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위비 100억 달러, 美 무기 구매로 해법 모색日·폴란드式 전략무기 도입 카드 꺼내야트럼프의 압박, 美 전술핵 현대화로 풀지도 관심C17 수송기·F15K 현대화·AWACS 도입 시급전자전기 도입·美 AI기업 팔란티어와 협업도
  • ▲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24일(현지 시간) 메릴랜드주 프린스 조지 카운티에 있는 조인트 베이스 앤드루스에서 북대서양조약기구(나토) 정상회의 참석 차 네덜란드로 향하는 전용기에 탑승해 취재진 질문을 듣고 있다. ⓒAP/뉴시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8일(현지시각) 한국은 스스로 방위비를 부담해야 한다면서 주한미군 주둔비 중 한국이 내는 방위비 분담금을 연간 100억 달러(약 13조7000억 원)까지 늘려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는 기존 방위비의 9배에 해당하는 수치다.

    트럼프발 '방위비 청구 폭탄' 압박을 완화하려면 베트남이 미국과 상호 관세율을 대폭 인하하는데 성공했듯, 대중(對中) 견제 전략에 동참하면서 한미 동맹의 기틀을 굳건히 하는 것이 최선의 방안으로 거론되고 있다.

    실제로 베트남은 자국을 경유하는 '중국산 수출품'에 관세를 크게 높여 미국의 신뢰를 끌어냈다. 이처럼 한국은 미국과 일본이 추진하는 '원 시어터(One Theater) 구상' 참여와 트럼프 대통령의 대미 적자 완화에 기여할 미국산 무기 구매를 통해 위기 돌파를 모색하자는 주장도 나온다.
    ▲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지난 4월 8일(현지 시간) 백악관 이스트룸에서 석탄 산업 활성화 행정 명령에 서명하고 있다. 트럼프 대통령은 석탄 발전을 통한 전력망 안정을 꾀하는 내용 등이 담긴 '미국 에너지 활성화 행정명령'에 서명했다. ⓒAP/뉴시스

    트럼프 FMS 개혁, '동맹국 무기 구매' 유도?

    도널드 트럼프 행정부는 1기에 이어 2기에서도 동맹국들에 방위비 분담금 증액을 강하게 압박하는 한편, 미국산 무기 구매 확대를 통해 동맹국들이 자체 역량을 키워 미군의 부담을 덜도록 유도하고 있다.

    트럼프 대통령은 지난 4월 미국의 대외군사판매(FMS) 시스템 개혁을 위한 행정명령에 서명했다. 이 행정명령은 동맹국에 대한 '우선 무기 이전 품목'(Priority end-items)과 '우선 파트너 리스트'(Priority partners)를 별도로 지정해 동맹국의 무기 구매가 미국의 글로벌 전략과 부담 분담에 기여하도록 정책적 유인을 강화하는 내용을 담고 있다.

    이에 따라 국무장관은 국방장관과 협의해 우선 파트너 리스트를, 국방장관은 이들 파트너에 대한 우선 이전 품목 리스트를 작성해야 한다. 해당 리스트는 매년 검토·갱신된다.

    구체적 리스트가 공개된 사례는 없으나, 미국과 안보 협력 수준이 높고 전략적 부담 분담에 적극적인 일본, 호주, 영국, 북대서양조약기구(NATO) 주요 회원국 등이 포함될 가능성이 크다.

    우선 무기 이전 품목 선정 기준은 미사일 방어체계, 정찰기, 무인기, 첨단 전투기, 우주·사이버 관련 장비 등으로, 동맹국의 군사 능력 향상과 미국의 글로벌 전략 목표 달성에 기여하되 미군 전력 운용에 부담을 주지 않는 첨단무기 체계가 될 전망이다.

    미국은 세계 최대 무기 수출국이며, 한국은 미국산 무기 구매 규모에서 최상위권을 기록해 온 주요 고객이다. 미국은 방위비 협상에서 동맹국의 무기 구매액을 지렛대로 삼아 방위비 인상 폭을 조정하는 협상 전술로 사용해 왔다.

    "방위비와 무기 판매는 별개"라는 미국의 진짜 속내

    물론 미국 정부는 '주한미군 방위비분담특별협정'(SMA) 협상과 무기 판매는 공식적으로 별개의 사안이라는 입장을 취하고 있다. 미 국무부도 "대통령은 동맹국들이 공동 방위에 더 기여해야 한다는 입장을 분명히 해왔다"면서도, 방위비 협상에 무기 구매 조건을 공식적으로 연계하는 것을 인정하지 않는다.

    하지만 트럼프 대통령은 1기부터 한국과 일본이 미국산 군사장비를 대규모로 구매할 것이라고 공개적으로 강조하며, 사실상 방위비 증액 압박과 무기 판매 확대를 동시에 추진해 왔다.

    한국 정부도 공식적으로는 "방위비 협상에 무기 구매를 연계하지 않는다"고 밝히고 있다. 2020년 제11차 SMA 협상 당시 정은보 한미방위비협상대사는 '한국의 미국산 무기 구입이 협상과 연계됐다'는 의혹을 부인하면서도 "동맹 기여에 대한 정당한 평가를 받기 위해 무기 구매 등을 미국 측에 설명하고 있다"고 밝혔다.

    SMA 협상은 방위비 분담금 항목만 다룰 뿐 무기 계약은 협상 대상이 아니다. 다만 협상 과정에서 미국산 무기 구매 확대를 제시하며 방위비 인상 폭을 낮추는 비공식적 '이면 합의'가 이루어질 가능성은 있다.

    실제로 2021년 SMA 협상 당시 CNN은 한국의 방위비 증액과 미국산 무기 구매가 함께 논의됐다고 보도해 논란이 되기도 했다.
    ▲ 도널드 트럼프 미 대통령(오른쪽)이 2019년 6월 12일(현지시간) 백악관에서 미국을 방문한 안드레이 두다 폴란드 대통령과 공동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트럼프 대통령은 이날 폴란드에 미군 1000명을 추가 파병할 것이라고 발표했다. ⓒAP/뉴시스

    ◆일본·폴란드, 미국산 무기로 '트럼프 압박' 잠재웠다

    미국의 동맹국들은 트럼프 행정부의 방위비 증액 압박을 미국산 무기 구매 확대를 통해 우회적으로 대응했다.

    일본은 2018년 말 F-35 전투기 105대를 추가로 구매해 미국의 압박을 피했고, 2022년 기시다 내각은 국내총생산(GDP) 대비 방위비를 2%로 증액하면서 토마호크 순항미사일 등 공격 능력을 확보하는 미국산 무기 도입을 추진했다.

    나토 회원국인 폴란드는 GDP 대비 국방비 비중을 2% 이상으로 높이고 패트리엇 미사일과 F-35 전투기 등 대규모 미국산 무기를 구매했다. 심지어 미군 영구 주둔기지 설치를 위해 '포트 트럼프'(Fort Trump)를 제안하며 20억 달러의 건설비를 직접 부담하겠다는 제안도 내놨다.
    ▲ 호주 공군(RAAF) 소속 대응팀이 2024년 12월 18일 퀸즐랜드주 앰벌리 공군기지에서 C-17A 글로브마스터III 전략수송기에 탑승해 바누아투로 향하고 있다. 이들은 전날인 17일 남태평양 바누아투 해역 인근에서 발생한 규모 7.3 지진의 구호활동을 위해 파견됐다. ⓒ호주 공군 제공

    ◆트럼프 압박 대응을 위한 美 무기 쇼핑리스트

    한국이 미국과 '윈-윈'(win-win) 관계를 형성하려면, 미국이 예산 문제로 현대화를 축소한 전술핵무기 일부를 한국 예산으로 현대화한 뒤 한국 방어용으로 지정하는 방안도 고려할 만하다. 미국은 B61 폭탄 현대화를 추진했지만, 예산 제약으로 480여 기만 B61-12로 정밀 타격이 가능하도록 개량했다.

    군사전략·무기체계 전문가인 양욱 아산정책연구원 연구위원은 "미국이 전술핵 현대화에 10년간 60억 달러(약 8조 원)를 투자하는데, 이중 한국이 약 10분의 1을 부담하고 전술핵탄두 30기를 한반도 전용으로 별도 지정하도록 협의할 수 있다"고 제언했다. 다만 이는 정치적으로 민감한 사안으로, 정부의 신중한 검토가 필수적이다.

    한국이 도입을 고려할 만한 미국산 전략무기는 C-17 글로브마스터III 전략수송기, F-15K 전투기 성능 개량, E-737 피스아이 조기경보통제기(AEW&C) 추가 도입, EA-18G 그라울러 전자전 항공기 등이다.

    미국 보잉사가 개발한 대형 전략수송기인 C-17은 유사시 대규모 병력 및 장비를 신속하게 수송할 수 있고, 해외 작전 지원과 재난 구호 작전에서도 뛰어난 성능을 입증했다. 한국 공군도 과거 도입을 검토했지만 예산 문제로 무산된 바 있는데, 미군을 비롯한 호주, 영국, 인도 등 미국의 주요 동맹국이 운용하고 있어 연합작전 상호운용성 및 미군 신뢰도를 제고할 수 있다.

    다만, C-17 생산라인은 이미 종료된 상태여서 이를 신규로 도입하려면 영국·독일 등 나토 회원국과 일본·호주 등 아시아 동맹국들이 최소 30~50대 이상의 대규모 공동발주 계약을 체결해야 한다. 또한 미국 정부와 의회가 동맹국의 전략적 수요를 인정하고 정책적으로 생산라인 재가동을 승인해야 하며, 보잉이 신규 생산라인 구축 비용의 일부를 미국 정부 또는 참여국들과 공동 분담하는 방안이 필요하다.

    보잉이 생산한 F-15K는 한국 공군의 주력 전투기다. 현재 레이더, 항전장비, 무장체계 등을 최신형으로 업그레이드하는 성능개량 사업이 추진되고 있다. 최근 중국과 러시아가 5세대 전투기를 배치하고 북한도 신형 미사일 개발을 가속화하면서 한반도의 안보 환경이 급변한 만큼, F-15K의 성능 개량이 시급하고 필수적이다.

    E-737 피스아이 AEW&C는 한국 공군이 이미 4대를 운용 중이지만, 추가 도입 필요성이 지속적으로 제기됐다. 북한의 미사일 위협 증가와 중국의 군사력 강화로 인해 공중감시와 조기경보 임무의 중요성이 크게 높아진 상황에서 AWACS 추가 도입은 공중감시 역량을 획기적으로 높일 수 있는 가장 현실적인 방안으로 꼽힌다.

    또한 미 해군의 최신형 전자전기인 EA-18G 그라울러는 한국군이 현재 부족한 전자전 역량을 단기간에 보완해 안보 공백을 최소화할 수 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 미국 AI 국방기업 팔란티어가 공식 유튜브 채널에 공개한 영상 '전쟁의 미래'(The Future of Warfare). ⓒ팔란티어 유튜브 채널 캡처

    한편, 우크라이나 전쟁에서 활약한 미국 AI(인공지능) 국방기업 팔란티어와 협력해 AI 기반 전장 관리 시스템을 도입하는 방안도 주목할 만하다.

    팔란티어는 현재 미군과 나토, 우크라이나 등에 AI 기반의 첨단 전장 관리 및 지휘통제 시스템을 제공하고 있다. 한국군이 팔란티어와 협력해 AI 기반의 전장 관리시스템을 도입하면 지휘통제 역량과 작전 효율성을 획기적으로 높일 수 있다. 한국형 AI 국방체계를 구축하는 데도 크게 기여할 것으로 기대된다.

    양 연구위원은 "현재 운용 중인 AWACS의 노후화가 심각해 2~4대를 추가 도입해야 하는데 비용은 3조에서 6조 원 이상이 들 것으로 예상된다"면서 "미국산 전자전기 도입은 KF-21 기반의 전자전기 개발(2030년대 초반 완료 예정)과 실전 배치까지 공백을 보완할 수 있다"고 말했다.

    이어 "팔란티어는 최근 중동 지역에서의 전투에서도 동시에 수백 개의 표적을 식별·공격할 수 있는 첨단 AI 체계를 개발했다"며 "이러한 첨단 AI 체계를 국내에 도입하는 것도 중요한 과제"라고 강조했다.
조문정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