李정부의 두 얼굴 … 관세전쟁 총동원하며 위헌 소지 '노란봉투법' 강행美 협상 핵심 1500억弗 '조선 펀드' … 정부가 나서 '탈 조선' 이정표美 제조업 재건에 3500억弗, '韓 투자 위축' 부메랑 … 조선 넘어 '산업 공동화' 우려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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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전세계에서 유례를 찾아볼 수 없는 두 번(1960~1980년, 1980~2000년대 )의 초고도 성장을 이뤄 낸 대한민국. 자원이 부족해 수출만이 살길이었던 만큼, 우리나라 대통령들은 스스로를, 또 기업인을 경제대통령이라 떠받들며 두 번의 기적을 이뤄냈다.

    기업인들의 활약상도 눈부셨다. 정주영 현대그룹 창업회장을 주축으로 기업인들은 가능성이 희박했던 '88서울올림픽' 유치에 정부 대신 뛰어들었고, 유력 후보국 일본 나고야를 제치고 전세계에 '서울'을 알렸다. 당시 '불가능을 가능케 한 스토리'는 전 국민에게 '우리도 할 수 있다'는 자신감과 감동을 선사했다. 이를 계기로 극동아시아 변방 '국제사회 원조받던 작고 가난한 나라', '헐벗고 굶주려 쓰레기통을 뒤지는 나라'가 아닌, '당당히 올림픽을 개최할 수 있는 나라' 대한민국으로 국제적 신분이 바뀌는 순간에 기업인이 있었다.

    아버지에 이어 정몽구 현대차그룹 명예회장은 허동수 GS칼텍스 명예회장과 함께 여수세계박람회(여수엑스포) 유치 및 준비에 기여한 공로로 각각 무궁화장(국민훈장 최고등급), 금관장(문화훈장 최고등급)을 받았다. 당시 조직위원회 명예위원장이자 여수 명예시민이었던 정 회장은 유치가 확정된 후 건설 현장까지 직접 찾아 점검하는 등 각별한 애정을 쏟았다. 

    숨은 공로자로 허동수 회장은 절대 빼놓을 수 없다. 허 회장이 아니었다면 여수엑스포 유치는 무산될 수도 있었다. 당시 경쟁국 모로코는 중동 국가로 그들은 서로를 '형제의 나라'라 부른다. 모로코에 100% 표를 몰아주는 것은 너무도 당연했다. 하지만 Mr. Oil(미스터 오일)로 불린 허 회장은 석유를 기반으로 한 중동국가와의 오랜 관계를 통해 상당수 표를 가져왔다. 당시 허 회장은 "서로를 형제라고 부르는데, 우리(여수)가 표를 얻어 온 것으로 전해지면 큰일 난다"며 조용히 한표 한표를 끌어왔다.

    서울 올림픽 이후 30년, 그것도 선진국들만의 리그였던 동계올림픽의 평창 유치는 대한민국을 개발 도상국에서 완벽하게 선진국 대열에 올린 빅 이벤트였다. 사실 스포츠에서 이건희 선대회장과 삼성은 뗄래야 뗄 수가 없다. 선진국 대한민국을 전세계에 알린 일등공신이다. 두번의 실패에 이어 3번째 도전에서 '평창'이 호명되는 순간 이 회장은 눈물을 보였고 국민도 함께 울었다.

    이번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포문을 연 관세전쟁 중심에도 기업인들이 있었다. 이재용 삼성전자 회장은 물론, 정의선 현대차그룹 회장, 김동관 한화그룹 부회장이 막판 총력전이 펼쳐지는 미국과의 관세 협상에 힘을 보태기 위해 미국으로 날아갔다. 이를 통해 미국이 한국에 적용한 상호관세율을 '25%에서 15%'로 인하하는 무역 합의 도출을 지원했다.

    이처럼 대한민국 근대사에 있어 정부가 정치, 외교적으로 풀기 어려운 여러 국책사업 추진에 있어 기업인의 활약상은 셀 수 없을 정도다. 상황에 따라, 필요에 따라 또 성과에 따라 기업인은 경제대통령으로 불렸다.

    하지만 내우외환(內憂外患)을 겪고 있는 작금의 시대에 경제대통령 대접받는 기업인은 보이지 않고, 교도소 담장 위를 달리며 시련의 계절을 보내고 있는 기업인만 보인다. 미국과의 관세 협상이 사실상 체결되면서 외환은 큰 고비는 넘겼다지만, 국내 실상은 근심만 쌓여간다.

    취임 이후 이재명 대통령은 잇따라 기업인들을 만나면서 '경제 핵심은 기업'임을 강조했다. 하지만 여당인 민주당이 기업 경영에 부담을 주는 법안을 지속해서 내놓으면서 진정성에 의구심을 갖게 한다. 그동안 기업은 경제단체를 통해  '상법 개정안'과 '노란봉투법', '법인세 인상' 등 이른바 '반기업 3법'의 재검토를 요청하고 있지만 강행되고 있다.

    지난 22일 '이사의 충실의무 확대' 등을 담은 상법 개정안이 공포된 지 1주일도 지나지 않아 추가 상법 개정안이 법안소위에서 처리됐고, 노조법 개정안 역시 하루 만에 법안소위와 전체 회의를 연달아 통과했다. 기업활동을 옥죄는 규제 입법을 연이어 쏟아내는 것은 기업들에 극도의 혼란만 가져올 수 있다.

    특히 노조법 개정안의 경우 사용자 범위가 확대되고, 기업 고유의 경영활동까지도 쟁의 대상에 포함되면서 '파업 만능주의' 조장은 물론, '노사관계 안정성 훼손' 등 부작용이 크다.

    실제 이번 미국과의 협상에서 가장 큰 부분을 차지하는 1500억달러 규모의 '조선 협력 전용 펀드' 역시 관세전쟁의 가장 큰 희생양이다. 이번 협상으로 우리의 조선 산업 수주가 크게 늘어날 것이라는 기대감이 나오지만, 신규 투자가 미국을 향하고 선진 조선 기술이 이전되면 조선산업의 주도권이 미국으로 넘어가지 말라는 법이 없다.  

    대한민국 조선산업은 트럼프 대통령 당선 때 조선업 협력을 언급한 바와 같이 세계 1~3위 규모의 조선소를 포함해 대형 LNG운반선 등 고기술 선박 건조에서 세계 최고 수준의 경쟁력을 갖고 있다. 그러나 전체 조선업의 규모로 본다면 이미 상위 10개 조선소 중 6개가 중국기업이고, 지난해 기준 세계선박 수주 점유율은 한국 15%, 일본 7%에 비해 중국은 70%로 압도적이다.

    실제 2차대전 이후 '미국→유럽→일본→한국→중국'으로 패권이 계속 이동하면서 패권 국가들이 경쟁력을 잃어버린 만큼, 우방국들의 해군력 유지를 위해서는 대한민국의 조선산업 의존이 절대적이다. 게다가 트럼프 대통령까지 나서 협력을 요청하는 상황을 고려한다면 국내 조선업에 대한 노조법 규제 영향에 대해서는 경제적 측면과 안보적 측면 등 다양한 각도에서 신중한 접근이 절실하다.

    이런 상황에서 노조법이 성급히 시행되면 중국과 치열하게 경쟁 중인 한국 조선업계는 비용은 물론 수백, 수천 하청 노조 등을 관리해야 하는 부담에 시달릴 수밖에 없어진다. 특히 대기업인 빅3는 몰라도 기나긴 침체를 거쳐 이제 겨우 정상화에 진입한 중형조선사들 먼저 설 자리를 잃게 된다. 게다가 단체행동 사유에 관한 모호한 규정으로 노사간 극한 대립도 피할 수 없게 된다. 약자를 보호하고 발전적인 노사관계 형성을 도모하자는 '노란봉투법'의 당초 취지와도 어긋난다.

    이처럼 조선업의 경우 노조법 개정에 가장 민감한 산업인데, 정부가 나서서 국내 조선산업의 이정표를 '미국'으로 설정한 셈이 됐다. 자칫 '조선업 공동화'를 넘어 '제조업 공동화'로 이어질 가능성이 크다. 트럼프와 협상을 위해 내놓은 미국 투자 3500억달러(약 500조원)는 결국 '국내 투자 위축'으로 되돌아올 수밖에 없다.

    트럼프 미국과의 관세전쟁의 마무리는 결국 기업인들의 몫으로 남았다. 정부의 협상 이행도 벅찬데… 친노조 성향이 강력하게 반영된 입법들로 더 힘들어질 게 뻔하다. 세계 최강국과의 전쟁이 이제 막 끝났다. 분위기 쇄신을 위해서라도 정부와 국회가 잠시 입법 속도를 줄이고 좀 더 대화에 나서야 한다. 이번 관세 위기로 모처럼 대통령과 기업인이, 정부와 기업이 합심해 한 고비를 넘겼다. 잠시만이라도 기업인들을 경제대통령으로 대우를 해줘야 할 때다.
최정엽 산업에디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