트럼프 압박 속 드러난 대미외교 한계불투명한 특사 인선, 졸속외교 반복 우려특사 성공 비결은 권한·진정성·적시성미국·유럽의 투명한 특사 제도 배워야
  • ▲ 2024년 9월 12일 당시 더불어민주당 대표 신분이던 이재명(오른쪽) 대통령이 서울 종로구 광화문 인근의 한 식당에서 김종인 전 국민의힘 비상대책위원장을 만나 악수하고 있다. ⓒ국회사진기자단

    이재명 정부 출범 이후부터 꼬이기 시작한 한미 동맹 관계가 시간이 갈수록 봉합은커녕 더 꼬이는 모습이다. 

    미국과의 관세 협상은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의 강공 노선에서 좀처럼 접점을 찾지 못하고 있다. 별수 없이 그간 고수해온 먹거리, 즉 소고기 월령제한 폐지 카드까지 꺼낼 심산이다. 광우병 파동에서 볼 수 있듯, 미국산 소고기에 대해 알레르기를 일으켰던 좌파 측에서 별 수 없이 관세 협상의 물꼬를 열기 위해 '금지된 카드'를 내놓으려는 것이다. 

    우리 정부는 미국의 강경 입장에 맞서 방위비 인상 카드와 전시작전통제권 환수 문제를 거론하는 모습이지만, 이것이 꼬인 한미관계를 풀 열쇠가 되기는 힘들어 보인다. 소고기와 수입차 등 광범위한 비관세 장벽 해제가 나올 수 밖에 없는 형국이다. 

    문제는 이재명 대통령이 복잡하게 얽힌 한미 관계의 변수를 풀어보려 대미 특사 카드를 꺼내려 했지만, 이 또한 여권의 반발 속에 덜컹거리는 모습이다. 좌우를 넘나든 김종인 전 국민의힘 비상대책위원장을 대미 특사로 보내 노회한 협상술을 기대해 보려 했지만, 카드를 꺼내기도 전에 반발에 부딪히며 이재명 정부의 대미 특사 외교가 첫발부터 난항을 겪게 됐다. 

    특사 문제는 특히 새 정부의 외교 관계의 문을 열 중요 포인트이고, 더욱이 난제가 얽힌 현 시점에서는 가장 중요한 대통령의 용인술인데 이것이 꼬인 것이다. 

    외교 전문가들은 특사 외교가 성공하려면 명확한 임무와 진정성 있는 메시지, 적절한 타이밍, 충분한 협상 환경 등을 갖춰야 한다고 입을 모으고 있다. 

    미국 평화연구소(USIP)는 "특사가 효과적으로 임무를 수행하려면 대통령과 국무장관으로부터 명확한 권한과 구체적인 임무를 위임받고, 일반적인 관료적 제약을 넘어설 수 있는 자율성을 확보해야 한다"고 강조한다.


    전략국제문제연구소(CSIS)도 특사 성공을 위한 조건으로 최고위급 접근 권한, 관계 기관 협업, 범정부 정책 소유권, 전문 인력과 충분한 예산 확보를 제시했다.

    과거 한 미국 국무장관이 자국의 새 특사를 배제하고 상대국 외교장관과 직접 회담을 진행했던 사례처럼 권한과 신뢰가 부족한 특사는 현장에서 무력화될 위험이 크다.

    그러나 현재 확정된 우리나라 특사들은 대부분 선거대책위원회에서 주요 직책을 맡은 인물들이고, 특사단원도 민주당 의원들 위주로 구성돼 "대선 승리에 대한 포상 휴가"라는 비판이 나오고 있다. 이재명 정부의 특사 파견은 애초부터 구조적 한계를 안고 있었다는 지적이 나온다.

    ◆대미 특사 파견 배경

    미국 백악관이 한국 대선 이후 중국의 개입 가능성을 공개적으로 우려한 것은 이재명 정부의 대중 외교 기조에 대한 미국 측의 경계심을 보여준다. 트럼프 대통령은 이런 배경에서 한국에 대해 25% 부과와 방위비 분담금 전액 부담을 압박하며 동맹국의 안보 책임 강화와 대중 견제 등 미국의 전략적 요구에 호응할 것을 요구하고 있다.

    이에 위성락 국가안보실장과 여한구 산업통상자원부 통상교섭본부장이 급히 미국으로 향했으나 관세 부과 통보를 서한과 SNS를 통해 일방적으로 받으면서 '굴욕외교' 논란이 일었다.


    또 한국 정부가 이를 톱다운 방식으로 해결하고자 한미 정상회담까지 제안했으나 마코 루비오 미 국무장관은 원론적 공감만 표했을 뿐 구체적 답변을 내놓지 않았다.

    이러한 상황에서 대통령실은 김 전 위원장에게 특사를 제안했고, 김 전 위원장도 이를 수락했지만, 그가 2021년 SNS에 트럼프 대통령을 "내란 혐의자이자 선동 정치, 우민 정치, 광인 정치의 극명한 사례"라고 비난한 글이 재조명되면서 내정이 철회됐다.

    여당 내부에서도 "우리 편이 아닌 인사를 특사로 보내는 데 대한 견제 심리가 작용했다"는 이야기가 나오며 내부 혼선이 노출됐다. 결정 과정에서 여당과 사전 조율이 부족했음이 드러났고, 대통령실과 여당, 외교부 간 충분한 협의 없이 이뤄진 불투명한 인사였다는 비판도 제기됐다.

    김대중 정부의 첫 통일부 장관을 지낸 강인덕 전 장관은 한 언론 인터뷰에서 "한덕수 전 국무총리 등 대미 인맥이 탄탄한 인사를 특사로 보내야 미국이 이재명 정부를 다시 보게 될 것"이라고 조언했다.
    ▲ 이재명 대통령이 10일 서울 용산 대통령실에서 열린 국가안전보장회의(NSC) 전체회의에서 위성락 국가안보실장과 대화하고 있다. ⓒ대통령실 제공

    ◆특사외교 성공과 실패 사례로 본 이재명 정부의 한계

    이재명 정부는 앞서 위성락 실장과 여한구 본부장의 방미 성과가 미흡해지자 특사 외교에 희망을 걸었지만, 역사적으로 특사 외교는 정치적 상징성에 그치는 경우가 많았다.

    버락 오바마 미국 행정부 당시 조지 미첼 중동 평화 중재 특사는 수천 번의 회담에도 이스라엘-팔레스타인 평화협정 체결에 실패했고, 유엔의 군나르 야링 중동 특사도 이스라엘-아랍 중재에 실패했다. 이는 단순한 상징용 특사로는 복잡한 이해관계를 풀어낼 실질적 성과를 기대하기 어려우며, 이해관계가 명확히 조율되지 않은 상황에서 특사는 제대로 된 역할을 수행하기 어렵다는 점을 보여준다.

    반면 2016년 10월 도테르테 대통령이 임명한 호세 마누엘 로무알데즈 미국 특사는 필리핀-미국 전쟁(1901년) 당시 미군이 전리품으로 가져간 '발랑이가 종'(Balangiga Bells)의 반환, 코로나19 팬데믹 기간 중 코로나 백신 총 6600만 도즈 확보 등 명확한 실무 목표와 충분한 권한을 부여받아 성과를 낸 사례도 있다.

    중국의 2023년 사우디아라비아-이란 관계 정상화 중재는 당사국의 명확한 이해관계와 중국의 적극적인 지원, 적절한 시점 선정이 어우러진 성공 사례로 꼽힌다.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이 2022년 12월 사우디를 방문해 34개의 에너지·투자협정을 체결하고 2023년 2월 이란 대통령이 중국을 방문해 협력 강화를 발표한 후 3월 베이징에서 7년 만에 양국 외교관계가 정상화됐다. 양국의 최대 무역 파트너인 중국이 에너지 협력과 투자 등 강력한 당근책을 제시했던 것이다.

    빌리 브란트 서독 총리의 사례는 특사의 '진정성 있는 메시지'가 외교 성과를 좌우할 수 있음을 증명했다. 1970년 브란트 총리는 폴란드 바르샤바 유대인 위령탑 앞에서 무릎을 꿇고 나치 독일의 만행을 사죄했다. 이는 사전에 계획된 것이 아닌 즉흥적인 행위였지만, 전범국 수장으로서의 진심어린 사죄를 통해 독일과 폴란드의 관계정상화를 이끌어냈다. 브란트의 동방정책은 1971년 노벨평화상 수상으로 이어졌고, 궁극적으로 독일 통일의 초석이 됐다.

    특사 외교의 성공 사례와 실패 사례는 이재명 정부가 추진한 특사 외교의 근본적 한계를 잘 보여준다. 조지 미첼과 군나르 야링의 실패 사례는 '접근 권한 부족'과 '범정부 협업 미흡'을 나타낸다.

    이에 반해 로무알데즈 특사와 중국의 중동 중재, 빌리 브란트 사례는 각각 '충분한 권한' '명확한 이해관계 조율' '진정성 있는 메시지'라는 성공의 필수 조건을 제시한다. 그러나 김종인 특사 내정 논란으로 드러난 이재명 정부의 대미 특사 파견 과정은 이러한 성공 요건을 하나도 충족하지 못했다는 평가가 나온다.
    ▲ 이재명 대통령이 14일 충북 청주시 흥덕구 오송읍 궁평2지하차도를 방문해 안전시설 현황 점검을 하고 있다. 오송 지하차도 참사는 지난 2023년 7월15일 청주 흥덕구 오송읍 궁평2지하차도가 인근 미호강 범람으로 침수되면서 발생했다. ⓒ뉴시스

    ◆ 특사 임명의 법적·제도적 한계와 투명성 문제

    대통령 특사의 임명은 법적 근거는 존재하지만, 운용 절차는 대통령의 재량에 크게 의존한다. '정부대표 및 특별사절의 임명과 권한에 관한 법률'에 따르면, 정부를 대표해 외국 정부와 교섭하거나 국제회의 참석, 조약 서명 등을 수행할 자를 정부대표 또는 특사로 임명할 수 있다. 그러나 이 법령은 특사의 구체적 선정 기준이나 국회 동의 절차를 명시하지 않고 임무 내용도 "정부 입장 전달, 교섭 또는 참석"으로 포괄적으로 규정해 특사의 권한 범위가 모호하다.

    외교 교섭은 외교부 장관의 지휘·감독을 받도록 규정돼 있지만, 현실적으로 특사 임명 과정에서 외교부의 역할은 형식적인 제청과 사후 보고 그치는 경우가 많다. 특사에 대한 사전 검증이나 성과 평가 시스템도 없어 대통령이 정치적 필요에 따라 임의로 인사를 파견하면 특사의 위상과 권한이 불명확해 실효성 있는 외교 성과를 기대하기 어렵다.

    특사가 공식 직책이 아니기 때문에 상대국에서 국빈 대우를 받지 못하거나 정상 면담이 제한되는 사례도 종종 발생한다. 과거에도 졸속 특사 파견이 외교적 결례와 신뢰 하락으로 이어진 사례가 있었다. 이명박 정부 시절 대통령 친형인 이상득 의원을 리비아 특사로 급파했으나 출발 사흘 전에야 외교부에 일정이 통보되면서 당시 국가원수였던 무아마르 카다피와의 면담이 무산됐다. '김종인 특사' 내정과 철회 과정에서 드러난 혼선도 정부 신뢰성에 부정적인 영향을 미쳤다.

    반면 미국은 대통령 특사를 임명할 때 대부분 백악관 국가안보회의(NSC)와 국무부 등 관련 부처 간 사전 조율과 검증을 거친다. 영국도 특사 임명 시 외무부와 총리실이 긴밀히 협의하며, 대부분 현직 또는 전직 고위 관료, 외교관 등 공적 신뢰가 충분히 검증된 인사를 파견한다.

    독일·프랑스도 특사 선정 과정에서 외무부와 총리실 또는 대통령실이 사전에 긴밀히 협력하고, 상대국과의 충분한 협의를 거치며 유럽연합(EU) 차원의 사전 협의와 조율을 통해 정치적 논란이 적은 인사를 특사로 선정하는 것이 일반적이다.

    이러한 외국 사례와 비교할 때 한국은 상대적으로 대통령 개인의 재량이 지나치게 크고, 사전 검증 절차와 외교부 등 관계부처 간의 협의 및 국회의 역할이 미약하다. 이로 인해 정치적으로 논란이 많은 인사가 특사로 내정되거나, 졸속 인선이 반복되는 사례가 이어지고 있다.

    이에 대해 한 외교 전문가는 "이재명 정부가 특사 외교에서 성과를 내려면 법적·제도적 근거를 강화하고 명확한 권한과 투명한 인선 절차를 확립해야 한다"며 "이러한 제도적 개선 없이는 특사 외교는 신뢰를 잃고 한미동맹에도 부담을 줄 수 있다"고 지적했다.
조문정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