트럼프式 '안보 청구서' 압박 본격화거부 시 주한미군 '괌 이동론' 현실화'CNIIP' 제시로 전략적 자율성 확보해야핵재래식통합 강화 → 전술핵 재배치 검토
-
-
- ▲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과 이재명 대통령. ⓒAP/뉴시스, 대통령실통신사진기자단
도널드 트럼프 2기 미국 행정부가 한미 정상회담을 앞두고 중국 견제를 위한 '한미동맹 현대화'를 요구하고 나서 이재명 정부가 중대한 전략적 기로에 섰다. '한미동맹 현대화'의 핵심은 주한미군의 역할과 작전 범위를 한반도에 국한하지 않고 대만해협과 남중국해를 비롯한 인도·태평양 전역으로 확장해 중국 견제 임무를 강화하는 것이다.
트럼프 대통령은 정상회담에서 이재명 대통령에게 중국 견제를 위한 주한미군의 역할 확대와 활동 반경 확장을 의미하는 주한미군의 '전략적 유연성' 확대를 비롯해 주한미군 방위비 분담금 인상과 국방비 증액 등 '동맹 현대화'를 강력하게 요구할 것으로 예상된다.
◆美, 관세 협상서 국방비 증액·전략적 유연성 요구 검토
10일(한국시간) 워싱턴포스트(WP)는 자체 입수한 미 정부 내부 문서를 인용해, 미국이 지난달 말 진행된 한미 관세 협상에서 '전략적 유연성'에 대한 한국 정부의 공식 지지 표명과 국내총생산(GDP)의 3.8% 수준으로 국방비 지출 증액을 요구하려 했다고 보도했다. 국방비 증액안은 현재보다 약 50% 인상에 해당한다. WP는 미국 이러한 외교·안보 구상을 관세 협상 타결의 지렛대로 활용하려 했다고 전했다.
이 대통령으로선 경제 분야에서 한미 자유무역협정(FTA)상 비교 우위를 모두 포기한 관세 협상으로 미국에 상당한 양보를 한 상황에서 안보 현안에서도 트럼프 정부의 고강도 압박을 받게 될 것으로 보인다.
미국 싱크탱크 전략국제문제연구소(CSIS)의 빅터 차 한국 석좌(조지타운대 교수)는 최근 보고서에서 "트럼프 대통령은 이번 백악관 정상회담을 단순히 무역 협상 타결을 축하하는 자리가 아니라 한국으로부터 투자 확대와 비관세 장벽 철폐, 환율 조작 방지 등 추가적인 양보를 얻어내기 위한 지렛대로 사용할 것"이라며 "두 정상은 무역 이외에도 새로운 방위비 분담 협상 등 추가 현안을 논의할 수 있으며 미국은 현재 연 10억 달러 수준인 한국의 분담금을 대폭 증액하길 원한다"고 진단했다.
한국의 바람과 달리 한미동맹의 역할을 한반도 방어로만 한정하기는 어렵다. 1953년 한미상호방위조약은 방어 범위를 '태평양 지역에서의 무력 공격'으로 규정하고 주한미군 배치 권한을 '대한민국 영토와 그 부근'(in and about)으로 명시했다. 미국은 이를 적극적으로 해석해 대만해협이나 남중국해를 포함한 더 광범위한 인도·태평양 지역에서 한국의 역할을 확대할 것을 요구하고 있다. 미국은 한국의 반대로 주한미군의 유연성 확대가 제한된다면 주한미군을 이례적 규모로 역외로 재배치 한 이후 한반도로의 순환 배치되는 전력의 비율을 대폭 높일 가능성이 있다.
◆한미 외교안보 당국, '동맹 현대화' 공식 언급
이러한 상황에서 한미 외교·안보 당국은 최근 '동맹 현대화'를 공식적으로 언급했다. 특히 안규백 국방부 장관과 피트 헤그세스 미국 국방장관은 지난 7월 31일 통화에서 "변화하는 역내 안보 환경에서 한미동맹을 상호 호혜적으로 현대화하기 위한 협의를 지속하기로 했다"고 국방부가 공식 발표했다. 또 조현 외교부 장관과 마코 루비오 미국 국무장관도 같은 날 미국 워싱턴DC에서 열린 양자 회담에서 동맹의 현대화 필요성을 재확인하면서 한미동맹을 "더욱 강화하고 전략적 중요성도 한층 높이는 방향으로 현대화할 것"이라는 입장을 내놓았다.
엘브리지 콜비 미 국방부 정책차관 최근 SNS를 통해 "한국은 북한에 맞선 강력한 방어에서 더 주도적 역할을 기꺼이 맡으려는 것과 국방 지출 면에서 계속 롤모델이 된다"며 "우리와 한국은 지역 안보 환경에 대응하며 동맹을 현대화할 필요에 있어 긴밀히 연계돼 있다"고 밝혔다. 이는 트럼프 정부가 국방비 GDP 증액, 북한 재래식 위협에 대한 한국 자체 억제력 확대 등 한국의 부담을 더욱 확대하는 구체적 요구를 정상회담에서 제기할 가능성을 시사한다.
한국 정부 고위 당국자는 한미 외교장관 회담 이후 기자 간담회에서 "주한미군의 역할이나 성격은 국제 정세 변화, 기술 발전, 중국의 부상이라고 말하는 중국의 전략적 역할 확대 등 여러 요인 때문에 변화가 있을 수 있다"고 밝혔다. 이 발언은 최근 미국의 주한미군 전략적 유연성 확대 요구에 대해 한국 정부가 처음으로 가능성을 인정한 것으로 풀이된다. 다만 이 당국자는 "동맹이 완벽하게 다 의견 일치를 보긴 어렵다. 미국 입장에 (전적으로) 공감한다는 의미는 아니다"라며 신중한 태도를 유지했다.
-
- ▲ 미 국방부가 2019년 발표한 인도태평양 전략 보고서에 나타난 역내 주요 미군기지 현황. 미국은 한국과 일본, 괌, 호주 등 주요 동맹국에 군사거점을 집중 배치하며 중국의 역내 영향력 확대를 견제하고 있다. ⓒ2019년 미 국방부의 인도태평양 전략 보고서
◆주한미군 역할 확대 거부 시 주한미군 대규모 재배치 우려
한국으로서 가장 우려스러운 시나리오는 주한미군의 '대규모 재배치'이다. 현재 주한미군은 육군 약 2만 명, 공군 약 8000명, 해군 300명, 해병대 100명, 특수작전부 100명 등 2만8500명 규모이며, 핵심 전력은 아파치 공격 헬기, 패트리엇·사드(THAAD, 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 등 미사일 방어 자산, RC-12 가드레일·RC-7 등 정찰기, F-16 전투기 등으로 구성된다.
조비연 세종연구소 연구위원의 '주한미군의 전략적 유연성과 한미동맹의 미래' 보고서에 따르면, 주한미군의 주요 조정 시나리오로는 ▲지상군, 스트라이커 순환배치여단을 포함한 제2보병사단 조정 ▲공군의 주요 전력 F-16, A-10(탱크킬러) 비행대대의 조정 ▲대규모 철수, 순환 배치율 확대, 미사일 방어망 강화 등이 꼽힌다.
헤그세스 장관의 수석 고문이었던 댄 캘드웰은 최근 보고서에서 주한미군의 지상군 대부분을 철수하고 공군의 2개 대대만을 배치해 약 1만 명으로 줄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즉, 역내 주둔군의 무게 중심을 '제1열도선'(일본 오키나와-대만-필리핀)에서 '제2열도선'(일본 이즈제도-괌-사이판)으로 옮겨야 한다는 것이다.
또 미국은 지상군은 축소하되, 트럼프 대통령이 추진하는 차세대 미사일 방어체계인 '골든돔'(Golden Dome) 계획에 따라 사드의 추가 배치와 미사일방어망(MD)의 통합성 강화를 요구할 가능성이 있다. 미국은 2026 회계연도 태평양억제구상(PDI)에서 MD 강화를 통한 거부적 억제 능력 확보를 강조했고, 전체 국방 예산의 최우선 항목으로 약 250억 달러(약 34조7000억 원)를 골든돔 계획에 편성했다. 조 연구위원은 "제8군 예하 제35방공포병여단은 유엔사령부·한미연합사령부의 지정 자산으로 패트리엇과 사드를 중심으로 미사일 방어 체계를 운용 중인데, 트럼프 2기 행정부의 골든돔 계획에 따라 향후 변화 가능성이 있다"고 내다봤다.
-
- ▲ 대한민국 공군 F-35A 전투기가 2024년 10월 1일 오전 서울공항에서 열린 건군 제76주년 국군의날 기념식에서 기동을 선보이고 있다. ⓒ경기 성남=서성진 기자
◆주한미군 감축·조정을 신형 전략자산 확보 기회로
한국은 주한미군의 감축이나 조정을 F-35A 등 신형 전략자산을 확보할 기회로 만들 수 있다. 미국이 추진하는 '동맹 현대화'를 무조건 수용하거나 반대하기보다는 이를 미국의 확장억제(핵우산) 공약을 명확히 하고 한미동맹의 지속성을 유지하는 전략으로 활용할 수 있다는 뜻이다.
조 연구위원은 "A-10 공격기 대신 배치가 추진되고 있는 F-35A는 대북 억제력의 단계적·긴급 대응 수단 차원에서 전술핵 임무에 활용할 수 있는, 즉 미국의 전술핵 운용 및 탑재가 가능한 플랫폼으로 활용하는 문제를 논의할 수 있는 계기가 될 수 있다"며 "전술핵의 유연한 순환 배치, 한국의 DCA 임무(미국 전술핵을 한국군 전투기로 투발) 참여는 동맹 재편의 다음 단계로 검토 가능하다"고 강조했다.
이어 "미국이 현재 추진 중인 F-16 슈퍼비행대대는 고강도 작전 수행을 위한 항공기 및 인력의 통합 운용을 목표로 하며, 기동성을 극대화하려는 미국의 새로운 접근을 반영하고 있다"며 "미사일 방어망도 한미 확장 억제와 CNI 차원에서 긴요한 수단이다. F-16 슈퍼비행대대와 F-35A를 기반으로 한 선제공격 가능성의 신뢰성(보복적 억제), 제2격 능력의 확보(거부적 억제) 차원에서 미사일 방어는 병행 추진될 필요가 있다"고 설명했다.-
- ▲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지난 5월 20일(현지 시간) 백악관 집무실에서 차세대 미사일 방어시스템인 '골든 돔'에 관해 발언하고 있다. 트럼프 대통령은 미 전역을 보호하는 '골든 돔'을 본인의 임기가 끝나는 2029년 1월 이전에 실전 배치하겠다고 밝혔다. ⓒAP/뉴시스
◆ 日 '원시어터'처럼 … 한국형 'CNIIP'로 전략적 자율성 확보 필요
한국이 '인도·태평양 핵재래식통합'(CNIIP) 개념을 선제적으로 제시하는 것도 방법이다. CNIIP는 핵무기와 재래식 무기를 유기적으로 결합해 동맹국 간 연합 억제력을 극대화하는 '핵재래식통합'(CNI)을 인도·태평양 전역으로 확대 적용한 개념으로, 미국의 전략적 요구에 부응하는 동시에 한국의 전략적 자율성을 확보하자는 것이다. 일본이 한반도와 동중국해, 남중국해를 하나의 전장으로 묶어 집단 안보 구조로 확장하자는 '원시어터(One Theater) 구상'을 선제적으로 제시했듯이 한국도 독자적 지역 구상을 통해 한미 CNI를 더욱 심화하는 계기를 마련할 수 있다.
조 연구위원은 "한국을 포함한 역내 동맹국의 입장에서는 독자적으로 관리·결정되는 미국의 역내 핵전략 작전에 대한 정보 공유, 협의, 이해가 확충되고, 그 과정에서 동맹국의 재래식 역할이 확대·구체화됨으로써 동맹국의 자체 역량이 제고된다"며 "트럼프 행정부 입장에서는 대중 견제를 목적으로 동맹국의 동참을 견인하고, 재래식 수단을 확보하며, 안전 보장 결의를 동맹국과 적국 양쪽에 효과적으로 발신하는 역할을 한다"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동맹 분업을 통한 CNIIP 구현, 정보 공유 확대와 거부적·보복적 억제 차원의 CNIIP 구현, 전술핵 유연 재배치와 한국의 DCA 임무 확보 고려 등 세 가지 추진 방향을 제시했다.
특히 2024년 9월 한·미·일·호주가 공동 개최한 정책·군사연습(POL-MIL) 결과 한반도와 대만에서 동시에 분쟁이 발생하면 한반도에서의 조기 승전이 지역 전체의 확전 관리에 핵심적이라는 결론이 도출됐다. 이는 한국이 인도·태평양 안정에 실질적으로 기여하는 방안이 대북 억제력 유지뿐 아니라 위기 시 조기 승전 태세까지 포괄해야 한다는 점을 시사한다.
주한미군의 전략적 유연성 확대는 북한이나 중국의 표적화 가능성을 높이므로 MD의 병행 발전을 통해 주한미군의 선제공격과 제2격(Second Strike) 능력 확보의 신뢰성을 강화할 필요가 있다. 선제공격이 적의 위협이 임박했을 때 먼저 타격해 위협을 제거하거나 무력화하는 능력이라면 제2격은 적의 첫 공격(핵·미사일 등) 이후에도 살아남아 효과적으로 보복 공격을 가할 수 있는 능력을 말한다. 제2격 능력은 핵 억제 전략에서 상대의 선제공격 의지를 꺾는 핵심 억제력이다.
CNIIP 구현은 미국 전략자산 전개 확대와 인도·태평양 역내 연합연습, 전술핵의 유연한 순환 배치를 통해 가능하다. 특히 조 연구위원은 전술핵 재배치와 한국의 DCA 임무 확보와 관련해 "괌 등에 미국의 전술핵이 재배치될 가능성을 고려해 주한미군 기지 내에 B61-12, B61-13 계열의 전술핵 저장 시설을 구축하고, 주한미군 조정을 계기로 임시 배치 탄두를 장착할 수 있는 미 육군 탄약대대의 한반도 내 훈련과 순환 배치 등을 추진하며, 미국의 DCA F-35 배치를 확보(F-35A 1개 대대 배치)할 수 있다"고 전했다.

조문정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