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기업에 줄줄 새는 혈세 보조금재벌그룹이 왜 그 시장에서 맴돌까
  • ▲ GS글로벌이 수입 판매하는 중국 BYD 전기버스ⓒBYD 홈페이지

    10여 년 전 국내 굴지의 대기업에서 빵집 논란으로 홍역을 치른 적이 있다. 재벌 그룹이 동네 빵집 시장까지 진출해 못살게 군다는 여론이 점차 거세지더니 결국 대부분 기업들이 사업 철수을 선언했다. 당시 이명박 대통령은 "대기업이 소상공인의 생업과 관련된 업종까지 영역을 넓히는 것은 자제하는 것이 바람직하다"며 대기업의 사회적 책임을 분명히 하기도 했다.

    막대한 보조금이 쏟아지는 국내 전기버스 시장에 뛰어든 재벌그룹이 있다. 전기 버스 시장을 양분한 중국 BYD 제품 수입사 GS글로벌이다. 한 때 재계 서열 5위까지 올랐던 GS그룹 자회사다.

    GS글로벌은 2021년부터 BYD와 손잡고 국내 공공버스 시장을 정조준했다. 중국산 전기버스는 저렴했고, GS글로벌은 이를 무기로 국내 버스회사를 적극 공략했다. 국산보다 수천만 원씩 싼 중국산 버스의 공세를 국내 기업들은 버텨낼 수 없었고, 현대차 조차 밀려났다. 현대차는 2018년과 2019년 2년 연속 전기버스 판매 1위를 차지했지만, 중국 전기버스가 본격 진출한 이후 해마다 점유율이 떨어졌다. 그 결과 2023년에는 중국산 전기버스 점유율 54.2%로 과반을 넘기도 했다.

    한국은 중국 자동차 기업에겐 무덤 같은 시장이다. 몇천원에서 몇만원이면 사는 일상 용품과 달리 수천만원부터 수억원을 호가하는 자동차를 단순히 싸다고 구매하지는 않는다. 중국 굴지의 샤오미, 화웨이 등 거대 기업들이 글로벌 스마트폰 시장에서 삼성전자와 경쟁하면서도 한국 시장에서는 명함도 내밀지 못하는 것도 이 때문이다. 중국 제품이란 브랜드 밸류와 사후서비스(A/S)가 어려울 것이란 우려를 극복하지 못해서다.

    하지만 중국이 넘지 못한 두 장벽을 GS라는 재벌그룹이 나서자 깔끔하게 해결됐다. 버스 사업자들은 BYD 전기버스 품질은 믿지 못해도 GS그룹의 보증과 사후관리를 약속 받고 계약서를 썼다. GS글로벌은 PDI(출고 전 점검) 센터, 특장차 조립공장 등 인프라 확장에 막대한 투자를 단행해 왔다. BYD 전기버스가 아무리 가성비가 뛰어났더라도 한국 시장의 특성과 보조금을 집행하는 지자체나 정부 정책을 잘 아는 GS글로벌의 역할이 없었다면 이 같은 흥행은 장담하기 어려웠을 것으로 보인다.

    특히 전기버스 시장은 국가 보조금으로 돌아가는 일종의 공공투자 영역이다. 3억5000만원 가량의 중국산 전기버스를 사면 2억5000만원 가량이 보조금이다. 버스 회사가 1억원 남짓 부담하지만, 이조차 각종 프로모션으로 보전되는 구조로 알려져 있다. 프로모션도 미미하고, 차값도 4억원이 넘는 국내 기업이 살아남을 수 없는 곳이다.

    그런 시장에 GS라는 재벌그룹이 진출했다는 것도 비판을 피하기 어려운 지점이다. 국가 보조금으로 겨우 연명하는 시장을 막대한 자금력과 영업 네트워크를 앞세운 대기업이 탐냈다는 점에서다. 결과적으로 국내 기업들이 고사하는데 일조했다는 지적도 감당해야 할 대목이다. 영세 소상공인이 근근히 살아가는 터전인 제빵 시장을 대기업이 앗아간 과거 사례보다 더 찝찝한 기분이 가시질 않는다.

    실제로 국내 전기버스 업체들의 피해는 치명적이다. 중국산 저가 모델이 들어오자, 기술 개발에 투자해오던 중소기업들은 하나둘 폐업하거나 생산을 포기하고 있다. 특정 제조사 몇몇은 공공시장 입찰 자체를 포기했다는 하소연도 나온다. 정부의 친환경 정책 취지마저 왜곡되는 상황이다.

    이재명 대통령이 최근 국무회의에서 "중국 제품에 보조금을 다 줘서 국내 전기버스 업체가 죽어버렸다"며 "지금이라도 보조금 정책을 국내 산업을 보호하는 쪽으로 해야 한다"며 질책한 것도 같은 맥락이다. 제도의 허점을 이용해 중국 전기버스 판매에 일조하는 행태를 엄단하라는 의미다.

    더 우려스러운 것은 GS그룹의 미래전략이다. 정유사업이란 미래가 밝지 않은 주력 사업을 가진 그룹 구조에서 친환경 모빌리티를 미래 사업으로 앞세운 것은 충분히 설득력 있다. 하지만 이렇다 할 투자 없이 BYD가 제공하는 완제품을 단순 유통하는 중계 장사에 그치고 있다. 기술 내재화나 생산설비 투자 없이 ‘중국산 수입-국내 판매-지자체 납품’이라는 쉬운 방식에 안주해 이윤만 남기도 있다는 얘기다.

    게다가 국내 전기버스는 단지 제조만의 문제가 아니다. 소프트웨어, 제어 시스템, 배터리 화재 대응 등 전기차 생태계 전반의 역량이 축적되는 과정이다. 이를 외면한 채, 가격만 보고 '중국산 완성차'를 퍼다 나르는 대기업의 선택은 단기 이익만 좇는 퇴행적 결정이다.

    GS그룹은 10대 그룹이라는 이름에 걸맞은 책임을 져야 한다. 가격경쟁력이 아닌 기술경쟁력으로 산업을 견인하고, 한국형 전기차 생태계를 키우는 방향으로 전략을 틀어야 한다. 공공 보조금 시장은 ‘저가 수입차’ 실험장이 아니다. 대기업이 앞장서 국산 산업의 활로를 끊어서는 안 된다.

    국민 세금으로 만들어진 시장에서조차 외국산 저가차가 장악하고, 국내 업체는 기술이 아닌 가격에 밀려 퇴출당하는 현실을 극복하는게 재벌그룹의 책무라는 점을 잊어선 안된다. 겉으로는 친환경을 외치며 앞세운 미래 전략 사업의 실상이 국가 보조금으로 그룹 자금 흐름에 숨통을 틔우는 꼼수로 드러나지 않았으면 하는 마음이 앞선다.
안종현 산업1부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