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승연 vs 이준용', '김동관 vs 이해욱' … 180도 달라진 온도 차한화, DL 배당용 전락, 진화 놓쳐 '도태' … "외양간 고쳐도 소 못 키워"석화 구조조정, '단순 통합' 부작용 못 보면 '결국 또 다른 여천NCC' 반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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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여수 국가산업단지 야경. ⓒ여수시청 홈페이지 갈무리.
국내 석유화학 산업이 생존을 위한 마지막 심폐소생술에 나선 가운데, 여천NCC 부도 위기 소식이 전해진다. 이미 예견된 수순이지만 '골든타임의 시계'는 너무도 빠르게 돌아간다. 일단 모회사인 한화솔루션과 DL케미칼이 자금지원으로 방향을 잡으면서 급한 불은 끄겠지만, 결론은 '언 발에 오줌 누기'다.
게다가 그룹 차원의 지원도 아니고, 똑같은 어려움을 겪고 있는 석화 계열사의 지원 역시 한계는 분명하다. 당장 대규모 고용불안으로 이어질 수 있는 만큼, 친노조 성향이 강한 이재명 정부의 '첫 번째 몽둥이는 피하고 보자'라는 단순 눈치 보기처럼 보여 걱정이다. 제2, 제3의 수혈도 감내할 수 있을지 의문이다.
이미 여천NCC의 용도는 태생부터 제한됐다. 한화와 DL 그룹 여수 석유화학 공장인 한화솔루션과 DL케미칼에 안정적인 원료공급 목적 말고는 없다.
실제 50%씩 지분을 가지고 있는 한화와 DL은 버는 족족 배당금으로 빼갔다. 2000년부터 2021년까지 20여 년간 두 회사가 빼간 돈은 4조4300억원(각각 2조2150억원)으로 같은 기간 순이익 누적액(5조원)의 90%에 육박한다. 사우디 국영석유기업 아람코(Aramco)가 국내 자회사인 에쓰-오일(S-OIL)에 원유를 팔고, 가져가는 판매대금이 70% 수준임을 감안하면 이 보다도 더 많다. 과거 사돈간 한 차례 큰 갈등은 있었지만, 수조원의 쌈짓돈을 나눠 쓰며 끈끈했던 시절을 유지해 온 셈이다.
하지만 평화는 이제 더 이상 기대하기 어렵다. 앞으로는 진흙탕 길이다. 벌써 자금지원의 방식을 놓고 이미 갈등은 시작됐다. 화학산업 규모가 큰 한화는 서두르자는 입장이고, 그룹 사업 비중이 적은 DL은 벗어나고 싶은 골칫거리다.
앞서 2007년 석화 산업 호황기 한화 김승연 회장과 DL(옛 대림) 이준용 회장이 서로 '지분을 내놓으라' 싸웠다면, 위기의 시대 한화 김동관 대표이사 부회장과 DL 이해욱 회장은 '서로 가져가라'라고 미루는 격이다. 과거와 달라도 너무 다른 격세지감(隔世之感)이다.
이번 여천NCC 사태는 이제 시작이다. 이미 정부와 업계가 구조조정이 절실하다는 데에는 서로 공감하는 만큼, 이번 위기를 반면교사(反面敎師) 삼아, 앞으로의 방향을 잡고 큰 그림을 봐야 한다.
첫째. 정부가 사실상 방관하고 있는 업계 간 '자율 조정'은 절대 이뤄질 수 없다. 누구도 고양이 목에 방울을 달기 위해 나설 업체는 없다. 나의 죽음은 곧 경쟁사의 꽃길이 되기 때문이다.
석유화학산업의 경쟁사 간 실태를 보면 명확하다. 가장 가성비가 좋은 PVC 한 품목만 살펴봐도 알 수 있다. 폴리비닐클로라이드라는 이 플라스틱은 대한민국 국민 대부분이 매일 사용하는 검정색 봉투부터 건자재, 농업용품, 자동차산업, 의료산업, 전자산업 등 폭넓게 사용된다. 국내 생산업체는 LG화학과 한화솔루션이다.
두 업체가 PVC 중합 과정에서 사용하는 핵심 중간원료는 VCM(Vinyl Chloride Monomer)과 EDC(Ethylene Dichloride)다. 생산 구조상 LG화학은 VCM이, 한화솔루션은 EDC가 각각 과잉생산 된다. 하지만 단 한 번도 남는 물량을 버리면 버렸지 서로 거래하지 않는다. 석유화학산업의 '높은 벽'이다. 단순 회사의 물리적 통합보다 대승적인 차원에서 서로 남는 원료를 교환하면 원가가 절감 되고 경쟁력이 생긴다. 여수, 울산, 대산 등 같은 단지 내에서 시너지 낼 수 있는 방법이 많지만 서로 등만 보인다. 이번 여천NCC 사태에서 한화가 적극적으로 자금지원을 서둘렀던 이유 중 하나다. 자칫 생산 차질로 LG화학이 이익을 볼까 걱정이었을 수도 있다.
둘째. 대책 없는 '단순 통합'은 절대 안 된다. 자칫 또 다른 여천NCC를 낳는 부작용으로 이어질 수 있다. 여천NCC는 앞서 밝힌 바와 같이 신기술과 시장 상황에 따른 ‘변화’와 ‘진화’는 생각조차 못 하는 '석화 업계의 갈라파고스'다. 진화의 시기를 놓쳐 버린 갈라파고스의 종착역은 뻔하다. '자연도태(自然淘汰 )'는 거부할 수 없는 수순이다. 도태될 게 뻔한데, 수천억원의 자금을 투입하는 것은 절대 정상적이인 경영시스템으로 보기 어렵다. 철저한 정무적 판단에 정부 눈치 보기다. 외양간을 고쳐도 내부 공급용에 그치는 만큼 소 키우기가 쉽지 않다.
특히 이번 자금투입은 또 다른 자금투입을 부를 수밖에 없다. 당장 위기를 넘는다 한들 올 연말, 내년에 다시 몰아칠 자금경색은 더 큰 숙제다. 2026년 말쯤 글로벌경기 회복과 기저효과로 잠깐 알래스카의 여름이 올 수도 있지만, 석화 업계의 수순은 '도태'다.
셋째. 대마불사(大馬不死)다. 어설프게 중소, 중견기업을 챙기다 초가삼간 다 태울 수 있다. 남겨야 한다면, 사실상 기름 한 방을 나지 않는 현실을 반영, '규모의 경제'는 최소한의 경쟁력을 확보할 수 있는 필수 조건이다. 제일 먼저 위기가 찾아온 여천NCC는 물론, 대한유화, SK지오센트릭, 삼남석유화학 등은 이미 시장에서 경쟁력을 잃어버린 상태다. 정유업계가 이미 석화산업의 경계를 넘어 종합석유사로 잠시나마 생명연장에 나선 만큼, 정유사를 중심으로 한 구조조정은 하나의 대안이 될 수 있다. 하지만 지금 생산량의 절반 이상은 포기해야 한다. 우리나라의 신증설로 일본 석화 업계가 무너졌던 만큼, 중국에 의한 우리의 석화산업 붕괴는 이미 20여년 전에 예측이 됐던 부분이다.
이 같은 상황에 여천NCC의 가장 아쉬운 부분은 2021년 투자다. 수년 전부터 '합작을 청산'하자는 움직임이 있었지만, 서로 유리한 공장을 갖기 위해 기회를 놓쳐 버렸다. 게다가 한화와 DL 눈치 보다 무리하게 범용 제품 생산능력만 늘렸다. 피 같은 9000억원을 투자한다는 게 에틸렌 34만t, 프로필렌 17만t, 부타디엔 13만t을 증설한 것. 중국에서나 하는 짓을 위기의 한국 석화시장에서 반복해 버린 셈이다. 말렸어야 했다. 이 기간 다른 회사들은 나프타가 아닌 가스 크래커를 도입하는 등 원료 다변화를 시도할 때 단순 증설에 1조원을 날려버렸다.
넷째. 노조와 언론의 침소봉대(針小棒大)도 걱정이다. 최근 석유화학 업계에서 가장 큰 이슈는 LG화학이다. 김천공장과 나주공장의 설비 효율성을 위한 일부 조정이 있었는데, 이를 두고 노조에서 '고강도 구조조정'이 시작됐다는 식의 기사가 쏟아졌다. 사업 구조나 내용을 제대로 확인한 기사는 없었다. 자칫 대통령 말 한마디면 일사불란하게 움직이는 공무원들까지 함께 휘둘릴까 걱정이다.
속내를 들여다보면, LG화학 김천공장과 나주공장의 설비 스크랩의 경우 효율성과 운영비 절감을 위한 단순 조정이다. 김천공장의 경우 기저귀, 여성용품 등에 사용되는 SAP(200배 흡수 수지)을 생산한다. 과거 코오롱에서 인수한 노후 설비다. 당시에는 스페셜티 제품으로 생산 증가가 필요했지만, 경쟁업체들이 잇따라 설비 증설에 나서면서 그 가치가 떨어졌다. 게다가 원료를 여수에서 가져다가 가동하는 방식이다 보니 수율도 떨어진 지 오래다. 근무 인력은 60여명에 그친다. 나주공장 접착제(SAL) 생산 설비 역시 노후 됐을 뿐만 아니라, 최근 대산 공장에 증설이 이뤄진 만큼 규모의 경제 차원에서 자연스레 스크랩 처리가 됐다. 근무 인력 역시 10여명 뿐이다. 전형적인 침소봉대다.
지금은 석화 업계와 정부, 국회가 어떤 방향으로 판을 짜게 될지 모두가 조용히 지켜봐야 하는 시기다. 생존을 위한 큰 그림이 먼저다. 설비 효율화 작업을 구조조정이라고 한다면, 지금도 여전히 진행 중이고 백번, 천 번도 가능하다. 갈라파고스 여천NCC의 종착역은 뻔하다. 국내 석화 산업 구조조정의 방향을 잡는 반면교사로 삼아야 한다.

최정엽 산업에디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