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성락 방미 도중 트럼프發 '관세 경고장'中 전승절 가는 순간 韓 '관세 폭탄' 현실화방위비 100% 분담에 선제적으로 호응해야
  • ▲ 2017년 11월 9일 중국 베이징의 인민대회당에서 중국을 방문한 도널드 트럼프 미 대통령(왼쪽)이 시진핑(習近平) 중국 국가주석과 나란히 걷고 있다. ⓒAP·뉴시스

    위성락 대통령실 국가안보실장과 여한구 산업통상자원부 통상교섭본부장이 한국산 제품에 대한 미국의 '25% 관세 부과' 위협을 완화하고 한미 정상회담을 추진하고자 미국에 급파됐다. 그러나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이 경제와 안보를 적극적으로 연계하며 동맹국을 '벼랑 끝 전술'(brinkmanship)로 압박하는 상황에서 사실상 '빈손 방미'가 되는 것 아니냐는 우려도 나온다.

    관세 인상 최소화를 위해 우리 정부가 트럼프와 밀고 당길 수 있는 협상 공간은 의외로 넓지 않다. 주한미군 방위비 분담금 인상과 한국 자동차 시장 추가 개방, 대(對)중국 견제 '원 시어터' 구상 지지 등 미국이 원하는 카드를 내어줌으로써 트럼프의 국내외적 위신을 세워주는 방안이 한국이 가진 유일한 카드라는 것이 전문가들의 조언이다.

    ◆위성락 방미 중 날아든 '트럼프의 경고장'

    트럼프 대통령은 7일(현지시각) 이재명 대통령 앞으로 "8월 1일부터 25% 상호관세를 부과하겠다"는 서한을 발송했다.

    트럼프는 본인이 운영하는 소셜미디어 트루스소셜에 한일 정상을 수신자로 한 관세 서한을 1분 간격으로 연이어 공개했다. 서한은 상호관세가 자동차, 철강·알루미늄 등에 이미 부과된 품목별 관세와 별개이며, 다음 달 1일까지 협상 가능성을 열어두겠다는 내용이 포함돼 있다.

    위 실장과 여 본부장이 미국을 찾아 고위급 협상에 나선 가운데, 트럼프 대통령이 서한과 SNS를 통해 이를 통보한 것이다.

    설상가상으로 위 실장은 마코 루비오 미 국무장관 겸 국가안보보좌관으로부터 한미 정상회담 개최에 대한 '확답'마저 듣지 못했다.

    전날 대통령실에 따르면, 우리 측은 "조속한 시일 내 한미 정상회담 개최를 통해 제반 현안에서 상호 호혜적인 결과를 진전시켜 나가길 희망한다"고 밝혔으나 미국 측에선 이에 공감만 표했다고 한다. 단순한 공감 표명은 원론적인 차원일 뿐, 긍정적인 답변으로 해석하기 어렵다는 것이 외교가의 평가다.
    ▲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사업가 시절이던 1987년 11월 출간한 저서 『협상의 기술(Trump: The Art of the Deal)』. ⓒ위키피디아

    ◆"피 냄새 풍기면 끝장" … 트럼프式 벼랑 끝 협상법

    외교 사절이 워싱턴을 찾은 시점에 트럼프가 갑작스럽게 압박 카드를 꺼내 상대를 궁지에 몰아넣은 사례는 이번이 처음이 아니다.

    2019년 6월 멕시코 외교 사절단에게 "합의 못하면 모든 멕시코산 제품에 5% 관세 부과"를 통보한 것이 대표적이다. 한국도 2018년 3월 방미한 정의용 당시 안보실장은 북한 이슈 논의 와중에 트럼프의 전격적인 철강 관세(25%) 발표로 당혹감을 감추지 못했다.

    트럼프의 협상 기술은 그의 저서 '협상의 기술'(The Art of the Deal)에 잘 드러나 있다. 그의 협상법은 '큰 판을 그려라' '최초 요구치는 높게 불러라' '내가 우위에 설 판을 짜라' '상대가 지칠 때까지 밀어붙여라'로 요약된다.

    즉, 처음에 무리한 요구를 제시해 주도권을 쥐고, 상대를 심리적으로 압박한 후 협상을 통해 일부만 양보하더라도 결국 원하는 바를 얻어낸다는 것이다.

    그는 책에서 "협상에서 최악은 절박한 모습을 보이는 것이다. 상대가 피 냄새를 맡게 된다"면서 자신의 우월한 입지와 옵션을 최대한 활용해 레버리지, 즉 '힘의 우위' 극대화함으로써 판을 주도해야 한다고 강조한다.

    트럼프 대통령은 협상에서 판을 흔드는 '벼랑 끝 전술'도 마다하지 않는다. 상대가 자신의 요구를 받아들이지 않으면 협상을 걷어차 버리거나 극단적 조치를 불사하겠다고 위협함으로써 상대의 불안을 키워 양보를 유도하는 방식을 사용한다.

    데이터보다는 직관을 중시하는 모습도 책 곳곳에서 드러난다. 그는 "난 숫자나 통계를 따지는 전문가들을 많이 두지 않는다. 복잡한 마케팅 조사를 신뢰하지 않고, 직접 시장 분위기를 읽어 나만의 결론을 낸다"고 밝혔다.

    트럼프는 약 2만8500명인 주한미군 규모를 1기 행정부 때부터 수차례 3만2000명에서 4만5000명으로 과장해 발언해 왔고, 방위비 분담금 인상을 계속해서 요구해 왔다.

    그는 8일 백악관에서 열린 내각회의에서 주한미군 규모가 4만5000명이라며 주한미군 주둔 비용(방위비 분담금)을 연간 100억 달러(약 13조7000억 원)까지 늘려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어 "한국은 스스로 방위비를 부담해야 한다"면서 "한국은 미국에 (주한미군 주둔비용을) 너무 적게 지불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 2015년 9월 3일 중국 베이징 톈안먼 성루에서 열린 전승절 열병식에 박근혜 대통령(사진 오른쪽)과 시진핑(習近平·가운데) 국가주석, 블라디미르 푸틴 대통령(왼쪽)이 입장하는 모습. ⓒ중국 신화 통신/뉴시스

    ◆안보와 경제 연계 … 中 전승절 가는 순간 '관세 폭탄'

    트럼프의 안보·경제 연계 압박은 이미 트럼프 1기 때부터 지속됐다. 그는 2018년 2월 "우리가 일본, 독일, 한국을 방어하지만 그들은 방위비 일부만 낸다. 공정하지 않다"고 지적하면서 한미 자유무역협정(FTA)을 '매우 나쁜 협정'이라고 칭했다. 특히 한국산 자동차·전자제품을 예로 들며 '미국이 한국을 방어해줬는데, 무역에서는 한국이 미국을 착취한다'는 불만을 지속적으로 표출했다.

    이러한 압박 기조는 트럼프 2기에서 더욱 심화되고 있다. 지난 6월 북대서양조약기구(NATO) 정상회의에서 트럼프는 국내총생산(GDP) 대비 국방비 5% 지출을 요구했다. 그러나 스페인이 2.1% 수준을 고집하자, 이를 '무임승차'로 규정하고 '무역에서 2배로 토해내게 하겠다'며 고율 관세 부과를 예고했다. 무역은 유럽연합(EU) 공동협상 사안이므로 개별국을 대상으로 보복할 수는 없지만, 트럼프 특유의 안보·무역 연계 압박 전략을 상징적으로 드러낸 사례다.

    한국 좌파 정부가 실용외교를 기치로 추진해 온 '안미경중'(안보는 미국, 경제는 중국) 기조는 강한 압박을 초래할 가능성도 있다.

    트럼프는 지난 6일 중국과 러시아 중심의 비(非)서방 신흥경제국 연합체인 브릭스(BRICS) 회의를 계기로 "브릭스의 반미 정책에 동조하는 어떤 국가라도 추가 10% 관세를 부과할 것"이라고 트루스소셜을 통해 공언했다.

    이에 대해 안보 전문가인 박원곤 이화여대 교수는 뉴데일리에 "이재명 대통령이 중국 전승절 행사에 참석할 경우 모든 협상이 어그러지고, 관세 등 불이익이 2배 이상 커질 것"이라고 내다봤다.

    ◆한국 정부의 카드는 방위비 분담금 100% 부담

    한국이 쓸 수 있는 카드는 주한미군 방위비 분담금 인상, 미국산 자동차에 대한 비관세 장벽 철폐와 수입 쿼터 확대 등 한국 자동차 시장 추가 개방, 동중국해·남중국해·한반도를 하나의 전쟁구역으로 묶어 중국의 해양 팽창을 견제하는 '원 시어터' 구상 참여 등이 꼽힌다.

    그중에서도 한국이 우선적으로 활용할 수 있는 현실적 카드는 트럼프의 방위비 분담금 인상 요구에 대한 선제적인 호응이다.

    언론인 피터 베이커와 수전 글래서의 저서 '분열자: 백악관의 트럼프'(The Divider: Trump in the White House, 2017-2021)에 따르면 트럼프는 1기 행정부 당시 독일산 자동차에 관세를 부과하지 못한 것과 한국으로부터 50억 달러의 방위비 분담금을 받아내지 못한 것을 '유일한 후회거리'로 꼽았다.

    박 교수는 "한국이 트럼프의 마음을 돌릴 수 있는 방법은 결국 트럼프가 원하는 '원스톱 쇼핑'뿐이다. 방위비 분담금 인상을 통해 동맹국으로서의 책임과 비용 부담을 늘리는 동시에, 대미 무역 흑자를 줄이는 경제적 양보도 이뤄져야 한다. 방위비 분담금 인상과 맞바꿀 이익을 따지는 것은 현실적으로 불가능하다"고 짚었다.

    그는 "트럼프가 가장 선호할 협상 카드는 한국이 주한미군 방위비 분담률을 100%까지 끌어올리는 것이다. 한국의 추가 부담 규모는 연간 1조3000억에서 1조5000억 원 정도로 예상되며, 트럼프가 동맹국에 국방비를 GDP 대비 5%까지 올리라고 요구한 상황에서 어차피 증액될 국방비의 일부를 분담금으로 전환하는 전략도 고려할 수 있다"고 조언했다.

    이어 "미국이 전략자산 전개 비용 등 추가 비용을 요구할 경우에는 방위비분담특별협정(SMA) 개정 협상을 통해 시간을 끌며 협상의 지렛대로 삼는 전략도 가능하다"고 덧붙였다.


조문정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