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청년 기초수급 비율 1.6%…실제 빈곤률은 37%구직 기간 늘고, 높아진 스펙 경쟁에 취업 준비부터 '빚'쉼 청년 늘고 있는데 '돌아옴'은 요원극빈 청년 위한 '디딤돌소득' 시범 종료…자립 발판 실종고립·질병·해체가 뒤섞인 청년 위기, 정책은 아직 '취업'에 머물러한 사람, 하나의 정책만…복합위기 시대에 역부족인 제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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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서울시가 지난달 25일 발표한 청년 통계에 따르면, 2023년 기준 서울에서 기초수급 생활을 하는 청년은 2016년 대비 47% 증가했다. (이미지는 AI를 활용해 제작되었음)
"스터디카페 월 15만 원, 자격증 강의 40만 원, 모의고사 응시료 5만 원…이런 것까지 다 합치면 한 달에 70만 원은 깨져요. 생활비랑 교통비 빼면 숨만 쉬어도 100만 원이 넘는 셈이죠."
서울 관악구 고시원에 사는 이수민(가명·28) 씨는 공기업 취업을 목표로 공부 중이다. 지방대 졸업 후 곧장 상경했지만 2년째 취업 문턱을 넘지 못했다. 그는 "취업 준비도 돈이 있어야 가능한 일"이라고 말한다.
수민 씨는 식비와 교통비를 아끼기 위해 하루 한 끼만 먹거나 도보 이동을 택한다. 이번달 학원비는 결국 소액 대출로 충당했다. 한때는 스마트폰 요금 자동이체가 두 달 밀리기도 했다. 그때부터는 통신 연체 걱정까지 안고 산다.
그는 "부모님께 손 벌리기도 죄송해서 아르바이트도 해봤는데 체력은 체력대로 고갈되고 공부는 뒷전이 되더라고요"라며 "아르바이트는 돈이 되고 공부는 빚만 되니까요"라고 푸념했다.-
- ▲ 이수민(가명·28) 씨의 인터뷰를 바탕으로 작성한 취업준비 청년 월 가계부 ⓒ김승환 기자
◆통계로 드러난 서울 청년의 삶…기초수급 청년 급증
이같은 서울 청년들의 빈곤이 통계로도 드러났다. 서울시가 지난달 25일 발표한 청년 통계에 따르면, 2023년 기준 서울에서 기초수급 생활을 하는 청년은 4만6800명이었다. 전체 서울 청년 중 1.6%라고는 하지만 2016년 3만1800명과 비교하면 47%나 늘어난 수치다.
청년 기초수급자 급증의 배경에는 복지부의 수급자 선정 기준 완화가 영향을 미친 측면도 있다. 하지만 이는 청년 빈곤 실태의 일부만을 보여줄 뿐이다. 생계가 곤란해도 조건을 충족하지 못해 수급자가 되지 못한 비수급 빈곤 청년은 여전히 이보다 훨씬 많다.
2022년 조사에서 서울 청년의 37%가 중위소득 50% 미만으로 파악됐다. 3명 중 1명 이상이 통계상 '빈곤층'에 해당한 것이다. 하지만 이들은 제도 밖에 머무는 경우가 대다수다.
소득이 조금만 있어도 수급 기준에서 탈락하거나 가족이 있다는 이유로 대상에서 제외되기 때문이다. 이들은 복지의 사각지대에 머문 채 정책 밖에서 살아가고 있다.
◆ 구직 기간 늘고, 높아진 스펙 경쟁에 취업 준비부터 '빚'
이에 본지는 기초생활수급자이거나 수급자는 아니지만 생계에 어려움을 겪고 있는 청년 8명을 심층 인터뷰했다. 이들의 빈곤은 생계 곤란을 넘어 학업과 일, 관계마저 단절시키는 '삶 전체의 단절'로 이어지고 있었다.
최윤지(가명·26) 씨는 디자인 관련 기업에 신입으로 입사하기 위해 인턴 생활부터 시작했다. "요즘은 대부분 경력 있는 신입을 뽑는다더라고요. 그래서 포트폴리오 만들고 경험도 쌓을 겸 인턴을 시작했죠." 하지만 인턴 기간 3개월 동안 받은 돈은 한 달 60만 원. 하루 8시간씩 일을 하면서도 실질적인 소득은 없었다. 점심값과 교통비를 제하고 나면 남는 것도 없었다. 윤지 씨는 "시간은 다 쓰는데 돈이 안 되니까 생활이 더 어려워졌다"며 "일하고도 취업 준비가 더 힘들어지는 구조"라고 말했다.
이들의 경험은 청년 빈곤이 단순히 소득 부족에서 비롯되지 않는다는 점을 보여준다. 청년들이 가장 먼저 빈곤에 빠지는 지점은 준비 과정이다. 대학을 졸업하자마자 곧바로 일자리를 얻는 건 점점 어려워졌고 공공기관이나 전문직은 물론 일반 기업 취업조차 자격증, 어학 점수, 포트폴리오, 인턴 경험 등 다양한 스펙을 요구한다. 문제는 이 모든 준비가 청년 개인의 시간과 비용 부담 위에 놓여 있다는 점이다.
서울시가 2022년 발표한 청년 부채 실태조사에 따르면 서울 청년의 평균 부채는 2370만 원에 달한다. 이 중 상당 부분은 학자금 대출에서 시작되며 이후 생활비와 취업 준비 비용을 감당하기 위해 카드론, 현금서비스 등 고금리 단기 대출로 이어진다. 소득이 낮은 청년일수록 이 같은 고금리 부채에 의존하는 비중도 더 높다. 졸업과 동시에 대출 상환이 시작되지만 정작 수입은 없는 상황, 첫 사회 진입부터 마이너스 통장 인생이 시작되는 셈이다.
여유가 있는 청년은 강의 수강, 시험 응시, 포트폴리오 제작, 모의면접 등으로 경쟁력을 키우지만 자금 여력이 부족한 청년은 기본적인 생계비조차 확보하지 못한 채 하루하루를 버틴다.
◆ '쉼표'가 '출구 없음'으로…되돌아갈 수 없는 청년들
서울 마포구에 거주하는 최민아(가명·35) 씨는 전문대학을 졸업한 뒤 콜센터 상담원으로 7년간 일했다. 고객 응대 과정에서의 정서적 소진과 누적된 스트레스는 결국 자살 시도로 이어졌고 가까스로 목숨을 건진 그는 회사를 그만둘 수밖에 없었다. "처음엔 잠시만 쉬자고 생각했어요. 나를 좀 챙기고 다른 일을 해볼까 싶었죠." 하지만 회복은 생각보다 훨씬 긴 시간이 필요했다. 우울증과 수면장애로 인해 외출도, 연락도 점점 어려워졌고 세상과 단절된 채 지내는 시간이 길어졌다. "한 번 일에서 멀어지고 나니까 다시 돌아가는 게 너무 막막했어요. 시간이 흐를수록 공백에 대한 질문이 무서웠고 자신감도 사라졌죠." 그의 '잠시'는 어느덧 10년 가까운 무직 상태가 되었다.
고용노동부의 2023 청년층 경제활동 실태조사에 따르면 비자발적 실업 상태에 있는 청년 중 절반 이상이 정신건강 문제를 병행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하지만 국내 복지제도는 정신질환에 의한 근로불능 상태를 수급 자격 판단 기준으로 명확히 반영하지 못하고 있다. 서울시 관계자는 "중증 우울, 불안장애, 공황장애 등으로 지속적인 고용이 어려운 청년들도 근로 가능으로 판단돼 수급 대상에서 제외되는 경우가 많다"고 설명했다.
전문가들은 이를 비자발적 쉼의 구조적 악순환으로 본다. 정신질환 → 직장 퇴사 → 고립 → 생활불안 → 증상 악화 → 재진입 실패 → 빈곤 심화. 이 같은 순환 고리가 빠르게 형성되지만 이를 끊어낼 제도적 개입은 여전히 미비하다.
비단 정신질환 때문만은 아니다. 자신의 적성과 일에 대한 회의, 단순한 소진감 등으로 잠깐의 쉼을 선택한 청년도 결국 제자리로 돌아가지 못하고 사회에서 밀려나기도 한다.
박지현(가명·31) 씨는 3년간 병원 행정직으로 일하다 일이 적성에 맞지 않는다는 생각에 퇴사한 뒤 다른 직업을 준비했다. 자격증을 따고 새 길을 찾으려 했지만 결과는 기대와 달랐다. 다시 병원으로 돌아가려 했지만 면접에서는 "그동안 뭐 했냐"는 질문이 반복됐다. "내 선택이 다른 길을 찾으려는 시도였을 뿐인데 오히려 표준화된 경로를 벗어난 낙오자가된 것 같았어요."
준비된 실패도 회복할 기회도 허락되지 않는 구조. 청년 빈곤은 단지 현재의 소득 부족 뿐 아니라 '잠시 멈추는 것조차 허락되지 않는 사회'에서 비롯된다는 점이 드러난다.
◆ 자립 발판 없이, 복지의 늪에 빠진 극빈 청년들
서울 동작구의 박수연(가명·31) 씨는 기초생활수급자 가정에서 성장한 청년이다. 간병이 필요한 어머니와 함께 살며 국가 지원으로 생계를 유지하고 있다. 김 씨는 자신이 처한 상황에서 자립은 불가능에 가까운 목표라고 말한다. "치위생사 국가시험을 준비하고 있지만 합격한다고해서 취업에 바로 나설지 모르겠어요. 돈을 벌면 기초수급이 끊기는데, 그러면 부모님 병원비를 감당하기 어렵고 임대 아파트에서도 나가야하거든요."
기초수급제도는 극빈층을 위한 최소한의 사회안전망이지만 일정 소득 기준을 넘는 순간 지원이 곧바로 끊기는 임계점 구조로 설계돼 있어 자립을 시도하는 순간 오히려 더 큰 불안에 직면하게 된다. 기초수급자 가정에서 자란 청년들은 24살까지 그 가정의 구성원에 포함되는데 이때 소득이 발생하면 가족의 수급 생활이 끊길 수 있다. 일해서 버는 돈이 기초수급 지원액보다 클 수 있지만 주거와 병원비 등 그 외의 혜택까지 끊기기 떄문이다. 취재과정에서 만난 한 복지상담가는 "기초 수급생활 연장을 위해 자녀가 24살이 될때까지 취업을 못하게 막는 부모들도 많다"고 말했다.
이 같은 구조적 한계를 보완하기 위한 시도도 있었다. 서울시는 2022년부터 디딤돌소득제도를 시범 운영했다. 소득이 일정 수준을 넘더라도 수급 자격을 박탈하지 않고 소득에 비례해 지원금을 줄여나가며 자립을 유도하는 방식이다.
기초수급자 가정에서 자란 김지현(가명·25) 씨는 "디딤돌소득제도 덕분에 마음 놓고 취업 준비를 할 수 있었다”며 “중소기업에 취직해 적은 급여지만 경력을 쌓았다”고 말했다.
하지만 김씨는 현재 직장을 그만두고 다시 기초수급자가 되었다. 디딤돌소득의 시범 운영이 끝났기 때문이다. 부모님의 병원비도, 임대 아파트를 나가 구해야할 주거비도 김씨의 월급으로는 감당하기 어려워 보였다. 디딤돌소득은 3년간의 시범 운영을 마치고 현재 성과 평가가 진행 중이다. 향후 제도 재개 가능성도 있지만 지금 당장은 시행되지 않고 있다.
기초수급제도가 극빈층의 생존을 위한 최소한의 안전망이라면 수급 이후 자립을 위한 중간 사다리는 여전히 부재한 상황이다. 수급 상태를 벗어나는 순간 대부분의 지원이 끊기는 구조는 오히려 청년들의 자립을 가로막는 장벽이 되고 있다.-
- ▲ 지난 4일 서울시가 주최한 청년 자살예방 토론회에서 청년이 자살을 생각한 가장 큰 이유로 경제적 어려움(21.9%)이 꼽혔다. ⓒ김승환 기자
◆ 노후 준비는커녕, 내일도 장담 못 하는 삶
청년 빈곤은 일시적인 어려움이 아닌 생애 전반을 뒤흔드는 구조적 문제다. 전문가들은 청년기의 빈곤이 중년과 노년까지 이어질 가능성이 크다고 지적한다. 한국보건사회연구원 분석에 따르면 청년기에 빈곤을 겪은 이들 중 60% 이상이 중년기에도 빈곤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서울의 청년은 통계상으로도 취약한 자산 기반 위에 놓여 있다. 통계청 2022 가계금융복지조사에 따르면 서울 20대 1인 가구의 자산 중위값은 전체 가구의 39% 수준에 불과하다. 독립과 동시에 주거비, 생활비, 대출 상환까지 감당해야 하는 구조에서 자산 축적은 현실적으로 불가능에 가깝다. 여기에 비정규직·단기 일자리 등 불안정한 고용 상태가 지속되면 소득이 끊기는 순간 신용이 하락하고 대출이 막히며 다시 빈곤으로 되돌아가게 된다. 일자리를 잃은 순간 사회적 안전망은 작동하지 않고 빈곤의 고리는 끊기지 않는다.
"노후 준비는커녕, 다음 달 월세도 못 낼까봐 걱정입니다."
인터뷰에 응한 한 청년의 말은 현재의 빈곤이 지금의 문제가 아닌 내일도 예측할 수 없는 삶으로 이어지고 있음을 상징한다. 당장의 생존만으로도 벅찬 현실에서 미래를 준비할 여력은 점점 더 멀어진다. 빈곤은 시간이 지나면 해결되는 문제가 아니며 오히려 해결하지 않으면 점점 더 깊어지는 구조적 문제라는 점이 지금의 청년 빈곤이 우리 사회에 던지는 가장 무거운 질문이다.
◆ 청년 복지는 한 덩어리로 묶을 수 없다…정책 세분화 필요
청년은 하나의 집단으로 묶기에 너무나 이질적이다. 그럼에도 정책은 여전히 청년 일반이라는 틀로 설계되고 있다. 서울시 통계상 청년은 만 19세부터 39세까지, 무려 20년의 세월이 같은 기준 아래 놓인다. 대학에 갓 진학한 청년과 아이를 키우는 30대 후반의 청년이 같은 복지 대상으로 분류되는 셈이다.
이승윤 중앙대 사회복지학과 교수는 "20대 초반과 후반의 경제적 상황은 전혀 다르고 30대 초반과 후반은 다시 다른 문제에 직면한다"며 "다양한 집단을 한데 묶은 채 정책을 설계하면 누구에게도 제대로 된 도움을 줄 수 없다"고 지적했다.
실제 현장에서도 문제는 다양성과 복합성의 간극에서 시작된다. 고립은둔청년을 지원하는 한 민간 전문가는 "청년 빈곤의 원인과 양상은 정신질환, 고립, 주거 상실, 가족 해체 등으로 다양하다"며 "현재 정책은 대부분 취업 여부로 성과를 평가한다. 고립된 청년은 회복이 먼저인데 회복 이전에 취업으로 몰리게 되면 오히려 역효과가 날 수 있다"고 우려했다.
정책의 범주뿐 아니라 방식에서도 한계는 반복된다. 이삼식 한양대 정책학과 교수는 "서울 청년들은 높은 주거비, 치열한 경쟁, 취업 준비 비용 인플레 등 복합적 위기에 놓여 있다"며 "현재 청년 정책은 대체로 1인 1지원 방식이라서 복합적 어려움을 겪는 이들이 연속적인 지원을 받기 어렵다"고 지적했다. 실제로 여러 제도를 활용하려 해도 지원 자격이 중복되지 않거나 일정 기간이 지나야 다른 지원이 가능하다는 식의 제약이 많다.
청년 빈곤은 단지 가난으로 끝나는 문제가 아니다. 지난 4일 서울시가 주최한 청년 자살예방 토론회에서 청년이 자살을 생각한 가장 큰 이유로 경제적 어려움(21.9%)이 꼽혔다. 절망은 주머니에서 시작돼 삶 전체로 확산된다. 청년의 빈곤은 이 사회가 어떤 미래를 준비하고 있는지를 가장 날것으로 보여주는 지표다.

김승환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