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미 '투자·무기·국방비' 총력전미국의 속내는 결국 '對中 견제'전략적 모호성 한계 드러난 한국베트남式 '반중 선택', 韓 딜레마국회까지 나섰지만 美 설득은 미지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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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위성락 대통령실 국가안보실장이 6일 오전 인천국제공항 제2여객터미널에서 미국으로 출국하고 있다. ⓒ뉴시스
미국의 대(對)한국 관세 부과 유예 시한(8월 1일)이 코앞으로 다가오자 한국 정부의 협상 시계도 급박하게 돌아가고 있다. 정부는 대미 투자 확대, 미국산 무기 추가 구매, 국방비 증액 등을 총망라한 이른바 '패키지 딜'을 제시하며 막판 설득에 나섰다.
그러나 '중국 견제'라는 핵심 퍼즐 조각이 빠진 협상 카드만으로 도널드 트럼프 행정부를 움직일 수 있을지에 대해서는 회의적인 시각이 존재한다. 트럼프 2기 행정부가 최우선 전략 목표로 내건 중국 압박에 한국이 명확히 동참하지 않는 한, 경제적 양보 카드만으로는 한계가 뚜렷하다는 지적이다.
◆위성락 또 방미 … '패키지 담판' 막판 성사 관심
8월 1일 관세 시한을 약 열흘 앞둔 지난 20일 위성락 대통령실 국가안보실장이 다시 미국으로 출국했다. 지난 6~9일 1차 방미 때 미 행정부 고위 인사들을 접촉한 데 이어, 막바지 '패키지 협상' 담판을 짓기 위한 급파다.
이번 협상에는 통상 문제뿐 아니라 비관세·안보 현안까지 포괄하는 종합 협의가 예상된다. 구윤철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 김정관 산업통상자원부 장관, 조현 외교부 장관 등 경제·외교 라인의 장관급 인사들도 재무·통상 분야 '2+2 고위급 협의체' 가동을 추진하기 위해 잇따라 방미할 계획이다. 한국 측 협상단이 총력전에 가까운 '올코트 프레싱'에 나선 것이다.
한국이 이번 협상에서 내건 카드에는 대미 투자 확대(미국 내 생산공장 증설 등 일자리 창출 방안), 미국산 첨단 무기 추가 도입, 국내총생산(GDP) 대비 국방비 지출 증대 등이 망라돼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이런 경제·안보 패키지 제안을 통해 트럼프 대통령의 최대 관심사인 미국 무역 적자 개선에 협력하고, 방위비 분담 측면에서도 성의를 보이겠다는 것이다.
실제로 트럼프 행정부는 최근 아시아 동맹국들의 국방비 지출을 GDP 대비 5% 수준까지 늘릴 것을 새로운 가이드라인으로 제시하며 한국을 압박하고 있다. 한국의 현재 국방비는 약 66조 원, GDP 대비 2.8% 수준이다. 한국이 방위비 증액을 협상 카드로 꺼낸 배경에는 이러한 워싱턴의 요구를 선제적으로 수용해 관세 압박을 완화하려는 계산이 깔려 있다.
위 실장은 방미 기간 마코 루비오 미국 국무장관 겸 백악관 국가안보보좌관과 재차 만나 한미 통상·안보 현안을 논의할 것으로 보인다. 앞선 1차 방미 때도 루비오 장관을 접견했지만, 짧은 면담에 그쳤고 미국 재무장관 등 핵심 인사와는 자리조차 하지 못했다.
이에 한국은 이번에는 경제부처 수장들까지 대거 투입해 협상력을 보강하고, 가능하면 한미 정상회담 일정까지 확정 짓겠다는 심산이다.
실례로 위 실장은 1차 방미 직후 "8월 1일 이전 관세 협상 타결을 위해 긴밀히 소통하고, 조속한 정상회담 개최에도 공감했다"고 밝혔다. 남은 열흘이라는 기간 동안 한미 정상이 직접 담판하는 시나리오까지 염두에 두고 총력을 기울이겠다는 포석이다.-
- ▲ 도널드 트럼프(오른쪽) 미국 대통령이 16일(현지 시간) 백악관 집무실에서 살만 빈 하마드 알 칼리파 바레인 왕세자 겸 총리와 회담하고 있다. 빈 하마드 총리는 미국에 170억 달러(약 24조 원) 규모의 투자를 하겠다고 밝혔다. 트럼프 대통령은 이게 감사한다며 여러 중동 국가도 미국에 투자하길 바란다고 말했다. ⓒAP/뉴시스
◆'반중(反中) 동맹' 요구 빠진 협상 카드 … 협상력 의문
문제는 미국이 진정으로 원하는 핵심 조건이 한국 측 제안에 빠져 있다는 점이다. 트럼프 대통령이 2025년 재집권한 이후 줄곧 추진해온 대중국 견제 중심의 동맹 재편 전략에서 한국이 과연 어느 편에 설 것인지가 쟁점이다.
바이든 행정부 시절부터 이어진 미·중 경쟁 구도 속에서 트럼프 2기 행정부는 한층 노골적으로 동맹국들의 대중 견제 동참을 요구하고 있다. 미국 국방부는 유럽 동맹국이 '국방비 5% 시대'를 열고 있다면서 아시아 동맹국에도 동일한 기준을 적용해야 한다는 입장을 여러 차례 내비쳤다. 경제 분야에서도 중국을 배제한 공급망 구축과 첨단 기술 견제에 동참하라는 압박이 거세다.
하지만 한국은 '실용 외교'라는 명분 아래 '안미경중'(안보는 미국, 경제는 중국)이라는 기존 기조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은 채 전략적 모호성을 유지해 왔다.
이재명 정부의 대중 외교 노선은 이전 문재인 정부 시절과 유사하게 신중 모드를 이어가는 모습이다. 중국이 민감해 하는 대만 해협 문제나 반도체 공급망 동맹 등 미국 주도의 대중 견제 프레임에 대해서는 뚜렷한 입장 표명을 삼가한 채 미·중 사이에서 '국익 중심 실용 외교'를 기본 기조로 내세우고 있다.
이번 관세 협상에 제출한 투자·무기 구매 패키지도 철저히 경제적 유인책에 집중돼 있을 뿐, 중국을 겨냥한 조치는 포함되지 않은 것으로 알려졌다.
한 외교 소식통은 "미국 입장에서는 경제적 조치만으로 부족하다고 느낄 수 있다"며 "궁극적으로 한국이 반중 전략에 얼마나 동참할지가 관건"이라고 전했다.
다시 말해, 워싱턴이 요구하는 안보 측면의 '선물' 없이는 한국의 제안이 반쪽짜리 양보안으로 비칠 수 있다는 뜻이다.
실제로 미국 고위 당국자들은 아시아 동맹국들에 대중 노선 명확화를 거듭 촉구하고 있다. 특히 관세 협상 결과가 중국에도 영향을 미칠 수밖에 없는 상황에서 한국이 대중 견제에 소극적이라면 트럼프 대통령이 쉽게 양보하지 않을 가능성이 크다.
예컨대 한국이 경제적 보상만 내놓고 안보적 선택은 유보하는 현재 접근법으로는 협상력이 떨어질 수밖에 없다는 지적이다.-
- ▲ 지난 2일(현지시간) 트럼프 대통령은 '트루스소셜'을 통해 베트남산 수입품에 일률 20% 관세를 부과하고, 베트남을 통한 제3국(중국 등) 환적품에는 40% 관세를 매길 것이라고 발표했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트루스소셜' 계정
◆베트남 사례가 던지는 시사점 … 악마는 디테일에 있다
비슷한 상황에 놓인 베트남의 사례는 한국에 시사하는 바가 크다. 베트남은 최근 미국과의 무역 협상에서 자국을 경유한 중국산 제품에 고율 관세를 매기는 방안에 합의하는 대신 미국의 대베트남 관세율을 낮추는 조건부 타협을 이끌어냈다.
지난 2일 트럼프 대통령은 '트루스소셜'을 통해 베트남산 수입품에 일률 20% 관세를 부과하고, 베트남을 통한 제3국(중국 등) 환적품에는 40% 관세를 매길 것이라고 발표했다.
베트남은 애초 예고된 46% 관세 폭탄을 피하는 대신, '메이드 인 베트남' 위장품에 벌칙을 부과하는 사실상의 반(反)중국 조치를 수용한 것이다. 이와 함께 베트남은 미국산 대형차 등에 자국 시장을 개방하기로 하고, 미국은 베트남을 '환율 조작국' 지목에서 해제하는 방안도 협의한 것으로 전해졌다.
그러나 이 '베트남식 딜'이 순탄하게 굴러가고 있는 것은 아니다. 발표된 협상안은 프레임워크 수준으로, 중국산 환적품의 판정 기준과 집행 방식 등 세부 사항에서 여전히 이견을 좁히지 못하고 있다. 베트남 입장에서는 자칫 중국의 경제 보복을 자초할 수 있는 위험을 안고 미국과 거래한 셈인데, 막상 미국으로부터 얻어낼 것(관세 인하)의 확실성은 담보되지 않은 상황이다.
그럼에도 베트남 정부가 이런 고위험 선택을 한 것은 미국의 요구를 일부라도 들어주지 않고서는 관세 폭탄을 피하기 어렵다고 판단했기 때문으로 보인다.
미국은 베트남의 최대 수출시장이 됐고, 미중 무역전쟁의 반사이익으로 대미 수출이 폭증하면서 트럼프 표적국에 포함된 처지다. 그러나 베트남은 최소한 '중국산 단속'이라는 상징적 반중 조치를 내걸었지만, 한국 협상단은 그마저도 없는 상태다.
경제·외교 라인 고위 인사들을 대거 동원한 한국의 대미 설득 작전이 정작 미국이 듣고 싶어 하는 대중 메시지는 담지 못하고 있다는 뜻이다. 베트남 협상이 세부 조건에서 난항을 겪는 현실은 한국이 중국 변수에 끝까지 침묵할 경우 협상 타결까지 더 큰 험로를 각오해야 함을 보여준다.-
- ▲ 한미의원연맹 미국 방문단 공동단장 조정식 더불어민주당 의원, 나경원 국민의힘 의원 등 한미의원연맹 소속 의원들이 20일 인천국제공항 제2여객터미널을 통해 미국으로 출국하고 있다. ⓒ뉴시스
◆국회까지 나섰지만 '中 견제' 빠진 카드로 승부수 낼까
이러한 가운데 국회 차원의 지원 사격도 이뤄지고 있다. 여야 의원 13명으로 구성된 한미의원연맹 소속 의원들이 20일 미국으로 건너가 '의원 외교'를 펼치고 있다.
조정식 더불어민주당 의원과 나경원 국민의힘 의원이 공동단장을 맡은 이번 의원단은 워싱턴 D.C.에서 미 상·하원 의원들과 잇따라 만나 한미 통상·안보 협력 및 동맹 강화 방안을 폭넓게 논의할 예정이다.
이들은 오는 27일 한국전 정전 72주년 기념식에도 참석해 혈맹 간 유대를 부각하고, 조지아주 기아자동차 공장 시찰과 브라이언 켐프 주지사 면담 등도 가질 계획이다.
일종의 전방위 로비전을 펼치며 한국이 미국에 기여하는 바가 큰 동맹국이니, 통상 협상이 호혜적으로 타결되도록 도와 달라고 미국 측에 호소하겠다는 전략이다.
의원들까지 나선 데에는 그만큼 현재 협상 상황이 엄중하다는 위기감이 깔려 있다. 관세 문제가 자칫 한미 동맹 전반으로 번질 수 있다는 우려도 반영됐다.
미국 의회의 협조를 끌어내면 백악관을 간접적으로 압박하는 효과를 기대할 수도 있다. 하지만 미국 정치 지형을 고려할 때, 의회 차원의 역할이 제한적일 것이란 전망도 있다.
공화당이 상·하원을 모두 장악한 지금, 의회는 오히려 트럼프 행정부의 강경 대중 정책을 부추기는 방향으로 움직일 우려가 있다. 지난 1일 공화당 소속 하원 무역소위 의원 40여 명은 미국 정부에 한국의 디지털 무역장벽 해소를 촉구하는 공동 서한을 보내며 한국을 압박하기도 했다. 한국 의원단의 방문에 대해 미국 조야에서 "왜 한국은 중국에 더 단호히 못하나"라는 질문이 나온다면 오히려 역효과만 날 수 있다.
결국 관건은 우리 정부의 전략적 결단이다. 국내외 전문가들 사이에서는 "숫자만 가득한 경제 패키지만으로는 트럼프 행정부를 설득할 수 없다"는 평가가 많다.
협상 막판까지 '반중 프레임'을 명확히 하지 않고 경제적 양보만으로 승부하는 한국의 전략은 결과를 장담할 수 없다. '중국 견제'라는 핵심이 빠진 채 미국을 움직이기는 어렵다는 냉엄한 현실이 다가오고 있다.

조문정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