석방 123일 만에 다시 '영어의 몸'…대통령 최초 두차례 구속박근혜-최순실 국정농단 특검 수사 이끈 특수통 검사 출신공수처, 내란수괴 혐의로 첫 구속…특검, 직권남용 등 혐의로 재구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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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12·3 비상계엄과 관련해 특검의 수사를 받는 윤석열 전 대통령이 9일 서울 서초구 서울중앙지법에서 열린 영장실질심사에 출석하기 위해 법정으로 향하고 있다.ⓒ연합뉴스
비상계엄 선포로 한차례 구속됐다 풀려난 윤석열 전 대통령이 10일 새벽 두 번째 구속영장 발부로 석방 네 달만에 재구속됐다.
2016년 박근혜-최순실 국정농단 의혹을 규명하고자 출범한 박영수 특별검사팀의 수사팀장을 지낸 특수통 검사 출신 윤 전 대통령이 조은석 내란특검팀의 구속영장에 다시 '영어의 몸' 신세가 된 것이다.
서울중앙지법 남세진 영장전담 부장판사는 이날 오전 2시 7분쯤 직권남용 권리행사방해, 특수공무집행방해, 허위공문서작성 및 동행사, 대통령기록물법 위반, 공용서류손상, 대통령경호법 위반, 범인도피 교사 혐의로 내란 특검팀이 청구한 윤 전 대통령의 구속영장을 발부했다.
남 부장판사는 전날 오후 2시 22분부터 6시간 40분간 구속 전 피의자 심문(영장실질심사)을 한 뒤 "증거를 인멸할 염려가 있다"고 영장 발부 사유를 밝혔다.
윤 전 대통령은 혐의를 전면 부인했지만, 법원은 특검팀이 제시한 관계자 진술과 물적 증거를 토대로 혐의가 소명된다고 판단한 것으로 보인다.
또 적법한 절차를 거친 계엄 선포인 것처럼 속이려 사후에 허위 계엄 선포문을 만들고, 수사를 대비해 내란 공범들의 비화폰 기록 삭제를 지시하는 등 범행 그 자체가 증거인멸에 해당한다는 특검팀 주장도 받아들인 것으로 풀이된다.
국가 원수의 지위에 있던 윤 전 대통령이 '내란 우두머리'라는 혐의로 수사를 받게 된 것은 작년 12월 3일 밤 기습 선포한 '12·3 비상계엄'이 발단이 됐다.
비상계엄 선포 직후 '정치활동 금지' 등 위헌적 내용이 담긴 포고령이 발표됐고, 무장 군인과 경찰 수천 명이 동원돼 국회를 봉쇄했다.
하지만 국회는 이튿날인 4일 새벽 1시 계엄 해제 요구안을 의결했고, 윤 전 대통령은 결국 같은 날 오전 4시 27분께 계엄 해제를 선포하면서 비상계엄은 6시간 만에 마무리됐다.
이후부터 수사기관이 경쟁적으로 수사에 돌입했다. 검찰은 계엄 사흘만인 12월 6일 박세현 서울고검장을 필두로 특별수사본부를 꾸려 윤 전 대통령 수사에 착수했고,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공수처)도 수사를 개시했다.
현직 대통령은 형사 불소추 특권이 있지만, 내란·외환죄는 예외다. 윤 전 대통령에 대한 수사는 내란 우두머리 혐의가 적용됐다. 윤 전 대통령은 비상계엄 선포가 정당했다고 항변하면서 검찰과 공수처의 출석요구에 모두 불응하고 수사에 협조하지 않았다.
내란죄 수사 권한이 없는 공수처는 윤 대통령이 세 차례의 출석요구에도 응하지 않자 관할법원인 아닌 서부지법에 체포영장을 발부받았고, 두 차례의 체포 시도 끝에 1월 15일 한남동 관저에서 현직 대통령 신분이던 윤 전 대통령을 체포했다.
이어 공수처가 청구한 구속영장을 서울서부지법이 발부하면서 윤 전 대통령은 1월 19일 결국 구속됐다. 현직 대통령이 구속된 첫 사례였다.
내란 우두머리 혐의로 구속기소 된 윤 전 대통령은 구속 상태로 계속 1심 재판을 받는 듯했으나, 법원이 3월 7일 전격 구속취소 결정을 내리면서 반전을 맞았다.
검찰의 구속기간 산정이 잘못됐다는 윤 전 대통령 측 주장을 법원이 받아들인 것으로, 윤 전 대통령은 결국 구금된 지 52일 만인 3월 8일 서울구치소에서 석방됐다.
윤 전 대통령은 불구속 상태에서 내란 우두머리 혐의 형사재판과 헌법재판소의 탄핵심판을 받았다. 헌재는 4월 4일 윤 전 대통령에 대해 만장일치로 탄핵을 결정했다.
조기 대선으로 출범한 이재명 정부는 내란특검·김건희특검·순직해병특검 등 '3대 특검'을 임명했다. 이후 조은석 특검이 이끄는 내란특검팀은 윤석열 정부 국무위원들과 경호처 간부들을 줄줄이 소환해 국무회의 계엄 심의권 방해와 사후 계엄 선포문 작성 및 폐기, 비화폰 증거인멸 등 윤 전 대통령 혐의를 집중적으로 수사했다.
내란특검팀은 지난달 28일과 이달 5일 두차례에 걸쳐 윤 전 대통령을 소환조사했고, 증거인멸 우려 등을 이유로 구속영장을 청구해 결국 윤 전 대통령을 재구속하기에 이르렀다.
잘 나가던 대표적 특수부 검사에서 2013년 '국정원 댓글 사건' 수사외압 폭로 이후 징계받고 고검 검사로 한직을 돌던 윤 전 대통령은 박근혜-최순실 국정농단 특검 수사팀장으로 활약하며 박 전 대통령과 최씨 등을 구속 기소했다.
그는 이를 발판 삼아 문재인 정부에서 검사장인 서울중앙지검장으로 수직 상승했고, 다시 중앙지검장에서 검찰총장으로 이례적으로 직행했다. 통상 수사의 중립성 등을 고려할 때 중요 사건 수사를 이끌던 중앙지검장을 곧장 검찰 총수인 총장으로 앉히는 것은 금기시돼왔지만 윤 전 대통령은 예외에 예외의 길을 걸었다.
이후 '조국 수사'로 정권과 극한갈등을 겪다가 국민의힘 후보로 대선에 출마했고 결국 2022년 제20대 대통령으로 당선되며 권력의 정점에 섰다. 특검 수사팀장으로 현직 대통령을 수사하던 그는 9년 뒤 대통령 재직 때 자행한 범죄 혐의로 또 다른 특검으로부터 구속수사를 받는 처지가 됐다.

송학주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