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여정, 李대통령 '美 혈맹' 발언에 반발"한미동맹·한미연합훈련, 선임자와 같아""한국과 마주앉을 일도 논의할 것도 없다"8월 한미연합훈련이 남북관계 고비될 듯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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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북한 김정은이 지난 7월 24일 당·정부, 무력기관의 지도간부들과 함께 '반제계급교양의 거점'인 신천계급교양관을 돌아봤다고 조선중앙TV가 26일 보도했다. 이날 참관에 김여정 노동당 부부장(붉은 원안)이 동행한 모습이 북한TV 화면에 방영됐다. ⓒ북한 조선중앙TV/연합뉴스
북한은 이재명 정부 출범 54일 만인 28일, 남북관계 개선과 한미동맹 강화 기조가 양립할 수 없다는 공식 입장을 밝혔다. 이재명 정부는 이종석 국가정보원장과 정동영 통일부 장관을 중심으로 지속적으로 대북 유화 메시지를 보내왔지만 북한은 일관되게 냉담한 태도로 응답하고 있다. 일각에서는 북한이 지속적으로 대화 제의를 거부하며 냉담한 태도를 유지할 경우, 과거 문재인 정부가 겪었던 것과 같은 모욕적 상황이 재연될 수 있다는 우려를 제기한다.
김정은의 동생인 김여정은 이날 조선중앙통신을 통해 '조한(남북)관계는 동족이라는 개념의 시간대를 완전히 벗어났다'는 담화를 발표하며 이재명 정부에 대한 첫 공식 반응을 내놓았다.
김여정은 대북 확성기 방송 중단, 전단 살포 금지, 북한 개별 관광 검토 등 이재명 정부의 대북 유화 조치들에 대해 "성의있는 노력"이라고 평가하면서도, "이제 와서 감상적인 말 몇 마디로 자초한 결과를 뒤집을 수 있다고 기대했다면 엄청난 오산"이라고 강력히 비난했다.
특히 정동영 장관의 취임사에서 나온 '강 대 강의 시간을 끝내고 선 대 선의 시간을 열자', '다시 화해와 협력의 시대를 열자'는 메시지와 이재명 정부가 오는 10월 경주에서 열리는 아시아태평양경제협력체(APEC) 정상회의에 김정은 초청을 검토하는 것에 대해 "헛된 망상"이라고 일축했다.
김여정은 또한 윤석열 정부를 포함한 역대 한국 정부를 겨냥해 "'민주'를 표방하든, '보수'의 탈을 썼든 한국은 절대로 화해와 협력의 대상으로 될 수 없다는 중대한 역사적 결론에 도달했다"고 주장했다. 이어 "동족이라는 수사적 표현에 구속돼 매우 피곤했던 역사와 결별했다"고 강조하며 "서울에서 어떤 정책과 제안이 나오든 흥미가 없고 한국과 마주앉을 일도 없다"고 못 박았다.
김여정이 밝힌 이번 담화의 강경한 내용은 북한이 이미 과거 문재인 정부 당시에도 보였던 극단적 비난과 거부의 태도를 상기시킨다. 앞서 문재인 정부 당시에도 북한은 극단적인 비난과 함께 남북대화 제의를 거절한 바 있다. 문 대통령은 2019년 2월 하노이 미북 정상회담 결렬 이후 남북관계가 급격히 경색된 가운데서도 그해 8월 15일 광복절 경축사를 통해 한반도 평화 프로세스 재개와 남북협력 의지를 강조하며 북한에 대화를 제안했다.
그러나 같은 날 북한의 대남기구인 조국평화통일위원회(조평통)는 담화를 통해 "삶은 소대가리도 앙천대소할 노릇"이라는 원색적인 표현을 사용하며 문 대통령의 '평화경제' 구상과 대화 제의를 강하게 비난했다. 조평통은 한국 정부의 제안을 '아전인수격 궤변'이라 규정하고, 하노이 회담 결렬 책임을 남측에도 돌리며 문 대통령의 중재 역할에 대한 불신과 불만을 공개적으로 드러낸 바 있다.
북한의 냉담한 반응에도 불구하고 이재명 정부가 일방적으로 대북 유화정책을 지속할 경우, 과거와 같은 모욕적 상황이 재연될 가능성이 있다는 지적이다.
김여정은 또 이재명 정부가 표면적으로는 관계 개선을 내세우면서도 "한미동맹에 대한 맹신과 우리와의 대결 기도는 이전 정부와 조금도 다르지 않다"고 평가하면서, 한미 연합군사훈련 중단과 통일부 해체 등 적대적 두 국가 관계 확립을 사실상 압박했다.
양무진 북한대학원대학교 총장은 "북한은 이재명 정부가 이전 정부와 달라지지 않았다는 근거로 한미동맹을 꼽고, 대적관계의 상징으로 한미군사훈련을 거론했다"며 "다음 달 한미연합훈련이 남북관계의 중대 분기점이 될 수 있다"고 전망했다.
홍민 통일연구원 선임연구위원은 "북한이 이재명 대통령의 한미동맹 중시 기조를 재확인한 이후, 남북관계 개선과 한미동맹 강화가 동시에 진행될 수 없다는 입장을 공식화했다"며 이는 북한이 핵무기 고도화를 통한 대남·대미 억제력 유지에 장애가 되는 '동족관계' 개념을 탈피하고 민족적 특수 관계를 명분으로 한 한국의 외교적 개입 등 군사적·외교적 부담을 줄이기 위한 전략이라고 분석했다.
한편 이 대통령은 지난 27일 정전협정 체결 72주년 기념식에서 권오을 국가보훈부 장관이 대독한 기념사를 통해 "전쟁 발발 직후 신속히 유엔안보리 결의를 이끌고 유엔군사령부를 창설해 대한민국의 자유와 평화를 지킨 미국은 피를 나눈 혈맹이자 가장 강한 동맹"이라고 강조한 바 있다.
한편, 통일부는 김여정 담화에 대해 "북한이 이재명 정부의 대북정책 방향을 예의주시하고 있으며 남북 간 불신의 벽이 매우 높다는 점을 보여준 것"이라며 "정부는 북한의 반응에 일희일비하지 않고, 화해와 협력의 남북관계를 만들고 한반도의 평화 공존을 실현하기 위한 노력을 차분히 일관되게 추진할 것"이라는 입장을 밝혔다.

조문정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