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억 기준으로 투자자 갈라친 양도세 과세 강화 투자자·기업·정부 모두 손해…美증시만 도와준 꼴文 정부 부동산 정책도 이분법적 편가르기로 실패 갈라치기 정책 성공사례 없어…수정안 서둘러야
-
-
- ▲ 이형일 기획재정부 1차관이 지난달 29일 정부세종청사 민원동 브리핑실 2025 세제 개편안에 대해 브리핑을 하고 있다.ⓒ연합뉴스
'부동산 정책 실패와 내로남불', 문재인 정부 몰락의 키워드를 꼽는다면 이 두 단어로 압축할 수 있을 것이다.
개 중에서도 문재인 정부의 부동산 정책은 극단적인 이분법적 편가르기였다.
문재인 대통령은 2017년 대선 후보 수락연설에서 "좌우를 나누고 보수·진보를 나누는 분열의 이분법은 이제 쓰레기통으로 보내야 한다"고 일갈했지만, 부동산 정책은 그 반대였다.
집을 가진 자와 못 가진 자, 임대인과 임차인으로 양분한 뒤 과도한 세금을 매기고 계약갱신청구권이란 거창한 이름으로 거래를 제한했으며, 주택 공급의 핵심인 재건축·재개발을 막았다.
이분법적 정책은 주택 가격 폭등과 임대차 시장의 왜곡을 낳았다. 결과적으로 집값과 임대료가 동반 상승해 서민들의 내 집 마련은 더 어려워졌다. 아마추어 정책이 불러온 전형적인 '선의의 역설'이었다.
지금까지 이어지고 있는 서울 핵심지의 토지거래허가제도 마찬가지다. 토지가 아닌 주택거래허가를 통해 강남의 아파트 거래를 억제한다는 발상이 나왔을 당시 정책 담당자들은 '기발한 아이디어'라며 무릎을 탁 쳤을지 모르겠다.
하지만 그 결과 소위 현금 있는 부자들만 강남 집을 살 수 있게 되면서 강남의 벽은 더 높아졌다. 지금 강남은 현금 부자들만 진입할 수 있는 그들만의 리그로 격상됐다. 이러니 아무리 거래를 억제해도 강남과 비강남의 집값 차이는 벌어질 수 밖에 없다. 올 초 토지거래허가를 해제하자 마자 강남 집값이 폭등한 것은 이런 모순이 누적된 결과다.
이재명 정부의 세제 개편안은 문재인 정부 부동산 정책의 데자뷔다. 대주주 양도세 과세 기준을 아무런 근거도 없이 10억 원으로 확대한 세제 개편안은 누구에게도 행복한 결말을 가져다 주지 못했다.
대주주가 아니면서도 특정 종목을 10억원 이상 보유한 투자자는 거래세를 감수하면서 연말에 주식을 던져야 하고, 이 기간 주가가 출렁이니 쌈짓돈을 투자한 개미들은 연말마다 노심초사해야 한다. 결국 투자자들이 미국으로 눈을 돌리면서 미국 빅테크 좋은 일만 시킨 꼴이 됐다.
이런 상황을 부른 이유는 단순하다. '가진 자가 더 내는 것은 당연하다'며 투자자를 큰 손과 개미로 갈라친 구시대적 발상이 초래한 결과다. 제도의 취지대로라면 회사에 영향력을 행사하는 대주주와 그렇지 않은 주주로 구분하는 것이 합당한데, 아무런 근거 없는 10억 원이라는 편리한 숫자로 투자자들을 갈라치니 이런 비극이 발생한 것이다.
배당소득 분리과세 최고세율을 35%로 정한 것도 코미디에 가깝다. 까다로운 조건은 차치하더라도 대주주 양도소득세율이 27.5%로 배당 분리과세 세율보다 낮은 데 어떤 대주주가 기꺼이 배당을 하겠는가.
국내 여유 자금의 대부분이 예금이나 부동산에 몰리고 기업의 자금 조달에 윤활제 역할을 하는 주식시장이 외면당하는 것은 수 십년간 누적된 이분법적 정책의 모순 탓이다.
경제주체를 가진 자와 못 가진 자, 고용주와 근로자, 임대인과 임차인 등으로 무 자르듯 갈라치는 경제정책이 성공한 사례는 찾아보기 힘들다. 이 세상 대부분의 근로자는 비록 적은 액수나마 주식을 들고 있는 투자자이기도 하며, 많은 수의 상공인은 고용주이지만 가진 자에 속하지 않은 경우가 많다.
코스피가 3000대 초반에서 횡보하는 사이 미국, 일본 등 해외 주식은 연일 고공 행진을 거듭하고 있다. 더 많은 돈이 해외로 유출되기 전에 정부는 투자자들을 안심시킬 확실한 대책을 내놓아야 한다. 온갖 논란을 무릅쓰고 '속전속결 사면'을 단행한 정부가 세제 개편안에 대한 수정을 하염없이 늦춘다면 해외로 떠난 개미들은 영영 돌아오지 않을 수 있다.
정부의 역할은 국민을 갈라쳐 어느 한쪽을 억누르는 게 아니라 돈이 원활히 흐를 수 있도록 윤활제를 바르는 것이다. 그래야 나라 곳간도 채울 수 있다.

김능현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