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친문 묻은 친명' 정청래가 찐명 박찬대 압도與 소속 의원 91%가 朴 지지했지만 역부족이재명 민주당서 영향 약화된 김어준 부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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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재명 대통령이 민주당 당대표 시절 방송인 김어준씨 유튜브 채널에 출연한 모습. ⓒ유튜브 캡처
더불어민주당 새 대표로 정청래 의원이 선출된 것을 두고 '어심'(방송인 김어준의 의중)이 여권을 사실상 장악했다는 분석이 이어지고 있다. 이재명 대통령의 뜻을 중심으로 움직이던 '당심'이 좌파 스피커인 김어준 씨로 옮겨갈 조짐이라는 분석도 제기되고 있다.
6일 민주당에서는 지난 2일 치러진 당 전당대회를 두고 다양한 분석이 나오고 있다. '친문(친문재인) 색채를 띈 친명(친이재명)이라는 평가를 받은 정 대표와 '찐명'(진짜 이재명 대통령의 최측근) 박찬대 민주당 의원의 대결이 생각보다 큰 격차를 보였기 때문이다.
민주당 시스템의 꽃은 '권리당원'으로 불린다. 이 대통령이 당대표를 맡은 이후 줄곧 '당원 주권 강화'를 외쳤고, 당원의 투표권이 대폭 강화되면서 이들이 미치는 영향력은 막대해졌다.
이 대통령이 손짓하면 모든 표가 그의 뜻대로 움직이는 모습이 연출되기도 했다. 당원 투표를 명분으로 내세웠지만, 지난 22대 총선 공천 과정에서 '비명횡사'라는 말이 나올 정도로 많은 숫자의 비명(비이재명)계 정치인들이 공천 탈락의 쓴맛을 봤다.
그런데 이 대통령이 대통령 당선으로 자리를 비운 민주당에서 '찐명' 박 의원의 패배는 낯설다는 평가다. 정 대표는 권리당원 투표에서 61.74%를 얻었고, 박 의원은 38.26%를 득표하는 데 그쳤다. 이에 대해 민주당의 한 의원은 "'더블 스코어'에 가까운 격차는 예상 밖이었다"고 말했다.
당초 당 안팎에서는 "명심은 박 의원 쪽에 기울었다"는 말이 공공연하게 흘러 나왔다. 친명계 의원들 사이에서는 이재명 정부 첫 집권당 대표인만큼 '과시형'인 정 대표보다 '참모형'인 박 의원이 더 적합하다는 평가가 주를 이뤘다.
실제로 친명을 자처한 현역 의원 152명이 박 의원을 공개적으로 지지했다. 민주당 소속 현역 167명 중 91%가 정 대표가 아닌 박 의원을 지지한 것이다. 이 대통령의 의중을 읽은 현역 의원들이 당원을 향해 가이드라인을 제시했다는 말도 나왔다.
분위기가 박 의원에게 쏠리는 듯한 모습을 보이던 상황에서 정작 결과는 정반대였다. 막상 전당대회 뚜껑을 열자 정 대표가 박 의원을 압도한 것이다. 정 대표는 선거 기간 내내 박 의원을 크게 앞섰다. 첫 권리당원 투표가 진행된 충청·영남권에서부터 정 대표는 62.65%로 박 의원(37.35%)을 따돌렸고 이러한 기세는 경선 끝까지 이어졌다.
민주당은 물론 야당에서도 김 씨의 파워가 입증됐다는 말이 나왔다. 정 대표는 김 씨의 유튜브 방송 출연은 물론, 김 씨가 주최한 콘서트에도 등장하며 친분을 과시했다.
반면 김 씨는 박 의원에게 당대표 후보 사퇴를 종용하는 듯한 모습을 보이며 박 의원 지지층에게 비판을 받았다.
김 씨는 지난 6월 23일 자신의 방송에 출연한 박 의원에게 "정청래 의원이 관두거나 박찬대 의원이 관두거나 그럴 가능성은 없느냐"라고 질문했다. 이를 두고 친명 강성 당원들 사이에서는 김 씨가 사실상 '사퇴를 압박한 것이 아니냐'는 불만이 나왔다.
김 씨와 정 대표의 친분은 선거가 끝난 후에 곧바로 확인됐다. 정 대표는 당선된 지 사흘 만인 5일 김 씨 방송에 출연해 소회를 털어놨다.
정 대표는 이날 방송에서 "내가 깊고 넓게 각인돼 있구나, 지지율이 흔들리지 않겠구나라는 것을 현장에 갈 때마다 느꼈다"고 밝혔다.
정 대표는 이 대통령이 국민의힘에 대한 위헌정당 해산 추진을 하지 말라고 할 경우를 묻는 말에는 "대통령이 하지 말라고 하면 그때는 심각하게 (고려해보겠다)"고 말했다.
그는 이 대통령 말고는 누가 말해도 설득이 안되느냐는 질문에 "(제) 성격상 그렇지 않겠느냐"라면서도 "제가 개인이 아니므로 당 의원, 대통령실, 행정부와 다 조율해서 할 것"이라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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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정청래 더불어민주당 대표가 지난 6월 방송인 김어준씨 콘서트에 참석한 모습. ⓒX(옛 트위터) 캡처
국민의힘은 이번 전당대회에서처럼 이 대통령과 김 씨가 경합하는 모습을 노출한 것 자체가 향후 여권 분열의 씨앗이 될 수 있다고 보고 있다.
나경원 국민의힘 의원은 전날 페이스북에 "정청래 대표 당선은 김어준과 이 대통령의 대결에서 김어준의 승리"라고 주장했다.
이어 "이 대통령도 정 대표와의 통화에서 당·정·대 일치를 언급했다고 하지 않나"라면서 "일치를 이야기 하지만 미래를 위한 권력의 묘한 균열을 이제 곧 볼 수 있을 것이고, 그것은 자칫 선명성 경쟁으로 국민에게 손해가 되거나 국민의 염장을 지를 것"이라고 밝혔다.
민주당에서는 공개적으론 이런 갈등 구도를 언급하지 않고 있다. 성치훈 민주당 정책위부의장은 "이번 전당대회 기간 내내 대놓고 (김 씨가) 정청래 후보를 밀어주는 발언을 한 기억이 없다"며 "그렇기에 김 씨 영향력이 발휘됐다고 보기 어렵다"고 반문했다.
외부적으로 의미를 축소하고 있지만, 당 내부에서는 다시 커진 김 씨의 영향력에 내심 놀라는 분위기다. 김 씨가 좌파 스피커로 화려하게 부활하는 신호탄을 쐈다는 것이다.
실제로 박근혜 전 대통령 탄핵 사태와 문재인 정부로 이어지는 시기 좌파 진영에서 막강한 영향력을 행사한 김 씨는 강력한 팬덤을 가진 이 대통령의 등장 이후 영향력이 떨어졌다는 평가를 받았다.
하지만 활발한 SNS 활동을 통해 팬심을 틀어 쥐고 있던 이 대통령이 국가 수반으로서 온라인 활동과 유튜브 방송 출연이 상당 제약되는 상황이 오히려 김 씨의 좌파 진영 내 입지를 강화시킬 것이라는 분석이다.
이에 대해 민주당의 한 의원은 "눈에 보이지 않았다고 해서 '김어준'으로 통한 당심이 의심(의원들의 의중)과 명심을 누른 것을 부정할 수는 없다. 당 의원들이 모두 놀란 눈치"라며 "향후 당원들의 향방과 헤게모니의 변화를 조금이나마 가늠해볼 수 있는 전당대회가 아니었나 싶다"고 진단했다.

손혜정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