美 '오커스 재검토'에 韓 핵잠 현실성 난망원자력협정 개정 없이는 핵잠 추진은 신기루한미동맹 무시한 '362 사업' 좌초의 교훈조현 "한일외교 제한된 범위에서 이뤄져야"과거사에 발목 잡힌 조현式 '외교안보 역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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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조현 외교부 장관(왼쪽)과 미국 해군의 로스앤젤레스급 핵추진잠수함 '컬럼비아'. ⓒ뉴시스
조현 외교부 장관이 핵추진잠수함(SSN) 도입 의지를 밝혔지만, 한미동맹의 공고화와 한미일 안보 협력이 뒷받침되지 않으면 20년 전 노무현 정부의 '362 사업' 실패를 되풀이할 수 있다는 우려가 제기된다. 이재명 정부가 '실용외교'를 표방하고 있으나, 친중·반일 노선이나 한미동맹 균열을 초래할 수 있는 친북 성향의 정책을 추진할 경우 조 장관의 발언이 공염불에 그칠 수 있다는 지적도 있다.
◆美 '오커스 재검토'에 韓 핵잠 구상도 타격 불가피
조 장관은 후보자 신분이던 지난 17일 국회 인사청문회에서 한국의 SSN 보유 가능성에 대해 "필요에 따라 우리가 언제든지 추진할 수 있는 하나의 방안"이라며 "내부적으로 잘 검토해서 미국과 함께 억제력을 강화하는 방안 중 하나로 검토해 볼 수 있을 것"이라고 기대감을 드러냈다.
특히 그는 미국 내 일부 인사들이 윤석열 정부 시절인 2023년 한국의 SSN 보유 가능성에 대해 긍정적 견해를 밝혔다고 강조했다. 그러나 도널드 트럼프 2기 행정부가 전임 조 바이든 정부 시절 영국·호주와 체결한 안보 파트너십 '오커스'(AUKUS) 참여를 재검토하면서 SSN 구상의 실현 가능성은 더욱 낮아졌다. 호주에 2030년까지 최대 5척의 SSN을 판매하기로 한 전임 행정부의 약속이 사실상 번복됐기 때문이다.
◆SSN 연료 확보, '한미원자력협정' 개정 또는 추가 협정 체결이 관건
조 장관은 또 2015년에 개정된 한미원자력협정의 조기 개정 추진 의지를 피력하며 "농축과 재처리를 추진한다면 군사적 차원이 아니라 산업적·환경적 문제를 들어가서 미국을 설득해 나갈 수 있을 것"이라고 내다봤다.
그는 현행 협정에 따라 미국의 사전 동의로 농도 20% 미만의 저농축 우라늄 확보는 가능하지만, 양국 간 지식재산권 문제로 그간 협의가 지연됐다고 지적했다.
조 장관은 "이제 그 문제가 일단 해결됐기에 제3국 공동 진출이나 기술협력이라든지 특히 소형모듈원자로(SMR)에 들어가는 고순도 저농축 원료를 함께 만드는 것 등을 잘 추진할 수 있다"고 말했다.
한국의 자강을 위한 조 장관의 이러한 구상에는 현실적인 과제가 남아 있다.
현행 협정상 한국은 미국의 사전 동의 하에 20% 미만의 저농축 우라늄은 확보할 수 있지만, SSN 연료로 쓰이는 고농축우라늄은 확보할 수 없다.
이 협정은 한국이 미국산 핵물질을 평화적 목적으로만 사용해야 하며 군사 목적으로 전용할 수 없다고 명시하고 있어 SSN을 운용하려면 협정 개정 또는 별도 합의가 필요하다. 조 장관도 핵연료 공급 문제를 인식하고 미국과의 협의를 언급한 것으로 풀이된다.-
- ▲ 지난 2023년 8월 13일(현지시간) 미국 캘리포니아주 샌디에이고의 포인트 로마 해군기지에서 조 바이든(가운데) 미국 대통령, 앤서니 앨버니지(왼쪽) 호주 총리, 리시 수낵 영국 총리가 오커스(AUKUS: 호주·영국·미국의 안보동맹) 정상 회담 후 공동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AP/뉴시스
◆SSN 구상 … 한미 신뢰와 동맹 기여 없이는 '신기루'
조 장관의 기대와 달리, 한국의 SSN 추진을 위한 국제정치 환경은 여전히 녹록지 않다. 미국은 자국의 SSN 기술 확산에 매우 신중한 상태이며, 현재 영국 외에는 동맹국을 포함한 그 어떤 국가에 SSN을 제공한 사례가 없다.
2021년 조 바이든 행정부가 호주에 SSN을 판매하기로 한 오커스의 결정이 있었지만, 행정부 교체로 앞날이 불투명하다.
실제로 지난달 11일 미국 국방부는 대변인 성명을 통해 "오커스가 트럼프 대통령의 미국 우선주의(America First)에 부합하는지 살펴볼 것"이라며 "미군의 최고 준비 태세를 보장하고 동맹국들이 집단방위를 위해 제 역할을 다하며 미국의 방위산업 기반이 우리 안보 수요를 충족하는지 점검하는 것을 의미한다"고 발표했다.
한국의 SSN 보유 추진은 국익에 부합하는 옳은 방향이지만, 미국의 협력 없이는 실현이 불가능하다는 것을 보여주는 대표적 사례인 셈이다.
익명을 요구한 외교·안보 전문가는 "SSN 보유를 위해서는 한미원자력협정 개정이 필수적"이라며 "협정 개정은 한미 간 깊은 신뢰를 요구하는데, 현재 양국 관계에 그런 신뢰가 형성돼 있지 않다. 미국은 이재명 대통령을 인정하지 않겠다는 신호를 계속해서 보내고 있다"고 분석했다.
이어 "현재 한미정상회담 일정조차 잡히지 않고 있다"며 "이런 상황에서 SSN이나 전작권 환수를 언급하는 것은 현실성 없는 '오기 외교'에 가깝다"고 덧붙였다.
한 전직 안보 관료도 "현재 가장 시급한 과제는 미국과의 신뢰 회복과 동맹 강화다"라며 "미국이 한국을 신뢰할 수 있는 동맹으로 판단한다면, 북한뿐 아니라 중국과 러시아 견제를 위해 SSN 지원을 마다할 이유가 없다"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미국의 전략핵잠수함(SSBN)을 한반도 주변에 상시적으로 배치하고, 한국도 장기적으로 자체 SSN을 개발하면 북한의 핵 위협을 억제하고 비핵화 협상에서 주도권을 가질 수 있다"고 진단했다.-
- ▲ 노무현 대통령과 조지 부시 미국 대통령이 2003년 10월 20일 오전 하얏트호텔에서 열린 한미 정상 조찬 회담에서 환담을 하고 있다. ⓒ문화체육관광부 e영상역사관
◆盧 정부의 '362사업' 실패가 던진 교훈 … 한미동맹 무시한 자주국방 시도의 대가
조 장관의 SSN 구상에 회의적인 시각이 적지 않은 이유는 노무현 정부 시절의 실패 사례가 있기 때문이다. "반미(反美)를 좀 하면 어떠냐"던 노무현 전 대통령은 '한반도 운전자론'과 '동북아 균형자론'을 동시에 펼치며 한미동맹 의존에서 벗어난 자립 외교를 시도했다.
노무현 정부는 2003년 집권 첫해부터 미국에 알리지 않은 채 자주국방의 핵심 구상이었던 SSN 개발 사업, 일명 '362 사업'을 극비리에 추진했다. 당시 이 사업은 3조5000억 원 규모로 계획됐으며, 러시아로부터 소형 원자로 기술을, 프랑스로부터 바라쿠다급 잠수함 설계를 도입하는 방안이 추진된 것으로 전해진다.
그러나 이 계획은 1년 남짓 만에 중단됐다. 2004년 1월 한미동맹 와해와 국제적 파장을 우려한 유용원 당시 조선일보 기자(現 국민의힘 국회의원)의 보도로 비밀 SSN 프로젝트의 존재가 드러났다. 같은 해 국제원자력기구(IAEA)가 한국 원자력연구원의 비밀 우라늄 농축 실험에 대한 특별사찰까지 통보하면서 상황은 더욱 악화됐다.
당시 정부는 SSN 개발 사실까지 드러날 경우 핵개발 의혹 등 국제적 파장이 우려돼 사업을 스스로 접을 수밖에 없었다. 당시 미국도 한국의 독자 SSN 추진을 심각한 동맹 이탈로 여겨 강력히 반대했다.
다만 문근식 당시 362 사업단장에 따르면, 해군은 SSN보다 이지스함 확보가 더 시급했고, 한정된 국방비로 두 사업을 모두 추진하기에는 어려웠다. 당시 비밀리에 SSN 개발을 추진한다는 보도가 내심 사업을 접고 싶은 군에 구실을 제공했다는 해석도 존재한다.
결국 동맹과의 신뢰 없이 밀어붙인 SSN 추진과 비밀 농축 실험은 미국과의 신뢰를 붕괴시켰다.
훗날 로버트 게이츠 전 미국 국방장관은 회고록에서 노 대통령을 "반미적이고 약간 미쳤다(crazy)"고 혹평했다.
노무현 정부는 한미동맹을 복원하고자 지지 세력의 거센 반발에도 2007년 미국과 자유무역협정(FTA)을 체결했다. 결과적으로 기술적 가능성보다 동맹 공조의 중요성을 부각시키는 교훈을 남겼다.-
- ▲ 2016년 3월 31일(현지시간) 미국 워싱턴에서 열린 핵안보정상회의에서 박근혜 대통령이 아베 신조 일본 총리와 악수하는 모습을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이 지켜보고 있다. ⓒAP/뉴시스
◆조현, 한일 과거사 매듭짓기 어렵다면서 '위안부 합의' 비판
조 장관의 SSN 구상이 우려스러운 또 다른 이유는 그의 '대일관'에 있다. 북한 김일성이 '남조선 정권을 타도하기 위해서는 미국과 일본 두 끈 중 하나만이라도 잘라내야 한다는 '갓끈 전술'을 써 왔듯, 한미 협력과 한일 협력은 대한민국 안보의 핵심이다.
조 장관은 최근 청문회에서 한일 지소미아(GSOMIA·군사정보포괄보호협정)에 대해서는 긍정적으로 평했지만, 한일 과거사 문제에 대해서는 "쉽게 합의하면 나중에 일본이 '한국이 골대를 움직였다'고 비난하는 결과가 된다"면서 사실상 일본과의 합의 기준을 엄격히 해야 한다는 입장을 밝혔다.
조 장관의 발언이 주목받는 이유는 그의 과거 발언 때문이다. 그는 과거 외교부 2차관에 임명된 그다음 날인 2017년 6월 17일 기자간담회에서 박근혜 정부의 한일 위안부 합의를 "대단히 잘못된 합의"라고 비판했다. 그러면서 "한일 간 외교는 제한된 범위에서 이뤄져야 한다"고 주장했다.
조 장관의 이러한 발언은 일본과의 과거사 갈등을 심화시키고, 결국 한미일 안보 협력 구축이라는 전략적 목표를 어렵게 만드는 모순을 지니고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그의 위안부 합의 공개 비판은 당시 외교부 내에서도 엇갈린 평가를 받았다. 은퇴한 외교관들은 "전임 정부가 맺은 국가 간 합의를 고위 관료가 적폐처럼 취급하는 건 온당하다고 볼 수 없다"고 비판했다.
조 장관의 박한 평가와 달리, 한일 위안부 합의는 일본이 민간기금 대신 정부 예산을 투입해 공식 사죄와 보상을 표명했다는 점에서 지난 20년간 우리 정부가 요구한 핵심 요소를 사실상 충족했다는 평도 받는다.
당시 일본은 외교·안보·입법 모든 영역에 걸친 미국의 지속적인 압박 끝에 '깊은 책임'(acceptance of deep responsibility)을 합의문에 명시함으로써 공식적인 사죄를 표명하고, 10억 엔(합의 체결 당시 약 100억 원) 규모의 피해자 지원 기금을 출연하기로 했다. 이로써 한일 양국은 위안부 합의를 계기로 셔틀외교 복원에 합의하고 한미일 안보 협력의 초석을 마련할 수 있었다.
◆한일 과거사 갈등 해소 없이 어려운 韓 핵잠 보유
과거사로 인한 한일 간 불신은 한미일 안보 협력의 걸림돌이 돼 왔다. 미국이 일찍이 동아시아에 구축하려 했던 나토(NATO·북대서양조약기구)와 같은 집단안보체제는 한일 과거사 갈등을 비롯한 역내 국가 간 역사적 갈등으로 성사되지 못했다.
전문가들은 과거사 극복과 한미일 협력이 결여된 상태에서의 SSN 독자 추진은 미·일과의 갈등은 물론, 한국을 실질적으로 위협하는 중국과 러시아의 반발을 불러올 수 있다고 경고한다. 따라서 전제조건을 충족하지 못한 상태에서의 성급한 SSN 추진은 피해야 한다 는 것이 외교·안보 전문가들의 공통된 견해다.
한 대북 전문가는 "SSN 운용을 위해 일본의 협력은 필수적"이라며 "한일 갈등이 해소되지 않은 상태에서 일본과 인접한 동해에 한국이 SSN을 배치하면 일본이 이를 안보 위협으로 간주, 미국을 통해 강력히 반대할 가능성이 높다. 한미일 안보 협력 없이는 한국의 SSN 보유는 사실상 불가능하다"고 강조했다.

조문정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