韓, 美日 안보 구상 배제로 고립 우려서해·7광구 中 위협 대응 긴급 과제로 부상나토식 '사안별 참여'로 자율성 확보해야모호한 균형외교, 안보·경제 위험 높일 수도中 경제 보복 대비 다자 협력망 필수
  • ▲ 시바 시게루(왼쪽) 일본 총리와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지난 2월 7일(현지 시간) 백악관 집무실에서 회담하면서 악수하고 있다. ⓒAP/뉴시스

    한국이 최근 미국·일본 주도의 '원 시어터'(one-theater) 구상에서 배제됐다. 중국 견제를 위한 '다자 안보망'에서 전략적으로 고립될 수 있다는 우려가 커지고 있다. 최근 필리핀 국방장관은 '원 시어터' 구상에 한반도가 포함되지 않았다고 밝혔다. 그러나 동중국해나 남중국해에서 군사적 위기가 발생하면 주한미군이 자동으로 개입할 수밖에 없다는 점에서, 한국은 원 시어터 구상의 전략적 영향권에 놓여 있다. 이에 따라 과거 냉전 시대 한국을 미국 방위선에서 제외한 '애치슨 라인'과 유사한 전략적 고립 상황에 처할 위험이 크다는 지적이 나온다.

    이러한 상황에서 중국은 한국이 전략적으로 고립됐다는 잘못된 신호를 받을 가능성도 존재한다. 서해를 사실상 '내해'(內海)로 만들고, 동중국해의 7광구에서도 해상 패권을 노리는 중국이 한국의 전략적 고립을 적극적으로 활용할 우려가 있다. 따라서 한국은 원 시어터 구상 참여를 적극적으로 검토하되, 참여 시기와 방식을 신중히 조율해야 한다. 특히 협상 과정에서 미국·일본과 7광구 및 서해 문제에 대한 안전 보장 협력을 명문화하고, 중국의 도발에 공동 대응하는 구체적 메커니즘을 마련할 필요가 있다는 제언이 나온다.
    ▲ 주재우 교수 저 '불통의 중국몽' 발췌. ⓒ주재우 경희대 교수 제공

    ◆한반도 배제 '원 시어터' 구상 배경

    '원 시어터' 구상은 미국과 일본이 중심이 되어 호주·필리핀 등과 함께 동중국해와 남중국해를 하나의 전쟁구역으로 묶어 중국의 해양 팽창을 견제하는 전략적 개념이다. 원래 미국·일본·호주·인도 간 안보협력체인 '쿼드'(Quad)에서 출발했지만, 군사적 협력에 소극적인 인도를 대신해 필리핀을 포함하면서 군사적 실효성을 높이는 방향으로 발전했다.

    필리핀 정부는 이미 지난 2월 미·일·호주·필리핀으로 구성된 비공식 협의체인 '스쿼드'(Squad)에 한국을 추가 가입시키겠다는 의사를 밝혔다. 이후 나카타니 겐 일본 방위상이 지난해 3월 한반도와 동·남중국해를 하나의 전구로 묶는 '원 시어터' 구상을 미국에 제안했고, 피트 헤그세스 미 국방장관도 이에 공감하면서 논의가 본격화됐다.

    필리핀 정부가 최근 한반도의 포함 가능성을 부인한 배경에는 일본 주도의 안보 체제에 한국이 편입되는 데 대한 한국 정부의 우려와 거부감이 자리 잡고 있는 것으로 풀이된다. 실제로 한국 외교 당국은 일본이 비공식적으로 원 시어터 구상 참여 의사를 타진했을 때 "한반도가 일본 주도의 전쟁 구역 구상에 들어가는 것은 문제"라는 입장을 일본 측에 전달했다.

    일본 정부는 관련 보도가 나오자 공식 명칭인 '원 시어터' 사용을 자제하며 해명에 나섰다. 일본 방위성은 "언론 보도는 일본 정부의 공식 입장과 다르며, 특정 지역 분쟁을 전제로 하거나 군사적 용어로 '원 시어터'를 사용한 것이 아니다"라고 설명했다.

    한국 외교부는 일본 측으로부터 "군사적 개념이 아니라 아시아·태평양 지역의 평화와 안정을 위한 폭넓은 협력 구상"이라는 설명을 들었다고 밝혔다. 한국 국방부도 지난 4월 17일 정례 브리핑에서 "국방부가 언급할 내용은 없고, 일본 측으로부터 구체적인 제안이나 협의를 받은 적이 없다"는 신중한 입장을 유지했다.
    ▲ 한일 공동개발구역(JDZ)과 중일 공동개발구역(JDZ)의 위치. 중일 JDZ는 한일JDZ에서 불과 925m 떨어져 있다. ⓒ국회입법조사처 '한·일 대륙붕 공동개발체제 종료 대비방안' 보고서 캡처

    ◆중국의 서해·7광구 전략과 위협

    한국이 '원 시어터' 구상에서 배제되면 중국은 이를 전략적 기회로 활용할 가능성이 있다. 이미 서해 한중 잠정조치수역(PMZ)과 동중국해 '제7광구'에서 공격적 해양 팽창을 본격화하고 있기 때문이다.

    서해의 PMZ는 한중 양국이 어업 등 임시 협력을 위해 영유권 확정을 유보한 수역이지만, 중국은 이곳에 불법 인공섬 형태의 대형 해상구조물을 지속적으로 설치하고 있다. 2018년 '선란(深藍) 1호'를 시작으로, 2022년 석유 시추선 개조 구조물, 2024년 '선란 2호'까지 총 3기가 설치됐고, 향후 12기까지 확대할 계획이다.

    중국은 이 시설들을 '어업용 양식시설'이라고 주장하지만, 전문가들은 안테나탑이 장착된 이 구조물들이 중국 해군과 해경의 전초기지로 활용될 가능성이 높다고 보고 있다. 중국은 2009년과 2015년 이 지역에서 불법 시추공을 뚫어 자원 탐사를 시도했고, 2021년에는 해경법을 제정해 해경의 무력 사용 권한까지 확대했다.

    동중국해에서도 중국의 움직임이 강화되고 있다. 특히 한일 양국이 공동 관리 중인 '제7광구'의 관리 협정이 2028년 6월 22일 만료(2025년 6월 22일부터 종료 통보 가능)를 앞두고 불확실성이 커지자 중국은 적극적으로 관할권을 주장하기 시작했다. 일본 내에서도 협정 종료 시 중국의 진출 가능성을 심각히 우려하고 있다. 중국은 이미 센카쿠열도(댜오위다오) 인근 해역에서 해양 인프라 구축과 해경 함정 상시 배치로 영향력을 확대하고 있고, 7광구에서도 시추 및 군사 활동을 전개할 가능성이 높다.

    이러한 중국의 위협을 억제하려면 한국은 원 시어터 구상 참여를 적극적으로 검토하고, 미국, 일본과의 협상에서 7광구와 서해 문제에 대한 안전 보장 협력을 명문화해 중국의 도발에 대비해야 한다는 제언이 나온다.

    익명을 요청한 한 외교·안보 전문가는 "신냉전이 본격화된 지금 원 시어터 구상 참여는 한국이 피하기 어려운 현실"이라며 "한국이 참여하면 중국이 서해에 불법 구조물을 설치할 때 정치적 부담을 느낄 수밖에 없다. 다만 '항해의 자유'와 같은 기본 원칙을 유지한다고 천명함으로써 중국의 과도한 반발을 최소화할 수 있을 것"이라고 강조했다.
    ▲ 지난 6월 24일(현지시간) 네덜란드 헤이그에서 열린 2025년 나토 정상회의에서 참가국 정상들이 기념사진 촬영을 위해 포즈를 취하고 있다. ⓒAP/뉴시스

    ◆나토·유로군단 모델로 '사안별 참여' 추진

    한국은 강대국과의 동맹에 의존할수록 외교적 자율성을 잃게 되고, 반대로 자율성을 추구하면 안보 리스크가 높아지는 '안보-자율성 교환 딜레마'에 처해 있다. 이 딜레마를 관리하기 위한 현실적 방안은 한국이 '원 시어터' 구상에 참여하되, 특정 분쟁 발생 시 개입 여부를 독자적으로 결정하는 '사안별 참여 원칙'을 도입하는 것이다. 이는 대만 해협 등 한반도 밖의 분쟁에 자동적으로 휘말리지 않고 사안에 따라 신중히 판단하겠다는 전략적 접근이다.

    이러한 원칙을 구현하는 대표적 국제 사례는 북대서양조약기구(NATO)의 '국별 제한'(national caveats)과 유로군단(Eurocorps)의 운영 모델이다. 나토 회원국들은 자국 법률이나 의회 승인 등 국내적 제약을 근거로, 집단방위(북대서양조약 제5조) 외의 작전에 병력 제공 및 임무 수행 범위를 제한하거나 거부할 수 있다. 유로군단은 프랑스와 독일 주도로 창설된 독립적 다국적 군사본부로, 실제 작전에 참여할 때 모든 회원국의 만장일치를 요구해 개별 국가가 참여 여부와 범위를 자율적으로 결정하도록 보장하고 있다.

    한국도 '원 시어터' 구상에 참여한다면 이 같은 국제 사례를 참고해 분쟁 개입의 자동성을 배제할 수 있는 명확한 제도적 장치를 미국, 일본과 협의할 필요가 있다. 예컨대 나토 조약과 유사한 공식 합의문에 "한반도 외 지역의 분쟁 개입은 한국의 주권적 결정 사항"임을 명시하거나, 유로군단과 유사한 별도의 협의체를 구성해 개입 여부를 결정하는 방식이다. 이는 한국의 전략적 자율성을 보호하면서도 동맹국들과의 협력을 유지하는 현실적 타협책이 될 수 있다.

    다만 제도적 장치가 마련된다하더라도 실제 위기 상황에서 동맹국들이 한국의 참여 거부권을 존중할지는 불확실하다. 아울러 정치적·경제적 압박이 따를 가능성도 있다. 그러나 사안별 참여 원칙을 명확히 천명하는 것 만으로도 한국이 최소한의 전략적 자율성을 확보할 수 있는 중요한 안전핀이 될 수 있다.
    ▲ 이재명 대통령이 더불어민주당 대선후보 시절이던 지난 5월 23일 고(故) 노무현 전 대통령 16주기를 맞아 경남 김해시 진영읍 봉하마을 노 전 대통령 사저에서 문재인 전 대통령과 김정숙 여사, 권양숙 여사와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더불어민주당 제공

    ◆한국형 헤징 전략의 한계와 위험

    한국이 미중 간 전략적 모호성(헤징·hedging)을 유지하는 것은 다른 국가들보다 훨씬 어렵다. 북한의 핵과 미사일 위협이 상존하는 현실에서 한국은 미국의 확장 억제에 크게 의존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핀란드, 스웨덴 같은 유럽 국가들의 중립 정책이나 인도·싱가포르의 전략적 거리 유지 모델을 그대로 도입하기 어려운 이유가 여기에 있다.

    한국이 미중 간 헤징 전략을 시도했다가 실패한 대표 사례는 2017년 문재인 정부의 '3불 1한'이다. 당시 한국 정부는 중국의 요구를 수용해 사드(THAAD·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 추가 배치 중단 등을 약속하며 미국·중국 간 균형을 유지하려 했지만, 결과적으로 중국의 경제 보복과 미국의 신뢰 손상이라는 이중의 피해를 입었다.

    우크라이나의 야누코비치 정권도 EU(유럽연합)와 러시아 사이에서 모호한 중립 정책을 펼치다가 내정 혼란과 러시아 군사 개입을 초래했다. 필리핀의 두테르테 정권도 친중 정책을 펴다가 중국의 실질적 경제 지원 약속 미이행으로 경제·안보적 위험만 높였다. 이들 사례는 강대국 사이에서 섣불리 자율성을 추구하는 전략의 위험성을 보여준다.

    ◆원 시어터' 참여 따른 中 경제 보복 대비책 … 호주·리투아니아 사례에서 배워야

    한국이 '원 시어터' 구상에 참여하면 중국이 경제적 보복에 나설 가능성이 있다. 그러나 호주와 리투아니아의 사례는 중국의 경제 압박을 효과적으로 관리할 수 있음을 보여준다. 2020년 호주는 중국의 경제 제재에 굴복하지 않고 시장 다변화를 통해 충격을 최소화했고, 리투아니아도 2021년 중국의 보복에 EU와 공동 대응으로 효과적으로 맞섰다.

    G7 등 주요 국가들도 중국의 경제 강압에 맞선 공동 대응책을 마련한 만큼, 한국도 다자 경제·안보 협력망에 적극적으로 참여할 필요가 있다. 동시에 수출 시장 다변화, 핵심 기술의 국산화 등 자국 차원의 경제·안보 강화 전략도 필요하다.

    결국 한국은 '원 시어터' 참여로 전략적 고립을 피하되, 나토식 조건부 참여를 통해 자율성을 확보하고, 국제적 경제·안보 협력으로 중국의 보복 리스크를 관리할 필요가 있다.
조문정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