헤리티지재단 창립·운영하며 美 보수정책 입안 주도레이건 정부 '리더십 지침' 설계 … 트럼프 인수위 고문도 역임'지한파 인사'로 200여 차례 방한 … 삼성·아산재단 등과 교류1973년 재단 설립 후 36년간 이사장 … 정책 싱크탱크 모델 구축
  • ▲ 에드윈 퓰너 전 헤리티지 재단 이사장. ⓒ연한뉴스

    미국 보수 진영의 대표 싱크탱크인 헤리티지재단의 창립자이자 장기 이사장이었던 에드윈 J. 퓰너(Edwin J. Feulner Jr.)가 84세를 일기로 별세했다.

    헤리티지재단은 18일(현지시간) 케빈 로버츠 회장과 바브 반 안델 가비 이사장 명의의 공동 성명을 발표하고 퓰너 전 이사장의 별세 소식을 알렸다. 로버츠 회장은 고인을 "단순한 리더가 아니라 비전가이자 건설자, 최고의 애국자"로 회고했다.

    이들은 공동 성명에서 "헤리티지재단의 창립자이자 이사, 그리고 가장 오랜 기간 재단을 이끌어온 전 회장인 퓰너 전 이사장의 별세를 깊은 슬픔 속에 전한다"라며 "그는 비전을 제시한 선구자이자 조직을 일군 개척자였으며 그 누구보다 조국을 사랑한 애국자였다"고 강조했다.

    브리짓 와그너 에드윈 J. 퓰너연구소 전무이사는 "그의 지혜, 조언, 끝없는 낙관주의 그리고 우리가 옳다는 확신은 수많은 이들에게 영감을 주었고 오래 지속될 기관들을 만들었으며 보수운동을 심오하게 형성했다"며 "그는 진정한 거인이었다"고 회고했다.

    ◆레이건 정부와 트럼프 정부까지 관여 … "보수주의를 제도화한 전략가"

    퓰너 전 이사장은 1973년 헤리티지재단을 창립했다. 당시 미국 보수주의는 베트남전 패배와 냉전 충격 등으로 쇠퇴하던 시기였으나 그는 "진실을 위한 깃발"을 워싱턴에 꽂겠다는 일념으로 쿠어스 가문으로부터 받은 25만 달러를 종잣돈 삼아 재단을 출범시켰다. 재단 1층 로비에는 "개인의 자유와 기회, 번영과 시민사회가 있는 미국"이라는 설립 이념이 새겨져 있다.

    그는 1977년부터 2013년까지 36년간 이사장직을 지내면서 재단을 현대 보수주의의 정책 본부로 성장시켰다. 재단은 레이건 행정부 시절 ‘리더십 지침(Mandate for Leadership)’이라는 1000쪽 분량의 보고서를 통해 감세, 반규제, 정부 축소 등 핵심 아젠다를 제공하며 "레이건 정부의 지적 병참기지"로 불리리기도 했다.

    뉴욕타임스(NYT)는 그를 "보수 수도의 파르테논 신전 같은 존재"라고 평가했고 영국 텔레그래프는 "미국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보수 인사"로 소개하기도 했다. 트럼프 행정부 출범 당시에는 인수위원회 고문으로 참여해 정부 구성 작업에도 관여했다.

    퓰너 전 이사장은 "우리는 나누고 빼는 것이 아니라 곱하고 더함으로 승리한다"는 철학으로 보수 진영 내부 통합에 앞장섰고 "사람이 곧 정책이다"는 ‘퓰너리즘(Feulnerisms)’을 통해 차세대 보수 리더 양성에 집중했다. 그는 "워싱턴엔 영원한 승리도, 영원한 패배도 없다"며 보수 진영의 지속 가능성을 강조해 왔다.

    ◆한국에 200회 이상 방문 … "좌우를 초월한 친구"

    퓰너 전 이사장은 워싱턴 정가의 대표적인 지한파(知韓派)이자 친한파(親韓派) 인물로도 알려졌다. 그는 200회 가까이 한국을 찾으며 한국 사회와 깊은 인연을 맺었다. 2002년에는 대한민국 정부로부터 수교훈장 광화장을 수훈하기도 했다.

    그의 한국 사랑은 정치적 이념을 넘어선 인연으로도 이어졌다. 1980년대 미국 망명 시절 고 김대중 전 대통령과 교류했으며, 한때는 김 전 대통령의 신변 보호를 위해 백악관 안보보좌관을 통해 청와대에 경고 메시지를 전달한 일화도 있다. 김 전 대통령이 당선인 신분으로 퓰너와의 식사 자리에서 "워싱턴에서 내 친구는 에드 케네디부터 에드 퓰너까지"라고 말한 일화는 생전 그가 가장 자랑스러워하던 기억 중 하나였다.

    삼성가와의 인연도 깊다. 헤리티지재단은 1985년부터 이병철 회장을 기리는 ‘이병철 콘퍼런스’를 매년 개최해 왔고 퓰너는 생전 "이건희 회장이 아들을 헤리티지에서 일하게 해 달라고 요청해 수락하자 눈물을 흘리며 포옹했다"고 회고했다. 2022년 ALC에서는 이재용 당시 부회장과의 포옹 장면이 언론의 주목을 받기도 했다.

    그는 정몽준 아산정책연구원 명예이사장과도 두터운 친분을 유지했고 ‘정주영 펠로’라는 명함을 지닌 적도 있다. 헤리티지재단 내부에는 ‘정주영 룸’, ‘이병철 룸’이 따로 마련돼 있다고도 알려졌다.

    ◆헤리티지의 설계자, 미국 보수의 영원한 전진기

    1941년 시카고 출신인 퓰너는 리제스대학교 재학 중 배리 골드워터의 '보수주의자의 양심'과 러셀 커크의 '보수주의 정신'을 접하며 인생의 방향을 정했다. 이후 펜실베이니아대 와튼스쿨에서 MBA를 취득하고 조지타운대와 LSE, 에든버러대에서 수학하며 학문적 기반을 쌓았다.

    정치 경력은 멜빈 레어드 하원의원 보좌관으로 시작해 필립 크레인 의원의 비서실장을 지냈다. 1977년부터 2001년까지 헤리티지의 정책 전문지 'Policy Review'를 발행했고 웹서비스 Townhall.com을 공동 창립하며 보수 담론의 온라인 확산에도 기여했다. 저서로는 9권의 단행본과 수많은 칼럼이 있다.

    1989년에는 로널드 레이건 대통령으로부터 대통령 시민훈장(Presidential Citizens Medal)을 수상했다. 2017년부터 2018년까지는 재단 회장 대행을 맡으며 끝까지 현장을 지켰다.

    헤리티지재단은 고인을 기리며 "자기통치(self-governance)의 가치를 지키기 위해 한 명의 신실하고 두려움 없는 이가 어떤 일을 해낼 수 있는지를 보여준 인물"이라며 "그의 모범과 리더십 그리고 그가 남긴 말 ‘항상, 전진하라(Onward. Always)’를 잊지 않겠다"고 밝혔다.
김상진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