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2년 폐지한 정책결정 감사 재폐지정책감사 재폐지, 독립인가 순응인가
  • ▲ 감사원. ⓒ정상윤 기자

    감사원이 정부의 주요 정책 판단의 옳고 그름을 사후적으로 평가하는 '정책 결정 감사'를 폐지하겠다고 밝혔다. 하지만 이 기능은 이미 윤석열 정부 시절인 2022년 '감사 사무처리규칙' 개정을 통해 감사 대상에서 제외한 바 있다. 헌법상 독립 기관인 감사원은 폐지된 기능을 이재명 대통령 지시에 따라 사실상 즉각 '재폐지'함으로써 '정치적 복종'이라는 비판을 불러왔다.

    감사원은 헌법 제97조에 따라 대통령 소속 국가 최고 감사기관이지만, 직무상 독립성을 보장받는 국가 최고 감사기관이며, 감사원법도 외부 간섭 없는 직무 수행을 명시하고 있다. 감사원이 외형상 규정에 따랐다 해도 정권의 요구에 즉각 반응한 절차 자체가 헌법 정신과 배치된다는 지적이 제기되는 이유다.

    ◆감사원, 李 대통령 지시 13일 만에 정책결정 감사 '재폐지'

    8일 정치권에 따르면 감사원은 지난 6일 '공직사회 활력 제고를 위한 감사 운영 개선방향'을 발표하며 "올해 하반기부터 정책 결정에 대한 감사를 폐지하겠다"고 밝혔다.

    이는 이재명 대통령이 불과 보름 전인 지난달 24일 수석보좌관회의에서 "정부가 바뀌고 나면 합리적이고 꼭 필요한 행정 집행도 정책 감사나 수사 등으로 열심히 일하는 공직자를 괴롭히고 의욕을 꺾는 일이 없도록 하라"고 지시한 데 따른 후속 조치다.

    특히 감사원은 직무감찰 제외 대상으로 '중요 정책 결정 및 정책 목적의 당부(當否·옳고 그름)'를 명확히 규범화하겠다면서 감사 범위를 회계검사와 직무감찰 범위에 한정하겠다고 밝혔다.

    감사원은 '공직사회 활력 제고를 위한 감사운영 개선 방향' 문건에 이른바 '일한 잘못'에 대한 면책 확대 방안을 담으며 이를 못 박았다. 정책이나 사업 추진 과정에서 발생한 문제는 사익 추구나 특혜 제공 등 중대한 비리가 없는 한 문책·징계하지 않고, 정책 집행 자체를 두고 직권남용 등 범죄 혐의로 문제 삼지 않겠다는 원칙을 감사 전반에 적용하겠다는 것이다.

    그러면서 감사원은 과감한 정책 실험을 장려하고 잘못을 추궁하기보다 문제 해결과 대안 제시에 집중하겠다며 인공지능(AI)·방산·해외자원개발 등 혁신 분야에 대한 '혁신지원형 감사'를 도입하겠다고 밝혔다. 감사원은 이를 이달 감사위원회 의결을 통해 확정한 뒤 '2025년 하반기 감사계획'에 반영, 실무에 적용할 방침이다.
    ▲ 김성환 환경부 장관이 지난 7월 24일 세종 세종보, 충남 공주보, 충남 백제보를 찾아 4대강 재자연화 검토를 위한 현장을 살펴보고 있다. ⓒ뉴시스

    ◆감사원, 2022년 정책 결정 감사 기능 폐지

    애초 감사원의 정책 결정 감사를 도입한 것은 '진보·좌파' 성향의 정부였다. 2003년 노무현 정부는 정책 품질을 높이려면 감사원이 정책 감사를 주로 하는 기관이 돼야 한다는 명분에서 도입했지만, 이후 정권 교체 때마다 전임 정부의 정책을 겨냥한 감사가 정치 보복의 수단으로 악용된다는 비판이 제기돼 왔다.

    이명박 정부의 역점 사업이던 4대강 사업의 정책 결정과 집행 과정에 대한 감사가 대표적인 사례다.

    특히 문재인 전 대통령은 취임 2주 만인 2017년 5월 감사원에 4대강 사업에 대한 정책 감사를 지시했다. 감사원은 다섯 번에 걸친 감사 끝에 4대강 사업은 설계부터 시공, 수질 관리, 경제성 평가 등 거의 모든 측면이 부실했고, 16개 보 중 다수가 내구성 문제를 겪었으며 수질 악화 우려도 있었다는 결과를 내놓았다.

    그런데 '4대강 사업이 홍수 예방에 실질적인 효과가 없다'는 결론은 '자료 부족'을 근거로 홍수 예방 효과를 0으로 산정한 것으로 드러났다.

    문재인 정부 시절 감사원의 월성 1호기 조기 폐쇄 결정에 대한 감사는 문재인 대통령의 국정 과제를 감사원이 제동 건 사례로 큰 파장을 불렀다.

    2020년 감사원은 정부의 탈원전 정책 핵심이던 월성 1호기 폐쇄 타당성을 점검하며 경제성 평가 과정에 문제가 있었다고 발표했고, 이로 인해 산업부 공무원들이 기소되기도 했다.

    그러나 이는 정부의 탈원전 정책 자체의 정당성을 감사한 것이 아니라 월성 1호기 영구 폐쇄 결정 과정에서 경제성 평가 자료의 조작 의혹을 밝혀낸 것이었다.

    일련의 사태를 겪은 뒤 감사원이 정책 결정의 당위성과 적정성 판단에는 손을 떼야 한다는 요구가 거세졌고, 감사원은 윤석열 정부 시절인 2022년 내부 규정 개정을 통해 정책 결정 감사 기능을 공식적으로 폐지했다.

    2022년 7월 개정된 감사원 감사사무처리규칙에는 정부의 중요 정책 결정과 정책 목적의 당부는 직무감찰 대상에서 제외한다는 조항이 명시됐다.

    이는 감사원이 정책 결정 감사 권한을 스스로 제한함으로써 헌법과 감사원법상 본연의 임무인 회계검사와 직무감찰에 집중하고, 고도의 정책 판단에 대한 사후 평가는 감사원이 아닌 국민과 국회의 몫으로 돌리겠다는 취지로 해석됐다.

    문재인 정부가 사드(THAAD·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 배치를 고의로 지연했다는 의혹에 대한 감사도 월성 1호기 감사와 마찬가지로 정책 결정에 대한 감사는 배제됐다.

    윤석열 정부는 2024년 공익감사에 착수해 국방부, 외교부 등 11개 기관을 대상으로 실지감사를 진행했다. 이 과정에서 감사원은 문재인 정부가 중국과 사드 운용을 제한하기로 한 '3불(不) 1한(限)' 등은 외교 정책 결정에 해당한다며 감사 대상에서 제외했다.

    3불은 사드의 추가 배치 불가, 미국의 미사일방어체계(MD) 체계 불참, 한미일 3각 군사동맹 체제 불가를, 1한은 이미 배치된 사드 운용 제한을 뜻한다. 감사원은 감사 범위를 사드의 정식 배치 지연을 둘러싼 환경영향평가 협의회 구성 지연, 관련 문서 파기, 전자파 소음 측정 결과 공개 문제 등으로 제한됐다.

    문재인 정부 시절인 2018년에 체결한 '9·19 남북군사합의'에 대한 감사 시도도 본격적인 감사로 이어지지 않았다. 북한은 이 합의를 근거로 남측의 군사 활동을 제한하면서도, 합의 효력이 정지된 2024년 6월까지 약 3600회 일방적으로 위반했다.

    이에 해당 합의는 '한국 안보에 불리한 졸속 합의'라는 비판이 제기됐다. 감사원이 합의 이행 과정의 허위 보고 의혹 등을 조사하려 했지만, 문재인 정부 인사들의 강한 반발에 따라 감사는 이뤄지지 않았다.
    ▲ 이재명 대통령이 7월 24일 서울 용산 대통령실 청사에서 열린 제5차 수석보좌관회의에서 발언하고 있다. ⓒ뉴시스

    ◆정권 교체 때마다 바뀌는 감사원 … 독립성은 어디에

    이처럼 그간 외교·안보부터 경제·산업 정책, 통계 작성까지 폭넓은 분야에서 전임 정권의 정책 결정을 사후적으로 문제 삼는 시도가 있어왔고, 그때마다 정책감사의 정당성을 둘러싼 격한 공방이 벌어졌다.

    감사원의 이번 정책감사 폐지 재선언은 이러한 정쟁성 감사의 악순환을 끊겠다는 의지로 볼 수 있지만, 감사원이 정치적 중립과 책무 사이에서 줄타기를 해왔다는 인상을 남겼다.

    감사원이 2025년 다시 선언한 '정책 결정 감사 폐지'는 형식상 이미 존재하는 규칙을 재확인한 것에 불과할 수 있지만, 실질적으로는 정책 결정 관련 해석과 감사 적용 범위 자체를 스스로 축소하는 선언으로 풀이된다.

    기존 규정은 정책 결정 자체는 제외하면서도 그 과정에서 벌어지는 자료 조작, 절차 위반, 공문서 왜곡 등에 대해서는 감사가 가능하다는 해석의 여지가 있었다.

    그러나 이번 발표로 인해 향후 집행 과정까지 정치적 해석을 피하려는 위축 효과가 나타날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감사원이 본연의 감찰 기능에 선제적으로 한계를 설정한 것 아니냐는 비판이 나오는 이유다.

    이에 대해 국민의힘 관계자는 "결국 이번 정책 결정 감사 재폐지로 인해 감사원이 누구를 향해 칼을 겨눌지, 언제 칼을 접을지마저 정권의 입장에 따라 달라질 수 있다는 우려는 쉽게 가시지 않게 됐다"고 지적했다.
조문정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