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송법 개정안, 5일 국회 본회의 문턱 넘어'정치적 후견주의' 배제 명분…실상은 '강화'공영방송사 경영·편성에 '노조 개입' 법제화
  • ▲ 신동욱 국민의힘 의원이 4일 오후 국회에서 열린 본회의에서 '방송3법 반대 필리버스터'를 하고 있다. ⓒ이종현 기자
    지난 정부에서 두 차례 국회 본회의를 통과했지만 윤석열 전 대통령의 거부권 행사로 폐기됐던 '방송3법(방송법·방송문화진흥법·한국교육방송공사법) 개정안' 중 '방송법'이 5일 오후 본회의 문턱을 넘어 대통령 공표를 앞두게 됐다.

    당초 '패키지 법안'인 '방송3법'을 8월 중 일괄처리하는 방안을 검토하던 더불어민주당은 '언론개혁에 힘을 싣겠다'는 정청래 신임 대표의 의지를 반영, 지난 4일 방송법 개정안을 가장 먼저 상정했다.

    이에 국민의힘은 필리버스터(무제한 토론)로 맞섰지만 188석을 보유한 범여권은 24시간이 지난 5일 오후 4시 13분경, 표결로 필리버스터를 강제 종료시킨 뒤 즉각 방송법을 표결 처리했다. 결과는 당연히 '가결'이었다. 

    이후 민주당이 방송3법 중 하나인 방송문화진흥회법(방문진) 개정안을 상정하면서 여야는 재차 필리버스터 대치에 들어갔으나, 이날 자정 7월 임시국회 회기가 종료됨에 따라 개정안 표결은 8월 국회 본회의로 넘어가게 됐다.

    ◆겉보기엔 '조직 정비', 실상은 '친민주 인사'로 교체

    이날 민주당을 위시한 범야권이 일사천리로 통과시킨 방송법 개정안은 공영방송 KBS와 보도전문채널에 '노사 동수(同數) 편성위원회'와 '사장추천위원회'를 신설하고 KBS의 이사 수를 기존 11명에서 15명으로 늘려 지배구조를 개편하는 것을 핵심으로 한다.

    방송법 개정안을 이재명 대통령이 공표하면 KBS는 사장 후보를 국민 100명 이상이 추천하는 사장추천위원회를 구성하고, 전 정부 인사가 과반을 차지하고 있는 현 이사진을 3개월 안에 모두 교체해야 한다. 

    개정안 부칙에는 전 정부에서 민영화된 YTN과 연합뉴스가 대주주인 연합뉴스TV 등 보도전문채널의 대표자와 보도책임자를 3개월 안에 새로 임명하라는 주문도 담겨, KBS·연합뉴스TV·YTN 3사의 수장이 오는 11월까지 모두 물갈이되는 사태가 벌어질 전망이다.

    이를 두고 국민의힘은 "공영방송 사장의 3년 임기를 규정한 법·정관과 기존 사장의 임기를 조기 종료시키는 부칙이 상충되는 측면이 있다"며 방송법 부칙 효력정지 가처분 혹은 위헌법률심판 헌법소원을 제기해야 한다는 목소리를 높이고 있다.

    특히 아무런 법적 근거도 없이 3개월 이내에 이사회 등 경영진을 새로 구성하는 부칙을 제정한 것은, 방송3법이 '방송을 국민에게 돌려주기 위한 법안'이라는 민주당의 주장과는 달리, 사실상 각 방송을 친민주당 세력으로 장악하려는 꼼수를 담고 있다는 지적이다.

    최수진 국민의힘 의원은 "겉보기엔 '조직 정비'처럼 보이지만, 실상은 정권 출범과 동시에 이사회를 '이재명 인사'로 교체해 사장을 갈아치우겠다는 심산"이라며 "게다가 '기존 사장은 후임자가 임명되기 전까지 직무대행으로 활동한다'는 조항은 후임 인사가 올 때까지 권한을 박탈한 채 대기시키겠다는 것으로, 해임은 하지 않지만 실질적 교체를 가능케 한 교묘한 '밀어내기 수법'"이라고 분석했다.

    또한 "사장추천위원회와 '보도책임자 임명동의제'를 강제하고 있는 이 법안이 공표되면 사장은 교섭대표노조와의 합의 없이는 임명할 수 없고, 보도책임자는 보도직군 과반의 동의 없이는 보직 자체가 불가능해진다"며 "특정 기자단체가 사실상 '비토권'을 쥐게 돼 정권에 비판적인 인물은 사장이 될 수 없고, 코드에 맞지 않으면 보도국장도 임명될 수 없게 된다"고 우려했다.

    ◆친여 성향 인사들 'KBS 이사회 장악' 우려

    개정안에 따르면 KBS의 최고 의사결정기구인 이사회는 기존 11명에서 15명으로 늘어난다. 15명은 국회 교섭단체가 추천하는 6명과 시청자위원회·KBS임직원·학계·법조계 등이 추천하는 9명의 인사들로 구성된다. 

    '정치적 후견주의'를 배제하겠다면서 만든 법안에 정치권의 방송 개입을 명문화한 것도 문제지만, 국민 누구로부터 위임받지 않은 단체가 공영방송의 이사를 추천하도록 함으로써 △언론의 공영성과 독립성이 흔들리는 것은 물론 △특정 단체에 과도한 힘이 실려 △결과적으로 헌법이 보장한 언론의 자유가 침해될 소지가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또한 민주당 추천 인사를 제외한 나머지 '추천 몫' 중 8~9자리도 사실상 민주당과 가깝거나 우호적인 인사들이 차지할 것으로 보여, 방송법 개정 후 '친민주계'가 공영방송 이사회를 장악할 우려가 커진다는 분석도 있다.

    현행 원내 교섭단체 의석수에 따르면 KBS의 경우 △민주당은 4명 △국민의힘은 2명의 이사를 추천할 수 있다. 나머지는 △공사 시청자위원회가 2명 △KBS 임직원이 3명 △미디어 관련 학회가 2명 △대한변호사협회와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모임(민변)이 각 1명씩 추천해 총 15명의 이사회가 들어서게 된다.

    기존 시청자위원회는 '방송법 시행령'에 따라 △학부모단체 △소비자단체 △여성단체 △장애인·노동·경제·문화·과학기술·인권 관련 단체 등에서 후보군을 추천하면, 부사장·방송본부장·시청자본부장 등으로 이뤄진 선정위원회가 이를 심사해 시청자위원을 뽑고 사장이 위촉하는 방식으로 구성된다.

    시민단체들의 성격상 특정 정치 성향이 강한 인사들이 시청자위원으로 위촉될 가능성이 높은데, 방송법이 개정되면 '노사 동수 편성위원회'가 시민단체들의 추천 인사 중에서 시청자위원을 뽑는 심의·의결권을 갖게 된다. 추천 단계부터 심의·의결까지 노조의 입김이 계속 들어가는 구조가 만들어지는 것. 결과적으로 시청자위원회 '추천 몫(2명)' 모두 '친민주당 인사'로 채워질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는 게 국민의힘의 시각이다.

    임직원 몫 3명은 사내 공모 후 임직원 투표를 통해 결정되는데, 언론노조 소속 구성원이 KBS 직원 중 과반 이상을 차지하므로 형평성 있는 투표 방식을 도입해야 하는 문제가 남는다.

    2명을 추천할 수 있는 미디어 관련 학회는 추후 방송통신위원회가 선정하게 돼 있어, 상당한 진통이 예상된다. 일단 정권의 영향을 받을 수밖에 없고, 추천 주체로 선정되기 위해 물밑 협상이나 로비 등이 과열될 것으로 전망된다. 이 역시 현 정권에 유리한 인사에게 돌아갈 공산이 높다.

    나머지 대한변호사협회와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모임(민변)이 각 1명씩 추천할 수 있는데, 단체 성향상 민변 몫은 '민주당계'로 분류된다.

    ◆편성위원회 설립 강제 … 방송사업자 자율·독립성 '흔들'

    개정된 방송법이 이사회 구성뿐 아니라 각 사에 '노사 동수 편성위원회' 설립을 강제함으로써 방송사업자의 자율성과 독립성이 흔들릴 우려가 있다는 지적도 있다.

    헌법재판소는 2021년 '방송사업자가 자율적으로 방송편성을 할 수 있도록 편성의 자유와 독립이 보장돼야 한다'고 전원일치 결정(2019헌바439)을 내린 바 있다. 방송법 제4조 제2항 '누구든지 법률에 의하지 아니하고는 방송편성에 어떠한 규제나 간섭도 할 수 없다'는 법규에 헌법적 당위성을 실어준 것이다.

    그럼에도 이번 개정안은 노사 동수로 구성된 편성위원회에 심의·의결권을 부여하고, 편성위원회를 설치하지 않거나 편성규약을 지키지 않을 경우 형사처벌까지 가능하게 하는 내용을 담아 논란을 일으키고 있다. 

    편성위원회의 권한은 강화하면서도 법적 책임은 방송사가 지는 '권한과 책임의 불일치' 구조를 만들어, 결과적으로 방송사업자의 고유한 '편성 주권'이 침해당할 가능성이 높아졌다는 게 국민의힘의 분석이다.

    국민의힘 미디어특위는 "해당 개정안은 헌법 제21조가 보장하는 편성 및 언론출판의 자유를 침해하는 법안"이라며 "친민주당 추천 인사 등이 공영방송을 구조적으로 장악하려는 '언론 카르텔'의 제도화이자, 정권의 입맛에 맞지 않으면 언론의 자유를 말살하겠다는 것"이라고 개정안에 도사린 '꼼수'를 지적했다.

    개정안이 지상파를 포함해 종합편성채널과 보도전문채널 등 '민간 방송'에까지 노사 각 5명씩의 편성위원회 구성을 의무화하고, 편성위원회에서 시청자위원 추천 건을 심의·의결하도록 한 것에 대해서도 부정적인 목소리가 높다.

    임응수 법무법인 광안 변호사는 "노동조합은 이익단체이며 공적 책임이 없고, 경영과 편성에 대한 의사결정은 국민에게 책임질 수 있는 주체가 해야 한다"며 "편성위원회 미설치 시 형사처벌 조항은 명백한 과잉 입법이고, 포괄 위임 금지 원칙 위반 소지도 크다"고 분석했다.

    이인철 변호사는 "방송은 실시간 편성과 편집이 핵심인데, 노조가 방송사업자의 경영행위이자 고유 권한인 편성권을 요구하는 것은 언론을 정치화하고 책임 있는 운영 주체를 모호하게 만드는 위험한 시도"라고 비판했다.
조광형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