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형배 전 대행 발언 전적으로 공감 밝혀헌재의 '우리법연구회 쏠림' 현실화조희연 전 교육감·이재명 대통령 정치생명 살려줘"좌경화된 헌재, 국민 신뢰 받기 어려워"
  • ▲ 김상환 헌법재판소장 후보자 ⓒ연합뉴스 제공

    22일 오전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헌법재판소 재판관 후보자를 겸하는 김상환 헌법재판소장 임명동의에 관한 인사청문특별위원회 전체회의에서 여야가 김상환 헌재소장 후보자 인사청문보고서를 채택했다. 사실상 후보자의 임명을 인정한 것이다. 다만 보고서 채택이 '적격' 판정만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다. 

    김 후보자가 헌재 소장으로 임명될 수 있는 마지막 절차적 관문을 넘은 상황에서 우리법연구회·국제인권법연구회 출신이 헌재의 44.4%를 차지하게 될 경우 정치적 균형이 무너질 것이란 우려가 나오고 있다. 

    특히 김 후보자는 전날 이뤄진 국회 인사청문회에서 문형배 전 헌재소장 권한대행의 "비상계엄 해제는 5·18 정신 덕분" 발언에 전적으로 공감한다고 밝히며 정치적 편향성 논란에 불을 지폈다. 

    ◆ "5·18 정신 덕분에 계엄 막았다" 발언에 "전적으로 공감"

    김 후보자는 전날 청문회에서 문 전 권한대행의 발언에 대한 의견을 묻자 "전적으로 공감한다"며 지지를 표명했다. 

    문 전 권한대행은 지난달 한 토크콘서트 강연중 지난해 비상계엄 조기 해제 상황을 두고 "이번 비상계엄이 조기에 해제된 것은 5.18 정신이 있었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며 "비상계엄이 선포되고 국회 주변을 시민들이 둘러 쌓았다. 그리고 장갑차 밑에 드러 누웠다. 그 사람인들 무섭지 않았겠나. 그러나 5.18 정신이 있었기 때문에, 1987년 민주항쟁이 있었기 때문에 비상계엄을 막아낼 수 있었다"라고 말했다. 

    김 후보자는 개헌 시 헌법 전문에 5·18 정신을 수록하는 데 대해서도 "우리 헌법 전문에 수록된 역사적 사실과 공통된 사건에 대해 수록하는 것에 찬성한다"며 "5.18 민주화 운동은 4.19 민주 이념과 성격이 공통돼 헌법 전문에 둬 교훈으로 삼을 수 있어야 한다"는 입장을 적극적으로 내비쳤다. 

    5.18 민주화운동을 헌법 전문에 수록하자는 논의는 그동안 몇 차례 있었지만 그간 좌파,우파간 인식 차이와 국민적 합의 부족 등의 이유로 이뤄지지 않았다. 좌파 진영의 경우 민주주의 가치 계승을 위해 헌법에 명시해야 한다고 주장해온 반면 우파진영은 역사적 평가를 정치화할 수 있다는 우려로 인해 보수적인 접근을 해야 한다는 의견을 유지해왔다. 
    ▲ 헌법재판소 ⓒ연합뉴스 제공

    ◆헌재의 '우리법연구회 쏠림' 현실화

    김 후보자가 헌재소장이 되면 헌법재판소 재판관 9명 중 4명이 진보 성향 학술단체인 국제인권법연구회·우리법연구회 출신으로 채워진다. 비율로는 44.4%에 달한다. 

    대법원의 경우 대법원장 포함 14명 중 2명만 우리법연구회 또는 국제인권법연구회 출신으로 전체 비중의 14%에 불과한 것과 대조된다. 소장이 국제인권법연구회 출신인 상황에서는 특정 성향의 의견이 헌재에서 과반을 차지할 가능성이 크다는 지적이다.

    특히 더불어민주당이 현재 추진 중인 '재판소원' 제도 도입은 이 같은 쏠림 현상에 대한 우려를 더욱 키우고 있다. 재판소원이란 헌재가 법원 판결을 다시 심사하는 절차로, 사실상 4심제가 되는 것이다. 

    이 제도가 도입되면 대법원의 재판 결과조차 특정 이념 성향에 기울어진 헌법재판소가 다시 판단하는 상황이 벌어진다.

    우재준 국민의힘 의원은 "헌재는 대법원과 달리 정치적 압박에 취약한 구조다"라며 "정치적 사법기관이 대법원 판결을 다시 심사한다면 국민의 사법 신뢰가 무너질 수 있다"고 지적했다. 

    조배숙 의원도 "이미 법원 내에서 어떤 사건이 배당되면 당사자들이 가장 민감해하는 게 '이 판사가 우리법연구회 출신인가, 국제인권법연구회 출신인가' 여부"라며 "판결 결과에 특정 이념 성향이 크게 작용하고 있는 게 현실"이라고 강조했다.

    법조계 관계자는 "이 같은 흐름이 굳어지면 헌재가 헌법 수호기관이 아니라 정치적 투쟁의 장으로 전락할 우려가 크다"고 경고했다.
    ▲ 김상환 헌법재판소장 후보자가 지난 21일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인사청문회에서 의원 질의에 답하고 있는 모습. ⓒ연합뉴스 제공

    ◆ 김상환, 진보 성향 판결 잇달아 … "헌재까지 좌경화 우려"

    김 후보자는 법관 재직 시절부터 진보적 성향의 판결로 주목 받았다. 표현의 자유를 확장하는 판결을 주로 해온 그는, 이명박 정부 시절 미국산 쇠고기 수입 반대 집회를 주최한 시민단체를 상대로 정부가 제기한 손해배상청구 소송에서 김 후보자는 정부의 청구를 기각한 바 있다. 당시 미국산 쇠고기 수입을 반대하는 촛불집회를 주도한 시민단체는 이후 정치 시위로 바꼈다. 

    이외에도 2015년 조희연 당시 서울시 교육감에게는 당선무효형을 뒤집고 선고유예 판결을 내려 교육감직을 유지할 수 있게 했다. 

    조 당시 서울시 교육감은 2014년 교육감 선거에서 상대 후보인 고승덕 변호사의 미국 영주권 의혹을 제기해 허위사실을 공표한 혐의로 기소됐다. 1심에서 당선무효형을 받은 바 있었으나 2심에서 선고유예 판결을 받고 교육감직을 유지할 수 있게 됐다. 

    당시 김 후보자는 "상대 후보의 낙선을 목적으로 허위사실을 공표한 혐의가 인정된다"면서도 "흑색선전이 아니어서 비난 가능성이 낮다"며 선고유예 처분을 결정했다. 

    대법관 시절엔 이재명 대통령의 '친형 강제입원' 발언 관련 공직선거법 위반 전원합의체 판결에서 다수 의견에 참여했다. 

    당시 전원합의체는 '토론 중 질문·답변 과정에서 의도적으로 사실을 왜곡한 게 아니면 허위사실 공표에 해당하지 않는다'는 판례를 남겼다. 이학수 전북 정읍시장의 선거법 위반 상고심에서는 주심으로 이 대통령 전원합의체 판례를 인용하며 무죄 판결을 내렸다. 

    두 판례는 지난 3월 이 대통령의 선거법 위반 2심 무죄 판결에서 모두 인용됐다. 이 판결로 이재명 대통령은 당시 지사직을 유지할 수 있었다. 

    보수 성향 변호사 단체 관계자는 "앞으로 헌법재판소는 이재명 대통령의 의중과 다른 결론을 내릴 일은 없을 것으로 보여진다"며 "삼권분립을 지키기가 상당히 어려워질 것"이라고 바라봤다. 

    법무법인 을지의 이재원 대표 변호사는 "그 사람이 어떤 판결을 내렸는지를 보면 앞으로 어떤 식으로 재판을 하고 어떤 식으로 헌재를 이끌어갈 것인지를 알 수 있다"며 "그간 판결의 결과들, 또한 법원행정처장으로 있었을 때의 일들을 고려하면 그가 가진 이념에 따라 헌법재판소를 이끌어 갈 것"이라고 내다봤다. 이어 "헌재가 특정 이념 출신 아래에 들어가게 될 경우 더 이상 국민 전체의 신뢰를 받기는 어려울 것"이라고 지적했다. 

    법조계에서는 "정치적 중립성과 다양성이 헌재의 생명"이라는 점을 거듭 경고하고 있다. 김상환 후보자의 소장 임명이 될 경우 헌재가 '진보적 가치관의 최전선'으로 변모할 것이라는 우려가 현실이 되고 있다.
정경진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