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대문구의회, 유진상가 정비 예산 잇단 삭감실무비 500만 원까지 '싹둑'…구청 "사업 발목" 반발구의원 "매몰비용 우려"…일부는 "예산안도 안 봤다" 시인구청장-의회 갈등 여파, 숙원 사업 추진에도 영향
  • ▲ 홍제역 역세권 활성화사업 조감도 ⓒ서대문구

    서울 서북권 최대 규모 개발 사업으로 서대문구 주민들의 오랜 숙원이었던 유진상가 일대 재개발 사업이 정치 갈등에 발목을 잡혀 추진에 애를 먹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7일 본보가 서대문구의 지난 7월 추경 삭감 내역을 입수해 확인한 결과 서대문구의회는 유진상가 정비를 포함해 주요 도시정비 예산을 줄줄이 삭감한 것으로 드러났다.

    통상 재개발 사업은 지역 정치권이 합심해 지원에 나서는 경우가 많지만 구의회가 사업 예산을 직접 삭감하며 진행을 가로막은 이번 사례는 이례적이라는 평가다. 

    일각에서는 이성헌 구청장(국민의힘)과 더불어민주당이 다수를 차지하고 있는 구의회의 정쟁이 지역 숙원 사업에까지 영향을 미치고 있다는 비판이 제기되고 있다.

    문제가 된 유진상가 일대 정비사업은 서울시가 역세권활성화사업으로 지정해 추진 중인 대규모 도심 재개발 계획이다. 지하철 3호선 홍제역 인근 유진상가와 인왕시장 일대를 포함한 해당 부지에는 최고 49층, 1121가구 규모의 주상복합 단지와 업무·판매시설, 복지·문화시설 등이 들어서는 것으로 기획됐다.

    1970년 지어진 유진상가는 노후화로 수차례 재개발 논의가 있었지만 좌초됐고 지난 4월에서야 정비구역으로 지정되며 다시 본궤도에 올랐다. 하지만 잇단 예산 삭감으로 향후 행정절차와 사업 추진에 차질이 불가피한 상황이다.

    이번 추경에서 삭감된 도시정비 예산은 총 1710만 원이다. ▲유진상가 재개발 추진 업무추진비 500만 원 ▲유진상가 재개발 홍보물 제작비 400만 원 ▲모아타운 및 가로주택정비 회의수당 810만 원 등이 포함됐다. 해당 예산은 실무 차원의 계획 수립과 주민 협의, 정책 홍보 등 도시정비사업의 실행 기반으로 쓰일 예정이었다.

    이성헌 서대문구청장은 "큰 금액이 아님에도 실질적 행정 추진에 꼭 필요한 예산이 반복적으로 삭감돼 사업에 어려움이 크다"고 토로했다.
    ▲ 서대문구 홍제동 유진상가 ⓒ서울시

    서대문구는 지난해 말에도 유진상가·인왕시장 개발을 위한 설계용역비 11억 원을 편성했지만 이 역시 전액 삭감됐다. 당초 여야 구의원들이 삭감 없이 예산을 반영하기로 합의된 상태에서 더불어민주당이 수정안을 기습 발의해 본회의에서 예산안이 통과됐다. 11억 원 전액이 날치기 방식으로 삭감됐다는 지적이 제기됐다.

    삭감을 주도한 서대문구의회 더불어민주당은 "재개발이라는 건 기존 주민들의 재산권과 보상 문제가 얽혀 있는 민감한 사안인데 정작 보상 문제가 해결되지 않은 상태에서 설계 용역비나 홍보비를 먼저 집행하는 것은 지나치게 성급하다"며 삭감 배경을 설명했다. 

    이어 "2017년에도 유진상가 일대 재개발이 추진되다 해제됐는데 당시에도 사전 용역 등을 진행한 결과 수억 원의 매몰비용이 발생했다"며 신중한 접근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또 "이번 추경안은 심의 며칠 전에서야 제출돼 세부 검토조차 어려운 상황이었다"고 덧붙였다.

    그러나 일각에서는 이성헌 서대문구청장(국민의힘)과 더불어민주당이 다수를 차지한 구의회 간 갈등이 이번 삭감의 배경이라는 분석도 나온다. 지난해 말 민주당 주도의 본예산 수정안 강행 처리 이후 구청은 재의요구로 맞섰고 이후 준예산 집행과 선결처분 시행 등으로 충돌이 이어졌다. 최근에는 민주당 소속 구의원들이 예산 집행의 위법성을 제기하며 감사원에 공익감사를 청구하겠다고 나서는 등 양측 갈등이 정치적 공방을 넘어 법적 대응 단계로 비화하고 있다.

    실제 이번 추경에서도 공무 직원들의 가족수당 31억 원, 구청 구내식당 급식비 9400만 원 등 도시정비사업 외에도 필수 행정운영 예산까지 삭감돼 의문을 낳았다. 구청 전반의 행정 기능을 사실상 마비시키려는 시도로까지 이어진 것 아니냐는 비판이 나온다.

    본지가 통화한 일부 더불어민주당 소속 구의원은 "이번 추경은 이재명 정부가 추진하는 민생 소비쿠폰 외에는 어떤 예산도 받아주지 않기로 당론이 정해졌었다"며 "솔직히 추경 목록을 자세히 들여다보지도 않았다"고 말했다.

    이 구청장은 "지역의 오랜 숙원사업인 만큼 고쳐야 할 부분이 있더라도 협의 속에서 풀어야지 예산을 깎아 사업을 멈추는 방식이 과연 구민을 위한 것이냐"며 "구청은 사업이 차질 없이 진행될 수 있도록 끝까지 노력하겠다"고 밝혔다.
김승환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