韓, '원 시어터' 구상 등 對中 견제 동참 절실'이스라엘式 심리전'처럼 트럼프 인정욕 자극해야13조 쿠폰 vs 1.5조 방위비, 국익 어디에?
  • ▲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4월 2일(현지 시각) 미국 워싱턴 백악관 로즈가든에서 '상호 관세'(reciprocal tariffs) 행정명령 서명서를 들어 보이고 있다. 트럼프 대통령은 각국의 광범위한 반대에도 불구하고 이날 특정 무역 상대국에 최소 10% 이상의 '상호 관세'를 부과하는 행정명령에 서명했다. ⓒ중국 신화통신/뉴시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한국산 제품에 대한 '25% 상호관세' 부과 시한을 다음 달 1일로 연장하면서 추가 연장은 없을 것이라고 으름장을 놓았다. 이에 따라 미국이 요구하는 주한미군 방위비 분담금 전액 부담과 대중(對中) 견제 전략인 '원 시어터(One Theater) 구상'에 한국이 보다 선제적으로 대응할 필요성이 제기되고 있다.

    실제로 트럼프 행정부가 요구한 '대중 견제'에 적극 동참함으로써 기존 상호 관세율을 46%에서 20%까지 낮추는 성과를 거둔 베트남 사례와 트럼프 대통령의 '인정 욕구'를 공략해 이란의 핵 능력 일부 제거라는 목표를 달성한 이스라엘의 사례는 우리나라에 시사하는 바가 크다.

    베트남과 이스라엘의 사례는 이재명 대통령의 외교안보 기조인 '국익을 위한 실용외교' 측면에서도 트럼프 대통령이 원하는 전략적 목표에 부응하는 선택이 유효한 전략적 대안이 될 수 있음을 보여준다.

    전문가들은 이재명 정부가 추진 중인 일회성 13조 원 규모의 전국민 현금성 지원금 지급보다 추가 요구되는 주한미군 방위비 분담금 1조5000억 원을 전략적으로 투자해 장기적 안보와 경제 인프라 구축을 도모하는 것이 국가적 실익 측면에서 더욱 효과적이라고 평가한다.
    ▲ 중국의 제1도련선은 일본, 대만, 필리핀, 보르네오 등 동아시아 연안에서 이어지는 첫 번째 섬 사슬로, 중국 해군의 첫 방어선이자 미국 등 외세의 접근을 견제하는 전략적 경계선이다. 제2도련선은 오가사와라 제도(일본)에서 괌, 마리아나 제도, 팔라우 등으로 이어지며, 중국이 태평양으로 진출할 때 넘어야 할 두 번째 방어선이자 미국의 주요 해군기지들이 위치한 지역이다. 두 도련선은 중국의 해상 교통로 보호와 해군력 투사, 미국의 견제에 대응하는 핵심 전략 구상으로 인식되고 있다. 중국은 제1도련선 돌파와 제2도련선 진출을 통해 태평양에서의 영향력 확대와 해양 강국 실현을 목표로 하고 있다. ⓒ주재우 경희대 교수 저 '불통의 중국몽' 발췌

    對中 견제 동참한 베트남 관세율 46%→20%

    현재 미국과 관세 협상을 성공적으로 마무리한 국가는 영국과 베트남뿐이다. 베트남은 중국산 수출품이 자국을 경유할 경우 관세를 크게 높이는 방안을 수용함으로써 상호 관세율을 46%에서 20%로 낮췄다. '대중(對中) 견제'라는 미국의 전략적 요구에 부응한 것이 협상의 결정적 변수로 작용한 것이다.

    주한미군 일부 철수설까지 나오는 상황에서 한국은 방위비 분담금 인상과 '원 시어터 구상' 참여를 명확히 해 미국으로부터 한반도의 전략적 중요성을 재확인받아야 한다는 제언이 전문가들 사이에서 나오고 있다.

    트럼프 행정부가 추진하는 '원 시어터' 구상은 미국·일본을 중심으로 한국·필리핀·호주 등 동맹국과 함께 동중국해·남중국해를 하나의 광역 작전구역으로 설정해 중국의 군사적 위협에 대응하는 지역 안보 구상이다. 최근 필리핀 정부가 이 구상에 한반도가 포함되지 않았다고 밝히면서 한국이 중국 견제 전략에서 고립될 수 있다는 우려가 커졌다.

    그러나 동중국해나 남중국해 등 한반도 외 지역에서 위기가 발생할 경우 주한미군이 한반도 방위 임무를 넘어 타 지역에 투입될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 이미 한미 양국은 노무현 정부 시절인 2006년 해외 주둔 미군이 본래의 배치 목적을 넘어 다른 지역의 군사 작전에도 투입될 수 있도록 '전략적 유연성'(strategic flexibility)을 갖추는 데 합의했기 때문이다.

    결국 한국은 '원 시어터' 구상의 실질적 영향권 안에 놓여 있음에도 정작 구상 자체에서는 배제되는 모순된 상황이 발생할 수 있다. 이로 인해 한국이 냉전 시기 미국의 아시아 방위선에서 배제된 '애치슨 라인'과 유사한 전략적 고립 상황에 처할 수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韓, '원 시어터 구상' 참여로 美 전략적 요구에 부응해야

    무엇보다 중국은 서해에 불법 인공섬을 설치하며 남중국해처럼 '내해화'(內海化)를 시도하고 있다. 이에 따라 한국이 미국의 '원 시어터 구상'에 참여해 한미일 안보 협력을 강화함으로써 중국의 서해 팽창을 억제할 필요성이 커졌다.

    '원 시어터 구상' 참여가 중국의 심기를 건드려 한국의 국익을 해친다는 일각의 우려가 있지만, 이는 한국의 안보 현실과 맞지 않는 주장이다. 동아시아에 북대서양조약기구(NATO·나토)와 같은 집단안보체제를 구축하지 않는 이상 현재로서는 실현 불가능하다.

    또한 주한미군 전력만으로는 대만해협까지 원거리 전력 투사가 어렵다. 주한미군 전력의 약 70%가 지상군으로 구성돼 있어 한반도 외 지역, 특히 대만해협에서 작전을 수행할 수 있는 해·공군 전력은 제한적이다.

    한국 해·공군의 작전 반경은 한반도와 인근 해역에 최적화돼 있어 대만해협까지의 장거리 전력 투사에는 한계가 있다. 따라서 대만 유사시 직접 투입되는 주력은 주일미군이며, 특히 일본 요코스카에 본부를 둔 미 제7함대와 주일미군의 해·공군 전력이 중심이 된다.

    대만해협 위기 발생 시 중국의 칭다오(青島)에 있는 북해함대가 서해를 통과해 대만해협으로 이동할 가능성이 높은데, 이러면 주한미군은 지대함 미사일 등을 통해 서해안에서 중국의 움직임을 견제할 수 있다.

    박원곤 이화여대 교수는 "미국은 이미 인도·태평양 지역을 하나로 묶어 놓았다. 이는 하나의 집단안보체제를 만들겠다는 게 아니라 주한미군과 주일미군 등 전진 배치한 미군들을 전략적으로 유연하게 활용하겠다는 것"이라며 "다만 이를 구체화하기 위해 주일미군 사령관의 급을 3성 장군에서 4성 장군으로 격상하고 유엔군사령관을 겸직시키고 주한미군 사령관을 3성급으로 격하하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한국은 북한의 재래식 위협에 대한 한반도 방어를 책임지고, 김일성·김정일이 주장한 '우리민족끼리'식 주한미군 무력화와 민족공조 노선을 위한 것이 아니라 주한 미군의 안정적인 주둔을 위한 전시작전통제권 전환을 추진해야 한다. 이렇게 되면 주한미군이 역내에서 결국 중국 견제 역할과 임무를 맡게 되고 한미일은 대만해협 유사시 가이드라인을 구축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 베냐민 네타냐후 이스라엘 총리(오른쪽)가 7일(현지시각) 백악관 블루룸에서 열린 미-이스라엘 당국자 만찬에 앞서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에게 서류철을 건네고 있다. ⓒAP/뉴시스

    ◆'노벨상 미끼' 던진 이스라엘式 심리전이 주는 교훈

    한국이 선제적 카드 제시로 트럼프의 위신을 세워 관세 인상을 최소화해야 한다는 지적도 있다. 대표적인 사례가 지난 6월 미국의 이란 핵시설 폭격('미드나잇 해머' 작전) 당시 이스라엘의 심리전이다.

    송승종 연세대 국제대학원 객원교수는 "베냐민 네타냐후 이스라엘 총리는 이란 핵 위협을 트럼프의 정치적 유산과 연계해 자존심을 자극하고 '노벨평화상 추천' 등 상징적 선물을 제공하며 협상을 성공시켰다"면서 우리도 트럼프의 인정 욕구를 활용한 '이스라엘식 심리전'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 이재명 대통령이 8일 서울 용산구 그랜드 하얏트 서울에서 열린 제1회 방위산업의 날 토론회에서 발언하고 있다. ⓒ대통령실통신사진기자단

    ◆'13조 쿠폰'과 '1.5조 방위비' … 어느 쪽이 국익인가

    미국이 8월 1일부터 한국 제품에 25% 상호관세를 현실화하면 한국 경제에 연간 수십조 원대 수출 손실과 경제성장률 1%포인트 하락, 주요 기업 수익 급감을 야기해 외환 위기 이후 최악 수준의 충격파를 던질 것이라는 평가가 나온다.

    트럼프 행정부는 한국에 대한 미국의 무역 적자를 약 660억 달러로 추산하며 이를 근거로 한국에 25%의 관세를 책정했다.

    산업연구원 분석에 따르면, 이러한 고율 관세가 현실화되면 한국의 대미 수출액 감소분은 연간 500~600억 달러(약 65~78조 원)에 이를 수 있다. 특히 자동차 및 자동차 부품, 철강·알루미늄 등 주요 수출 품목에서 관세 인상 시 연간 수조 원 이상의 손실이 발생할 수 있다. 이는 국내 관련 기업들의 경쟁력을 급격히 악화시키고 일자리 감소로 이어진다.

    일부 정치적 반발이 예상되지만 주한미군 주둔 경비 1조5000억 원 추가 부담이 장기적 국익과 안보 강화에 더 효과적이라는 평가가 있다.

    한 외교안보 전문가는 "트럼프발 관세는 한국에 남는 게 없지만, 방위비는 자강을 위한 국내 인프라 구축에 쓰인다"며 "미국의 요구를 선제적으로 수용해 신뢰를 쌓은 후 단계적으로 우리 요구를 관철해야 한다"고 제언했다.

    한국은행과 KDI 분석에 따르면 2020년 현금 지급의 승수효과는 0.2~0.4로 제한적이고 효과도 3~6개월 이내 소멸했다. 이재명 정부가 추진하는 13조 원 규모의 '전 국민 25만 원 소비 쿠폰 지급 정책'보다 약 1조5000억 원의 방위비 분담금 인상이 국가 안보와 장기적 경제 인프라 구축 효과 면에서 더 효과적인 이유다.
조문정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