李, 3일 기자회견서 "미일중 많이 만나볼 것" 외교가 "전승절, 단순 만남 아냐 … 전략 필요""日, 李 정부는 친중이라고 해석할 수도" 우려
  • ▲ 이재명 대통령과 이시바 시게루 일본 총리가 17일(현지시간) 캐나다 앨버타주 캐내내스키스 주요 7개국(G7) 정상회의장에서 열린 한일 정상회담에서 악수하고 있다. ⓒ연합뉴스

    중국이 오는 9월 베이징에서 열리는 '항일 전쟁 및 세계 반파시스트 전쟁 승리 80주년 대회'(전승절)에 한국의 참석을 요청하자 이재명 정부의 '실용외교'가 중대한 시험대에 오르게 됐다. 이번 요청이 자칫 '셔틀외교 복원' 후 훈풍이 불기 시작한 한일 관계를 다시 얼어붙게 만들고, 나아가 한미일 삼각공조마저 흔들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특히 외교 전문가들은 "이 대통령이 '실용외교'를 이유로 전승절에 참여한다면 미국과 일본에 '이재명 정부는 친중'이란 인식을 심어줄 것"이라고 경고했다.  

    5일 대통령실과 외교부 등에 따르면, 중국 정부는 최근 우리 정부에 오는 9월 3일 베이징 천안문광장에서 열리는 전승절에 이 대통령의 참석을 요청했다. 이에 대해 대통령실은 "한중 간 관련 사안에 대해 소통 중"이라며 신중한 입장을 나타냈다.

    이 대통령은 지난 3일 취임 한 달 기자회견에서 "한미 정상회담이든, 한일 회담이든, 한중 회담이든 많이 만나보려 한다"면서 유연한 외교 기조를 강조했다. 그러나 전승절 참석은 단순한 외교 무대 참여를 넘어, 전략적 판단이 필요한 사안이다.

    전승절은 제2차 세계대전 종전 다음 날인 9월 3일을 기념해 중국이 지정한 국가 기념일로, 특히 올해는 80주년을 맞아 서방 국가 정상을 초청하고 대규모 열병식을 펼칠 계획이다. 중국은 이를 통해 자국 체제의 우월성과 군사력을 과시할 계획이다.

    이런 행사 성격을 고려할 때 현시점에서 전승절 참석 여부가 논의되는 자체가 불필요한 외교적 오해를 초래할 수 있다는 지적이 제기된다. 

    무엇보다 7월은 한일 관계의 중대한 분수령이다. 프랑스 파리에서 열리는 유네스코 세계유산위원회에서 '군함도(하시마섬)' 강제 동원 표기 문제가 다시 논의될 가능성이 있고, 일본 방위성의 '방위백서'에서 독도 영유권 주장이 되풀이될 가능성이 있다.

    이처럼 민감한 현안이 산적한 시기에 전승절 참석 논의가 오가는 것은 지난달 주요 7개국(G7) 정상회의에서 확인된 '한일 셔틀외교 복원'이란 외교 성과에 찬물을 끼얹을 수 있다.  

    한미 관계도 시계제로다. 미국은 조만간 각국에 상호 관세율을 통보할 예정이지만, 현재까지 한미 정상 간 소통은 이뤄지지 않고 있다. 애초 7월 말로 예상됐던 한미 정상회담도 마코 루비오 미 국무장관의 방한 취소로 9월 유엔 총회 또는 10월 아시아태평양경제협력체(APEC) 정상회의로 밀릴 것으로 보인다.

    이러한 가운데 전승절 참석으로 얻을 '실익'이 뚜렷하지 않다는 점도 문제다. 2015년 박근혜 당시 대통령은 북핵 문제 해결을 위한 중국의 역할을 기대하며 중국 전승절에 참석했지만, 미국 측이 노골적으로 불편한 기색을 내비치며 한미 관계는 급속히 냉각됐다. 더구나 중국은 이듬해 사드(THAAD·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 배치에 대한 '한한령(限韓令)'이라는 보복 조치를 감행했다. 결국 박근혜 정부는 한미·한중 외교에서 모두 고립을 겪었다는 평가를 받는다. 

    전문가들은 "지금은 한미일 삼각공조를 공고히 할 시점"이라면서 "이 대통령이 중국 전승절 참석 가능성을 내비치는 것 자체가 동북아 안보 질서에 혼선을 줄 수 있다"고 입을 모은다. 

    주재우 경희대 교수는 "이재명 정부가 지금 실용외교를 주창하면서 모두와 다 잘 지내며 국익을 챙기겠다고 하지만, 전승절의 의미도 모르고 우리나라 국가 원수가 응하는 것은 부적합하다"며 "한중 관계도 중요하지만, 한미일 관계가 더 중요하다. 나토(NATO) 정상회의도 안 간 상황에서 전승절에 참석하는 건 어불성설"이라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실익과 내실이 전혀 없는 중국 방문이 될 것"이라고 덧붙였다. 

    이기태 세종연구소 외교전략센터장은 "미국과 일본이 '결국 이재명 정부가 중국과 더 가까이 지내겠구나'라는 시그널로 해석할 수 있다"며 "중국도 이미 우리에게 한미동맹이 더 중요하다는 걸 알고 있고, 전승절에 불참한다고 해서 보복 조치라던가 불쾌감을 표하지도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우리 측에서 먼저 APEC 참석 요청을 했으니 APEC에서 만나는 게 순리에 맞다"고 덧붙였다. 

    이와 관련 대통령실 관계자는 "'검토 중'이라는 말이 외교적으로 아주 중립적인 얘기다. 정말 '검토 중'에 불과하다는 뜻"이라며 "그런데 이 말이 정치적으로 해석돼 마치 전향적으로 검토 중인 것처럼 알려진 것뿐"이라고 선을 그었다. 
박아름 기자