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장 설득 과정 팽개친 정책 몰아붙이기국정 운영 정답 가지고 있단 착각 버려야책임 못 질 만기친람… 국민 모두의 피해로
  • ▲ 국회를 찾은 이재명 대통령이 김민기 사무총장의 안내를 받으며 입장하고 있다ⓒ이종현 사진기자

    이 대통령이 28일 금융당국 수장들을 불러 업무를 세세히 지시하는 관치 행보를 보이자 그동안 상승세를 타던 주요 금융그룹 주가가 7% 안팎 주저 앉았다. 한편에선 상법 개정을 통해 주주 가치 제고를 압박하면서도, 이자 놀이에 매달리지 말라는 모순적 상황을 대통령 스스로 연출했다. 시장이 기업 밸류업과 포용 금융 사이에서 적절한 포지션을 찾아야 할 시간도 주지 않고 대통령이 냅다 지침을 내려버리자 시장이 예민하게 반응한 것이다.

    앞서 이 대통령이 찾은 SPC삼립 시화공장에서의 행보도 비슷하다. “주 4일, 하루 12시간씩 밤샘 근무하는 게 가능한 일이냐”며 공개 질타했다. SPC는 불과 이틀 만에 ‘8시간 초과 야근 전면 폐지’라는 결정을 발표했다. 속전속결이다. 하지만 이조차 어떤 결과를 가져올지는 미지수다. 기업이 자율적 개선이 아닌 대통령 질책에 따라 움직였다는 점에서 시장 거버넌스의 빈자리를 드러낸다. 변화가 지속가능한지도 불분명하다.

    산업계의 거센 반발에 직면한 노란봉투법(노조법 2·3조 개정안)은 더 극심한 진통을 예고한다. 이 대통령이 "미뤄서는 안될 일"이란 말 한마디에 여당은 전광석화처럼 움직였고, 하루 만에 상임위를 통과했다. 오전 당정 간담회, 오전 법안심사소위, 오후 전체회의가 연이어 열리며 법안은 일사천리로 처리됐다. 하도급 노동자의 원청 교섭권 보장, 손해배상 청구 제한, 파업 인정 사유 확대, 심지어 소급 면책 조항까지 포함했다. 구조조정이나 공장 해외 이전도 파업 사유가 될 수 있고 과거 쟁의행위로 인한 손해도 면책될 수 있다.

    이 역시 시장을 향한 설득의 과정은 없었다. 주한유럽상공회의소(ECCK)는 “노조 교섭 범위가 모호해지고 형사처벌 위험이 커지면 해외 기업들이 한국에서 철수할 수 있다”고 경고했지만, 이 대통령이 가진 정답에 대한 확신은 꺾지 못할 것으로 보인다. 대통령이 결정하면 그게 법이 되고, 금융·제조·노사 현안을 가리지 않고 대통령 발언이 정책과 기업 결정으로 직결됐다. 시장의 조율과 숙성 과정은 보이지 않았다.

    무수저 소년공으로 요약되는 불우했던 과거에 가려져 있지만, 이재명 대통령의 정치 히스토리는 그야말로 성공에 성공을 거듭한 케이스다. 두 번의 성남시장 그리고 경기도지사, 초선 의원으로 당대표 연임까지. 여기에 대선 역대 최다 1728만표로 당선된 이후 무소불위의 의회권력까지 틀어쥔 이 대통령의 정치 역정은 뒤틀림 없이 성공을 거듭한 보기 드문 입지전적 스토리다.

    실패를 겪지 않은 정치 인생 탓인지 몰라도 국정 운영에 있어서 유독 속도감이 두드러진다는 우려가 많다. 소년공 시절 겪은 산업재해, 변호사를 지내며 겪은 세상 굴곡에 대한 모든 정답을 가지고 있는 듯하다. '국정 전반에 이재명 밖에 안보인다'는 말이 벌써부터 나오는 이유를 곱씹어볼 필요가 있어 보인다.

    실패를 겪지 않은 지도자가 늘 간과하는 문제가 이해당사자를 설득하는 일이다. 자신이 가진 '정답'이 최선이란 확신을 가지다 보니 시장의 반응을 얕잡아 보는 실수를 저지르곤 한다. 설령 밀어붙인 정책이 일견 합리적이라 할지라도 경험에만 의존한 판단은 반대급부에서 벌어지는 부작용을 간과하기 마련이다.

    숙성되지 않은 일방적 정책은 목적이 선하더라도 결과가 정당해지지 않는다. 무엇보다 그 방식이 질책과 압박으로 귀결된다면 시장의 예측 가능성은 사라진다. 정부가 앞장서 모든 걸 결정하는 구조는 단기적 효과는 낼지 몰라도 장기적 신뢰를 무너뜨린다. 대통령 한마디가 곧 정책 신호로 해석되고 시장은 그 순간 출렁인다. 금융사 주주는 하루 만에 수조 원의 평가손실을 맞았고 기업은 질책을 피하기 위해 당장 구조를 고친다. 국회마저 여론에 쫓겨 속도전에 나선다.

    시장과 정부가 함께 책임지는 구조가 아니라 대통령의 의중이 곧 법과 정책으로 이어지는 흐름이다. 문제는 그 다음이다. 대통령이 말하는대로 꾸려진 국정운영에 대한 결과는 누가 책임지나. 주주가치 제고와 포용 금융 사이에서 어느 것 하나 성과를 내지 못한 금융지주의 제자리걸음을 대통령이 책임질 수 있나. 야간 근무에 호통쳤지만, 또다시 일어날지 모를 산업재해 앞에서 '내가 끝까지 챙기지 못한 책임'이라 스스로를 탓할 수 있을까. 더 나아가 독불장군식 상법 개정으로 해외 기업들이 한국에서 철수한 뒤에도 이 대통령은 '내가 정답'이라고 고집할 수 있을지 걱정이 앞선다.
안종현 산업1부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