트럼프 탓보다 지나친 제품 수출 의존 경제구조 변화 시급반도체, 석화, 자동차 등 '편식' 심각 'K수출' 수술대 올려야해외투자, K컬처, 금융, 서비스산업 확대로 관세폭풍 영향 줄여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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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수출만 잘하면 국민이 '잘 먹고 잘살 수 있다'는 '공식'이 깨지고 있다. 대한민국 경제의 버팀목이었던 '수출'이라는 큰 축이 파도 앞 모래성처럼 무너지고 있는 것이다.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말 한마디에 지나칠 정도로 제품 수출에 의존해 왔던 한국경제가 '관세'라는 부메랑으로 고통받고 있다. 멕시코, 케나다 등에 생산기지를 구축, 우회 수출하는 방식을 통해 경쟁력을 확보했던 것도 사실상 무용지물이 됐다. 미국 등 글로벌 시장에서 우리 기업들이 살아남기 위해서는 이제 '현지화' 말고는 뚜렷한 대책도 없다.

    이 같은 상황은 석유화학산업에서 이미 진행 중이다. 관세 폭탄을 맞기도 전에 이미 공급과잉의 늪에 빠져 헤어 나오지 못하고 있다. 국내 수요보다 3배 이상 큰 생산량은 수출 말고는 답이 없다. 하지만 최대 시장인 중국의 자급률 상승으로 설 자리를 잃어버렸고, 이러한 영향으로 일부 다운스트림 설비의 경우 단순 셧다운(가동중단)이 아닌 '박스업(매각 및 설비 폐쇄 절차를 위한 중단)' 단계에 이르고 있다. 단기간 내 최소 50% 이상을 폐쇄하거나 통합 없이는 '공멸'을 피할 수 없다는 분석까지 나온다.

    이젠 더 이상 제품 수출 극대화만으로는 우리 기업들이 글로벌 시장에서 살아남을 방법도, 국민이 잘 먹고 잘살 수도 없는 지경에 이르렀다. 이 같은 패러다임의 변화는 이미 십수 년 전부터 시작됐지만, '나만 아니면 된다'는 기업들의 안일한 태도와 정부의 무관심은 수습 불가 상황에까지 이르고 있다.

    한국경제는 과거 두 번의 초고도 성장을 이뤄낸 바 있다.

    1960~1980년대 경공업을 중심으로, 1980~2000년대 반도체, 자동차, 선박, 철강, 석유화학, 정유 등 중공업과 기술 산업을 기반으로 전 세계에서 유래를 찾을 수 없는 고도성장을 이뤄냈다. 나름 기술력을 바탕으로 통신업, 서비스업, 금융업 등의 발전도 함께 이어져 왔지만, 내수용에 그쳤다. 

    국가 간 경계를 넘기에는 자원도 국력도 뒷받침이 되지 못했다. 인터넷 시대가 열렸지만, 국내 기업들은 대부분 텃밭인 국내시장에서 경쟁에 그쳤고, 해외 진출을 하려 해도 상대국가의 규제를 넘어서지 못했다.

    그 사이 세계 최대 국력을 갖춘 미국 기업들은 인터넷 시장을 장악했고, 이어 최첨단 미래산업으로 불리는 AI 시장도 이끌어 가고 있다. 미국을 중심으로 한 얼라이언스에 올라타야 떨어지는 콩고물이라도 기대해 볼 수 있지만, 한국 기업에 곁을 주지 않는다.

    결국 2000년대 이후 새로운 성장을 위한 먹거리를 확보하지 못하면서, 과거 중공업과 반도체, 석유화학, 선박, 등 제품 수출 의존도는 세계 최고 수준까지 올라가게 된다. 

    당시 화두는 '규모의 경제'. 생산능력을 키워 원가 경쟁력을 높여 수출로 성장을 이어가는 방식은 석유화학산업과 철강산업에서 가장 뚜렷했다. 작금의 관세 역풍은 어찌 보면 당연해 보인다. 

    대한상의 조사 결과에 따르면 2013년 한국의 GDP(국내총생산) 대비 상품 수출 비중은 37.6%로 G20 국가 중 가장 높다. 제조업 강국인 독일(33.3%), 중국(17.9%), 일본(17%)보다 의존도가 높고, G20 평균(16.5%)보다 2배 이상 높다. 관세 폭풍에 매우 취약하다.

    실제 WTO(세계무역기구) 체제 속에서 1995년 기준 제품 수출액은 1251억달러에서 2013년 6436억달러로 5배 이상 커졌고, 양적성장의 결과는 글로벌 경기침체와 보호무역주의 강화 등 외부 충격에 고스란히 노출된 셈이다.

    가장 큰 문제는 관세 영향을 크게 받지 않는 우리나라의 서비스수지의 경우 만성적자 구조라는 점이다. 1995년 -13억9000만달러에서 지난해 -268억2000만달러까지 확대됐지만, 이 기간 중 1998년과 1999년 2년만 흑자를 기록했을 뿐이다. G20 중 제품 수출 의존도는 1위인데, 서비스수지 적자 규모는 중국, 독일, 사우디, 브라질, 러시아에 이어 거꾸로 6번째다. 관세 폭풍에 따라 상품수지 적자를 커버해 줄 안전판 역할의 부재가 안타깝다.

    지난해 한국은 미국과의 교역에서 '557억'달러 흑자를 기록했다. 역대 최고치다. 또 제품 수출액은 전년도보다 10.4% 급증한 '1278억달러'다. 지나친 수준이라는 게 트럼프의 인식이다. 4월 상호관세를 발표한 이후 합의를 이룬 나라는 영국, 베트남, 인도네시아 세 곳에 그친다. 합의에도 불구하고 영국 10%, 베트남 20%, 인도네시아 19%를 계속 적용받게 된다.

    트럼프가 쏘아 올린 관세전쟁은 '취약한 한국경제의 구조적 문제점'을 수면 위로 끌어 올렸다. 포문을 연 미국은 협상을 서두를 기색이 없다. 8월 1일 기존 서한대로 상호관세가 부과되면, 제품 수출 주도형 한국의 경제구조는 쉽게 허물어질 수밖에 없다. 이미 철강과 알루미늄 등 품목 관세가 붙어 있는 산업의 경우 부담은 더 커진다. 나아가 반도체, 의약품, 항공기 등에 대한 품목별 관세도 예고한 상태다. 이는 상호관세와는 별도다. 합의를 이뤄내더라도 과거 수준의 관세 환경으로는 돌아갈 수 없다.

    단편적으로 가장 우려스러운 부분은 관세 협상을 원하는 수준까지 끌어올리지 못한 미국이 반도체 원천 파운드리 기술을 대만 TSMC에만 주고 한국을 배제하면서, 자동차 수출까지 흔들어 버릴 경우다. 이미 공멸에 기로에선 석유화학과 함께 수출의 큰 축인 반도체, 자동차까지 3대 축이 무너지면, 한국경제는 일본의 '잃어버린 30년'을 그대로 답습하게 된다.

    하지만 이재명 정부는 상법개정에 이어 노란봉투법도 모자라 세계 최고 수준인 법인세(24%. 미국 21%→15% 추진중, 日 23.2%, 독일 15.8%) 인상 카드까지 만지작거리고 있다. 기업들이 기댈 곳이 없다.

    관세 카드를 가지고 전 세계를 쥐락펴락 하는 트럼프만을 탓할 게 아니다.

    이번 위기를 통해 상품 수출 의존도가 지나치게 높은 한국경제의 문제점을 정확히 인지하고, 수출구조를 서비스산업 분야와 해외투자 다각화로 확대할 수 있는 국가적 지원책과 파격적인 규제개혁을 위해 정부가 나서야 한다. 기업 자율에 맡겨서는 석유화학산업 구조개편 처럼 타이밍만 놓치게 된다.
최정엽 산업에디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