격노 → 외압 지시 → 실행 경로 조각 맞추기격노 부인한 조태용, 진술과 정황은 따로 논다이종섭·임기훈과 통화한 조태용…내용 안갯속"채상병은 관심 없는 사안"…조태용의 말말말법조계 "尹 '격노' 넘어 '지시' 입증이 핵심"
  • ▲ 조태용 전 국가정보원장이 29일 직권남용 권리행사 방해 혐의 조사를 받기 위해 서울 서초구 특검 사무실에 출석하고 있다. ⓒ연합뉴스

    순직 해병 수사 외압 의혹을 수사 중인 이명현 특별검사팀이 이른바 'VIP 격노 회의'의 실체를 향한 본격적인 퍼즐 맞추기에 들어갔다.

    윤석열 전 대통령의 격노가 실제 수사 외압으로 이어졌는지, 그 실행이 누구를 통해 이뤄졌는지를 규명하기 위해 특검은 흩어진 단서를 맞춰 사건의 전체 흐름을 재구성하겠다는 입장이다.

    그 퍼즐의 중심에는 조태용 전 국가정보원장이 있다. 그는 당시 국가안보실장 자격으로 채상병 사건 초동 수사 결과가 보고된 대통령실 회의에 참석했다.

    윤 전 대통령의 당시 반응과 구체적인 지시가 특검 수사에서 밝혀질 수 있을지 주목된다. 이를 위해 조 전 원장이 VIP 격노를 단지 목격한 것인지, 아니면 수사 외압에 공모한 것인지가 드러나야 한다. 

    ◆尹 격노 직후 … 조태용, 대통령과 무슨 말 나눴나

    순직해병 특검은 29일 오전 조태용 전 국가정보원장을 직권남용 권리행사 방해 혐의 피의자 신분으로 소환해 조사 중이다.

    특검 사무실 앞에서는 해병대 예비역 연대가 "조태용은 진실을 말하라"고 외치며 시위를 벌였다. 조 전 원장은 '대통령이 이종섭 전 국방부 장관과 통화한 것을 봤느냐'는 취재진 질문에 "성실히 조사받겠다"고만 답하며 말을 아꼈다.

    조 전 원장은 2023년 7월 31일 오전 11시 대통령실 수석비서관 회의에서 임성근 전 해병대 1사단장이 혐의자로 적시된 채상병 사건 초동 수사 결과가 보고되던 당시 국가안보실장 자격으로 배석했다.

    당시 회의에서 임기훈 전 국방비서관이 채상병 사건 수사 결과를 보고하자마자 윤 전 대통령이 격노한 뒤 오전 11시 54분 이 전 장관에게 전화를 걸어 경찰 이첩 보류와 언론 브리핑 취소를 지시했다.

    조 전 원장은 회의 직후 임 전 비서관과 단둘이 남아 윤 전 대통령과 별도 대화를 나눈 것으로 확인됐다. 

    특검은 이 자리에서 비공식적인 수사 외압 지시가 이어졌을 거라고 보고 있다. 대통령의 격노 → 수사 외압 지시 → 실행 경로 → 관련자 행적이라는 일련의 흐름을 추적 중인 셈이다.

    또한 조 전 원장은 2023년 8월 2일 해병대 수사단이 사건 기록을 경찰에 이첩한 날에도 임 전 비서관 약 19초간 통화한 것으로 파악됐다. 이 통화로 인해 조 전 원장이 수사 자료 회수 과정에 개입했을 가능성에 무게가 실리고 있다.

    같은 날 조 전 원장은 이 전 장관뿐 아니라 신범철 당시 국방부 차관과도 1분 넘게 통화한 것으로 나타났다.

    문제의 대통령실 회의에는 ▲윤석열 전 대통령 ▲김용현 전 국방부 장관 ▲조태용 전 국가안보실장 ▲김태효 전 국가안보실 1차장 ▲임기훈 전 대통령실 국방비서관 ▲이충면 전 국가안보실 외교비서관 ▲왕윤종 전 국가안보실 경제안보비서관 등 7명이 참석한 것으로 특검은 파악 중이다.

    이 가운데 현재까지 김태효 전 안보실 1차장, 이충면·왕윤종 전 비서관 등 3명이 특검 조사를 받았다. 이들은 지난 2년간의 침묵을 깨고 당시 윤 전 대통령의 격노 사실을 인정했다.

    조 전 원장의 휴대전화는 지난 11일 압수돼 포렌식 절차에 들어간 상태다. 특검은 통화 내역과 메시지 기록 등을 분석해 윤 전 대통령의 의중이 실제 수사 방향에 어떻게 영향을 미쳤는지를 입증할 단서를 찾을 예정이다.
    ▲ 조태용 전 국가정보원장(전 국가안보실장)이 국회 국정감사에서 의원들의 질문에 답하고 있다. 2023.11.07. ⓒ이종현 기자

    ◆조태용, 격노도 이첩도 몰랐다?…진술의 모순들

    조 전 원장은 그동안 'VIP 격노설'을 일관되게 부인해 왔다. 결국 이번 특검 조사에서 윤 전 대통령 격노 여부와 구체적 지시 내용이 다시 검증대에 오르게 됐다.

    2023년 8월 30일 국회 운영위원회에 출석한 조 전 원장은 "임기훈에게 (사건 이첩 사실에 대해) 보고는 받았던 것 같은데, 대통령에게는 보고하지 않았다"고 진술했다. 

    임 전 비서관도 "언론을 통해 이첩 사실을 본 것으로 기억하는데, 특별히 누구한테 보고받은 적 없다"고 했다. 하지만 당시에는 어떤 언론도 이첩 사실을 알고 보도한 바 없다.

    또한 조 전 원장은 당시 "채 상병 사건 이첩은 관심도 없는 사안"이라고 선을 그었다. 그러나 국가안보실 2인자였던 임종득 당시 안보실 2차장이 귀국 직후 '이첩 강행의 전후 사정'을 따로 파악한 사실은 이 주장과 배치된다.

    특검은 특히 2023년 7월 31일 오전 11시에 열린 대통령실 회의에서 ▲윤 전 대통령의 격노를 조 전 원장이 직접 목격했는지 ▲그 격노가 어떤 형태의 지시로 이어졌는지 등을 추궁할 방침이다.

    ◆정점 향하는 특검 칼끝…법조계 "격노 넘어 '지시' 입증이 핵심"

    법조계는 이번 소환을 특검이 '윗선 개입' 수사에 본격 착수한 신호로 해석한다. 이제는 윤 전 대통령의 '격노'가 실제 수사 외압 '지시'로 이어졌는지를 밝히는 것이 특검 수사의 핵심이라는 평가가 나온다.

    조 전 원장이 피의자 신분으로 소환된 만큼 특검 수사는 이제 윤 전 대통령이라는 정점으로 향할 수밖에 없다는 것이 법조계의 중론이다. 부장검사 출신 변호사는 "이 정도 수사 진척도면 윤 전 대통령 조사는 사실상 예정된 수순"이라고 말했다.

    회의 참석자들이 윤 전 대통령의 격노를 2년 만에 공식 인정한 데다, 조 전 원장의 휴대전화가 포렌식 단계로 접어들면서, 특검은 대통령의 직접 개입 여부를 규명하는 단계로 접어들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다만 윤 전 대통령의 격노가 수사 외압 지시로 이어졌다는 인과관계가 부족하다는 지적도 나온다. 이에 따라 조 전 원장이 단순히 VIP의 격노를 목격한 것인지, 수사 외압에 공모한 것인지를 밝혀내는 것이 중요하다는 의미다.

    최건 법무법인 건양 변호사는 "윤 전 대통령이 단순히 화를 냈다는 것만으로는 책임을 묻기 어렵다"며 "조 전 원장이 VIP 격노를 인정하더라도 외압 지시로 이어졌다는 인과관계를 특검이 밝혀야 하는 상황"이라고 말했다.

정혜영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