문제와 관련한 정책적 방향을 '북한의 완전한 비핵화'가 아닌 '한반도 비핵화'라고 제시하며, 핵과 미사일에 대한 동결(1단계), 축소(2단계), 비핵화(3단계) 등 단계별 비핵화를 추진하겠다는 의사를 밝혔다.

    이 대통령은 한국 정부는 미국과 긴밀한 공조를 유지하는 가운데 적극적인 남북 대화를 통해 핵을 동결, 축소, 폐기까지 갈 수 있는 여건을 만들어 나갈 것이라며 남북이 "평화적으로 공존해 위협이 되지 않도록 서로 인정하고 존중해 함께 번영할 수 있는 길을 찾아야 한다"고 언급했다.

    그러면서 우리가 한발 앞서서 문을 열고, 대화를 위해 노력하고 협력할 수 있는 길을 찾아내고, 적대감을 완화해 나가는 게 필요하다고 말했다. 이와 관련해 '북극항로 개척'을 중심으로 미국, 러시아, 북한, 한국, 일본이 협력할 수 있는 길을 만들어 낼 수도 있다고 대통령실이 전했다.

    한미일 협력과 관련해서는 "한미 동맹은 매우 중요하고 일본에도 미일 동맹이 (외교 정책의) 기본 축"이라며 "이를 기반으로 하는 한미일 3국 협력은 매우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이어 "한미, 한일, 한미일 협력이 강력한 토대가 돼야 한다"며 "경제든 안보든 기본 축은 한미 동맹과 한미일 협력 관계"라고 밝혔다.

    요미우리는 이날 조간 1면 머리기사로 이 대통령 인터뷰를 싣고 해설 기사와 인물 소개도 함께 배치했다. 이 대통령의 방일은 윤석열 전 대통령이 히로시마를 찾은 2023년 5월 이후 약 2년 만이다.
조문정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