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민 뜻 받든다"던 정부, 법 조항 이유로 민감 청원 차단 논란헌법상 권리인 국민청원, 국회 담당 인력 '7명' … 형식적 운영 지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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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재명 대통령이 13일 청와대 영빈관에서 열린 국정기획위원회 국민보고대회에서 발언하고 있다. ⓒ연합뉴스 제공
이재명 정부가 개헌과 권력기관 개혁을 내세우며 "국민의 뜻을 받드는 정치"를 강조하는 가운데, 정작 국민이 제기한 민감한 사안의 청원이 법령을 이유로 공개조차 되지 못해 '말뿐인 국민 중심 정치'라는 비판이 제기되고 있다.
14일 서민민생대책위원회(서민위)에 따르면, 최근 국회 국민동의청원 게시판에 제출된 '이재명 대통령 외환죄 검찰 수사 촉구 및 더불어민주당 소환 조사' 청원은 공개 요건을 모두 충족했음에도 불구하고, 국회 측은 청원법 제6조 제2호를 근거로 "접수 불가"를 통보했다.
해당 조항은 감사·수사·재판 등 다른 법령 절차가 이미 진행 중인 사안에 대해서는 청원기관이 처리를 하지 않을 수 있도록 규정하고 있다.
이번 청원에서 청원인은 이재명 대통령이 2018년 경기도지사 시절 이화영 전 평화부지사, 쌍방울 김성태 회장과 공모해 북한에 800만 달러(약 100억 원)를 불법 송금했다고 주장했다.
그는 이를 단순한 지방정부 교류 사업이 아닌, 유엔 안보리 대북제재 결의(2006·2013년)와 국내 대북제재법(2014년) 위반, 형법 제99조 '일반이적죄'에 해당하는 중대 범죄로 규정했다.
특히 '적국에 군사상 이익을 제공한 행위'로서 헌법 제84조가 보장하는 '대통령 불소추 특권'의 적용 대상에서 제외돼야 하며, 탄핵 사유에 해당한다고 강조했다.
청원인은 또 우원식 국회의장과 더불어민주당 소속 의원 166명을 외환죄 공범으로 지목했다. 그는 이들이 범죄 진상 규명은커녕 TF 구성과 법 개정 시도 등을 통해 조직적으로 범죄를 방조·은폐했고, 오히려 윤석열 전 대통령에게 외환죄를 적용하려는 시도로 사회 혼란과 국민 혼선을 부추겼다고 비판했다.
청원은 구체적으로 △이재명 대통령 외환죄 수사 개시 △공범 국회의장·민주당 의원 166명 소환 조사를 명시했다. 청원인은 올해 6월 6일 서울경찰청에 이재명 대통령을 외환죄로 고발하고 고발인 조사까지 마쳤으나, 2개월 넘게 경찰은 '법리 검토'만 반복하고 있다고 주장했다.
결국 7월 28일 수원지검에 고발했고, 사건은 서울중앙지검으로 이송됐으나 현재까지 수사 진척은 없는 상태다. 국회의장과 민주당 의원 166명에 대한 고발 사건도 지난 5일 서울남부지검으로 이송됐지만, 역시 수사 개시가 이뤄지지 않고 있다.
그럼에도 국회 측은 청원법 제6조 제2호와 함께 '국회의장 수사 등은 청원 사유로 적합하지 않다'는 이유를 들어 공개를 불허했다.
이에 대해 청원인은 "국회야말로 국민의 손과 발이 돼야 하는데, 국회의장 수사가 청원 사유로 부적합하다는 설명은 납득하기 어렵다"며 "이미 이 대통령의 외환죄 관련 탄핵 청원은 5만 명 이상 동의했는데, 이번에는 어떻게 법령 위반이 된다는 것인지 이해할 수 없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그는 "중복 절차를 막기 위한 법 조항을 정치적으로 불편한 청원을 가로막는 수단으로 악용하고 있다"고 주장했다.
헌법 제26조는 "모든 국민은 법률이 정하는 바에 의하여 국가기관에 문서로 청원할 권리를 가지며, 국가는 청원에 대하여 심사할 의무를 진다"고 규정하고 있다.
청원은 피해 구제, 부당행위 시정, 제도 개선 등을 국가기관에 요청할 수 있는 헌법상 기본권이자, 국민이 행정·입법·사법 등 국가권력 전반에 목소리를 낼 수 있는 중요한 참여 창구다. 그만큼 청원의 불허 결정은 제도의 본래 취지와 국민 참여권 보장 측면에서 큰 논란을 낳고 있다.
더구나 국민청원과 민원을 검토하는 전담 인력은 턱없이 부족하다. 정치권 관계자는 "국민청원 민원 담당자는 실제 2명, 국회까지 포함해도 7명에 불과하다"며 "권력기관 개혁을 외치면서도 청원권 보장을 형식적으로만 운영하는 것"이라고 꼬집었다.
그는 "제도 취지대로라면 청원은 권력기관 감시와 견제를 위한 최소한의 안전장치인데, 현실에서는 정치적 부담이 큰 사안에 대한 '필터' 역할로 변질되고 있다"고 지적했다.

정경진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