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미 FTA 13년 만 폐기…"韓만 무관세 잃어""ISD 조항 활용했나 의문…부당함 주장 가능""쌀 41만t 의무 수입 개정 놓쳐 아쉬워"
  • ▲ 김종훈 전 외교통상부(현 외교부) 통상교섭본부장의 모습. 지난 2010년 6월 30일 김종훈 당시 통상교섭본부장은 서울 도렴동 외교통상부에서 브리핑을 열고 향후 진행될 한미 자유무역협정(FTA) 조정과 관련, 30개월 이상 된 쇠고기는 수입하지 않을 것이며 미국 측에서 주장하는 자동차 수입과 관련된 위장된 장벽은 존재하지 않는다고 밝혔다. ⓒ뉴시스

    "우리가 그간 한미 FTA(자유무역협정)로 경쟁국이 갖지 못한 비교 우위를 누렸는데, 이번 협상으로 이 우위가 완전히 상실됐다. 협상 과정에서 한미 FTA의 가치를 제대로 인정받지 못한 점이 매우 아쉽다."

    한국을 'FTA 허브 국가'로 만든 주역이자 미국 협상 대표들조차 '최고의 협상가'로 인정한 김종훈 전 외교통상부 통상교섭본부장은 최근 타결된 한미 관세 협상 결과에 대해 2일 뉴데일리와의 인터뷰에서 이렇게 평가했다.

    그는 2006년 한미 FTA 협상 당시 '글래디에이터'(검투사)로 불릴 만큼 치열하게 대처한 것으로 유명하다.

    이번 협상에서 한국은 미국에 3500억 달러(약 487조 원) 투자와 1000억 달러 규모의 에너지 구매를 약속했고, 한국산 제품에 대한 관세는 기존 무관세(0%)에서 15%로 올리기로 합의했다.

    반면 미국산 제품은 계속 '무관세'가 유지됐다. 일본과 EU(유럽연합)도 15% 관세가 적용되지만, 이들은 미국과 FTA를 체결한 적이 없고, 한국보다 GDP 규모도 크기에 한국 기업이 느끼는 상대적 부담은 더 클 수밖에 없다.

    특히 한미 FTA 체결 당시 미국이 강하게 요구해 도입한 ISD(투자자-국가 분쟁 해결 제도)를 이번 협상 과정에서 한국 협상단이 레버리지로 활용했는지에 대해서도 의문이 제기된다.

    ISD는 외국인 투자자가 상대국의 정책 변화로 피해를 보면 국내 법원이 아닌 국제 중재기구에 손해배상을 청구할 수 있게 한 제도다.

    김 전 본부장은 "한국 기업들이 IRA(인플레이션 감축법·Inflation Reduction Act)를 믿고 미국에 투자했는데, 미국의 정책이 바뀌어 곤경에 처했다는 점과 미국 시장에 15% 관세까지 부담해야 한다는 점은 부당함을 충분히 주장해 볼 수 있었다"고 짚었다.

    아울러 한국 협상단은 1995년 WTO(세계무역기구) 농업 협정 당시 쌀 시장 개방을 피하는 대신 연간 40만8700톤의 쌀을 의무적으로 수입하는 현실을 개선할 기회도 놓쳤다.

    트럼프 행정부가 WTO를 거의 무시함에 따라 WTO는 사실상 '간판'만 남은 기구가 된 상황이다. 아울러 국내에서는 쌀이 남아돌아 정부가 수매·비축까지 하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한국이 계속 쌀을 의무적으로 수입해야 하는지 심도 있는 대책이 필요하다는 것이 김 전 본부장의 평가다. 그는 "이번 협상에서 이 의무 수입 물량에 대한 시한을 설정하는 등의 노력이 없었다면 아쉽게 생각한다"고 지적했다.

    김 전 본부장은 또 "결국 한미 FTA는 인간으로 치면 이제 막 초등학교를 졸업할 나이인 13년 만에 생을 마감하게 된 것"이라며 "현재 세계 교역 질서를 고려할 때 이와 같은 형태의 한미 협정이 다시 성사되기는 무망(無望)해 보인다"고 전망했다.

    이어 "중장기적으로는 미국이나 중국 같은 패권국이 빠진 그룹에서 새로운 형태의 협력 관계를 모색할 것으로 보인다"며 "가까운 예로 CPTPP(환태평양경제동반자협정)가 있는데, 한국의 가입 문제도 적극적으로 검토할 필요가 있다고 본다"고 제언했다.
    ▲ 대통령실은 31일 미국과의 관세협상에서 상호관세를 15%로 합의하는 동시에 한국산 자동차에 대한 미국의 관세도 15%(기존 0%)로 조정하기로 했다고 발표했다. ⓒ연합뉴스

    ◆다음은 김종훈 전 통상교섭본부장과의 일문일답이다.

    -여권에서는 이번 한미 관세 협상 결과를 '국익을 우선으로 한 실용외교 성과'라고 평가한다.

    "후한 평가다. 우리가 그간 한미 FTA로 경쟁국이 갖지 못한 비교 우위를 누렸는데, 이번 협상으로 이 우위가 완전히 상실됐다. 협상 과정에서 한미 FTA의 가치를 제대로 인정받지 못한 점이 매우 아쉽다. 한미 FTA를 통해 한미 양국 간 상호 교역이 거의 무관세로 유지됐다. 하지만 이번 협상으로 이런 교역 구도는 0%대15%로 바뀌어 버렸다."

    -무엇보다 한국의 주요 수출 품목인 자동차에 대한 관세도 0%에서 15%로 대폭 인상됐다.

    "같은 15%라도 관세 인상 폭 측면에서 한국이 더 불리하다. 한국은 무관세(0%)에서 바로 15%로 급격히 올랐지만, 일본이나 EU는 기존 2.5%에서 15%로 비교적 완만히 상승했다. 자동차뿐 아니라 전체 품목의 99%가 한미 FTA 덕분에 무관세 혜택을 받았지만, 이제는 15% 관세를 부담하며 미국 시장에 진입해야 하는 상황이다. 이전부터 일정한 관세를 부담하던 국가들과 달리, 무관세 혜택을 받은 한국 기업들이 느끼는 부담은 훨씬 클 수밖에 없다. 따라서 국내에서라도 우리 기업의 발목을 잡을 수 있는 규제 법안은 당분간 재고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트럼프 행정부 들어 한국 기업의 피해가 심각하다. 바이든 행정부 시절 IRA(인플레이션 감축법)를 통해 전기차와 배터리에 대한 보조금 지급을 약속받고 SK·LG·삼성 등 우리 기업들이 미국에 대규모 투자를 진행했다. 트럼프 2기 행정부에서 이 정책이 갑자기 바뀌어 보조금이 대폭 삭감됐다.

    "한미 FTA 체결 협상 당시 미국은 ISD(투자자-국가 간 분쟁 해결 제도)의 중요성을 매우 강조했다. 우리가 이를 수용하는 과정에서 국내적으로 '사법 주권 포기'라는 논쟁과 비난이 있었다. 이런 점을 이번 협상에서 제기해 봤는지 알 수 없지만, 한국 기업들이 IRA를 믿고 미국에 투자했는데, 미국의 정책이 바뀌어 곤경에 처했다는 점과 미국 시장에 15% 관세까지 부담해야 한다는 점은 부당함을 충분히 주장해 볼 수 있었다고 본다."

    ※기자 주: ISD는 외국인 투자자가 상대국 정부의 정책 변경이나 규제 조치로 인해 손실을 보면 해당 국가의 법원이 아니라 제3의 국제 중재 기구에 중재를 신청해 손해배상을 청구할 수 있도록 하는 제도로, 미국 측의 강력한 요구에 따라 한미 FTA에 포함됐다.
    ▲ 한미 간 관세 협상이 31일 타결된 가운데 양국 정상 및 고위당국자의 발표 내용 중 일부 '온도차'가 드러나 주목된다. ⓒ연합뉴스

    -한국은 미국이 쌀 문제를 전혀 거론하지 않았다고 밝히는 등 농산물 개방과 관련한 양측 발표가 다소 엇갈리고 있다.

    "협상 후 협정문이 작성되더라도 양측의 해석이 달라 논쟁이 생기는 일이 허다한데 이번 합의는 협정문 형식이 아니라 주요 내용만 키워드로 나열된 형태로 보인다. 이것만으로 양측의 합의 내용을 정확히 파악하기 어렵다. 특히 쌀 문제는 1995년 WTO(세계무역기구) 농업 협정 이행 협상 당시로 거슬러 올라가 봐야 한다. 당시 한국은 쌀 시장을 개방하지 않는 대신 연간 수입 쿼터를 도입하는 '최소시장접근'(MMA, Minimum Market Access)의 의무를 수용했다. 처음에는 매년 10만 톤을 5%의 낮은 관세로 수입하기로 했는데 이후 연장돼 2005년 20만 톤, 2014년 40만8700톤까지 증가했다. 이 40만8700톤까지 저율 관세(5%)가 적용되고 초과분에는 513%의 고율 관세를 부과하도록 합의됐다.

    문제는 한국이 40만8700톤이라는 '의무수입물량'(저율관세할당물량·TRQ)을 기한 없이 계속 수입해야 한다는 점이다. 국내에서는 쌀이 남아돌아 정부가 수매해 비축까지 하는 상황인데, 매년 40만 톤 이상을 의무적으로 수입하는 문제는 반드시 개선 방안을 찾아야 한다. 이번 협상에서 이 의무 수입 물량에 대한 시한을 설정하는 등의 노력이 없었다면 아쉽게 생각한다. 트럼프 행정부가 WTO를 거의 무시함에 따라 WTO는 사실상 '간판'만 남은 기구가 돼 제대로 기능하지 못하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과거 WTO 틀에서 합의한 쌀 의무 수입 물량을 우리가 언제까지 계속 지켜야 하는지 심도 있는 대책 마련이 필요하다."

    -농축산물을 내주는 대신 자동차 산업에서 이익을 얻는, 즉 살을 내주고 뼈를 취하는 전략이 필요하다는 의견도 있다.

    "쌀 문제는 이번 기회에 전략적으로 개선할 수 있었다고 생각한다. 미국은 한국이 쌀 시장 개방에 민감하다는 점을 잘 알고 있어 한국이 쌀을 지키고자 다른 것을 양보할 수 있다고 계산했을 가능성이 높다. 우리는 협상에서 더 강하게 나가야 했다. 예를 들어 미국이 한국으로 수출하는 전체 품목 중 5% 미만의 '민감품목'(Sensitive Products)에 대해서는 별도의 관세를 부과할 권리를 확보할 수 있었다. 이렇게 좀 더 강력한 협상 전략을 펼치지 못한 점이 아쉽다."

    -한국 GDP에서 제조업이 차지하는 비중(약 28% 내외)은 농업(2% 미만)보다 압도적으로 큰데 왜 농산물을 보호하는 데 사활을 거는지 이해할 수 없다는 반응이 많다.

    "농업과 제조업 간에 이해충돌이 생기면 정치적으로 기업이 농업을 이기기는 어렵다. 예컨대 한국-칠레 FTA 협상 당시 한국은 과수농가의 요구에 따라 칠레산 사과와 배를 협정에서 제외할 것을 요구했다. 이에 칠레 측은 우리 측의 민감성을 받아들이는 대신, 자국이 민감하게 생각하는 한국산 세탁기와 냉장고도 협정에서 제외하자고 맞섰다.

    결국 협상 결과 칠레산 사과와 배, 한국산 세탁기와 냉장고 모두 협정 적용에서 제외됐다. 이런 사례를 보면 정부가 농민들에게 '제조업의 이익을 위해 농업의 이익을 양보하라'고 요구하는 것은 현실적으로 기대하기 매우 어렵다. 경제적으로 보면 사과·배와 세탁기·냉장고는 등가교환이 되지 않지만, 전국적으로 연대한 농민들의 목소리가 더 컸기에 기업이 양보할 수밖에 없었다."

    -한국이 상호관세 인하를 조건으로 미국에 3500억 달러(약 487조5500억 원)를 투자하기로 했다.

    "이는 우리나라의 한 해 정부 지출 예산(약 600조 원)과 비교해도 매우 큰 금액이다. 일본과 EU도 미국과 비슷한 형태의 투자펀드를 조성하기로 했다고 하지만, GDP 규모의 차이를 고려할 때 한국의 부담은 상대적으로 과도해 보인다."

    -미국은 '한국의 투자펀드는 미국의 통제 아래 있고, 수익의 90%를 미국이 가져 간다'고 발표했는데, 우리 정부는 '펀드는 투자·출자·대출·보증 등의 다양한 방식으로 운영될 예정이고, 3500억 달러는 상한선이며 실제 집행액은 이보다 적을 수 있다'면서 '수익의 90%는 미국에 재투자되는 개념'이라고 설명했다. 이처럼 양측의 입장이 엇갈리면서 펀드 운용의 실질적인 주도권이 누구에게 있는지 혼란이 가중되고 있다.

    "명확한 문서 형태로 합의해도 해석 차이로 논쟁이 생기는데, 이번처럼 주요 키워드만 나열된 합의라면 앞으로 펀드의 실제 조성, 운용 방식, 통제권, 수익 배분 등에서 추가적인 논의가 반드시 필요할 것이다. 현재 양측의 발표 내용만으로 합의 내용을 정확히 파악하기 어려워 혼란스럽다.

    예를 들어 2000년 마늘 파동 당시 한국과 중국 간에도 합의문의 해석을 놓고 갈등이 발생했다. 당시 합의문은 한국어와 중국어로 작성됐는데, 중요 부분에서 양측의 해석이 미묘하게 달랐다. 한국은 '몇만 톤까지 살 수 있다'는 상한선의 의미로 해석했지만, 중국은 '반드시 사야 한다'는 의무적인 의미로 해석하면서 분쟁이 발생했다. 이번에도 세부 해석에 대한 명확한 후속 논의가 없다면 과거 중국과의 마늘 파동 같은 혼란이 재발할 수 있다."

    -트럼프 대통령은 "한국은 액화천연가스(LNG) 또는 기타 에너지 제품을 1000억 달러 구매하기로 했고, 투자 목적을 위한 거액의 자금도 투입하기로 했다. 이 금액의 정확한 액수는 이재명 대통령이 2주 후 백악관에서 발표할 예정"이라고 했으나 구체적인 설명이 없는 상황이다. LNG 관련 발언을 종합하면 한국이 알래스카 LNG 사업에 투자할 가능성이 높아 보이지만, 한국 정부는 아직 이와 관련한 공식적인 언급을 내놓지 않고 있다.

    "3500억 달러의 투자 중 1500억 달러는 조선 분야의 투자라고 발표됐는데, 양측이 펀드를 조성하고 운용하는 데 있어 현재로서는 가장 원만한 합의가 이뤄질 수 있는 분야가 조선업이라고 본다. 미국이 가장 원하는 분야인 데다 한국도 해당 분야에서 충분한 인력과 기술, 노하우를 갖추고 있기 때문이다. 다만 조선업 외 다른 분야에 대해서는 추가적인 협의와 구체적인 후속 논의가 필요할 것으로 보인다."
    ▲ 한미 관세 협상이 타결된 지난달 30일(현지 시간)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워싱턴 D.C. 백악관 캐비닛 룸에서 한국 측 협상단과 함께 엄지 손가락을 치켜 세운 채 기념촬영 하고 있다. 왼쪽부터 최지영 기획재정부 국제경제관리관, 하워드 러트닉 미 상무장관, 여한구 통상교섭본부장, 김정관 산업통상자원부 장관, 트럼프 대통령, 구윤철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 제이미슨 그리어 미국무역대표부 대표, 스콧 베센트 미 재무장관, 박정성 무역투자실장, 마코 루비오 미 국무장관. ⓒ백악관 페이스북

    -한국 협상단이 미국의 협상 전략에 끌려간 것 아니냐는 지적도 나온다. 트럼프 대통령은 협상 초부터 '데드라인'을 설정하고 직접 협상에 나서는 등 비정형적 압박 전략을 구사했다. 미국은 협상 과정에서 '2+2 통상 협의'를 이메일로 취소했고, 한국 측은 초청 형식이라지만 하워드 러트닉 미국 상무부 장관의 자택까지 찾아갔다.

    "동서양을 막론하고 상대방을 집으로 초대해 식사를 대접하는 것은 최대한의 예우다. 하지만 비즈니스 협상을 위해 상대방의 집을 직접 찾아가는 것은 전혀 다른 이야기다. 과거 미국산 쇠고기 협상 당시 수입 허용 기준을 '생후 30개월 미만 소의 쇠고기'로 제한하는 조건을 결정했던 경험이 있다. 당시 협상 마지막 단계에서 협상 장소를 워싱턴 DC가 아닌 메릴랜드주의 작은 마을인 콜럼버스로 정했다. 양국 협상팀이 모두 호텔에 짐을 풀고 동등한 여건에서 협상해 보자는 의도였다. 결국 상대방은 짐을 싸서 콜럼버스로 찾아왔고 협상은 잘 진행됐다.

    협상은 상대의 페이스에 휘말리면 피곤해지기 마련이다. 시한이 정해지면 압박감을 받을 수밖에 없다. 그런데 현재 많은 나라가 미국이 정한 협상 페이스에 따라 끌려가는 상황이다. 그만큼 세계 교역 질서가 바뀌고 있고, 미국이라는 나라도 변하고 있다. 그런 나라들이 내심 불만이 있어도 미국의 페이스에 끌려가고 있다. 중장기적으로는 이들 국가가 패권을 다투는 미국이나 중국이 없는 그룹에서 새로운 형태의 협력 관계를 모색할 것으로 보인다. 가까운 예로 CPTPP(환태평양경제동반자협정)가 있는데, 한국의 가입 문제도 적극적으로 검토할 필요가 있다고 본다."

    -한미 정상회담에서도 정상 간 이견이 노출될 가능성에 대한 우려가 제기된다.

    "일반적으로 정상회담에서 세부적인 숫자까지 다루지 않는다. 다만 트럼프 대통령의 독특한 협상 스타일을 고려하면 지켜볼 필요가 있다. 한미 정상회담에서는 양국 간 기존 합의를 준수하자는 원칙적 확인과 함께 주로 안보 관련 의제가 논의될 것으로 보인다."
    ▲ 2006년 7월 10일 오전 장충동 신라호텔에서 한미 자유무역협정(FTA) 2차협상이 시작돼 협상회의 시작전 김종훈 한국측 수석대표(오른쪽)와 웬디 커틀러 미국측 수석대표가 악수로 인사를 나누고 있다. ⓒ뉴시스

    -마지막으로 하실 말씀이 있다면.

    "저는 한미 FTA 협상 수석대표를 지냈고, 이어 통상교섭본부장으로서 37년 공직 생활을 마감했다. 협상 과정뿐 아니라 국회의 비준 동의 과정에서도 엄청난 진통과 시련을 겪었다. 당시 야당이자 현재의 집권 여당인 민주당이 다양한 논리를 내세워 격렬히 반대했던 것이 기억난다. 진통 끝에 2012년 3월 발효된 한미 FTA는 양국 간 교역과 투자의 확대, 상호 시장 개방에 크게 기여했고, 한미동맹을 더욱 견고히 하는 데 큰 역할을 했다.

    하지만 이제 세계 교역 질서가 바뀌고 미국의 대외 통상 정책도 크게 변하면서 이번 한미 합의로 인해 한미 FTA는 사실상 종말을 맞게 됐다. 두 개의 합의가 양립될 수 없기 때문이다. 결국 한미 FTA는 인간으로 치자면 이제 막 초등학교를 졸업할 나이인 13년 만에 생을 마감하게 된 것이다. 애석하게 생각한다. 현재 세계 교역 질서를 고려할 때 이와 같은 형태의 한미 협정이 다시 성사되기는 무망(無望)해 보인다."

    ◆김종훈 전 통상교섭본부장은.

    김 전 본부장은 1952년 대구에서 태어나 1974년 제8회 외무고시에 합격한 뒤 주프랑스·캐나다·미국 대사관 등 주요 공관에서 외교관으로 경력을 쌓았다. 특히 경제외교와 통상 분야에서 역량을 인정받아 2005년 부산 아시아태평양경제협력체(APEC) 정상회의 준비팀에서 탁월한 업무능력을 보였고, 이를 계기로 2006년 한미 FTA 협상의 한국 측 수석대표로 전격 발탁됐다.

    이후 2007년 장관급인 외교통상부 통상교섭본부장을 맡아 한미 FTA 협상 타결뿐 아니라 한-EU FTA 협상 등 다수의 성과를 냈다. 통상교섭본부장 퇴임 후에는 제64차·66차 유엔 아시아태평양경제사회이사회 총회 의장으로도 활동했고, 2012년 제19대 총선에서 새누리당(현 국민의힘) 소속으로 서울 강남을에 출마해 국회의원을 지냈다. 현재는 글로벌 통상 여건 변화에 대응하기 위한 정책적 대안을 모색하는 한편, 한미동맹재단 이사로 활동하면서 한미동맹 강화를 위한 민간 네트워크 구축에 힘쓰고 있다.
조문정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