혁신위 논의 없이 기습적으로 인적 쇄신 요구당 회의서 윤 위원장 독단에 비판적 목소리비판받자 윤희숙 "다구리라는 말로 요약""기득권 깨는 혁신안, 높은 절차적 정당성 요구"
  • ▲ 윤희숙 국민의힘 혁신위원장이 17일 오전 국회에서 비상대책위원회 회의 참석을 마치고 나오며 취재진의 질문을 받고 있다. ⓒ이종현 기자

    윤희숙 국민의힘 혁신위원장이 혁신위원들과 논의 없이 단독으로 인적 쇄신 대상자를 공개적으로 거론하며 거취를 압박한 것으로 나타났다. 공정한 절차를 거쳐 심도 있는 논의로 혁신안을 내놔야 할 혁신위의 수장이, 혁신위원들에게 발표를 일방적으로 통보한 것을 두고 당 내부에서는 "혁신위의 권위를 세우려면 혁신위원장부터 절차를 지켜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윤 위원장은 17일 페이스북을 통해 "제가 실명을 거론한 것은 현재 국힘의 상황이 그만큼 엄중하기 때문"이라며 "내란 프레임에서 지금 확실하게 벗어나지 못하면 앞으로 10년간 절대 소수 야당으로 지리멸렬하거나, '내란당'이라는 오명으로 공격받아 부서지는 길밖에 없다"고 밝혔다.

    이어 "2004년 차떼기로 당이 존폐의 위기에 처했을 때, 당대표를 필두로 37명의 중진들이 불출마 선언을 한 것은 당을 소생시키고 젊은 정치에 공간을 열어줬다"고 했다.

    온라인에서 재차 당 중진들을 겨냥한 발언을 한 윤 위원장은 직후 국회에서 열린 비상대책위원회의에 참석했다. 회의 직후 윤 위원장은 비공개 회의에서 논의 사항을 묻는 질문에 "그냥 '다구리'라는 말로 요약하겠다"고 말했다. '다구리'는 은어로 집단적인 몰매를 뜻한다. 자신이 당 지도부로부터 일방적으로 공격을 당했다는 의미로 해석된다.

    앞서 윤 위원장은 전날 국민의힘 여의도 당사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인적 쇄신 대상자를 발표했다. 나경원·윤상현·장동혁 의원과 송언석 국민의힘 비상대책위원장이 표적이 됐다. 윤 위원장은 이들이 거취를 표명해야 한다고 거듭 강조했다.
    ▲ 송언석 국민의힘 비상대책위원장 겸 원내대표가 17일 오전 국회에서 열린 비상대책위원회의에 참석하고 있다. ⓒ이종현 기자

    문제는 윤 위원장이 이런 중요한 사항을 발표하면서 정작 혁신위원들과 논의를 진행하지 않았다는 점이다. 윤 위원장은 회견 직전에야 혁신위원들에게 전화를 걸어 발표 시간을 알리고 내용을 전달한 것으로 전해진다.

    김대식 국민의힘 비대위원은 "일부 비대위원이 (전날 윤 위원장의 발언에 대해) 개인적 의견이냐, 혁신위 전체 의견이냐고 묻자 윤 위원장이 '개인적 의견'이라고 했다"며 "인사청문회에 집중할 시기에 그런 문제들이 있으면 고심하고 타이밍을 본 뒤 발표했으면 좋겠다는 부탁을 했다"고 말했다.

    송언석 비대위원장도 비공개 회의에서 혁신위원들과 상의하지 않고 기습 발표한 부분이 당에 부담이 될 수 있다는 우려를 전달했다.

    당 내부에서도 윤 위원장이 혁신위의 권위를 스스로 무너뜨리고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혁신위라는 틀 안에서 토론과 논의 끝에 나온 혁신안이 아니라 자신의 개인적 견해를 혁신위원장이라는 이름으로 표명하는 것 자체가 절차적 정당성을 갖기 어렵다는 비판이다.

    국민의힘의 한 초선 의원은 "혁신 대상을 발표할 혁신위는 그 무엇보다도 엄격한 절차와 도덕성을 갖고 혁신을 주장해야 한다"며 "당의 기득권을 깨는 일을 하는 혁신위원장이라면 이런 점은 더욱 강조돼야 하는데, 오로지 자신만 옳다고 생각하고 있다면 그것 자체가 혁신 대상"이라고 했다.

    윤 위원장에게 거취 압박을 받은 당사자들은 갑작스러운 공격에 반발하고 있다. 

    나경원 국민의힘 의원은 이날 입장문을 통해 "탄핵을 반대한 국민 모두가 계엄을 옹호한 것은 아니다. 폭주 기관차처럼 내달렸던 민주당의 줄탄핵, 카톡 검열과 민주파출소 같은 반헌법적 발상을 민주주의에 대한 중대한 위협으로 판단했던 것"이라고 밝혔다.

    그러면서 "입맛에 맞는 지지층이 아니라며 부끄럽다고 무시하고, 민주당이 정한 길대로 순응하며 반성문만 쓸 거라면 우리 당은 왜 존재하는가"라며 "민주당이 눈엣가시처럼 여기는 사람 몇몇을 제물 삼아 불출마 선언으로 쳐낸다고 해서 내란당 프레임이 사라지지 않는다"고 강조했다.
오승영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